소설리스트

초라해도 괜찮아-41화 (41/54)
  • 〈 41화 〉 평범한 가족을 바랐다

    * * *

    율이네 집에서 나와 아저씨의 차에 올라탄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창문을 통해 빠르게 지나가는 골목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친한 친구에 대한 일을 생각했다.

    친구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율이와 함께 지냈는데 알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심지어 태수 오빠도 율이의 변화를 알고 있었다. 그만큼 관심이 있으면 쉽게 알 수 있었다.

    율이는 자신은 몰라도 표정이 꽤나 다양했다.

    즐거울 때는 입고리가 올라갔고 기분이 나쁠 땐 고운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이건 건강한 표현이었다.

    속으로 삭히는 일이 많은 율이니까. 이렇게나마 표현해주는 건 주변에게 감정을 내비치는 일이었다.

    문제는 무표정일 때였다. 그 어떠한 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듯 공허한 눈동자는 선이 고운 외모 탓인지 율이를 마치 인형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런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뭔가를 결심한 듯 초연하게 행동하는 걸 볼 때마다 걱정이 돼서 미칠 것 같았다.

    중학교에서 최고의 인기녀라고 칭송받을 때도 그랬다.

    물론 그때의 관심은 옆에서 볼 때 과하다고 생각했었다. 점심시간마다 찾아오는 남학생들과 율이는 아무 짓을 하지 않았음에도 여학생들에게 여우라고 낙인 찍혔다. 남의 남친을 뺏는 다는 의미모를 모함까지도 받았었다.

    그건 내가 잘 아는 율이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소문은 사실처럼 여겨졌다. 무관심으로 일관하자 중학교 3학년 때는 조금 사그라들었다.

    어린 아이들의 시기와 질투라고 여기면 되었다. 그만큼 율이는 어릴 때부터 어른스러웠고 남들 눈치 안보는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과거의 율이였다.

    율이는 매번 무표정으로 고민했고 티를 내진 않아도 목소리에선 짜증이 묻어나왔다. 나름의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캐묻지는 못했다.

    묻지 말라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가장 힘들어 했을 때는 첫 월경을 했을 때, 안 그래도 점점 침울해져 가던 율이였는데 그때는 펑펑 눈물을 보였었다.

    처음이었다. 율이의 입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들은 건. 이러다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만큼. 이미 율이 상태는 툭 치면 바스러지는 썩은 나뭇가지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땐 율이와 항상 붙어살았다. 집에 찾아가 잠도 자고 거의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안하면 내가 불안했으니까. 그렇게 하다 보니 율이도 점차 안정되어갔고 시간이 얼추 해결해 줬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이번에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난 율이가 어떤 말을 해도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도와주리라 다짐했다.

    ­

    오빠의 휴가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해 놓은 대로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본래의 위치를 찾을 수만 있으면 난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었다.

    그저 지금의 평화만을 지키면 되니까. 내면은 다 버려두고 겉모습만 평화롭게 보이면 되니까. 그러면 가진 것들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너무 답답했다. 심장이 쪼여드는 느낌을 요즘 잦게 받았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복통과 호흡곤란 증상이 나를 배로 힘들게 했다.

    결국 오늘,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와중에 갑자기 평소와는 다르게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처음엔 생리통인가 했다. 주위 아이들보다 생리통이 심해서 종종 휴식을 취하고 했었다. 근데 아랫배가 아린 것과는 다른 아픔이었다.

    시야가 흐릿한 것이 정신줄을 붙잡고 있기가 힘들었다. 앉아 있는데도 주변이 빙빙 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머릿속에 전기가 내달렸고 갑자기 시야가 끊겼다. 주변의 소리가 아득해졌다. 웅성거리는 소리 중에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쌤! 율이가 쓰러졌어요!”

    그러곤 멀리서 들리던 소리마저도 이내 사라졌다.

    고아, 양부모의 가정폭력, 거기다가 학교폭력. 나를 표현하는 말이었다. 예전에는 모든 생활이 어둠으로 들어차있었다.

    그림자도지지 않는 그런 곳에서 살다가 그만하고 싶었던 난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그런 나에게 새 삶이 찾아왔다.

    날 위해주는 친구가 있고 사랑을 주는 가족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이전의 삶을 위로하듯 다가왔다. 잘해야지 이들만이라도 지켜서 끝까지 가고 싶었다.

    한 평생 가지지 못했던 감정들을 처음 느꼈다.

    하지만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만들어낸 이상을 나는 좇을 뿐이었다. 그 이상이 나에겐 정답이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으니까.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보고 주변 사람들을 살피며 생각해보았는데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그런 이상이라는 가면을 만들어 행동하는 게 내가 아는 것의 전부였다. 잘해왔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딸을 연기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일련의 사건은 나라는 존재를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했다. 정답이라는 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걸 알려주지 않는 이 세계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어리기에 실수를 했을지도 몰랐다.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하는 생각은 불필요했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 갈 수도 없는 노릇이며 그렇게 세상이 해주지도 않는다. 한번 선택한 길은 일방통행이며 그 길 끝에는 뭐가 남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 실수조차도 용인할 수 없었다.

    태어나고 싶어서 두 번이나 태어난 게 아니었다. 삶을 받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삶이라는 걸 조정하는 누군가 있다면 묻고 싶었다. 혹 존재하지 않는다면 길 가는 그 누군가에게라도 괜찮다.

    ‘부탁인데 이제 그만하면 안 되나요?’

    ­

    “괜찮아. 걱정 마. 의자에 앉아있는 상태에서 정신을 잃어서 어디 다친 곳도 없어.”

    천천히 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목소리, 그리고 익숙한 흐느낌이 귓가에 맴돌았다.

    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점차적으로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눈을 뜨고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양호 선생님과 유나였다.

    유나가 울먹이고 있었고 선생님께서는 쓰러진 내가 아닌 유나를 돌보고 있는 게 조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눈을 떴는데 둘 다 나를 보고 있었다면 놀라서 다시 의식을 잃었을 지도.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등을 벽에 대었다. 머리가 조금 멍하긴 해도 괜찮았다. 어디 불편한 곳도 아픈 곳도 없었다.

    그저 잠시 잠에 빠졌다 일어난 것처럼 비몽사몽 했다. 그런 탓인지 하품이 절로 흘러나왔다. 깨어난 나를 보고선 유나가 놀란 눈을 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서 있다가.

    곧장 다가와서 안겼다. 정말이지 안기기 좋아하는 아이다.

    유나한테서 처음 맡는 샴푸 냄새가 났다.

    “샴푸 바꿨니?”

    맨 처음 눈을 떠서 하는 말이 샴푸 이야기라니. 유나역시 어이가 없는지 울먹이며 키득거렸다. 걱정해줬을 유나에게 미안했다.

    “보자마자 하는 말이 그거라니. 너도 참.”

    “냄새 좋아.”

    몇 번 킁킁거리자 유나는 간지럽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에도 안고 있는 손은 놓지 않았다. 등을 토닥이는 그 손길이 따뜻해서 다시 잠에 빠질 정도로 편안했다.

    양호 선생님이 다가왔다. 시계를 바라보시고는 내 이마에 손을 대보셨다. 이후에는 팔과 다리를 주물러 주셨다. 긴장했던 몸이 풀리는 것 같은 조금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서율 학생, 한 5분정도 정신을 잃었어. 부모님은 불렀으니까 오시면 병원 가서 정밀검사 받아보는 게 좋을 거야.”

    “선생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뛰어 놀다가 다쳐서 와. 종이에 손 베었다고 오고 수업듣기 싫다고 꾀병 부리려고 와. 그런 학생들은 많은데. 갑자기 쓰러진 애가 있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여하튼 공부한다고 너무 스트레스 받는 거 아니니? 선생님들도 걱정 하더라 공부 많이 해서 쓰러진 거 아니냐고.”

    그건 아닌데요. 공부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고. 라는 말은 재수 없어 보일 수도 있으니 속으로만 했다. 대답하지 않고 어색한 웃음을 보내는 걸로 그렇게 이야기를 끝냈다.

    유나는 내 품에서 고개를 홱 들어 날 걱정스레 바라봤다.

    “아픈 곳은 없지?”

    “응, 괜찮아.”

    유나의 걱정스러운 물음,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

    “오빠? 아직도 나 사랑해?”

    이건 그때의 기억이었다.

    면회가 취소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따뜻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미안해... 미안해 서율아.]

    “정리 못했구나. 그래도 부모님이랑은 연락해야지. 계속 걱정하고 계셔.”

    편안하고 잔잔하게 그리고 걱정하는 톤으로.

    [부모님을 볼 수가 없었어. 앞까지 갔는데 차마 발길이 안 떨어지더라.]

    “그럼 어떻게 할 거야. 계속 안보고 살 거야?”

    그 물음에 오빠가 뜸을 들인다.

    [마음정리를 할 때까지는..........]

    “괜찮아, 안 해도 돼.”

    폰 너머로 몇 초간에 정적이 있었다. 오빠는 놀랐는지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랑 사귀면 되잖아?”

    과연 이게 맞는 일인가... 말을 하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폰을 든 오른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너, 왜 그러는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아니. 진심이 아니야.

    “당연하지. 아님 내가 싫은 거야?”

    제발 싫다고 해줘.

    [그건 아닌데.......]

    “그럼, 집에 돌아와. 조만간 부모님한테 연락 줘야해. 이만 끊을게.”

    정말이지 최악의 하루였다.

    하지만 그거면 된다. 가족을 그냥 평소대로 돌려놓기만 하면 되니까. 그것만 해준다면 내 감정은 없는 취급해도 괜찮으니까.

    감정을 묻어두고 인형이 되면 된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예쁘게 웃는 인형.

    오빠와 전화를 한 이후로 매일같이 머리가 아팠다. 이 노력은 대체 누가 알아줄까. 난 이렇게나 평범한 가족을 바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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