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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해도 괜찮아-37화 (37/54)
  • 〈 37화 〉 평범한 가족을 바랐다

    * * *

    태수와 내가 나온 보육원에 가기로 약속을 잡은 그 주의 주말, 오늘은 양오빠의 면회를 가는 날이다.

    대충 아무거나 옷을 주워 입었다. 면회 가는데 튀는 옷을 입을 필요도 없었으니까. 운동을 갈 때 입는 것 같은 옷을 걸치고 방을 나왔다. 예전엔 자주 입었던 옷이었는데 마치 오래전에 입었던 옷처럼 느껴졌다. 나도 수정이처럼 변하는 도중인가 보다.

    아무튼 그런 나인데도 오빠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져서 그런지 꾸미고 싶다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준비는 대충 마쳤다.

    1층으로 내려오니 엄마 아빠가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엄마가 나의 옷차림을 보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1분 1초가 아까운 면회시간 탓인지 별말씀 안하셨다. 그만큼 엄마는 이번 면회를 기다려왔다. 물론 말해도 바꿔 입을 생각은 없었다.

    부모님은 미리 싸둔 음식들을 챙겨서 차 트렁크에 실었다. 엄마가 아닌 내가 한 음식들이었다. 엄마의 음식보다 내 음식을 더 많이 먹어온 오빠였기에 이쪽이 더 익숙했다. 어제 잠들기 전, 일말의 희망을 담아 음식을 준비했다.

    근데 오빠를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색하려나.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을까.

    머릿속이 혼잡해져갔다. 가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냥 집에 누워 주말을 보내는 게 더욱 의미가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안 챙긴 거 없지?”

    아빠가 운전석에 앉으며 말했다. 엄마가 확인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그제야 시동을 켜고 출발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오빠가 있는 군부대까지는 3시간 정도. 영영 도착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하고 슬쩍 생각해보는 나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 들러 음식을 몇 개 까먹고 있었다.

    아빠는 잠을 깨기 위해 화장실에 가셨고 엄마와 나는 근처 의자에 앉아 아빠를 기다렸다. 주말이라 그런지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평온해 보이는 그들의 표정에 나는 마음이 식어갔다.

    “사람 많네.”

    “그러게요.”

    시간이 감에 따라 속이 조금 안 좋아 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운을 다 사라지는 느낌.

    “이야~ 살 것 같다.”

    양 손을 비비며 개운한 표정의 지은 아빠는 내 옆에 앉았다. 그러곤 남은 음식을 주워 먹으려 하자.

    “손 씻었어요. 당신?”

    엄마가 날카롭게 그리 물었다. 그에 아빠는 멈칫하더니 다시 음식으로 손을 뻗었다.

    “당연하지 그럼.”

    손에 감자튀김을 들고 어색하게 그리 말하는 아빠. 저 감튀는 안 먹어야겠다. 고 생각했다.

    우리는 휴식을 취하고 차에 다시 올랐다. 목적지에 도달해 감에 따라 엄마가 불안함을 내비췄다.

    “진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겠죠? 이번 면회 간다고 연락했더니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구요. 목소리에 힘도 없고.”

    “군대가 힘들어서 그러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그렇죠? 율이도 간다고 했는데... 그렇게 율이 이야기만 나오면 버선발로 나오던 애가...”

    엄마 아빠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었다. 그 원인이 다 나라는 걸 알게 되면 엄마 아빠는 어떤 말을 할까. 먼지가 나도록 혼날까? 아니면 날 무시하려나... 그런 상황이 언젠가 올 거 같아서 무서웠다.

    도착하지 말았으면 했는데 아빠는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렸다.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마음을 다잡고서야 뒷문을 열고 움직였다.

    정말 오길 잘한 걸까. 실수한 게 아닐까. 생각을 해봐도 이미 늦었다. 여기까지 와서 안 간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위병소에서 한 장병이 우리를 안내했다.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초소 옆의 조금 큰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부분 그렇듯 위병소 근처에 면회장이 있는 곳이었다.

    허름한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몇몇 자리에는 군복을 입은 군인과 그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빠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막 우리가 도착했으니 오빠에게 가족이 왔다는 사실이 전해졌을 것이다.

    안내를 해준 장병이 나에게 다가왔다.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자리에 앉으려던 나는 잠시 미루고 장병을 바라봤다.

    “서진태 상병님 여동생이신가요?”

    이 장병은 같은 중대인 걸까. 오빠를 아는가 보다.

    시간이 흐른 탓인지 오빠는 일병이 아닌 상병으로 진급해 있었다.

    “네. 그런데요.”

    “우와... 듣던 대로 미인이십니다.”

    이건 또 무슨... 갑작스런 칭찬에 뭐라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다.

    “예... 감사합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장병을 보고 있자니 뭐가 그리 즐거운 건지. 조금 짜증이 났는데 얼핏 보인 작대기 하나가 불상해서 쌀쌀맞게는 못 대하겠다.

    “선임 분들이 어찌나 입이 닳도록 얘기를 하시는 지. 조금 까칠하긴 해도 그걸 무시할 정도라면서... 연예인으로 착각했다고 합니다. 아! 곧 서상병님 오실 겁니다.”

    조잘조잘 떠들던 장병은 근무 중인걸 깨달았는지 자세를 바로 했다. 요즘 일병은 이렇게 자유로운가... 조금 감탄했다. 라떼는... 그만하자.

    “아... 수고하세요.”

    고작 미인이라고 알려주기 위해서 말을 걸은 건인지. 조금 김 빠졌다.

    그 이등병의 호들갑에 면회실에 있던 사람들이 바라보는게 느껴졌다. 이 부끄러움은 내 몫이란 말인가.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내 딸 인기가 너무 많아서 큰일이다.”

    “그만해요.”

    이 이상 창피를 줘서 뭘 하려는 거죠. 아빠, 큰 목소리로 그러는 거 아닙니다.

    면회실에 달려있는 TV를 보다가 가져온 음식을 몇 개 주워 먹다가. 엄마와 잠시 이야기하고 식탁인지 책상인지 모를 판에 엎드렸다.

    오빠가 왜 안 오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아빠가 면회실 밖으로 나갔다. 모습을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답답했는지 물어보러 간 것 같았다.

    여기 도착하고 30분 정도 시간이 흐른 거 같은데. 오빠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늦네. 오빠.”

    그렇게 의아해하고 있을 때, 아빠하고 우릴 안내해준 장병이 같이 들어왔다. 그 장병은 우물쭈물하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서진태 상병님이 면회를 취소하셨어요.”

    늦는데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예 면회를 취소했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우리가 오고 나서 취소를 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만약 우리가 오기 전에 취소를 한 거라면 이 면회실로 들어오지도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진태가 취소 한 건가요?”

    엄마가 못 믿겠다는 듯 되물었다.

    “네... 직접 취소하셨어요.”

    장병은 자신도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면회를 취소할 수 있다는 건 알아도 그도 그걸 하는 사람을 직접 보지는 못했을 테니까. 군대에서 면회 외박 휴가는 3대 구제 항목이니까.

    “서상병님, 여기까지 오셨는데 다시 돌아가셨습니다. 왜 그러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어째서 그런........”

    “취소됐으면 어떻게 해야 해요?”

    엄마의 등을 쓰다듬으며 장병에게 말했다.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는지 엄마는 공황 상태인 거 같았다. 아들이 자신을 보기 싫다고 한 거랑 마찬가지. 정확히는 날 보기 싫은 거겠지... 모든 상황을 아는 나만이 답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하지만 오늘은 그냥 돌아가셔야겠습니다.”

    “그렇구나. 알겠어요. 아빠, 오늘은 이만 가요.”

    얼른 이 상황에서 벋어나고 싶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있다간 가족이라는 게 무너질 것 같았다. 아빠와 엄마는 지금 일어난 일이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하리라.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해될 리가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니까.

    “가볼게요. 진태 오빠한테 전해줘요. 전화는 꼭 받으라고.”

    엄마와 아빠를 양쪽에 끼고는 끌다시피 해서 면회장을 나왔다.

    힘들게 쌓아온 가족이라는 담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아니면 내일....... 툭하면 쓰려질 것 같이 위태롭게. 어떻게든 해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아야 했다.

    이젠 버림받기 싫어. 그만해도 되잖아. 이젠 아프고 싶지 않아. 제발...

    세 명의 가족은 돌아오는 길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집으로 도착할 때 까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방금 있었던 일을 없던 일로 하려는 것처럼.

    엄마의 걱정이 혼잣말이 되어 튀어나올 때 쯤.

    아빠의 한숨이 흘러나올 때 쯤.

    걱정은 꼬리를 물고 튀어나와 엄마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군부대내에서 피해를 받고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모종의 압박을 받고 있는 건 아닌지 등등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랩 하듯이 읊어댔다.

    낭떠러지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이건 다 내 탓이었다. 나 때문에 멀쩡한 가족에 금이가기 시작했다.

    끔찍한 죄책감에 나는 결심을 하나 했다.

    집에 도착해 방으로 뛰어올라갔다. 문을 다급히 잠그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입력했다.

    전화 꼭 받아 오빠. 그렇게 간절히 바라며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신음이 흐르다가 멈췄다. 누군가가 받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 낯설어진 목소리였다. 이제는 외지인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차분히 입을 열었다.

    “오빠, 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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