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평범한 가족을 바랐다
* * *
아빠가 나에게 의사를 물었다. 하지만 가야할지 말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전에는 내가 어떻게 했더라... 이전 면회 때는 갔었다. 이번에는 가야할까? 음... 어떻게 해야 하지. 간다고 해도 오빠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괜히 갔다가 오빠가 날 신경쓸까봐 그것도 걱정이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오빠를 흔드는 게 되지 않을까.
이 생각은 조금 자의식과잉 일까... 나 같은 사람 이미 정리했을지도 몰랐다.
아니지... 정리를 했으면 본래의 가족으로 돌아와야 하는 게 맞았다. 나하고 연락하기는 힘들어도 아빠하고 엄마한테까지 연락조차 안하는 건 아무리 봐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 고등학생인데 데리고 다니는 건 조금 그럴까?”
엄마가 고민을 하는 날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학업을 걱정하는 거야? 하루 데리고 다닌다고 율이 성적이 변할까. 오히려 너무 열심히 하니까 문제야. 기분전환도 하고 그래야지.”
아빠가 그리 말하자 엄마도 납득하는 듯 했다.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는 건 아니라 걱정을 받으니 조금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이번 생의 학업이라는 게 이전 기억을 가지고 하고 있는 거라. 힘들이고 하는 건 없었다.
근데 기분 전환으로 군대 면회라니... 한참은 잘못된 거 같아요. 아빠. 그래도...
“알겠어요. 갈게요.”
이렇게까지 아빠가 같이 가자고 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수락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
“아니... 별 거...”
유나의 걱정스런 물음에 자동으로 입이 열렸다. 나는 얼마나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던 걸까...
“지... 고민할 게 좀 있어서.”
말꼬리를 돌렸다.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말을 처음으로 유나에게 한 것 같았다.
“웬일로 사실대로 말하네...”
“그냥, 그러고 싶어서.”
내가 쑥스러움에 눈길을 피하자. 유나가 얄밉게 웃었다.
“흐음~ 오빠 보러 가는구나.”
“응, 다음주에”
하굣길에 어제 있었던 일을 유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어때? 오빠 잘 지낸데?”
“글쎄 잘 모르겠는데.”
“요즘은 연락 잘 안하나보네.”
유나의 물음에 그렇게 자주했었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엄청 자주 했던 거 같다. 그때 이질감을 느꼈어야 했는데. 가족이라는 게 처음이다 보니. 예상하지 못했다.
“오빠랑 연락 자주하는 동생이 이상했지...”
말을 하고 보니 실수 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행동과는 모순된 말이었다. 말을 주워 담고 싶었는데 그게 주워질 일이 없다. 유나를 힐끔 보니 묘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런 건가? 응? 근데 그게 왜 고민이야?”
나의 일 관련해서는 눈치가 빠른 유나였기에 다급히 입을 열었다. 오빠가 고백한 것 까지는 알릴 수 없었다. 그건 오빠하고 내 선에서 정리된 일이니까. 굳이 긁어 부스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근데... 수정이는 어디 간다고 했어?”
“무슨 책 사러 간다고 하던데.”
주제를 돌리기 위해서 수정이 이야기를 꺼냈다. 유나는 수정이의 이야기가 나오자 더 이상 오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에 조금 안심했다.
걸어가다 보니 유나가 누군가를 보고 고개를 갸웃갸웃 거렸다. 상가 앞을 청소하는 인물을 살펴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다 유나는 손뼉을 딱! 쳤다.
“와! 태수 오빠다.”
“어. 진짜네.”
키가 큰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빗자루를 들고 가게 앞으로 보이는 곳을 쓸고 있었다. 간판을 슬쩍 보니 카페였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전에 있던 카페랑은 다른 곳이었다.
이 길은 집으로 가는 길이라 어쩔 수 없이 지나야만 했다. 그에 점점 가까워지자 태수도 우리가 오는 걸 보았는지 숙이고 있던 허리를 폈다.
“어? 학교 마쳤나보네.”
“보면 몰라?”
조금 심술 굳게 말이 나왔다. 그러자 유나가 내 어께를 가볍게 툭 쳤다.
“애는 또 왜 이렇게 쌀쌀맞아.”
“괜찮아. 쌀쌀맞은 거 보니까 마음 쓰이는 일이 있나보네.”
“와... 오빠 그런 거 까지 알아?”
태수의 말대로 지금 딱 그런 일이 있는지라 놀랐다.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괜히 손을 교복에 닦으며 모른 척 했다.
유나는 뭐가 좋은지 나와 태수를 번갈아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뻔히 보였다. 괜히 말 걸면 더 복잡해질 것 같아서 무시하기로 했다.
“근데 왜 여기 있어? 원래 알바 하는 곳 여기 아니고 시내 쪽에 카페잖아.”
카페를 보며 그리 말했다. 모던한 장식이 깔끔한 카페였다.
집하고 가까워서 유나가 가자고 하면 드물게 들리는 곳이었다. 유리창으로 안쪽을 보자 손님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바쁜 것도 그렇다고 한가한 것도 아닌 듯 했다.
“아...”
“잠깐만! 내가 맞춰볼게.”
태수가 말하려고 하자 유나가 가로막았다. 목소리가 들뜨고 요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나를 짜증나게 할 말을 내뱉을 것만 같았다.
“율이가 여기 근처에 살아서! 그래서 태수 오빠는 이 근처로 온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당연히 아니지...
“말이 되니... 유나야, 나는 그저 며칠 도와 달라 해서 온 것 뿐 이거든?”
유나가 말을 한 건데 내가 다 미안했다... 잘 일하고 있는 사람한테 나 때문이라고 하면서 몰아가면 나라도 짜증날 일인데 태수는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여줬다.
“그렇겠지... 태수야, 무시해. 유나가 좀 머리가 핑크빛이라.”
유나가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구시렁거리기에 잠시 노려보다가... 그 뒤에 카페 창문이 보여서 눈길이 갔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는데 카페 유리창에 누군가가 붙어서 우릴 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앞치마를 하고 유니폼을 입는 여직원으로 보였다.
나랑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도 피할 기미가 없어보였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어쩐지 날 노려보는 듯 했다.
“설마? 태수 오빠가 고작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 그것 때문에 왔을까?”
유나는 그 여직원의 눈길을 알 수 없었다. 그저 뭐가 즐거운 건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었다.
한참을 보고 있던 창문에서 여직원이 움직였다. 카페 입구가 열렸고 아까 노려보고 있던 여직원이 나왔다. 옅은 화장을 자연스럽게 한 미인이었다.
고등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어른스러운 매력을 가진 미녀였는데 시종일관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다급하지 않고 차분하게 여유가 있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태수야, 청소 다했어?”
그 살벌하던 표정은 싹 사라지고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여직원의 입에서 나왔다. 태수는 당연히 몰랐고 청소도구를 정리하며 그 직원을 바라봤다.
“응. 이제 들어갈게.”
여직원은 태수의 옷차림을 지적하며 정돈해줬다. 마치 출근하는 남편을 챙겨주는 것처럼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듯 했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서... 왜 자신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 유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뭔가 못마땅한 듯 유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일을 하고 있는 태수를 방해할 수 없는 건 아는 듯 했다. 그게 참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우리 수정이 어떻게... 꽤 강적이 나타난 거 아니야? 수정이의 사랑에 큰 걸림돌이 될 것만 같은 존재였다.
“그럼 다음에 보자. 나 꽤 오랫동안 여기서 일할 거 같으니까. 종종 들러.”
인사를 마친 태수가 들어오게끔 문을 잡고 있던 여직원은 태수를 먼저 들여보내고선, 다시 그 활활 타오르는 듯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문을 홱 닫고는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왜 저러는 거지. 곰곰이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이건 라이벌의 등장이네.”
“무슨 라이벌?”
유나가 비밀을 깨달은 탐정처럼 고갤 끄덕였다.
“아까 그 언니 말이야. 태수 오빠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
“근데 나를 왜 그렇게 노려보는 건데?”
그 사람이 태수를 좋아하든지 말든지 상관은 없는데 왜 날 뚫어져라 본거지? 알 수가 없었다. 태수하고 대화하고 있던 건 유나였는데 왜 날?
“당연하잖아. 새파랗게 어린 여자 둘이서 꼬리치고 있으니까 막으러 온 거지.”
“꼬리도 없고. 하물며 있다고 해도. 꼬리 친 적 없는데.”
“아무튼 율이는 존재자체만으로 위협이기 때문에 이렇게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어.”
“그걸 이유라고 드는 거냐. 유나야.”
당당하게 피로하는 유나를 내버려두고선 집으로 향했다.
그런 나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며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중얼거리는 유나에게 제발 가만히 있어달라고 속으로 절실히 말해보는 나였다.
제발 가만히 있어 유나야.
유나와 헤어진 뒤, 나는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눕자마자 울리는 폰에 누군지도 보지 않고 받았다. 보나마나 유나겠지.
“응. 왜?”
[전화는 처음 하는 거 같네.]
유나가 아닌 태수의 목소리였다. 유나인 줄 알아서 조금 놀랐다. 다시금 수화기를 고쳐잡았다.
“용건만 간단히 해.”
애초에 태수한테 번호를 준 조건이 이거였다. 용건만 말하는 것. 조금 날선 말투가 되었는데도 태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어. 그 오늘 기분 안 좋아 보이기에.]
“지금은 괜찮은데... 그게 다야?”
[아니... 하나 더 있어.]
“뭔데?”
[그... 뭐시냐. 우리 졸업한 보육원 안 가볼래?]
조심스레 전화기를 통해서 들려온 대답에 놀랐다.
내가 답을 못하고 있자 태수가 다급히 덧붙였다.
[원장님이 너 보고 싶으시데. 물론 힘들면 안 봐도 된다고 말씀하셨어.]
“원장님이 나를?... 그럼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