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한 번 더 힘내자
* * *
학교에서 수정이를 보았을 때,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우리와 알기 전의 모습을 수정이는 하고 있었다. 피딱지가 종아리와 팔뚝에 붙어있었고 얼굴에는 생채기가 가득했다.
“왜 그래?”
한달음에 달려가 붙잡고선 물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전처럼 움츠러든 모습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별거... 아니야...”
“내 눈엔 별거로 보이는 데?”
“괜찮아...”
“무슨 일인지 알려줘.”
또 학교폭력이 시작된 건가... 그렇게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인데도 수정이는 말해주지 않았다.
“나... 정말 괜찮아...”
괜찮다는 말이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듯 느껴졌다. 잠깐 같이 있지 않았다고 이렇게 된 건가? 내가 한 일이 아닌데도 수정이가 다친 게 내 탓처럼 여겨졌다.
“저번에 걔들이 한 거야?”
“음... 맞긴 한데...”
수정이는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미안해, 내가 좀 더 신경을 써야했는데.”
욱한 마음에 말을 뱉었다가 깜짝 놀랐다.
신경을 쓴다니... 내가? 수정이를? 이런 말을 무의식적으로 뱉어냈다는 건 수정이를 나의 아래로 본다는 의미였다. 수정이는 약하니 지켜줬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나도 모르게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야... 나도... 이제는 싸울 수... 있어. 정말...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응...”
작게 웃으며 자신의 교실로 돌아가는 수정이를 붙잡고 싶었다. 근데 할 수 없었다.
수정이의 행동에서 명백한 거리감이 느껴졌으니까. 더는 묻지 말라는 분위기가 어쩐지 매정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이런 감정도 느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개구리 올챙이일 때 기억 못 한다고. 딱 그런 꼴이 아닌가.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창피했다.
서둘러서 교실로 돌아온 나는 책상에 그대로 엎드렸다.
수정이와 친구가 되려했고 친구이기에 수정이가 겪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큰 모순이었다.
나 자신도 유나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지 못하는 게 있는데... 누구한테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는 것일까. 성대한 부메랑을 던졌다가 내가 그대로 맹렬하게 돌아온 그것에 얻어맞은 꼴이었다.
어쩌면 나는 내 생각밖에 안하는 걸지도 몰랐다.
수정이가 나를 피했다. 아픈 게 뻔히 보이는 데도 힘든 일이 있는 게 당연한데도. 자신이 겪은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해주지 않는 모습을 보니 답답했다. 왜 말해주지 않는 건지. 나에게 기대어 주지 않는지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건 나의 모습이었다.
유나가 계속해서 보이는 관심을 나도 어느새 수정이에게 하고 있었다. 언젠가 돌아오겠지. 다시 예전처럼 말을 걸어주겠지.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해주겠지. 친구니까 그리 해줄게 분명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는 게 이리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구나. 유나는 그걸 몇 년 동안이나 하고 있었던 걸까.
“응? 율이는 또 왜이래.”
내 소중한 친구 유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평소와 똑같은 유나가 서있었다.
“유나야...”
“응, 나 여기 있어.”
평소에는 눈치가 더럽게 없으면서... 내가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유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세심해졌다. 그게 유나가 나를 얼마나 잘 보고 있는 지 알려줬다.
“수정이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응.”
“근데 그게 뭔지 알려주지를 않아.”
“응.”
“자기 혼자 어떻게 하려는 거 같은데...”
“응.”
“그래도 도와주고 싶어.”
어쩌면 유나가 나에게 품었을 지도 모를 감정의 나열이었다.
“응, 그럼 도와주자. 수정이가 싫다고 해도 도와줘야지!”
유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정이를 때린 그 아이들을 어떻게 찾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유나는 수정이를 살펴보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수정이하고 같이 있으면 그 애들을 만날 확률이 더욱 높을 것 같아. 나도 그리 가던 중이었다.
“아! 김수정, 그년 서율하고 같이 다니더니 미친 거 아니야?!”
“얼굴 반반한 년이랑 다니니까 지도 그런 줄 아나보지...”
교실이 있는 화장실에서 나하고 수정이의 이름이 들려왔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반반한 얼굴이라 미안하네?”
화장실 입구에서 얼굴만 살짝 내밀자. 뒷담화를 하고 있던 아이들이 몸을 흠칫 떨었다. 4명정도 있는 것 같았다.
애들의 모습을 보자 조금 놀랬다. 분명 수정이가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애들도 다쳐있었으니까. 그래도 수정이보다는 가벼운 상처정도로 보였다.
수정이가 말한 자신도 싸울 수 있다는 게 이런 말 그대로의 의미였구나. 당황스러웠다. 아무래도 정말 수정이는 변한 거구나.
근데 이런 방식으로는 이 아이들이 그만 둘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번에 그렇게 넘어간 걸 하늘에다가 감사하면서 지냈어야지... 또 사고를 치냐. 머리가 돌인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말투에 애들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뭐!? 머리가 돌? 너 말 다했어!”
“다 안했어. 너희들은 학교가 세상의 전부니? 여기가 조선시대도 아니고 왕이 된 줄 알고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고작 고딩 밖에 안 된 것들이...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는구나?”
학교가 지옥이었다. 이 곳만 벗어나면 다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학교를 나가고 사회라고 하는 곳은 더한 지옥이었다. 겪어본 나는 알고 있었다. 세상이 보내는 눈치는 너무나 큰 족쇄라... 벗어나기란 힘든 일이니까.
“이게 죽을라고...”
“이미 죽어봐서 안 무섭거든?”
“뭐?”
“아 됐고... 너희들이랑 말하는 것도 창피하다 정말...”
폰을 꺼내 액정을 터치했다. 번호는 117, 학교폭력 상담소였다. 몇 번 수신음이 들리더니 전화가 연결되었다.
“아. 거기 상담소인가요? 학교폭력 신고 좀 하려구요. 네, 저는 무청고에 다니는 1학년 서율이라고 합니다.”
“빨리 뺐어!”
거기까지 말했을 때 폰을 빼앗겼다. 애들은 놀랐는지 내 폰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전화가 연결되어 있었으니... 100프로 신고가 접수되었으리라.
“재물 파손까지... 고마워. 폰 바꿀 때가 되긴 했어.”
그리 말을 마치자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학교 안에 울려 펴졌다. 아까의 고함소리와 폰이 내던져지는 소리를 듣고선 상담사께서 바로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소년원이... 면회가 되던가? 가면 좀 알려주라. 알겠지?”
헤실헤실 웃으며 말하자. 아이들은 이제야 상황파악이 되었는지 웅성거렸다.
“어... 어떡하지?”
“그니까... 우리 큰일 나는 거 아니야?”
큰일 났지. 학교폭력을 저지르고 큰일이 안 날거라고 생각한 게 참 대단했다.
부스스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긴 머리가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아침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의미 없는 생각을 했다.
오늘따라 잠에 취해있는 기분이었다. 머리가 멍하니 오직 방에 나 혼자 있는 느낌. 실제로도 그렇지만 이런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행동을 했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순서대로 준비를 시작했다. 그전에 침대 옆, 창문을 여니 조금은 뜨뜻한 아침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여름이 오나 보다.
침대맡에 걸쳐 앉아 하품을 하고 있는 대 문자가 왔다.
[고마워, 율아. 난 그런 생각 못했는데.]
수정이었다.
[고맙긴. 신고 안했으면 방임으로 내가 끌려갈 뻔했어.]
[진짜?!]
[응, 나를 위해서 신고한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내가 뭘 해도 고맙구나.]
[응! ㅎㅎ]
수정이와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었다. 그게 정말 다행이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일어났니?”
방문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에서 조금 어물쩍거렸나.
“일어나 있어요.”
잠옷 차림으로 방문을 열었다. 엄마가 주걱을 들고 거기 서 있었다. 오늘은 엄마가 요리하는 날이라 조금은 더 잠을 잘 수 있었다.
“좀 덥네. 오늘부터 하복이지?”
“응.”
하복을 입더라도 결국 더운 건 마찬가지인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1층으로 내려갔다.
“딸, 밥 먹어.”
아빠가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막 드시려던 참인가 보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내가 식탁을 둘러싸고 앉았다. 분명 4인 식탁인데 한자리는 비어 있다.
“아들은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아빠의 그 말에 밥을 뜨던 숟가락을 멈췄다.
오빠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여러모로 많이 힘들겠지.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니까. 잠깐만 생각했을 뿐인데 심장을 누가 움켜쥔 듯 답답했다. 이렇게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많은 부분이 잘못된 거 같았다.
이렇게 했으면 저렇게 했으면 좋았는데. 하는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돌리고 싶었다. 뾰족한 수는 없어도 그러고 싶었다. 그만큼 나는 필사적으로 가족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니까.
“시간 한번 내서 올라가 볼까요?”
엄마가 걱정이 되는지 말했다. 아빠는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그러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정해진 날짜는 1주일 뒤 주말이었다.
“딸도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