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라해도 괜찮아-23화 (23/54)

〈 23화 〉 동물원

* * *

동물원과 놀이공원 같은 부지가 넓고 사람들을 많이 수용해야하는 공간은 대게 도시 외각 지역에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도 예외가 아니었고 버스터미널의 특징상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인구밀집도가 높은 장소이다 보니 여기서부터 동물원까지의 거리는 꽤 멀었다.

아침 9시 쯤 출발한 우리들은 11시 정도가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도 시간인 만큼 우린 동물원에 들어가기에 앞서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연비가 좋은 위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난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만도 않아보였다.

사전준비물인 도시락은 이를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었다. 동물원이 위치한 곳이 외각 지역임을 감안했을 때 주변에 음식점이 없을 거라 예상했었다. 역시나 그건 사실이었다.

동물원 안에서 먹어도 되지만 아마 간식하고 체험 동물들 먹이 같은 소소한 지출들이 합쳐지면 청소년의 얇은 지갑으로는 어림도 없는 값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이런 놀이시설들에서 받는 요금 값은 바가지 씌운 게 많으니까. 조금은 지출을 줄이자는 어른의 지혜였다.

도시락 싸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워낙 요리를 좋아하는 축에 속하기에 노동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침 만드는 겸 도시락 통에 스윽 담아 넣는 수고가 있을 뿐이었다.

"돗자리는?"

나무그늘이 진 장소에 다들 멀뚱멀뚱 서있기에 난 질문을 던졌다. 혹 서서 먹으려는 걸까 하고 생각했으나 그건 아니었다. 그냥 애들은 돗자리가 없을 뿐이었다. 난 그 사실에 머리를 집으며 가방을 주섬주섬 뒤졌다.

"5명이나 있는데 돗자리는 전멸... 내가 분명 가져오라고 했던 거 같은데."

가방 속을 뒤지면서도 중얼거리는 나였다. 그런 나의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곤 시무룩해했다. 그런 아이들 중에서 유나만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는 대꾸했다.

"그러는 율이도... 들고 왔구나."

그제 서야 찾은 돗자리를 꺼내들곤 유나를 바라보자 하고자 했던 말들을 입에 넣으며 얌전해 졌다. 귀엽게 웃으며 유나는 나를 바라봤다.

"봐서 알겠지만 이 돗자리 작으니까. 엉덩이 반쯤 걸쳐서 먹어야할지도 몰라."

난 알맞은 자리에 돗자리를 펴며 그리 말했다. 애초에 이럴 거 같아서 5명 전원에게 가져오라고 말했던 거다. 5명에게 다 말하면 몇몇은 들고 오겠지 하는 예상이었는데 그걸 멋지게 차버릴 줄이야. 대단한 고등학생들이다.

아 지은이는 제외 아직 어리잖아.

중간 크기의 탁자 정도의 모양을 한 돗자리 위에 난 덤덤히 앉아 도시락을 까먹기 시작했다. 가져온 감자 조림을 하나 입 안에 넣자. 조금 따뜻한 감이 퍼져나갔다. 보온 도시락 통이라서 그런 가 반찬들이 식어있지 않았다.

내가 먹는 걸 확인하고서야 어미 새의 허락을 받은 오리새끼들처럼 쪼르르 돗자리에 앉은 애들이었다. 서로 차례로 도시락 통을 꺼내들었다. 유나와 수정이는 도시락이었는데... 이상한건 최승현 형제지간은 편의점 도시락이라는 것이었다.

"애, 몸에 안 좋은데."

내가 지은이를 보며 말하자 최승현이 대답했다.

"엄마가 일이 바쁘셔서 못 싸주셨어."

편의점 도시락을 열어 식은 밥을 입에 넣으며 최승현은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분명 초등학생 때는 현장체험학습 같은 거 자주 가지 않나."

"뭐 그렇지. 지은이가 갈 때마다 도시락 필요하다고 하긴 하는데. 나도 음식 같은 건 할 줄 모르고."

이건 변명이네? 다른 애들의 귀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내 귀에는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기분이 나빠졌다.

"집에 반찬이 없는 것도 아닐 테고? 아님 도시락 통이 없나. 그거 담아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

"그냥 너가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야."

어린애라고 감정이 없는 게 아니다. 좋고 싫은 게 있고. 싫은 상황과 행동을 계속 맞닥뜨리게 되면 상처도 받았다. 때 쓰지 않고 어리광 부리지 않는 어른스러운 아이일수록 더욱 상처의 크기가 컸다.

난 지은이를 바라봤다. 차가운 반찬들을 뒤적거리며 한눈에 봐도 침울해 보인다. 저런 모습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밥을 먹는다는 건가. 가슴이 아려왔다. 아직 어린데. 그리고 나와도 달랐다.

난 이전 삶에서야 부모님이 없었지만 지은이는 있다. 남들 다 하는 걸 자신은 못한다는 박탈감. 이런 대우는 사랑의 부재를 마음속에 각인시키는 일일 뿐이었다.

조금 최승현에게 실망했다. 처음부터 실망할 정도의 좋은 점이 있었나 싶었지만... 유나가 그를 좋아한다는 게 플러스 요인이었나 보다. 난 어느 순간부터 괜찮은 아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난 그에게 뭘 바라고 있었던 걸까. 휴..... 이런 생각 관두자.

난 자리에서 일어나 지은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도시락 통을 내밀곤 말했다.

"조금 먹었지만 지은아 이거 먹을래?"

지은이는 나를 올려다보더니 내 손에 들린 도시락과 자신이 들고 있는 도시락을 비교해봤다. 그 행위가 또 귀엽게 느껴졌다.

어린아이 특유의 천진난만이라고 할까. 아무래도 고민하고 있는 거 같다. 어느 것이 맛있겠는지 모르겠는 걸까. 그런 생각이 미치자 조금 상처받은 나였다. 편의점 도시락과 내가 손수 만든 도시락이 미관상으론 동급취급을 받은 게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것이다.

"먹어봐."

맛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긴장되었다. 어린아이인 만큼 솔직한 감상을 말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은이는 날름 반찬을 집어먹었다. 그리곤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맛있어!"

"응 그럼... 바꿔먹자."

뭘까..... 이 미묘한 승리감은. 일단 접어두고. 편의점 도시락을 챙겼다. 수정이랑 유나도 지은이에게 맛있는 반찬을 넘겨주며 실실거렸고 난 그런 걸 잠시 보다가 자리에 와서 앉았다.

"고맙다."

"별로... 누구누구 씨가 안한 걸 내가 했을 뿐인데."

난 지은이에게서 받은 편의점 도시락을 집어먹으며 말했다.

"말에 가시가......"

"하아~ 차갑다."

정말 차가운 밥이다. 내가 준 도시락에서 밥을 집어먹으며 맛있다고 한 지은이의 행동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도시락은 따듯하기만 해도 맛있는 법이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최승현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난 첫째잖아. 위에 형도 누나도 없고 도시락이 없어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어. 그에 반해 지은이는 편의점도시락이긴 하지만 도시락이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아니었나보다."

최승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편의점 도시락이라도 오빠의 마음이 담겨있는 거였구나.

이건 예상외였다. 그래도 따뜻한 도시락만으로도 기뻐하는 지은이다. 온기가 있는 도시락, 집 밥이란 건 가족이라는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이 만들어주기에 맛있는 게 아닐까. 도시락이 있으면 된다는 이런 일차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했다. 조금 더 지은이에게 신경 써 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럼 지금부터라도 해봐."

툭 내뱉은 내 말을 이해했는지 최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은이의 대한 최승현의 행동에 악의는 없었다. 자신이 느낀 걸 너도 느끼라고 하는 악질적은 생각은 아니었다.

뭐 그런 건 나정도 되는 악녀가 생각하는 거겠지만. 노력해보겠다는 최승현의 대답이 난 마음에 들었다.

최승현이 조금 기특해보였다. 남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어리숙하고 아직 가르쳐줘야하는 게 많은 그럼에도 가끔은 짜증나는 남동생이라... 그러고 보면 이전 삶에서 원했을 지도. 남동생뿐만이 아니었다. 가족이 없던 나는 누나는 동생이든 할머니든 이모든 그 모든 게 갈망의 대상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최승현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 나를 멀뚱히 보더니 이윽고 자신의 도시락만을 노려보는 최승현이었다. 귓불이 붉은 게 뭘 잘못 먹은 거 같기도 하다.

난 그런 최승현을 보다가 말했다.

"요리 알려줄 사람 필요하면 말해. 지은이한테 맛없는 요리 먹일 수도 없으니 말 꺼낸 나라도 도와줘야지."

"요리 할 줄 알아?"

갑자기 놀래며 되묻는 최승현이었다. 그에 어째선지 유나가 대답했다.

"아주머니께서는 좋은 분이신데 음식만큼은 좋지 못해서 율이가 음식을 하고 있단 말씀!"

"왜 네가 기세등등한 건데. 우리 엄마 음식이 어때서!"

밀고 들어온 유나의 머리를 밀어냈다.

"그럼 그때는 잘 부탁할게."

최승현이 대답하자 그때 유나가 또 치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그럼 조만간 또 모여서 요리수업하자!"

"이....이제 곧...... 시험기간.....이야."

가만히 있던 수정이가 툭 말을 내뱉자 유나는 굳어버렸다. 그에 내가 덧붙였다.

"하더라도 중간고사 끝나고 해야지."

"후응..... 그래야겠다.

­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 우리들은 보관함이 있기에 거기에 가져온 물건들을 넣어두곤 입장 줄을 섰다.

주말이라 사람이 하도 많아서 동물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동물이 사람을 구경하는 횟수가 더 많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파에 멀미한다는 건 이런 거겠지. 양분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난 혼이 나간 듯 가만히 서있었다. 항상 그렇듯 많은 이들이 날 주목하고 있었다. 내 몸에 전 방향에서 레이저를 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놓고 보는 사람은 없어도 힐끔 거리는게 느껴졌다. 연예인도 아닌데 만약 연예인들이면 더욱 심하지 않을까?

하아...... 편한 날이 없다. 정말.......

"같이 있는 나도 피곤한데..."

힘들어 하는 나를 보더니 최승현은 그런 말을 뱉어냈다. 난 그 말에 공감하듯 고갤 끄덕였다. 이건 한탄이다. 시선으로 얼굴이 뚫린다는 표현은 정말 대단한 표현인 것 같았다. 지금의 자신이 딱 그거다.

"율이랑 다니면 매번 이러니까."

유나는 익숙하다는 듯 목소리를 흘렸다. 그에 나랑 최근에 자주 돌아다닌 수정이까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좋은 듯 지은이는 총총거리며 발을 구르더니 이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언니, 언니는 무슨 동물 볼 거야?"

그 물음에 대충 유명한 동물 하나를 떠올렸다. 난 지은이에게 눈높이를 맞추곤 대답했다.

"호랑이 일까? 지은이는?"

"지은이는... 음... 토끼!"

토끼 귀를 손으로 만들어 보이며 접었다 폈다 하는 지은이였다. 그걸 보곤 난 최승현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단어하나하나에 진심이 묻어나오게끔.

"최승현, 지은이 우리 집에 데려가도 될까?"

"그건 안 되는데."

단호하게 지은이를 지키는 최승현이었다. 꼴에 오빠라고... 쳇! 귀여워서 소장하고 싶었는데.

"시스콘........"

난 최승현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작게 읊조렸다. 물론 들릴 정도로.

"멋대로 불러. 지은이는 못 줘."

그런 우리들은 아무래도 좋은지 수정이는 동물원 소책자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토끼는 만져볼... 수 있을... 거 같아. 호랑이는... 무리지만."

그 말에 잠시 놀랬다. 호랑이를.... 만져? 수정이는 아무렇지 않게 무서운 얘기를 꺼냈다. 장난이겠지? 그렇게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그런 말 하지 말아줘. 아마 이런 장난을 칠 정도로 우리가 편해졌다는 거겠지?

"잘됐네. 지은아. 토끼 만질 수 있데."

"응!"

우리 앞 사람들이 안으로 점점 사라져갔다. 우리들 순서가 다가온다는 의미였다. 드디어 동물원에 입성을 했고 우린 각자 좋아하는 동물들의 이름을 말하며 돌아다닐 우선순위를 정하기 시작했다.

동물원이라... 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