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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해도 괜찮아-19화 (19/54)
  • 〈 19화 〉 의외의 만남

    * * *

    자 상황을 정리해 보자.

    비범하게 말해보지만 딱히 정리할 상황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수정이의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 쇼핑을 하러 왔는데 유나의 타깃이 수정이가 아니라 내가 되었다. 하는 그것뿐이었다.

    피팅룸 안에서 나는 안절부절 못했다. 왼쪽 손에는 하늘하늘한 검은빛의 원피스가 들려있었고 거기에선 어마어마한 여자다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유나가 골라준 이 원피스는 눈대중으로 봐도 나랑 잘 어울릴 거라는 건 잘 알겠다.

    “내가 도와주기 전에 빨리 입고 텨 나와.”

    문 밖에서는 유나의 선언이 들려왔다. 거기에 흠칫하며 원피스 쥔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올렸다 내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이걸 입으려면 심적으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으니까. 그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나에게 오는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검은 원피스를 들여다봤다. 확실한 무늬도 없는 그렇다고 해서 너무 단조롭지도 않는 잘 마감된 원단이었다. 옷감도 얇아 통풍이 잘 될 것 같았고 봄의 하반기부터 초여름까지 폭 넓게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그런 사실들은 접어두더라도 무릎 위까지 오는....... 아니 이건 눈대중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거지 시착하면 엄청난 것이 되어있을 것 같은 이 치마 길이는 내 티끌도 남아있지 않는 여자 마음으로는 감당하지 못할게 분명했다.

    ‘초미니’의 ‘초’라는 단어로도 이 길이를 표현하지 못했다. 이걸 입은 자신의 모습은 한마디로 하자면...

    “노출증... 즉 미친년이라는 거지.”

    과잉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세간의 많은 여성들은 이런 옷을 자주 입는 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유나도 사복을 입을 땐 눈꼴이 시릴 정도로 옷감이 얇은 옷을 입곤 했다. 그건 자기들이 원해서 입는 거고 나는 달랐다.

    하지만 나는 교복치마를 입는데도 오랜 시간의 자아성찰이 있어야 가능했다. 무엇보다 그건 교복이고 이건 사복... 목적자체부터가 달랐다. 교복이야 학교를 가기 위해서 입는 것이고 사복은 자신을 꾸미고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난 그 원피스와 계속해서 눈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옷과의 보이지 않는 전투에 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나의 트레이닝복은 고스란히 내 몸에 들러붙어 나를 원피스로부터 지켜주었다.

    그게 참으로 고...

    “안에서 뭐해! 옷 만들어 입는 거니? 자신이 입겠다고 해서 군말 없이 보내줬더니 안에서 무슨 살림을 차렸기에 안 나오는 거야?”

    밖에서 들리는 격노한 유나 목소리에 난 흠칫했다. 문을 격하게 두드리는 건 덤이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피팅룸에서 약 20분이나 원피스와 씨름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으리라. 근데 나 자신이 이 옷을 입기에 이 정도의 고민시간으로는 결정이 나지 않았다.

    더욱 심층적으로 자신이 어찌하여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인지에 대한 원인부터 처음으로 돌아가서 찬찬히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나의 일생을 통틀어 없었던 격동이 내 손에 들린 원피스 하나 때문에 일어나고 있었다.

    흠.... 생각해봐 난 남자였던 기억을 가진 여자.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 옷을 입는 것은 사회적으로 봤을 때 범죄행위가 되지는 않았다.

    걸림돌이 되는 건 그 남자였던 기억 때문인데. 이 옷을 입으려면 그 걸림돌이 되는 기억부터 어떻게 해야 했다.

    남자일때의 나는 후줄근하고 초라했다. 언제나 어느 방면에서나 잘난 게 없는게 자신의 본래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사회에서 정한 미의 기준에 달하지도 못했었다. 그게 나였다.

    그럼......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닌가?

    난 피팅룸 안에 걸린 거울을 바라봤다.

    인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너그러웠다. 아무리 자기 멋대로 생겼어도 거울을 통해서 보면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다. 일종의 나르시즘의 성향을 누구나가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외모를 보며 ‘이 정도면 평타이지.’ 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 중 하나였다.

    거울 안의 자신은 비정상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나임을 인정하고도 예전과 다른 외모의 정갈함에 부정하고 싶을 정도였다.

    남들보다 짙은 눈동자는 유혹하는 것 같으며 날카로우면서 얇은 색 진한 입술은 이성을 잃고 바라보게 만들었다.

    나에 대한 첫인상은 귀여움이었다. 그래서 관심을 모으고 호감을 같게 하고 이후부터는 사람을 집착하게 만들었다.

    악동 같은 장난기를 머금고 있다고 해야 할까. 장난스럽게 타인을 홀린다고 할까. 특히 이성들에게서 그게 강한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능력이지만 별로 필요 없었다.

    이런 평가는 앞전에 말한 나르시즘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그렇기에 비약된 것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점이 나를 부정하는 점이었다. 이전의 자신과 너무도 달랐다.

    이건 나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인가? 이 질문은 내가 청소년기에 들어가면서부터 품고 있던 것이었다. 그 기간 동안 답 근처에도 가지 못한 난항이었다.

    갖은 고민을 하다가 난 옷을 입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나가지 않은 채로 트레이닝복을 입고선 여기서 평생 살고 싶었다.

    밖에서 들리는 유나의 목소리와 너무 오래 피팅룸을 점령하고 있던 탓에 간절하게 들려오는 점원의 부탁에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 탓에 하고 있던 자아 찾기 문제는 일단 밀어두기로 했다.

    옷을 입고 말고의 문제라면 빠르게 착용해보고 유나의 마음에 들면 사들고 가서 그 이후 옷장에 넣어두면 되는 일이었다. 다음부터 입고 안 입고는 나의 의지에 달렸다. 이미 오늘이 지나면 이 옷을 입을 생각이 없었다.

    이미 시간을 끌어버리긴 했는데. 매도 먼저 맞는 것이 좋다고 알고 있으니까. 빠르게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몸을 지켜주던 트레이닝 복을 느릿느릿 벗어던지고선 초미니 원피스를 집어 아래쪽부터 머리를 넣었다. 그리곤 목구멍 부분까지 잡아당겨 머리를 통과시켰다. 새 옷감이 주는 약간의 차가움과 처음 접해보는 트레이닝복의 탄력성과는 다른 답답한 질감에 어색함이 느껴졌다.

    등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을 옷 위로 오도록 조정했다. 피팅룸을 나가기 전 거울을 훑어보듯 보고선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문고리가 돌아갔다.

    “뭐하는데 이렇게 안 나와...?”

    “흡?!”

    문을 열기 위해 살짝 힘을 주던 상황이었던 터라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 반동에 이마가 따뜻한 곳에 파묻혔다.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어보니 유나의 가슴언저리였다. 푹신하고 포근한 남자들의 원초적인 이상향을 눈앞에 두고도 감정의 변화가 하나 없었다.

    그저 키 차이가 조금 난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라면 꽤 많은 차이가 나는 게 아닐까? 유나의 키가 좀 자란 것 같은데.

    등등의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있었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유나의 움직임이 없기에 고개를 들어 얼굴을 살펴봤다.

    유나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반짝이며 나를 내려다봤다. 그리곤 탄식을 내뱉으며...

    “잠시 따라와봐... 하아... 언니가 맛있는 거 사줄게...”

    라는 말을 격한 숨소리와 함께 해댔다. 꽃다운 여고생이라고 볼 수 없는 말과 양팔을 벌리며 다가오기에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유나는 그리 오랜 시간 변태화하고 있지는 않았다.

    나 혼자만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유나는 수정이라는 존재를 어렴풋이 인식했는지 갑자기 스위치를 끈 것처럼 얌전해졌다. 얌전해진 와중에도 드물게 심각하면서도 이상한 눈초리를 나에게 보냈다.

    난 유나의 갑작스런 행동에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물어봤는데.

    “율이가 너무 예뻐서 그래.”

    라고 하는 답이 돌아왔다.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유나가 예쁜 사람들 볼 때마다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흑역사?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예쁘다는 말은 참 많이 들어봤다. 나의 부모님에서도 물론이거니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어렴풋이 흘리는 말들 속에서도. 그리고 그 단어는 나에게 와 닿지 않았다.

    질리도록 들어도 그 말로 기분이 좋아지는 일은 없었다. 나에게 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제 3자가 제 3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율아. 그 옷 진짜... 잘 어울린다.”

    수정이는 우물쭈물 나타나서는 옷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미안하지만 수정이의 그 말도 내게 어떤 감흥도 일으키지 않았다. 난 고개를 돌려 수정이를 바라봤다.

    “나는 상관없잖아. 너가 중요하지.”

    “으... 응 오늘 같이 와줘서... 고마워...”

    “고마우면 옷이나 골라. 빨리 나가고 싶어.”

    “응!”

    수정이는 짓궂은 나의 말에도 슬쩍 미소 지으며 힘 있게 답했다. 수정이는 기분 좋은 듯 움찔거리며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이 처음 본 물건을 접하는 동물 같아서 보고 있으면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

    수정이도 여자인지 몇 개 자신에게 마음에 든 옷들을 가지고선 유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유나도 상냥하면서도 친절히 설명해주며 수정이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찾아주려고 애썼다. 유나의 모습은 귀찮은 게 아니라 지금 상대방과 있는 게 자신도 기분이 좋다는 듯 진심이 느껴지는 반응이었다.

    그걸 지켜보며 처음에는 어색해 하던 수정이도 유나에게 조금씩 벽을 허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같이 다닌 지 첫날이었다. 수정이의 심정은 아직까진 크게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없으나 유나라는 아이의 힘을 믿었다.

    그녀는 나까지도 움직인 장본인이니까.

    “율아... 이거 어때?”

    “으음...”

    어느새 수정이가 다가와 내 앞에 서서 어색하게 빙그르르 돌며 입은 옷을 나에게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수정이는 턱을 아래로 내리고선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행위였다.

    남자였었던 내가 보자면 수정이는 어지간한 학생들 보다 예쁜 축에 속했다. 그 외모를 어째서인지 가리고 있던 터라 빛을 보지 못했을 뿐. 가꾼다면 인기가 많아지리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 기본적인 외모에다가 갖춘 옷가지들을 보니 매력이 물씬 커져버렸다고 느꼈다.

    “그걸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그... 그럼 계산... 하고 올게!”

    옷을 입은 체 기쁘게 내 옆을 지나가는 수정이를 향해 난 속에 담았던 말을 했다.

    “수정아, 지금 진짜 예쁘다.”

    그에 수정이는 멈칫하더니 안 그래도 낮은 고개를 더욱 숙여 발끝만을 바라봤다.

    “고... 고마워.”

    작게나마 들리는 말 속에 듬뿍 담긴 수정이의 감정에 난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그런 나를 보더니 헐레벌떡이며 자리를 떴다.

    한숨을 내뱉고는 유나를 바라봤다. 유나는 그런 나를 보더니 엄지를 척! 내밀었다. 그런 당당한 유나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와 교복을 챙겨들고 움직였다.

    “참! 이거 갈아입을 테니까 기다려.”

    “안 그래도 돼. 그냥 계산하고 입고 가자.”

    “그건 좀... 싫은데...”

    입는 거 까지는 어떻게 버틸 수 있었다. 여성복코너이기도 했거니와 평일이라 한산했다. 날 보는 사람들도 없었다.

    잠시 입는 거는 백번 천 번 양보해서 상관없었다. 바람 불면 뒤집힐 것 같은 치마를 바라봤다. 이건 심했다. 이걸 입고 거리를 활주한다고? 절대 아니 될 일이었다.

    “나 용돈 들어왔어. 이 정도 가격은 아무렇지도 않아.”

    아니 유나야 돈은 문제가 아니야...

    “이거 많이 짧은 거 같은데?”

    난 치맛자락을 잡아 내리며 호소했다. 아까까지는 괜찮았는데 이걸 입고 밖을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창피해서 버틸 수가 없었다.

    “교복 치마보다 살짝 더 짧은 정도?”

    유나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짧다는 나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우리 학교 교칙에는 체육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는 교복 풀세트를 갖춰야 했다. 꽤 유명한 학교이다 보니 그런 정갈함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그 탓에 내가 싫어하는 치마를 하루 종일 입고 있어야 했다. 덕분에 치마라는 옷을 입고 행동하는 데는 익숙해졌다.

    조심해서 걷고 앉으며 계단을 올라야했다. 그건 의외로 스트레스였다. 내가 치마에 익숙해 졌다고 하는 것은 스트레스에 익숙해졌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일지도 몰랐다.

    역시 못 입.......

    “내가 고른 옷이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난 거부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이걸 입고 밖에 나서는 건 정말로... 정말로 싫은 일인데... 유나의 부탁이니 별 수 없었다. 이만큼 유나가 신경을 써주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걸 깨고 싶지 않았다.

    유나는 수정이에게 다가가는 걸 다급히 붙잡았다.

    “속바지라도 줘.........”

    내 말을 들은 유나는 가방을 한참동안이나 뒤적거리더니 검은 속바지를 건네주었다. 이걸 들고 다닌다는 거에 좀 놀랬다. 준비성이 철저하구나. 우리 유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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