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라해도 괜찮아-16화 (16/54)
  • 〈 16화 〉 학교라는 지옥

    * * *

    “저거 수정이지?.........”

    유나의 말에 난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수정이는 품에 책을 서너 개를 품고 서점을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심상치 않는 여학생들이 다가가자 수정이는 움찔거렸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이내 그녀는 여학생들에게 머리채를 잡혀 건물 안으로 끌려갔다. 그 모든 게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저 여학생들이 뭐하는 애들인지 모르겠다. 근데 이렇게 개방적인 곳에서 저렇게까지 한다는 것은 얼굴에 철면피를 깔지 않는 한 무리인 행동이었다. 대담하고 당당하게 악행을 일삼는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는커녕 놀라는 게 우선이었다.

    그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 일어난 상황에 당황했다.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은 물론이었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다들 방치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였다.

    나는 간혹 생각했다.

    말 그대로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떤 이가 눈앞의 악의를 보고 선뜻 그만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평상시에 생각으로는 몇 천 번이나 구해주려고 다짐하는 게 가능했다. 그게 현실이 되려면 엄청난 정신력과 갖은 시선을 이기는 깡이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방치하는 저런 행동은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참견하고 싶은 생각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난 그 상황을 등지고 말했다.

    “유나야 가…”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유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건물로 뛰어갔으니까.

    “유…… 유나야…… 끙….”

    솔직히 그냥 무시하고 가고 싶었다. 그게 본 마음이었다. 그들을 눈앞에 두고 내가 어떤 짓을 할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나는 이미 움직였고 이 아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유나의 행동에 나와도 상관이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난 앓는 소리를 내며 유나가 향한 그곳으로 발길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구경꾼들 사이를 유나가 헤치며 들어갔고 거길 또 내가 지나갔다.

    “촬영 나왔나봐.”

    “아하, 학교물 같은 그런 거였나 보내.”

    라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며 이 상황을 납득하는 것이었다. 카메라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촬영을 한단 말인가. 나는 그들을 힐끔 노려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유나를 따라 들어간 그곳은 건물 깊숙이 있는 여자화장실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건물이었는데 어째선지 이 화장실은 관리가 안 되어있었다.

    그럼에 눈길이 닿지 않는 탓인지 학생들의 이탈 장소가 된 것 같았다. 여기저기 담뱃재와 적당히 축축한 침들 속에서 간간히 가래가 떠있는 것이 보였다. 최근 몇 달간의 화장실의 수모를 알 것 같았다.

    다행히 칸칸이 문이 닫혀있어서 안의 상태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엄청날 것 같다는 예상은 가능했다. 그 예상을 확실시하기 위해 굳이 문을 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무리지은 학생들과 유나는 대치하듯이 마주보고 있었다. 유나의 표정이 다양하게 변하는 것이 그들과 일면식이 있는 것 같았다. 수정이를 괴롭히는 것으로 보면 같은 학교 학생인 것은 맞는데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이가 적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그 여학생 네 명은 노출에 특화된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 옷들은 그들과 전혀 어울리는 옷이 아니었다.

    오합지졸의 모임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 화장도 과하게 한 그들은 손톱으로 긁으면 피부가 움푹 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 그들이 완벽한 유나와 같이 있으니 그 차이는 너무나도 컸다.

    이미 한차례의 폭력이 지나갔는지 수정이는 더러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안고 있던 책들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발밑에 떨어진 종잇조각을 들여다봤다. 국영수 관련 내용들을 보니 수정이가 가지고 있던 책들은 문제집이었다. 주말에까지 나와서 학업을 위해 힘쓰는데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밖에 나오지 마라는 법은 없으니까. 괴롭힘을 하는 애들이 떳떳하지 못해야 하는 법인데 당하는 쪽이 굽혀야한다니 무슨 세상이 이런가. 난 속으로 생각하며 유나를 바라봤다.

    유나는 수정이에게 다가가서 상태를 보더니 인상을 구기며 일어났다. 수정이는 복부를 맞았는지 연신 기침을 해댔다. 수정이를 저렇게 만든 아이들을 향해 유나는 인상을 구겼다.

    “뭐하는 거야. 이게!! 네들 이런 애들이었어?!”

    역시나 아는 사이였다. 유나의 앞에서 그들은 좋은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화를 내는 거겠지.

    사람은 그랬다. 언제 어디서든 카멜레온처럼 변할 수 있었다. 가족들 앞에선 자식으로 친구들 앞에선 동급생으로 선생님들 앞에선 학생으로..... 강자 앞에선 약자로, 약자 앞에선 강자로. 사람은 만나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둔갑하며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이득을 위해 움직일 수 있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년이 계속 귀찮게….”

    자신들의 행위가 들킨 게 무안한지 말끝을 흐렸다. 여학생들의 세계에서 외모는 곧 힘이었고. 여자들과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유나의 존재는 그들이 볼 때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말로 하면 되잖아 말로! 애를 왜 때리는데.”

    이런 애들에 대해 유나는 잘 몰랐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애들이었다. 그들은 폭력으로 표현하고 장난으로 조롱하는 법 밖에 모르는 쓰레기 족속들이었다. 말이라는 고차원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심지어 자기 공부하려고 나온 애가 누굴 귀찮게 할 리가 없었다. 누굴 똑바로 바라보지도 누구와도 제대로 이야기도 못하는 아이였다. 언제나 공포에 질린 동물마냥 시선은 떨리고 고통에 익숙해져 아픔을 호소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였다. 그게 수정이고 예전의 나였다.

    유나의 역정에 그들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알만 돌릴 뿐이었다. 잘 쓰지도 않던 머리를 굴리는 것인지 여기까지 뇌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난 수정이를 도울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기만족을 하고 싶었다.

    그 시절......... 나를 도와주지 않았던 주변 인물들이 이렇게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을 기대를 희망을 내가 함으로써 만족하고 싶었다. 이기적인 내 자신이 자괴감이 느껴질 정도로 싫었다. 근데 내가 나에게 해주는 걸 손가락질 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난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유나에게 쏠려있던 눈길이 내가 움직이자 내 쪽으로 돌려졌다. 나를 보더니 당황하는 아이들에게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안쓰럽게도, 부럽다고 애를 때리면 되니?”

    나의 두서없는 말에 네 명의 여학생들은 의문을 품었다.

    “뭐?”

    그들 중 가장 날렵하게 생긴 아이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에 난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해도 너희들은 실패자에 낙오자에 쓰레기야. 절대 안변해.”

    “미친년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난 찢어진 문제집을 들어올렸다.

    “내 눈에는 너희들이 질투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아. 아무리 짓밟아도 선생님들한테 이 아이는 응원받겠지. 뭐 물론... 나는 더 잘났고.”

    잠시 뜸을 드리곤 말했다.

    “뭐가 잘 났다는 지는 굳이 말 안 해줘도 그 덜떨어진 머리로 잘 알지?”

    난 손을 내 가슴위에 올렸다. 난 누워있는 수정이보다. 그런 수정이를 질투하는 너희들 보다 잘났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날 보자마자 적대했다. 알량하게도 나에게도 질투 같은 것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야! 이 개년이!!”

    도발하는 나의 행위에 네 명 중에서 제일 퉁퉁한 아이가 서슴없이 다가왔다. 그녀의 움직임은 아프리카 초원의 코뿔소처럼 거침이 없었다. 매우 성나 있는 상태라는 걸 한눈에도 알겠다. 평상시에도 폭력을 일삼는 그녀들의 다음 행동은 안보고도 뻔했다.

    유나가 그런 행위에 나서려고 했다. 난 손으로 그걸 막았다. 때린다면...... 나 역시도 어떻게 될지도 몰랐다. 이번 생에서는 처음 맞는 고통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무섭다고 내뺄 수는 없었다. 나도 이 지긋지긋한 과거속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공포로 먹힐 것 같은 마음을 다잡으며 매력적으로 웃었다.

    “왜? 때리게?”

    지금의 내 모습을 내가 볼 순 없지만 일시정지 된 코뿔소 소녀의 모습을 보니 내가 생각한 대로의 웃음은 지을 수 있었다. 외모를 무기로 삼을 줄 알다니 영락없는 여자가 다되었다.

    난 잘났다. 그리고 내가 원하지 않아도 저 애들보다 예뻤다.

    마음은 썩어버려서 이상한 냄새가 날지라도 아름다운 외모로 그걸 다 덮어버릴 만큼이었고 그런 속을 몰라도 사람들은 호감을 보이며 다가왔다. 그 정도로 이 세상은 외모지상주의이었다.

    외모가 권리이고 능력이었다. 거기에 지적으로도 갖추었다면 승자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하지만... 과연 이게 옳고 나 자신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볼 때, 그건 아니었다. 세상의 승자의 기준이 행복이라면 나는 영원히 승자가 될 수가 없었다.

    나에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너무도 여성적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 할 때마다 내 속에 남은 남성적인 부분이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지난 시간의 나도 나 자신이며 지금의 나도 나라는 것은 변함없는 부분이었는데.

    지금에서 당연하다고 누리는 것들을 그 때의 자신이 누리지 못했다는 게 화가 났다. 그런 혜택들이 과거의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전부 너의 문제였다고 말하는 것 같았기에.... 그래서 지금의 자신도 과거의 자신도 긍정적으로 볼 수가 없었다.

    “가자...... 유나야 미안.”

    코뿔소 소녀를 필두로 화장실을 나섰다. 도망치는 건가 아니면 다음 기회를 엿보는 걸까. 그래도 유나에게 사과하는 것만큼은 잊지 않는 그녀들이었다.

    역시 이걸로 유나와의 관계가 깨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뭐 유나하고 붙어 다니는 것도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겠지만.

    “사과는 나한테 하지 마. 수정이한테 해.”

    사과를 거부한 유나는 똑 부러지게 말했다. 그런 유나에게 잠시 움찔한 코뿔소가 대표로 수정이에게 다가가더니 입을 열었다.

    “미...안....”

    작은 목소리였다.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코뿔소와 그 무리들이 사라지고 유나는 수정이를 부축하려 했다. 그걸 수정이는 거부했다. 왜 자신에게 잘해주는지 거기에 대해서 의심할 게 분명했다. 나라도 그랬으리라.

    “유나야, 이만 가자.”

    난 거절당해 안절부절 못하는 유나에게 말했다. 이 이상의 참견은 불필요했다. 수정이의 학교생활 전체를 우리가 책임져야 할 필요는 없었다.

    “왜? 왜 그러는데?”

    난 유나의 손을 잡아끌며 화장실을 나섰다. 그러자 뒤에서 작지만 확실한 음성이 들려왔다.

    “구...구해줘서 고...고마워.”

    그 말에 난 덤덤히 이야기했다.

    “그래, 조심히 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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