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그럼에도 살아야지
* * *
“오늘 아침에 오빠 방에서 본 거야.”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웃으며 그 사진을 오빠에게 보였다. 편안하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오빠를 바라봤다.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오빠는 나의 손에 들린 사진을 보고선......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에 내 가슴도 내려앉았다. 혹시나 했다. 이 사진이 그냥 따뜻한 가족애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렇게 바랐지만 그건 방금 오빠의 반응으로 사라져버렸다. 물론 가족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보면 확실한 거였다.
그래도 그만두지 않았다. 평범하게 웃으며 오빠에게 사진을 들었다.
“여기, 뒤에 글 읽어줘.”
오빠는 당황했다. 당연히 이걸 보고 내가 화를 낼 거라 생각했겠지.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가족이 망가져 버렸다. 그건 원하는 결말이 아니니까. 아빠가 몰라야 했다. 엄마가 몰라야 했다. 이번 일은 오빠와 나의 선에서 끝내야 하는 일이었다.
“미안...... 이거는 그러니까........ 이건.......”
오빠는 말을 더듬었고 난 그걸 의아하다는 듯 바라봤다. 이 글귀의 의미가 지금 오빠가 생각하는 감정이 아니어야 했다. 그걸 오빠에게 원하는 거였다. 지금은 나를 여자로써 사랑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가족으로 봐줘야 하는 약속과도 같은 거였다.
“읽어. 부탁이야.”
나와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은 묻어두겠다는 나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러면 이 일은 수면 아래로 잠기게 되겠지.
오빠는 입술을 깨물었다. 핏기가 빠져 입술이 흰색으로 변할 정도였다. 오빠는 지금 불안할 거다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불안해서 저렇게 안절부절못했다. 말하기만 하면 돼 오빠, 사진 뒤에 있는 글을 그냥 읽어주기만 하면 돼. 속으로 난 간절히 오빠에게 부탁했다.
“사랑해, 서율.”
........... 난 숨을 삼켰다. 그냥 이 말을 들으면 된다. 그러면 다 해결 될 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미워졌다. 오빠는 너무도 진심이었고 진심을 다해 고백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한 체 풋풋한 사랑에 빠진 남자로 보였다.
정말이구나........ 같이 지낸 세월이 길기 때문인가 그 사랑은 농축되어 전해졌다.
하지만, 그 감정은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나도 사랑해, 오빠. 가족으로써”
웃으며 그리 말했다. 최승현이 지은이에게 보인 마음의 형태로 오빠의 마음을 철저하게 짓밟아야 했다. 꾹꾹 눌러 담아 모습을 보이지 않게끔. 필사적인 그 감정을 느꼈음에도 느끼지 못한 척을 했다.
방식은 달라도 나에게 마음을 전하던 남자들과 같은 형식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나에게 닿지 못했고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더하면 더했지 그들보다 나은 건 없었다.
이걸로 오빠의 마음은 지키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원한 평범한 가족은 부서지지 않았다. 오빠의 사랑을 가족애로 막을 수밖에. 더할 나위 없는 거부였으며 마음을 접어달라는 내 나름의 표현이었다. 우리는 평생 가족이고 오빠의 사랑은 가족에게 있어선 안 되는 감정이니까.
이 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할 말은 끝났다. 이젠 오빠의 반응만이 남았으나 그 반응을 내가 기다려 줄 필요는 없었다. 기어코 그 감정을 가지고 있겠다면 이 집을 나가버릴 생각까지 되어있는 상태였다. 가족으로 보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니까. 난 가족을 원하는데 상대가 그럴 생각이 없다면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계단에 발을 올리자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
어릴 때부터 정말 착한 오빠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선행 상을 줄곧 타오는 도덕성이 짙은 오빠였다. 자신이 품은 감정에 매일 자책하고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겠지.
군대에 있으면서 갖은 힘듦에 나에게 기대고 싶었던 것일까? 사진을 보며 그 시간들을 버틴 걸까? 그렇게 까지 날 갈망했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뿐이었다.
“빨리 포기해.”
“그래......”
한숨을 흘리며 답하는 오빠의 목소리를 듣고는 난 방으로 올라왔다.
방 문 앞에 잠시 기대어 있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스륵 무너져 내렸다.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묻었다. 커튼이 처친 듯 긴 검은 머리가 볼 주변에 흘러내렸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 발소리는 잠시 멈칫 했다가 어느 한 방문을 열고선 사라졌다.
“흐윽.......”
너무 힘들었다. 너무 아팠다.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울 수밖에 없었다. 오빠 방으로 소리가 흘러 나갈까봐 손으로 입을 막으며 흐느꼈다.
평범한 가족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
오늘은 오빠가 다시 군대로 복귀하는 날이었다.
“오빠, 조심히 가고 무사히 돌아와.”
학교에 가기 전에 오빠 방에 들러서 말을 남기고 나왔다. 오빠는 멀뚱히 바라 볼 뿐 대답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신했다.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거는 나에게 놀랐을 것이다.
나 역시도 놀랬다. 어제 저녁 밤새 울었던 탓인가. 눈은 팅팅 부었지만 그만큼 마음이 안정된 것 같았다. 내 마음이 안정 되어 받자인데 그래도 다행히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곤 현관문을 열었다. 쨍쨍한 햇빛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문 앞에 서있는 의외의 인물에 놀랐다. 같이 등교하는 건 유치원 때 이래로 처음인가?
유나는 울상이었다.
“율아! 어디 다친 거 아니지?”
유나가 나를 품에 가두었다. 푹신한 가슴의 감촉에 유나를 다급히 밀어냈다.
“무슨 일인데?”
유나는 울먹이며 나를 바라봤다.
“어제 율이가 이상한 말을 하니까... 힝...”
그런 유나의 말에 어제 말한 죽음 운운한 대화가 생각났다. 하루 아침사이에 죽어버릴 까봐 찾아온 것일까? 아침부터 부랴부랴 준비했을 유나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우리 집까지 거리도 꽤 될 텐데 걱정된다는 이유 하나로 찾아와 준 것이었다.
“음...... 약속했잖아.”
바로 어제 약속했다. 그것도 유나와의 약속이었다. 바로 깨트릴 용기는 나에게 없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없었다면 어제 오빠와의 대화는 없었다.
유나는 포기하고 있던 나에게 더 해보라고 밀어준 샘. 이 지독한 인생에서 더 살아보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유나가 있으니까. 어떤 의미 괜찮은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 믿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 갈까봐 손을 꽉 쥐었다. 그 행위가 너무도 포근해서 고마웠다.
“어제 지은이 만났어.”
갑자기 생각난 귀여운 아이의 이름을 툭 뱉어본다. 그 최승현의 여동생이다. 유나도 알고 있을 터였다. 유나는 손뼉을 치더니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동물원에 지은이도 데리고 가자.”
“동물원?”
“뭐야! 기억 못하는 거야?”
아........ 그때 그거구나. 카페에서 약속한.......... 다 최승현 탓이었다. 왜 아침에 서느니 괴롭다니 그딴 이야기를 해가지고. 거부할 수는 없었다. 유나의 요청인데 내가 그럴 리가.
“가기 전에 할 게 있잖아.”
난 즐겁게 스마트폰을 보며 계획을 짜기 시작한 유나에게 찬물 끼얹기를 시전했다.
“뭐가 남았어?”
무슨 소리하냐는 듯 유나는 나를 바라봤다. 아무리 공부와 담쌓았다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 유나야.
“3월 모의고사.”
고등학교 1학년에 들어서서 처음 하는 시험이라고 하면 3월 모의고사가 있었다.
이 모의고사에는 끔찍한 전설이 하나 있는데 이 날 받은 성적이 수능 성적까지 간다고 하는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거의 기정사실처럼 받아드려지고 있었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어도 사람 습관은 평생 가는 것. 그렇기에 공부에 대해 습관을 잡지 못하면 모의고사 성적을 올리기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힘들다. 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하니 미친 짓이라고 해두자.
“헐, 중간고사 치는 거 아니었어?”
“3월에 중간고사 치는 고등학교가 어디에 있냐? 것보다 중간고사면 공부 안 하려고 그런 거야?”
“응!”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하지 말아주라. 여기선 친구로서 친구의 앞길을 걱정해 줘야겠지.
“이번 모의고사 성적 평균 40점 넘겨. 안 그럼 동물원은 없어.”
“40점? 날 너무 얕보는 거 아니야?”
내가 보기엔 유나는 그 점수도 힘들다고 봐...... 나중에 공부시켜보면 뼈저리게 알게 되겠지.
그렇게 내 교실 앞에 와서야 손을 놓으며 유나는 자신의 교실로 들어갔다.
점심시간, 나는 노장선생님에게 부탁해 작년 3월 모의고사 문제를 뽑을 수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노장선생님은 매우 흐뭇해 하셨다. 그러고 보니 모의고사 뽑아달라고 교무실에 찾아가는 학생들이 몇이나 될까. 별로 없겠지......
총 2장 뽑았으며 한 장은 몸 풀기로 내가 풀 용도였다. 다른 한 장은 유나에게 모의고사의 무서움을 알려주기 위해서 준비했다.
유나의 교실은 1학년 1반. 1반이라 함은 이 학교 입학자 시험에서 순위를 매겼을 때 1등이 있는 교실이었다.
성적순으로 교실을 나누었다고 들었으니 1반엔 1등, 2반엔 2등, 3반엔 3등........ 이렇게 진행되고 총 반이 7반이니까 8등은 1반, 9등은 2반, 10등은 3반........ 이런 식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유나는 1등이 아니었다. 꽤 후반에 배치된 거 같았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났다.
“율아!”
나를 발견했는지 여자들 무리에서 유나가 낑낑거리며 빠져나왔다. 그 무리는 이야기 하던걸 멈추곤 나를 보더니 흩어졌다. 방해한 것 같은걸? 근데 그런 것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자 시험지. 우선 학교 마칠 때까지 국어하고 영어 풀어놔.”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합치더라도 다 풀 수 없으리라. 다 못 풀면 학교에 남아서라도 하고 가게 할 샘이었다. 채점은 내가 해주고 풀이도 가능하다면 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나는 문제지를 훑어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돈 껌이지!”
문제지 제대로 안 본 것 같은데....... 우선은 넘어가자.
자신만만한 유나의 대답을 듣고는 그 교실을 나가다가 잠시 멈칫했다. 한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안경을 쓰고 있고 앞머리가 길어서 얼굴 생김새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를 보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타인들이 나를 보는 부러움의 눈길은 아니었다. 처음 느껴보는 시선이었다.
“흠........”
내 쪽에서부터 눈을 돌려 교실을 나갔다. 익숙한 분위기에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