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그럼에도 살아야지
* * *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고아다. 지금도 그러하고 예전에도 그러했다. 그 아이는 고아라는 현실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양부모님이 나타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게 자신의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이 희망은 어딘가 모순되어있었다.
아이는 이 희망이 한편으로는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 희망이 현실이 되었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희망은 일어나지 않기에 희망이라 부른다는 것을 그렇기에 처절하게 갈망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어떠한 것보다 그걸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걸 그 아이는 알고 있었다. 그 희망이 현실이 된다는 것은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이며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희망을 마음속으로 품으며 기뻐하던 소소한 행복이 모습을 감춘다는 것이었다.
바람이라는 것은 바라기에 이루어지는 걸까? 아니면 이루어질 때를 맞춰서 우리가 바라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일까. 어느 것이 우선인지는 잘 몰랐다. 헌데 그 아이가 바란 건지 다른 이가 바란 건지 그 아이가 그토록 바라던 그와 동시에 바라지 않던 희망이 현실이 되어갔다.
평범한 집안의 양자로 들어간 아이는 무척이나 긴장했다. 자신 외에 아이가 2명이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아이하나 여자아이하나가 더 있었다. 그 둘은 부모님의 친자식이었다. 외지인은 이 아이 하나뿐이었다.
자신이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의 마디마디가 경직되는 것 같았다. 집안의 물건 하나를 만질 때도 아이는 신경이 조각조각 갈리는 기분이었다.
세상의 고아는 ‘버림’이라는 단어에 민감했다. 한번 버림받았고 살아있는 한 버려질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으니까. 매사에 사랑받아야 하며 언제나 착한 아이로 있어야만 했다. 절대 버려지는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
항상 웃기위해 홀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훈련을 했다. 항상 예쁨 받기위해 일찍 일어나 집안 청소를 해야 했다. 그렇게 시키지 않아도 그래야만 했다.
이 아이는 사랑에 대해 모른다. 무엇이 사랑인지 무엇을 해야 사랑받는지. 사랑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반드시 자신에게도 사랑이라는 게 모습을 들어 낼 것이라며 막연히 믿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평범한 가정이었다.........고 아이는 생각했다. 양자로 들어가면 반드시 사랑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낳은 결과였다. 아이는 아픔이 쌓여가는 몸과 가시 박힌 말들이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하기에 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게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이라고 깨달았다. 아픔의 양이 늘어갈수록 가족들이 자신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 아이의 몸은 너무 아팠지만 마음만은 너무 행복했다. 그런 가족이라도 아이에게는 소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살짝 어지러웠다.
방금 꿈을 꿨던가. 이 몸이 되고 나서 아련한 느낌은 계속 들었다. 그게 무엇인지 떠오르지는 않았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겠지. 아니면 기억하기 싫은 그때의 일일지도 몰랐다.
꺼림칙한 기억 속에서 정신을 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몽롱한 몸을 세우며 멍하니 주위를 둘러봤다.
흰 벽지에 나무색에 나무무늬가 들어간 책상, 옷장, 그리고 지금 앉아있는 침대가 방안의 구성이었다. 청소년 자식의 방에 딱 필요한 물품만 구비되어 있는 아주 좋은 방이라고 생각했다. 공부하는데 불필요한 컴퓨터나 게임기구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내가 그걸 좋아하지 않는 점도 있었고......
방은 황폐했으며 싸늘하고 별 것 없었다. 가족들은 잘 모르겠지만 언제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는 방이다. 방 하나는 잘 꾸몄다고 생각했다.
살짝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는 비로 마사지를 받은 탓인지 살짝 한기가 드는 것 외에는 다행히 아픈 곳은 없었다.
“흐아암~”
뇌에서 산소가 부족하다기에 한번 크게 하품을 하고선 침대에서 일어났다. 긴 머리카락이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이불 위를 미끄러졌다.
양팔을 천장으로 쭉 뻗으며 기지개를 폈다. 까치발까지 들어 올리자 전신의 근육이 풀리는 청량감에 상쾌했다. 그때 방안에 있는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봄이라 새벽엔 아직 쌀쌀하다. 그럼에도 잠잘 때는 편한 복장을 선호하는 나이기에 반팔 티에 짧은 반바지 입고 있었다. 혼자 있을 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했다.
거울에 비친 반팔 티 사이로 얼핏 들어난 가는 허리와 배꼽은 요염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나는 팔을 한계치로 들어 올리고선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자신이 지었다고는 생각지도 못할 표정이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눈웃음을 하며 상쾌함에 살짝 찌푸린 미간 그리고 입 꼬리를 조금 올린 나의 얼굴은 내방임에도 불구하고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지 확인해야 할 정도였다.
이런 모습 절대로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절대!
자기가 자신의 모습을 보며 놀랬다. 엄청 이상한 사람이지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전 몸을 더 오래 가지고 있었으니까. 당연했다.
“아침마다 놀라는 건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아.......”
터덜터덜 혼잣말을 내뱉으며 아침준비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평일에는 학교가기 두 시간 전에 일어난다. 실질적인 준비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가족들 밥을 책임지는 게 지금의 나라서 한 시간 정도 더 여력을 두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은 새벽 6시라는 말씀.
아마 나 뿐이 아니라 여고생들의 아침은 빠르지 않을까 예상해봤다.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으니까. 자신을 가꾸는 게 아닌 난 조금 다른 아침밥이라는 준비였다.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냉기가 몸을 슥 스쳤다. 그에 살짝 움찔하고는 서둘러 재료들을 챙겼다. 오늘 아침의.......
“메인은 김치찌개로 할까.......”
요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취미 같은 거였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 세상에서 요리만이 자신이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맛있는 요리를 나에게 준다는 것은 꽤 괜찮은 행복이었다. 물론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있으나 그건 조금 부족했다. 내가 나를 위해 나에게만 해줄 수 있는 것은 요리뿐이었다.
그런 자기만족의 선물 같았던 게 이번 삶에 와서는 가족에게 해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때 요리를 나에게 떠넘겨 준 아빠한테는 정말 감사해도 모지랄 정도였다. 가족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늘었다는 건 그만큼 기뻤다. 버림받지 않을 하나의 동아줄이 생긴 거니까.
아니 나보다 엄마가 요리를 잘했더라면 내가 요리를 하게 될 장면은 없었을 지도 모르니. 그러니까 엄마한테 감사해야하나?
“이렇게....... 썰고.”
도마 위에 재료를 올리고 빠르게 썰었다. 익숙한 칼질이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경쾌한 도마소리가 울릴 때 마다 스트레스가 하나씩 잘려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율아....... 씻어야 되지 않니? 엄마가 보고 있을게.”
어느새 일어나셨는지 등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이것만 해두고요.”
재료손질은 마쳤다. 그렇게 어려운 요리가 아닌 김치찌개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의 양이다. 물의 양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 그렇기에 미안하지만 엄마에게 맡길 수 없는 작업이었다.
“먼저 돼지고기를 넣고 끓여야 해요. 엄마.”
“엄마도 알아! 얼른 씻고 와.”
“방금 파 집는 거 봤는데. 암튼 맛없으면 엄마 탓이니까요.”
“지각하겠어. 딸.”
떠미는 엄마 탓에 주방을 나와야했다. 끝까지 하고 싶은 요리지만 밑반찬을 5개나 만든 게 실수였다. 시간이 빠듯해져 있었다.
화장실 문을 열려다가 멈칫했다.
시간이 조금 빠듯했다. 밥 먹는데 30분 걸린다고 한다면 준비하는데 30분밖에 쓰지 못했다.
“으으 머리 말리는데 오래 걸리는데.”
똑똑
다급함에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일은 다 마치신 걸까. 그런데 아빠는 나를 보고선 화장실 문 앞에서 비키지 않으셨다. 이리저리 눈알을 돌리시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보다.
“저기 아빠. 나 지각.”
“그그그그그그그 그래도 안 된다! 아비는 딸이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향기만 맡기를 바라고 있어.”
“아 진짜! 똥에서 똥냄새나지 꽃향기가 날 것 같아요?”
아빠의 팔을 잡고 밀어내자 마지못해 비켜주신 아빠였다. 그걸 확인하고선 들어가 본 화장실은............................................................
내가 여기서 화장실을 나가버리면 아빠가 상처받지 않으실까? 그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 잡으며 꿋꿋이 버텨냈다. 순수하게 궁금한 게 생겼다. 아빠는 뭘 드신 걸까.
묵묵히 참아내며 세안을 하고 머리를 감았다. 샴푸향이 강해서인지 아빠가 남기고 간 발자취의 향은 나지 않았다. 코를 톡 쏘는 썩은 냄새는 장이 위험하다는 증거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아빠의 몸 상태가 걱정이 되었다.
*
교복 와이셔츠 위에 겉 조끼를 걸치고 잿빛 교복치마를 입었다. 검은 양말을 신으면 준비 끝이었다. 화장은 하지 않았다. 매번 생각하지만, 할 줄도 모르고 할 줄 안다고 하더라도 귀찮았다.
거울 안에 한 눈에 봐도 여학생이 있었고 그걸 본 후 방을 나왔다. 나오자 코를 찌르는 김치찌개 냄새에 입 꼬리가 올라갔다. 오늘도 평범한 가족과 평범한 식단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비록 내가 그들에게 진실 된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 그래도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과거의 나보다는 성장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반찬이 올라가 있는 식탁에 나도 앉으려 하자 엄마가 나를 보며 말했다.
“오빠 좀 깨우고 오렴.”
밥을 앞에 두고 그런 일을 시키다니요.
“헐? 오빠 휴가잖아요. 쉬게 두는 게 어때요? 내일이면 갈 텐데.”
“오빠가 깨워달라고 했는데? 아침에 친구만난다고 했어.”
“엄마가 깨우면 안돼요?”
투정을 부려보지만 엄마는 웃으며 말하셨다.
“애가? 엄마는 밥 차리고 있잖니.”
엄마, 그거 다 내가 한 건데. 그런 생각을 해보지만 마지못해 또 주방을 나왔다.
오빠 방은 나와 같은 이 층이었다. 오빠 방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남자였었던 내가 같은 남자로써 오빠를 보건데 프라이버시는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여러 소설과 만화책들을 보면 불쑥불쑥 여동생이 들락날락거리며 오빠들의 소중한 컬렉션을 삭제, 파괴시키는 악마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는데 난 전혀 그런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남매는 방에 자주 있지 않았다. 난 방안에서 할 것도 없고 해서 거실로 자주 나온 것이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오빠도 나를 따라 종종 거실에 있었다. 그래서 오빠를 볼 때는 거실에 있으면 자연스레 만나졌기에 굳이 방으로 따로 갈 필요는 없었다.
가끔 거실에 퍼질러져서 같이 낮잠을 자곤 했었다. 그게 작년까지도 있었던 일이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오빠가 군대에 간 후로 그런 생활은 사라졌다. 그럼에 아쉽다기 보다는 개운하기도 했다.
항상 같이 있는다는 건 항상 신경을 써야한다는 의미였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매번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이제는 피부와도 같은 보이지 않는 가면을 푹 눌러쓰며 입을 열었다.
“오빠?”
일단은 방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내본다. 일차적으로는 반응이 없었다. 몇 번 더 해보다가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서 문을 살짝 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푸른 계열의 벽면이 무척이나 시원해 보였다. 오빠는 커튼이 쳐진 창가 옆 침대에서 베개를 끌어안고 잠들어 있었다.
숙면하는 듯 고른 숨소리였다. 방안 가득 약간 술 향이 나는 게 느껴졌다. 어제 나를 데려다 주곤 친구만난다고 나가더니 늦게 들어왔나 보다. 그러곤 오늘도 나간다니 대단한 체력이었다. 역시 군인 체력인가?
“예쁜 동생이 깨우러 왔습니다. 일어납시다. 오라버니.”
침대로 걸어가며 계속해서 깨운다. 평소에는 쓰지 않는 예쁘다는 말을 자신에게 쓰면서. 이 말은 꽤 부끄러웠다. 앞으로는 쓰지 말도록 하자.
몇 발자국 걷다가 멈칫했다. 책상 위에는 국방의 디지털 무늬의 가방이 놓여 있었다. 가방 입구에는 한 사진이 매달려 있었는데 본래는 안에 있던 게 흘러나온 것 같아 보였다.
“가족사진인가?”
저번에 오빠가 군대 가기 전에 찍은 그 사진인 것 같았다. 반가움에 사진을 빼들었더니........
“..........”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