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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해도 괜찮아-4화 (4/54)
  • 〈 4화 〉 그럼에도 살아야지

    * * *

    황금 같은 주말이다.

    주말이라 함은 평일이라는 지옥 속에서 내리는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다. 평일에도 노는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는 사람이거나 주말은 소중하다. 주말이라는 말만 들어도 피로는 사라지고 일주일간의 활력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된다.

    허나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다. 주말이 오더라도 나에겐 그냥 폐에서 산소를 받는 들숨을 하고 다시 뱉어내며 날숨 하는 그런 행위를 하는 하루일뿐이다.

    활력소 따위 개나 줘버리라지.

    나라는 인간에게 활력이라는 게 있다는 게 이상한 거다. 지나가는 개가 박장대소를 하는 게 더욱 현실감 있다.

    [나가자? 응? 서율아......]

    하이 톤의 고운 목소리가 나에게 칭얼거린다. 듣고만 있어도 좋은 목소리임은 틀림없는데 지금의 나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다.

    폰을 귀에 대고 침대에 대자로 뻗은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을 정도로 편안했는데.

    어찌 이 아이는 이 타이밍에 나를 부르는 걸까?

    지금의 나는 나무가 되고 싶을 지경이다. 뿌리를 박고 토양이 주는 양분을 받아먹으며 그 자리에 영원히 서식하는 나무가 너무나 부럽다.

    인간은 왜 이리 불편한지 숨 쉬는 것에도 에너지가 소모되고 설상가상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는 밥 먹는 행위에도 에너지가 소비된다. 너무 비효율적이야.

    세상 동물들에게는 천적이라는 게 있다. 이기지 못하는 생명체를 그리 부르고 나에게 그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족이며 또 다른 하나는 소꿉친구이다.

    가족이야 어떤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 싶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존재, 세상을 적으로 돌려도 자신의 편으로 있어주는 존재니까. 거기에다 나는 입양되었다. 나의 어리광으로 그들을 난처하게 만들 정도로 나의 낯짝을 두껍지 못했다. 대체로 기세를 죽이고 그들에게 녹아들려고 한다.

    본능적으로 살기위해 연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천적이다.

    소꿉친구는 단 하나 밖에 없다. 이름은 김유나이며 자연 갈색의 양갈래 머리를 고수하는....... 아니 그녀에게는 정말 미안하다. 나의 취향대로 자란 거나 마찬가지니까.

    나는 유나를 만나고 그녀를 제 2의 아빠의 마음으로 길렀다. 츤데레 속성을 가미시켰고 그 츤데레 속성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양 갈래 머리, 트윈 테일이라 불리는 머리모양을 주입시켰다.

    유나는 원판도 좋아서 그 시너지들이 나타내는 효과는 나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것이 가능했다. 그 불은 내가 여자라고 인정하는 중학교 시기부터 금방 식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런데 유나는 간단히 돌아오지 못했다.

    역시 어렸을 때부터의 세뇌교육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난 그때부터 깨달았다. 엄청나게 큰 잘못을 저질러 버렸다고 말이다. 한 소녀의 인생을 속 시커먼 아저씨의 장난으로 망쳐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그 사실을 알고는 속으로 나에게 회의감이 들었다. 미친 짓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했다. 장난 같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어떻게 깊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때의 나의 마음은 뭔가 흐트러져 있었다. 지금도 정상이라고 보긴 힘들지만 그때는 더했다. 어릴 때는 지금의 자신의 상황이 긴 꿈의 도중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 유나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줘버렸다.

    설령 지금 인기절정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츤데레 여왕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조금 부끄러운 별명이다. 그녀 외에는 다들 알고 있지만 정작 그녀는 모르고 있다.

    [친구가 부탁했어. 만나보고 싶데.]

    “어떤 친구야? 내가 칼 들고 갈까?”

    죽여 버리게.

    라는 말을 혀로 꾹꾹 눌러 담았다.

    이미 칼이라는 단어까지 굴러 나왔는데 확 내뱉을까 했다. 나의 말에 유나가 당황하며 호들갑 떠는 게 전화상으로도 전해진다. 그도 그럴게 나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찌르는 건 불가능 하지만 칼로 위협은 가능했다. 나는 한다면 하는 여자니까.

    [어떻게 안 될까?]

    “하....... 어디야? 어디로 갈까?”

    소꿉친구인 유나만이 나를 불러서 종종 놀아준다. 진짜 이건 유나가 나하고 놀아주는 거다. 가진 자들이 베푼다고 해야 하나 딱 그 짝이다.

    학교에서 츤데레 여왕이라고 불리는 존재이다 보니 친구도 물론이거니와 호감을 가진 애들이 엄청 많다. 그럼에도 나에게 일부러 말을 걸어 그 무리를 빠져나오는 유나다. 그런 행위에서 혼자 있는 나를 신경 써 주는 게 느껴진다.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라 그런가? 나를 특별대우 해줬다. 종종 둘이 있으면 나랑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고 뼛속까지 파고 든 츤데레 속성을 지우면서 까지 진심으로 이야기 해주니까. 나의 본성을 아는 단 하나의 존재이다.

    그녀까지 날 외면하면 나에게 남는 건 없다. 그러니까 승낙하는 길 외에는 없었다.

    마지못해 승낙하자 그 뒤로 유나라면 유나다운 대답이 들려왔다.

    [진짜지? 올 거지? 벼......별로 와주길 원한 건 아니니까 말이야. 흥!]

    “뭐야? 가지말까?”

    [아......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힝...... 율이한테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그래 알겠어. 귀여운 유나씨 이 언니가 금방 갈게요.”

    [응! 언능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귀엽구나. 어릴 때의 유나가 떠오른다. 소심하고 자존심이 없던 유나였다. 그런 성격 탓에 외톨이까지는 아니었지만 혼자일 때가 많았다.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이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어 보였다.

    나 역시도 그랬다. 마음속 연령이 무척이나 높은 아니 그것보다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툰 나는 동년배 아이들에게 이상한 아이취급 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왕따였구나....... 씁쓸한 과거다.

    음....... 어디서 만나는지 유나가 안 알려 준거 같은데? 유나도 그걸 알았는지 문자를 보내온다.

    ­시내에 있는 이데아로♥♥.­

    문자에 딸려 들어온 하트 두 개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카페까지의 거리를 생각하고는 침울해졌다.

    버스 타야하네........

    그나저나 유나의 친구인가. 유나의 친구가 나에게 무슨 일일까? 할 말이 있나? 중학교 3학년 때 있었던 ‘그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뭐냐면 내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뺏었다고 찾아온 여자아이........

    내가 뺏은 게 아니다 그쪽에서 홀린 거지. 아니 애초에 홀리려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난 꾸미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쪽에서 그랬고 상처를 받았다.

    화를 낼 거면 나한테가 아니라 남자친구한테 하던가. 그때는 나도 어이가 없어서 조금 공격적으로 나갔다.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으으........ 긴장된다.”

    타인이라면 무시하는 게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럼에 내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상대는 내 소중한 친구의 친구....... 내 행동은 유나의 평가에 영향을 준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위해선 그 사람의 친구를 보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만큼 친구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척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나처럼 착한 아이를 친구로 둔 나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유나만 보면 내 인생은 잘 살았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니까.

    그런데 유나가 나를 소개한다면? 나처럼 자기중심적이며 나태하고 사람을 쉽게 상처 주는 사람이 친구라. 유나를 본 사람들은 유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솔직히 걱정되고 무섭다.

    그러나 나의 그런 성격을 변명할 생각은 없다. 그게 나고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루어낸 방식이다. 이걸 부정한다면 나라는 사람은 없다.

    그러고 보니 유나가 이런 저질스러운 나와 친해져 준 계기가 이런 나의 성격을 알면서도 다가와 줬던 것이다. 유나가 다른 또래아이들 보다 순수했던 탓이겠지..... 나를 봐주며 웃고 수줍어하며 나의 편이 되어줬다.

    완전 천사다. 뭐 그런 천사에게 츤데레 속성을 넣은 검은 아저씨가 나지만......... 나 진짜 나쁘구나. 경찰아저씨 저 좀 잡아가세요.

    내 성격에 대해 변명은 하지 않겠지만 숨길 수는 있겠지. 오늘 만큼은 확실한 연기를 해보자. 유나가 의아해 하겠지만 다 유나를 위해서다.

    “연기는 내 특기니까.”

    그런 다짐을 하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귀찮아서 화장은 생략한다. 그리고 옷도 대충 널 부러져 있는 것들을 껴입는다.

    손에 잡힌 것은 트레이닝복이다. 그것도 검은색. 10대 여자아이가 친구만나는 데 검은색 트레이닝복이라니 엄청나다. 자각은 하지만 다른 옷 꺼내기도 귀찮다. 연기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이건 예외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작은 운동화에 작은 발을 구겨 넣는다. 발 진짜 작다. 키도 작고 발도 작고........ 키가 190까지 커버리면 어떨까? 내 외모에 장신이면.... 왠지 호러.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겠는데?

    그런 의미로 키 컸으면 좋겠다. 허나 포기하자. 내 키는 여기서 끝이다. 기.........기대 따위.......하지 않는다. 흑....... 큰 기대는 큰 실망을 주기 마련이다.

    “엄마, 저 나갔다 올게요.”

    “어디 가니?”

    “유나 보러.”

    슬쩍 미소 짖는 엄마다.

    그래요. 친구 유나뿐이에요. 그런 웃음은 그만 둡시다.

    다른 친구를 사귀던가 해야지.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은 그냥 생각일 뿐 할 의사는 없었다.

    엄마는 내가 나갈 때 까지 그 표정을 풀지 않으셨다. 유나로 말 할 것 같으면 서로의 집에도 찾아갈 정도였다. 작은 여자아이 둘이서 자주 붙어 다녔으니 유나와 나는 이 일대에서 유명한 아이들이었다.

    언제나 함박웃음을 지으며 발랄한 유나와. 무표정으로 일관한 내가 어떻게 붙어 다녔는지 지금까지도 아주머님들의 이야기소재 중 하나라고 했다.

    *

    이번에 유나가 나를 불러낸 카페는 청소년들이 자주 찾는 카페이다. 우리 집 주변이야 주택 일대다보니 놀 곳이 없다. 기껏해야 동네 슈퍼정도이다. 본격적으로 놀기 위해선 학교 주변으로 나가야했다.

    학교 주위에 한 대학교가 있다 보니 우리 학교는 다른 고등학교보다도 놀이시설이 잘 잡혀있다. 본래 이데아도 대학생들을 목적으로 한 카페였으나 접근성의 이유인지 고등학생들을 소비층이 되어있었다. 내가 봐도 이데아는 대학가와는 거리가 있으니까 말이지.

    주말에 자신이 학교근처까지 왔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유나의 힘을 느꼈다. 유나가 나와 함께한다면 적어도 움직이지 않아 근육이 퇴화해서 죽는 안타까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렸다. 역시 주말, 많은 인파가 거리를 누비고 있다. 알록달록 치장한 가게들과 그런 가게에 옹기종기 모여 들어가는 사람들의 무리가 보인다. 한껏 멋 부린 남자, 여자들도 한 가득이다.

    어느 정도 꾸미는 게 좋았을까....... 지금 자신의 모습은 무난하지만 그 무난함 탓에 더욱 눈에 띄는 실정이다.

    나뭇잎을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더니 틀린 말 하나 없다. 끙.... 이미 늦었다. 신경 끄자.

    “서율?”

    오로지 카페를 찾으며 주위에 신경도 쓰지 않는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이름으로 말이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유나 목소리가 아니다. 내 이름을 안다는 것은 일단 같은 학교인데....... 적어도 나는 유나외의 친구가 없다. 나의 이름을 여기에서 부를 존재는 없다고 보는 게 맞다.

    평소와 같게 헌팅이거나 그런 류의 목적도 아닌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첫마디가 ‘시간 있으신가요?’ 혹은 번외로 ‘시간 있어?’ 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접근하는 건 꽤 신선하다.

    뒤돌아보자.

    “서율 맞구나?”

    “그런데?”

    평범한 남자아이였다. 통통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체형에 외모 패션스타일도 무난히 평범하다. 여기서 무난하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거다. 내가 지나치게 꾸미지 않아서 눈에 띄는 것에 반해 그는 적당히 꾸며서 주변 사람들과 조화가 되어있다.

    그는 신기한 사람 보듯 나를 내려다본다. 그런 그를 내가 올려다보자 멋 적은 듯 볼을 긁는다. 매번 이런 식이다. 나는 키가 작아서 대체로 남자들을 올려다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을 유혹하는 게 아니라. 신체적으로 작기에 이러는 거다. 그러니 그렇게 부끄럽다는 식의 반응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왜?”

    대답을 재촉한다. 얼굴 붉히지 말고 이 자식아.

    “이데아, 가는 거 아니야?”

    여기는 이데아가 한 군데밖에 없다. 이 애가 내가 가는 곳을 알고 있는 이유가 뭐지. 오늘 처음 면식을 튼 아이다. 접점은 딱 오늘,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어떻게 내가 가는 곳을 알고 있는 거지? 혹시..........

    “스토커?”

    “뭐?! 무슨 소리야.”

    그래....... 그런 거라면 내 이름을 알고 있던 게 설명이 된다. 평소부터 접근하는 사람들 중에 스토커 같은 악질적인 사람은 없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스토커지?”

    “아니야.”

    “아님 말고.”

    “......아 진짜!”

    스토커라고 떠들자 주변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찔리는 건가 스토커씨? 그럼 얼른 자리를 뜨는 게 좋을 걸? 나는 성격이 배배 꼬였으니까 말이야. 계속 얼쩡거리면 경찰서까지 갈지도 몰라.

    “....... 뭐 상관없어. 우선 이데아로 가자.”

    “음....... 앞장서.”

    진짜 스토커 일 수도 있으니까.

    10보정도 거리를 두고 뒤따라간다. 그에게 무슨 의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어차피 거길 가야하니 선택지가 없었다. 여차하면 유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

    어....... 음....... 왜 당신이 거기에 앉는 거죠?

    스토커씨는 유나와 웃으며 인사하더니 유나의 옆에 앉았다. 그 모습에 나는 멈칫했다.

    나를 알고........내가 가는 장소를 아는 사람은 유나외의 또 한 사람. 애초에 나를 밖으로 나오게 한 원인이 된 사람일 가능성을 배제해 버렸구나. 무엇보다 유나의 친구라기에 여자아이인 줄 알았다.

    남자든 여자든 친구가 많은 유나이지만 그래도 남자라는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여겼는데........ 그 생각이 화근이 될 줄이야.

    그리고 다가오는 남자들을 다 쳐내는 나의 기본 소프트웨어도 한 몫 했다. 내가 그를 잘 몰랐음에도 나의 판단으로 스토커로 몰아갔으며.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안 좋은 눈초리는 덤으로 얹어줬다.

    것보다 아니라면 아니라고 잡아 땔 것이지........

    아.... 아니라고 했구나.

    “미친.......”

    유나는 나를 발견했는지 총총거리며 귀엽게 뛰어왔다. 양갈래의 머리가 그에 맞춰 흔들리는 걸 보고 있자니 점점 착잡해진다. 너무 환하게 다가오기에 살짝 뒷걸음이 쳐지기 까지 했다.

    나보다 키가 살짝 큰 유나지만 거리낌 없이 나에게 팔짱을 꼈다. 애인에게 하듯 애정이 담긴 몸짓이었지만 나는 연행당하는 기분이었다.

    “자~ 얼른 가자.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그래.”

    그 소개 별로 받고 싶지 않습니다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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