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그럼에도 살아야지
* * *
오빠와 나는 집으로 가고 있었다.
봄임에도 25도를 능가하는 더위에 비지땀이 흐를 정도였다. 긴 머리가 목덜미를 덮는 것도 모자라 허리까지 내려와 있어서 담요를 덮은 것 같았다.
더워. 미치게 덥다. 내가 왜 나와 가지고 이런 생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절반정도 걸었을까? 시간으로는 5분 정도였다. 그때 시선이 느껴져서 옆을 돌아봤다. 의미심장하게 살짝 미소지어본다.
그럼에 오빠도 눈매가 가늘게 접혔다. 안절부절 하며 뭔가 살피는 듯했다. 나에게 미안한 게 있나보다. 성격 나쁜 나는 그걸 딱 집어 말했다.
“어떻게 동생을 팔 수 있을까?”
“야야. 팔다니. 사진보더니 한번 만나고 싶다고........”
움직이는 것도 주목받는 것도 무지하게 싫어했다. 그리고 그걸 뼈저리게 잘 알고 있는 게 다름 아니라 오빠였다. 하기 싫어하는 두 가지를 이렇게 까지 완벽하게 하게 만들어 주다니. 대단하기 까지 해서 화낼 기력도 없었다.
그나저나 사진이라니.......
군대에서 뭐 같이 부대끼고 살다보면 개인 물품 몇 개 공개되거나 그런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내 사진을 누구 보여주거나 그런 건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어떤 사진이었는지가 중요했다.
자랑은 아닌데 셀카를 찍든 뭐를 찍든 나 같은 경우 인생 컷이 매번 찍히다보니 걱정되지 않지만 만에 하나를 위해 알아 둬야했다. 그 사진이 오빠의 군 생활에 이정표가 되길 빌어줘야지.
“음? 무슨 사진?”
“가....... 가족사진.”
“뭐 그거면 괜찮네. 무난하게 찍혔으니까.”
중학교 3학년 때였나? 오빠가 군대 가기 직전 아빠의 발안으로 가족사진을 찍게 되었다. 추억으로 들고 가라며 아들에게는 매번 담담하셨던 아빠가 그날 처음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리셨다. 그 의외의 눈물에 오빠까지도 글썽거렸다.
군대에서 일어난 사건들로 뒤숭숭한 한해가 아니었나? 군대에 보내는 자식 걱정하는 부모님 마음은 다들 같았다. 그런데 군대 가는 건 뿐인데 가족사진을 주다니 전쟁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조금 웃겼다.
오빠는 무난하게 찍혔다는 나의 말에 잠시 웃음을 흘리다가 어떤 일이 생각났는지 인상을 구겼다.
“몸 함부로 굴리지 마. 아직도 다가오는 남자한테 막대하냐?”
“굴리다니....... 어감 이상한데?”
내 이마에 살짝 꿀밤을 주며 장난치지 말라는 듯 오빠는 손을 휘휘 저었다.
망할 자식이 아프잖아!!
당연히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을 자처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별 문제 없었으니 상관없지.......
이전의 나는 그냥 어디에나 있는 종종 귀엽다는 소리를 듣는 학생이었다. 그랬던 게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몸에 2차 성징이 나타나고는 주변의 관심은 급격하게 상승했다.
접근이 늘었다. 고백이 늘었다. 난 그것들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매도했다.
몇몇은 그런 나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는 떠나갔고 몇몇은 그런 나의 모습에 분노하며 역정을 토해냈다. 역정은 실랑이가 되고 다툼이 되고 상처가 되었다.
조금 일방적인 상처, 마음은 남자일 지라도 몸은 여자였다. 힘으로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재간이 없었다. 내가 그들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냈으니 당연한 응보라고도 생각했다. 그럼에 역시나 이런 반응을 보이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본성을 드러내면 내 주위를 다들 떠나갔다. 그런 반응 자체가 너무 가볍고 너무 간사했다.
나의 외모에 그들은 다가오고 가볍게 마음을 전했다. 그게 옳은 걸까? 그것도 사랑인가? 그게 감정인가? 그렇게 가볍게 생긴 감정으로 다가오는 것 그건 상대방에게 민폐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모르겠다. 그들이 옳은지 아니면 내가 옳은지 몰랐다. 그러니까 정답은 없었다.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길을 걸어갔다.
내려앉은 분위기 속에서 담담히 길을 거닐었다. 오빠는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다. 그건 이해했다. 하지만 이 성격 갑작스럽게 바꾸는 것은 할 수 없을 것 같아.
타인들에게 나의 자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금의 나의 자리를 지키는 것에도 너무도 벅차고 힘이 드니까 말이야.
*
말없이 걷는 우리들 앞에 익숙한 단독주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 단지는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느 정도 경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땅을 사고 거기에 자신들이 원하는 디자인의 집을 건축했다. 우리 집을 포함해 총 10개 남짓한 집이 포진해 있었다. 다들 예쁘고 근사한 집을 지었다. 얼굴은 언뜻 알지만 그리 인사를 하며 지내지는 않았다.
옛날로 치면 작은 촌락에 비슷한데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삭막한 세상이다 보니까.
내가 집 열쇠를 꼽고 돌리자. 오빠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 아빠, 저 왔습니다.”
“내 새끼 왔구나?”
“어서 와라.”
소녀처럼 비명을 지르시며 주방에서 뛰쳐나오는 엄마와 거실에서 신문을 접으며 무관심으로 무장한 아빠. 두 분의 반응은 천지차이였다. 그리고
“딸도 왔어요.”
“예쁜 내 딸, 얼른 들어와.”
“어.......어디 다친 곳은 없니?!”
내가 들어오며 뱉은 말에 첫 번째는 엄마의 말, 두 번째는 아빠의 말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같은 분위기이지만 아빠는 딸바보 스위치가 들어가 버렸다.
중학교 이후로 다치는 일이 잦다보니 그 이후로 아빠는 항상 내 걱정뿐이시다. 군대에 가있는 오빠보다도 매일 보는 나를 더 걱정하셨다. 그게 좀 웃기고 한편으로는 오빠에게 미안했다.
“그럼 실력 발휘 좀 해볼까?”
미안한 감정이 들어날 까봐 일부러 큰소리를 내며 주방으로 향했다.
*
주방에는 산더미 같은 초록빛의 채소들과 붉은빛의 육류들이 큼지막하게 잘려있었다. 육류는 그렇다 치더라도 채소들은 다시 다듬어야 할 것 같다. 이럴 줄 알고 있었음에도 혹시나 하고 엄마에게 시킨 것인데.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 나의 수고를 덜어주기를 바란 내가 잘못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할 걸 그랬다. 왜 죄다 깍둑썰기지? 이해가되지 않는 재료들의 모양새에 한숨이 나온다.
“뭐 도와줄까?”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고 있으려니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칼을 그대로 쥔 채로 뒤돌아 이야기 했다. 칼을 휘적휘적 흔드는 건 덤이었다.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로 가.”
오빠는 칼이 휘휘 움직이자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휴가 나왔으면 축 늘어져서 지낼 것이지 여긴 또 왜 기어들어왔는지 모르겠다,
“군대에서 안 힘들었어? 소파에 앉아서 맥주 캔이나 까는 게 어때?”
피로를 풀 때는 맥주가 짱! 그런 아저씨 같은 생각을 하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칼질을 하면서 웃는 나는 어떨까? 조금 궁금했다.
“운동은 좋아했으니까.”
“흠......”
운동 좋아한다고 군대에서 안 힘들었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였다.
백보천보양보해서 몸은 안 힘들었다 치자. 거긴 정신노동의 장소였다. 내리갈굼, 나는 군대 가기 전만해도 날 건드리는 새끼들은 다 영창 집어넣을 거라고 바락바락 소리치고 다녔다.
뭐 현실은 끽소리도 못하고 설설 기며 받을 거 다 받았다. 웃기게도 하루하루 버티니 버틸 만 하더라. 마조히스트도 아니고 말이야.
“군대 힘들지 않아? 그런데 언젠가 나올 곳이야. 온갖 힘든 일을 다 받는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먹히지 말고 오빠답게 행동해. 몸이든 마음이든 다치지 말고. 무사히 나오는 거야.”
군대에선 먹히는 게 가장 위험했다. 그 분위기에 젖어 들어가는 것, 사회에 나와서도 잊지 못하는 그 시절의 권력에 매료당하는 것이다. 군대는 잠시 갔다 나오는 곳이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니라 거기서 나온 후의 바깥이다.
“너, 갔다 온 것처럼 말한다.”
너무 심하게 입을 놀렸나......? 나는 내 과거를 기억 못하는 게 아니다. 잊으려고 노력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조금 감성적으로 된 것 같았다. 그 때의 기억이 응어리져 있던 걸까? 남자들이 군대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 가지, 가장 기억에 많이 남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고생들 그때의 고통들이 유리조각처럼 마음에 박혀있다.
다 지난 일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했다. 누구나 다 그렇듯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게 과거라는 시간으로 포장되어 상처가 무뎌진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거였다.
그럼에 웃으며 이야기한다. 내 이야기 들어달라고 이해해 달라고 이렇게 힘들게 지내 왔다고 말이다. 군대? 나오면 끝이잖아? 라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평생 가는 올가미일지도 몰랐다.
“왜 그래?”
“나가. 방해 돼.”
“......그래.”
군대가 아무리 군법에 예속되어 있다고 하지만 거기도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집단이 뭉치려면 그 집단에 대항하는 적이 있어야 했다. 아니 대항하는 적이라니 그런 거창한 말은 필요 없겠네.
특이한 사람만 존재하면 됐다. 보편적인 사람들과 다른 사람, 그런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은 뭉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난 군대에서 특이한 사람이었다.
“무사히...... 나오라니.... 나도 못 했는데.......”
후........ 양파가 맵다.
*
역시나 맛있군. 누가 만들었는지 최고의 요리였다. 내가 만들었기에 자찬하는 것이 아니다. 허겁지겁 음식을 섭취하는 집안 식구들의 모습에서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설탕은 사랑입니다. 감사합니다. 백주부님.
속으로 나의 요리선생님을 생각하며 흐뭇하게 음식을 먹는 가족들을 바라봤다. 역시 맛없게 먹어주는 것보다 맛있게 먹어주는 게 좋으니까.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율아. 더 안 먹니?”
아빠는 수저가 멈춘 나를 보며 의아해 했다. 저렇게 말하시지만 나는 이미 한 공기를 비웠다. 나치고는 꽤 많이 먹은 거다.
연신 맛있다며 수저를 멈추지 않는 가족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나 맛있나? 순수하게 기뻤다.
밥 먹는 거 계속 구경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자신의 밥그릇을 챙겨 주방으로 나왔다.
아직까지 울리는 식기 긁는 소리에 피식 웃음을 흘리다가 요리한답시고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된 싱크대의 모습에 웃음이 도로 들어갔다.
역시 음식은 할 때는 좋지만 정리할 때는 고역이었다.
배는 부르지 몸은 나른해지지 그럴 때 몸을 움직여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물기가 마른 식기들이 생성된다. 식기와 한 몸이 된 것처럼 바짝 눌러 붙은 음식물을 보고 있자면 식기를 새로 하나 장만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새록새록 샘솟는다.
일단 정리라도 해둘까. 아직 먹고 있으니 설거지거리는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안치우기에는 재료찌꺼기들이 눈앞에 나풀거려서 내 신경에 거슬렸다.
난 살짝 결벽증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깨끗해서 나쁠 게 뭐가 있을까. 난 그렇게 믿고 있다. 팔을 걷어붙이고 행동에 돌입했다.
청소에 매진한지 어느 정도가 지났다. 얼추 정리가 된 거 같은데? 솔직히 오빠하나 때문에 이 정도의 음식을 한 내가 잘못이었다. 뭐 예쁠 게 있다고.....
재료가 많다보니 조금 신이 나서 많이 만든 거 같았다. 요리는 많이 좋아했으니까. 본 상태의 60%를 되찾은 주방이었다.
그제야 주방으로 들어오는 먹보들의 모습. 누가 가족 아니랄까봐 양손에 가득 밥그릇을 든 모습이 꽤나 웃겼다. 저런 점까지 닮아서 어쩌자는 건지.
“율아, 잘 먹었다.”
“엄마가 음식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엄마가 배워야 할 것 같아........ 흑....... 엄마의 위엄이..........”
“올라가서 쉬어,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아빠, 엄마, 오빠 순으로 싱크대에 식기를 내려놓으며 한마디 씩 던졌다. 그리고 그 말들에 안심했다. 난 이 ‘가족’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그 사실에 많은 안정감을 얻었다. 안도의 웃음을 흘리며 오빠가 끼려고 하는 고무장갑을 뺏어들었다.
“요리의 끝은 설거지지.”
“너야말로 피곤할 텐데 쉬어라.”
나에게서 도로 고무장갑을 가져가는 오빠였다. 이상한 사람일새 군대에서 지겹도록 명령받으며 생활했으니 쉬고 싶은 건 지극히 당연했다. 나 역시도 휴가일 때만큼은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군대에서 자기 밥그릇을 하도 닦아서 그런지 설거지가 그렇게도 하고 싶나? 아니 설거지 하면서 흥분하는 체질이 되어버린 건가? 변태인가?
“뭔가 실례되는 상상 중인 거 같은데 여동생아.”
“그럴 리가요. 오라버니.”
한다는데 누가 말리리. 설령 설거지를 하면서 흥분한다 하더라도 이해해주자. 하나뿐인 오빠니까 말이야.
“그럴 리는 없다.”
“아무 말도 안했는데?”
“내가 말을 말지.......”
나를 보며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짓더니 식기에 물을 뿌리는 오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