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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원수)를 다루는 바람직한 방법-4화 (4/31)
  • 〈 4화 〉 그 등에 속삭인 한 마디

    * * *

    "다녀오겠습니다."

    "아, 잠깐."

    시아가 현관에서 가방을 집어들자 그녀의 어머니가 종종 걸음으로 다가갔다.

    "귀여운 우리 딸, 맛있는 거라도 사먹어야지."

    "아, 괜찮은데. 고맙습니다!"

    어머니가 기대하는 귀여운 미소를 내보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학교에서도 언제나 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시아가 귀여워 죽겠다고 헤실거리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재깍 말해. 알았지? 조심히 다니구."

    "걱정 마세요."

    "이상한 사람이 말 걸면 바로 도망치는거야. 알지?"

    "아이 참. 엄마, 나도 이제 고 2에요."

    웃는 낯으로 대꾸하며 나선 그녀는 문을 닫자마자 표정 근육의 힘을 풀었다. 순식간에 미소가 사라지고 공허한 무표정이 대신 자리잡았다.

    가족이 좋아하는 나. 귀여운 나. 연약하고 작은 윤시아.

    분명 방금까지도 어머니와 함께였지만 싸한 고독감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학교를 향하면서 아는 얼굴들이 하나 둘 인사를 건네와도 변함은 없었다.

    아무도 그녀를 모른다. 이 중에서 누구도 본래의 윤시아를 알지 못했다.

    집에서부터 학교, 계단을 올라 반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지만 동시에 혼자였다.

    그리고 그건 그녀가 선택한 일이기도 했다.

    본래의 직설적인 말투를 감추고, 짖궂은 장난기를 죽이고, 귀여운 외모와 작은 체구에 숨었다. 그러니까 이 고독은 그녀가 자초한 일이었다.

    괜히 신경질이 난 그녀는 문을 걷어차듯이 밀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귀를 덮치는 시끄러운 웅성거림.

    아직 교사가 들어오지 않은 탓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학생들로 난리도 아니었다. 학생들을 말려야 할 학급 반장은 친구들과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반의 상태도 알만 했다.

    그런 북새통의 한 가운데에서 유빈이 보였다.

    너희들이 뭘 하든 난 일단 자겠다, 라고 온 몸으로 주장하는 모습. 마이를 뒤집어 쓰고 엎어져 있었는데 바로 옆자리에서 임진우가 쩌렁쩌렁하게 떠들고 있었다. 그만큼 곤히 잠든 것인지 그냥 무시하려고 마음먹은 것인지 그 자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출발해 다른 사람들보다 30분 정도 먼저 도착하는 유빈은 조례 전까지 잠을 자곤 했다. 그럴거면 그냥 집에서 30분 더 자고 오는게 낫지 않냐는 물음에는 '이게 더 개운하다.'고 대답했다.

    시아의 자리는 유빈의 뒤. 혹시 깨울까봐 조심히 움직인 시아는 소리없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저 매너 없는 임진우는 옆에 사람이 자고있든 말든 목소리를 줄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귀가 밝은 유빈은 진우가 굉장히 거슬릴테지만 별 말 없이 자는 걸 보니 저번에 진우에게 험악한 말을 들은 것에 어지간히 상처를 입은 모양이었다. 자고 싶다고 비켜달라 그러면 저번처럼 반응할 거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미련퉁이."

    자고 있어서 못 들을테니 툭 한마디 해주었다. 유비는 다른 사람이면 대판 싸웠을 상황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짜증도 원망도 분노도 어지간하면 표출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 할 때는 자신이 느낀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지만 당사자에게는 최대한 싫은소리를 삼갔다.

    정말 미련했다.

    "임진우."

    "응?"

    "유빈이 자니까 좀만 조용히 말하지 않을래? 안 그래도 맨날 졸려서 죽어가는 앤데."

    항상 도움을 받으면서 배려 한번 하지 않는 임진우와 그러려니 하고 당하기만 할 뿐인 홍유빈. 그걸 보고 있자니 짜증이 치밀어서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말과 표정으로는 걱정스럽다는 투였지만 사실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 시아에게 있어서 두 사람의 가치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었다.

    임진우, 네가 뭔데.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은 가슴께에서 뜨겁게 뭉쳤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여야 했다. 그것이 남들과의 사이에 선 벽이며 가면이었으니까.

    임진우는 옆자리의 마이를 두른 덩어리를 힐끔 보더니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도 굳이 자던 사람을 깨울 생각은 없었다. 거기에 유빈은 자던 걸 깨우면 눈에 뵈는게 없어진다.

    단적으로 말해서 진짜 화낸다.

    학기 초에 몇명의 피해자를 만들고 나서는 자고 있는 유빈은 건들지 않는다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처럼 자리잡았다. 그의 친구들은 보기 드물게 폭력도 불사하는 분노의 화신을 굳이 마주할 생각이 없었다.

    교사가 들어오기까지 5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임진우가 목소리를 한껏 줄인 덕에 유빈의 주위는 비교적 잠잠해질 수 있었다.

    시아는 뒷자리에서 주기적으로 오르내리는 유빈의 등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마디.

    "바보 멍청이."

    괜히 듣지도 못할테지만 던지는 핀잔. 어쩐지 기분이 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부터 어쩐지 구질구질했던 것이 좀 나아지자 기력도 좀 생긴 것 같았다.

    그래, 그렇게 괜히 우울해져 있어봤자 변하는 것은 없었다.

    1교시 종이 울리자 부스스한 눈으로 몸을 일으키는 유빈을 멍하니 처다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나쁜것도 아니라 자기가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쓰이고 있다는 걸 모르지도 않으면서 그걸 다 받아주는 유빈.

    그런 그도 저렇게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가. 좋은 사고 방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자기보다 힘든 사람을 보면 자신의 처지가 조금은 나아 보이는 법이었다.

    그런 식으로 위안삼는 대신 쉬는 시간에 음료수라도 사주기로 했다.

    유빈은 받는 용돈이 적어서 언제나 주변 친구들이 군것질 하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곤 했다. 일주일에 음료수 한 두번 마시면 사라지는 액수라 저축할 것도 생각하면 도저히 쓸 수가 없다는 모양이었다.

    오죽하면 교통비를 아끼겠다고 30분 넘게 걸어서 학원을 다닐까.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부분에서 유빈은 참 힘들게 산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1교시가 끝난 후, 음료수를 받아든 유빈은 90도로 허리를 꺾어 감사를 표했다.

    앞으로도 종종 사주자. 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

    고등학교 1학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사람 따라서 천차만별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즐거운 추억을 떠올릴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쉬웠던 일이나 후회스러웠던 경험을 떠올릴 것이다.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빈은 두 친구에 대해 원망을 토할 것이고 민재는 싸움 구경이 너무 재밌었다고 웃을 것이다. 하늘은 어쩐지 너무나 많았던 사건 사고에 한숨을 내쉴 것이고 진우는 나름 즐거웠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유빈의 지인 중 가장 고통스러운 1학년 생활을 보낸 것은 다름 아닌 시아였다.

    "시아야, 매점 같이 갈래?"

    "아니, 난 됐어."

    교실의 구석자리에 앉아서 친구들을 배웅한 그녀는 모여서 왁자하게 떠드는 여학생들 무리를 힐끔 처다보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녀는 저런 자리의 가운데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만약 유빈이 있었다면 공부를 하고 있는 그의 옆에서 드문드문 말을 걸고 있었을 것이다.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 유빈은 대부분의 일은 받아주었다.

    그러나 오늘은 유빈이 도서관에서 일하는 날이었다. 2학년으로 올라오면서 도서부의 부장이 된 그는 성실한 성격을 발휘해 정해진 날을 빼먹는 법이 없었다. 성실 또한 호구의 덕목이었다.

    진우나 하늘, 민재는 배드민턴을 치겠다고 사라졌다. 그 외에 자주 어울리는 친구들은 저마다 놀러갔으니 시아는 드물게도 혼자였다.

    친구. 친구라. 시아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말이 좋아 친구지 사실상 지인이라고 표현하는게 옳았다. 귀여운 외모와 행동거지로 끌어 모았을 뿐 그들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들은 시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리고 시아도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고 함께 있는다고 즐겁지도 않았다. 그러니 그들은 사실 친구가 아니었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유빈일 것이다.

    홍유빈. 그는 시아가 사실 어떤 성격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안다. 가장 괴로웠던 시기에 시아를 도와준 것도 유빈이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눈치채고 배려해주곤 했다.

    시아도 유빈을 위해서라면 다소는 귀찮음을 감수할 수 있었다. 그것이 대부분 일방적으로 느끼는 은혜와 채무감에 기인한 것이라고 해도 둘 사이에는 우정, 혹은 신뢰라고 부를 수 있는 연결이 있었다.

    "뭐야. 유빈이는 없네?"

    한창 상념에 빠져있던 그녀는 어느새 다가와있던 여학생의 목소리에 몸을 움츠렸다. 저릿하고 고약한 감각에 대한 반응이었다.

    물씬 느껴지는 악의.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매일 같이 그녀를 향했던 음침한 시선이 피부를 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굴을 보니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여학생이었다. 화장을 진하게 한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는 상대였다.

    시아는 일그러지는 표정을 필사적으로 가다듬었다. 괜히 불편함을 드러냈다가는 무언가의 빌미를 주게 될지도 몰랐다.

    아무런 해코지도 당하지 않았다, 그저 유빈이에 대해 물어봤을 뿐이다. 어렵사리 뱉은 대답은 생각보다 침착한 목소리였다.

    "유빈이는 도서관에 갔어."

    "흐응."

    재미없다는 듯이 그렇게 반응한 여학생은 눈도 마주치지 않는 시아의 모습에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대로 몸을 돌려 멀어지는 것을 보며 시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친구들이 모인 자리로 돌아간 여학생은 호들갑스럽게 떠들었다.

    "유빈이도 참 대단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저런 애랑도 친하게 지내잖아."

    작지 않은 목소리는 일부러 시아에게 들리게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힐끔 돌아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교실을 나가고 싶었다. 그녀가 말하려고 하는 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였다. 꿈에서도 그녀를 괴롭히는 최악의 경험.

    일어나서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가버리면 된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팔 다리는 의자에 붙기라도 한 것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는 들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라도 하는 듯이.

    "시아가 왜?"

    시아가 있는 쪽을 두어 번 살핀 여학생이 물었다. 들릴지도 모르지만 호기심이 걱정보다 컸다.

    미끼를 무는 것을 본 여학생의 미소가 짙어졌다.

    "몰랐어? 윤시아 쟤 1학년 때 했던 일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어."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아, 나 알아. 분명히 박쥐? 여우? 뭐가 맞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불렀다고 듣긴 했었는데."

    둘 다 들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여우라고 불리는 일이 더 많았다.

    찌릿한 통증에 정신이 확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씹고 있었던 것을 깨달은 그녀가 고개를 떨궜다.

    지금 이곳에서 도망친다고 해서 의미가 있는가? 당장은 저 자리의 3, 4명 뿐일지 몰라도 곧 이 반의 전체가 시아의 과거를 알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감에 취해있던 그녀의 과오를.

    소문이란 그런 것이니까. 악의란 그런 것이니까.

    "그게 말이야..."

    점심시간의 복도는 시끄러웠다. 하지만 타일 바닥과 신발이 부딪히는 소리는 교실 안까지도 분명하게 들렸다.

    단단한 바닥과 고무 밑창의 충돌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가쁜 호흡에 숨이 막혀 가슴을 움켜쥔 시아는 분명하게 그 소리를 들었다. 신이 나서 떠들려고 입을 다시던 여학생은 무언가 낌새를 느꼈는지 입을 다물었다.

    드르륵.

    "야, 윤시아. 도서관 같이 갈래?"

    문을 열자마자 대뜸. 홍유빈은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그렇게 물었다.

    "어?"

    "빌리고 싶은 책이 있다고 그랬잖아."

    교실과 도서관은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점심을 같이 먹고서 이미 15분은 지났다. 유빈은 진작에 도서관에 가서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같이 갈래?'는 이상했다.

    "하아, 하여간 가자. 아, 젠장. 숨차."

    체력을 최대한 아끼려는 유빈은 잘 뛰어다니지 않았다. 그런 그가 숨을 몰아쉴 정도로 달렸다.

    가까이 오기도 전에 큰 소리로 부르는 것도 그답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이곳에 왔다고 광고하려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그에게 시선이 쏠린 덕분에 여학생들 무리의 이야기도 끊겼다. 그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유빈과 시아를 보고 있었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여학생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도서관에 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 거짓말을 했구나?"

    "아니야! 난..."

    "유빈아, 알아? 걔 1학년 때 무슨 짓을 했는지."

    대답은 듣지도 않았다. 여학생의 태도와 창백한 시아의 얼굴을 보니 지금 왔어도 상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쎄해서 죽어라 달렸는데 헛수고는 아니었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뭐? 안다고?"

    "어. 근데 그게 어때서?"

    여학생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지만 유빈은 담담했다.

    "그게 뭐 어쨌는데."

    "알면..."

    "알면."

    "......"

    워낙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해 버리니까 말이 궁해졌다. 면전에다 대고 알면서 왜 친하게 지내냐고 말하는 건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었다. 상대가 반 전원과 두루 사이가 좋기 때문에 더더욱. 잘못했다간 뒷담이나 까는 인성 더러운 사람으로 입소문을 탈 수도 있었다.

    입을 꾹 닫은 여학생에게서 고개를 돌린 유빈은 시아를 잡아 일으켰다.

    "자, 가자. 부장 권한으로 미리 빼뒀어. 애들이 보기전에 빌려가."

    "으, 응."

    "대신 서가 정리나 좀 도와라. 얼마전에 도서관에서 수업했더니 상태가 개판이야."

    교실을 나가 문을 닫았다. 들리는 한숨소리.

    유빈은 지친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머리가 어지러울 때면 하는 마사지였다. 잠자코 지켜보던 시아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뭘?"

    유빈은 시치미를 떼려고 했지만 시아는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유빈의 행동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도서관에서 달려온 거지? 애들 말하는걸 끊으려고 일부러 크게 불렀고. 걔네가 내 이야기를 하는걸 알고 온거야."

    "잘도 알아챘네."

    "대답해. 어떻게 알았어?"

    유빈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아도 따라 걸었다.

    도서관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오늘은 평소 멤버중에 너랑 같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뭔일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뛰었지. 느낌이 안 좋아서 그냥 들어가자마자 부른거고."

    혼자가 아니라면 일방적으로 괴롭힘 당할 일은 없었다.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상황을 많이 바꿔줬다.

    "뛰어온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담부터는 친구들이랑 같이 다녀. 아직 작년 일 어설프게 알고 있는 애들 많아."

    어설프게.

    그렇다. 많은 사건들이 그렇듯 작년 시아가 겪은 일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당사자들이 쉬쉬하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유빈이 시아를 도운 것이 영향을 끼쳤다. 유빈과 사이가 좋은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영향력을 끼친 결과 사건은 조용히 묻혔다. 점점 언급도 줄고 있어서 괜찮겠다 싶었는데 이번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 맞아 그리고, 아침에 고마웠어."

    "뭐?"

    "나 잘 때 임진우한테 한소리 해줬잖아. 진짜 시끄러웠거든."

    "그걸 들었어?"

    "잠결이지만. 덕분에 좀 잤다."

    고맙다고 해야하는 건 시아 쪽이었다. 작년에도, 오늘도 그녀는 유빈의 도움을 받았다. 안 그래도 피곤할텐데 전력으로 복도를 질주한 그의 머리카락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또 하나, 빚이 늘었다. 아직 다 보답하지도 못했는데. 시아는 마른 눈가를 비볐다.

    그런 그녀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빈은 이어서 툴툴거렸다.

    "근데 사람 자고 있는데 뒤에다 대고 바보 멍청이가 뭐야."

    "잤다며! 어떻게 들은거야!"

    "잠결에."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청력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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