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징조
어둑한 밤, 북한 시각 22시가 넘어가는 때.
방 안에 사람들이 자리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깊은 수심으로 가득했다.
“이래서는 우리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지금 위원장님은 완전 미쳤습니다.”
“어허, 그 입 어서 닫으세요. 저녁 쥐가 무서운 걸 모르십니까? 혹여 이 말을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 들으면 어쩌려 그러시오.”
김정일 위원장을 미쳤다 말하는 건, 스스로 죽고 싶다 말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터다.
“큼, 죄송합니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중년인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큼지막한 머리가 아래로 내려갔다.
“후우, 김정은 도련님만 있었어도 이런 사달은 나지 않았을 터인데. 쓰읍.”
중년의 숙인 고개를 무시하고 해외로 추방된 김정은을 떠올렸다.
말은 중립이라 하였지만, 김정남보다 김정은을 더 밀고 있는 입장이었다.
“김정남이 다음 대 위원장으로 올라서는 건, 막지 못할 거요.”
이들은 김정남 이름 뒤에 ‘도련님’이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 도련님은 오로지 김정은과 그의 가족에 한정됐다.
“그럼, 이대로 두고 보자 이 말입니까? 그럼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가 대체 뭡니까?”
60대는 되었을까? 마르고 늙은 몸이지만 단단함이 느껴지는 중년 남성이었다.
대책을 논의하기 위하여 모인 자리에서 대안은 내놓지 않고 이상한 말만 늘어놓고 속을 긁는 이들에게 심한 짜증을 느꼈다.
“김정남을 죽인다면 어떨 거 같습니까? 만약 그리된다면 위원장님도 어쩔 수 없이 김정은 도련님을...”
콰앙─!
“거기까지. 당신들을 반란세력으로 규정해 체포합니다.”
갑자기 문이 부서지며 일련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들이닥친 사람들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뭐, 뭐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위원장님의 명령이오. 중장. 당신들을 모반, 반란군으로 체포하오. 순순히 말에 따르는 것이 좋을 거요.”
“아, 아니. 대체...”
박연석 중장은 얼이 빠진 눈으로 들이닥친 사람을 보다, 옆자리를 지키던 김철 상장을 노려봤다.
“김철 상장님, 이번 일은 없는 걸로 해주시겠다 하셨습니다.”
“고, 고맙네...”
“뭐시라, 김철 상장, 어떻게 당신이...”
박연석 중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유지했다. 긴 시간 동고동락을 하던 이가 배신이라니.
생각도 못 했다.
“나도 우리 가족도 살아야 하지 않겠소. 미안하게 됐습니다.”
김철 상장은 작게 고개를 숙이고 이들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모두 포박해.”
동시에 병사들은 줄을 가져와 반란세력의 몸을 단단히 묶었다.
박연석 중장을 포함하여 포박된 사람들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모두의 시선이 김철에게 꽂혔지만, 현실을 깨닫고 고개를 아래로 꺾었다.
“위원장님, 불순분자를 모두 잡아들였습니다.”
“잘했네.”
김정일 위원장은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사람을 붙여 늘 감시를 하였다.
그러다 한 인물이 레이더망에 걸려 심문을 통해 매수하는 데 성공하고 뿌리째 뽑기 위하여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오늘날에 이르러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한데 김철 중장을 정말 이대로 놔두실 건지요?”
맑은 물에 기름 한 방울만 떨구어도 오염된 물이 되어 버린다.
마시면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독약으로 변해버린다는 의미.
남자는 그 부분을 꼬집었다.
“살려두면 안 되겠지. 그래도 그가 한 일도 있고 하니, 그의 선에서 마무리를 짓도록 하게.”
김정일 위원장은 애초부터 물을 흐린 이들에 대해 살려 줄 생각 따위 없었다.
그저 이용하다 최후의 순간에 모든 걸 정리하기 위한 말로 사용할 뿐.
활용가치가 끝난 순간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쿨럭. 큭.”
장교를 밖으로 내보내고 홀로 남은 공간, 김정일은 기침과 함께 몸에 힘이 풀리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녀석의 말대로 이만 내려가는 게 맞겠어.”
몸이 예전 같지 않다.
피로를 많이 느끼고 서서히 죽어가는 기분에 사무쳤다.
[이제 저에게 자리를 내어주세요. 효도하며 살고 싶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편히 지내셨음 합니다. 그 무게 제가 받겠습니다.]
“녀석이 너무 늦게 정신을 차렸어.”
몇 년 전 일이었다.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올 줄 몰랐다. 그리고 효도라.
“후후.”
그 효도란 걸 받아보고 싶어졌다.
“정남이를 부르게.”
생각을 마친 김정일 위원장은 수화기를 올렸다. 피로한 그의 얼굴에 미소가 잔잔히 번졌다.
***
-긴급속보입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은퇴를 선언하며 다음 대 위원장을 첫째 아들인 김정남 씨에게...
“뭐야, 저건 갑자기.”
회의를 끝내고 여유를 가지던 시간, TV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형님한테 어떤 말도 듣지 못했는데?!”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언젠간 받겠지 하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이 될 줄 몰랐다.
따르르릉─
전화기가 울렸다.
“네, 김정수입니다.”
-나다.
“형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갑자기 김 위원장님이 물러나고 형님이 위원장 자리에 올랐다니...”
정남 형님이다.
즉시 궁금증으로 증폭된 머리를 달랠 마음으로 즉각 물음을 던졌다.
-나도 놀랐다. 어제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군. 그러더니 이제 힘이 든다며 내게 맡기셨다.
“허... 그걸 그렇게 끝낸다고요? 혹,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던 겁니까?”
-...음, 개인적인 일이라 그거 말해 줄 수 없다만, 분명한 건, 그 일의 영향이 컸으리라 본다. 뉴스에 나가진 않겠지만,...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군.
“아닙니다. 제가 더 알려고 하는 건 문제가 있는 거죠. 축하한다 말하면 되겠습니까?”
-취임식이 있을 거다. 그때 꼭 참여해 자리를 빛내주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잘된 일이겠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나의 최종 목적이 여기 있었으니까.
놀란 마음을 털고 몸을 일으켜 허리를 쭉 폈다.
“세계가 떠들썩하겠구나.”
예측대로 세상은 무척 시끄럽게 돌아갔다. 앞으로 북한의 움직임이 어떻게 될지에 세계인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
미국 백악관.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클린턴 대통령이 급히 사람들을 소집해, 북한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대해 물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떠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소문이 맞는 걸로 보입니다.”
CIA 국장은 얼마 전부터 떠돌고 있는 소문을 꺼내 이번 일과 연관을 지었다.
“음.”
“앞으로 북한의 방향성이 문제겠군요.”
“김 회장이 있는 자리에서 김정남 위원장과 협상을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보기에 김정남이 정권을 쥐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일 걸로 보입니다.”
“정말 우리의 뜻대로 움직일까요?”
“물론, 우리의 영향보다 중국의 영향을 보다 많이 받고 있는 곳이 북한인데, KJ그룹이 중간에서 중심 역할을 잘 해주고 있습니다. 통일도 코앞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지요. 하나 완벽한 통일은 힘들 겁니다. 문화적인 부분, 교류가 전보다 더 활발해지는 정도가 다이지 싶습니다.”
미국에 있어 한국과 북한의 통일은 그리 원하는 그림은 아니었다.
딱 지금의 수준이 적당하다 여겼다.
덕분에 중국에만 의지하던 자원들이 전보다 여력이 생겼다.
“그럼 핵 개발과 미사일 문제로 골치 아픈 일은 줄어들겠군요.”
“번복하는 일은 없을 걸로 보입니다.”
김정남의 성향을 모두 파악한 건 아니지만, 당시 협상 자리에서 보이던 김정남의 모습을 믿었다.
“좋습니다. 북한으로 갈 인원을 추리세요. 저도 김정남 위원장 취임식에 참석합니다.”
클린턴은 곧 있을 김정남 예비 위원장 취임식에 참석 의사를 밝혔다.
한편,
“북한에서 초대장을 보내왔습니다.”
김정남의 초대장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전달됐다.
“지난 과거를 잊고 다시 시작해보자는 내용을 담은 내용이 이 초대장이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김정남이 직접 작성한 초대장 안에는 일본과 북한 간에 있던 오해를 풀고 수교를 맺자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전 참여하지 않는 걸 추천드립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물러나고 새로 부임한 아베 총리는 측근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북한은 북한입니다. 북한과 한국의 역사를 잊으면 안 됩니다.”
대부분의 의견은 무척 부정적이었다.
“총리님, 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 듣기로 김정남은 김정일 위원장과 달리 상당히 개방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북한에는 수많은 자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자원만 우리가 개발해도 우리의 경제 능력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겁니다. 한국만 보더라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한 국가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번 북한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몇몇 존재했다. 그들의 이유는 무척 타당했고, 앞으로 일본의 미래를 바꿀만한 말들을 하였다.
“그건 절대 안 될 소립니다. 우리는 북한과 한국을 이용해 반북, 반한 감정을 일으켜 국민들의 지지를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아베 정권은 한국과 북한을 이용하여 일본국민들의 인기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북한의 취임식에 초대를 응하고, 수교를 맺는다는 건... 그간 해오던 일과 반대된 움직임이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그리고 어차피 무역은 KJ그룹에서 하지 않습니까. 수교를 맺지 않는다 하여 문제 될 건 없단 소립니다. 그래서 난, 내 뜻과 다른 행동인 만큼, 나는 북한의 초청을 거절하겠소.”
결국, 아베 총리는 북한의 초대에 불응하기로 하였다.
그에게 있어 북한과 친해질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
2006년 7월 북한.
북한의 초청에 임한 국가는 총 30여 개국.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수였다.
김정남은 위원장에 오르면서 앞으로 북한의 방향성에 대해 발표를 하였다.
많은 국가와 수교를 맺고 활발한 무역 활동을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축하합니다.”
“축하는 무슨. 곧 내려올 자리인 것을.”
위원장의 자리에 오른 이튿날, 우리는 술자리를 가졌다.
“일본과의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울 겁니다.”
“별수 없지. 무역문제는 자네를 통해 이뤄지고 있으니. 크게 문제 될 건 없겠지. 당분간은.”
KJ그룹은 북한의 유일한 무역 플랫폼으로 활용이 되고 있었다.
덕분에 KJ그룹의 가치는 날로 가파르게 상승세.
이제는 북한의 아주 중요한 중추 역할을 맡았다.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은 하지만, 전 달리 생각합니다. 일본은 북한과 수교를 맺고 있지 않지만, 한국과는 맺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즉, 북한도 일본과 수교를 맺고 있다는 의밉니다.”
일본도 참 약았다.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리면서 허리가 뻣뻣하다.
아베 총리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아주 잘 안다.
‘2007년도에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내려올 양반이. 쯧쯧.’
이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아베 총리만큼은 역사에서 빗겨나가지 않았다.
“후후, 그도 그렇군.”
“그렇지요. 한데, 언제 내려오실 생각이십니까?”
“아버지가 계시는 동안은 지금의 북한을 유지하고 싶다.”
“그러시군요.”
“미안하게 됐어.”
“아닙니다. 저도 서둘러 좋을 건 없다고 봐요. 지금도 충분히 빠르게 진행이 됐고.”
2010년 전에만 오르면 된다고 봤다. 늦어도.
그런데 그 시기가 초기 바라던 시나리오대로 이뤄졌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우리는 시간을 크게 벌었다 할 수 있었다.
“대신 이건 꼭 해결을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지금 북한과 한국의 환율 차는 10배입니다. 이걸 좁혀 나가는 걸, 1순위로 생각해 주셨음 합니다.”
원화의 가치를 좁히는 것.
통일의 필수 조건.
난 그것을 형님께 주문했다.
“좋네. 며칠 내 한국 정부를 만나 결정을 짓도록 하지.”
또 한 번 통일까지 한 걸음 더 내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