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또 다른 길
야후는 네트워크 마켓, 구글의 포털에 크게 밀려 실적이 부진해 지면서 여러 차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KJ그룹이 보유한 20%의 지분.
혹시나 싶어 남겨둔 지분이 그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야후는 회장님의 전부가 아니었습니까?”
“전부이면 뭐할까요. 회장님과의 경쟁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것을 말입니다. 하하...”
목소리는 웃지만,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얼굴 위로는 씁쓸한 먹구름만이 진득하게 묻어있다.
저 기분 알만하다.
“하람아, 하영아. 방에 가서 놀고 있을래. 아무래도 아빠가 삼촌과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은데.”
“네!”
“웅!”
아이들이 후다닥 뛰어가 방으로 들어갔다. 말귀를 참 잘 알아듣는 아이들이다.
“은퇴하실 생각입니까?”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이만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겠지요.”
그는 뛰어난 개발자이자 경영자이다. 그저 의외의 적이 나타나면서 시장 대부분의 점유율을 빼앗겨 기업이 힘을 잃었을 뿐.
난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가 일찍 은퇴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더 일할 생각은 없습니까?”
“이제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데이비드도 나와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내게 기업을 넘기는 건 그의 동의도 필요한 문제이니만큼.
서로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터다.
“아쉽네요. 두 분과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우린 이걸로 만족합니다.”
이 또한 역사가 바뀌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
두 사람을 KJ그룹으로 끌어오고 싶었지만, 이 이상은 욕심이리라.
“좋은 값을 치러드리기는 힘들 겁니다. 현 시세대로 인수하겠습니다.”
“그거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이쪽에서 준비하도록 하지요.”
야후의 역사는 2006년 5월, 역사 뒤로 밀려났다.
세계는 다시 한 번 시끌시끌하게 변하였다. 대형 포털 사이트를 KJ가 받아들이면서 괴물 기업으로 바뀌게 된 데에 말들이 많았다.
그런 상황들 속에 미국은 초비상에 걸렸다. 2004년에 접어들 당시 미국은 초저금리 상태를 유지하며 신용등급이 낮은 주 서민층을 기준으로 대출상품을 내놓으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 정부는 급히 기준금리를 높였으나, 때는 이미 너무도 늦었다.
금리가 인상되자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사용하는 저소득층들은 이자 부담에 시달리게 되면서 하나둘 파산절차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증가하면서 금융권에 불안감을 가져왔다.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미연방에 금리를 낮춰 달라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채무자들의 만기 연장을 없애고 일시에 상환을 하게끔 해야 합니다.”
미국의 금융권은 크게 휘청였다. 주택담보대출을 90%까지 늘린 것이 악재로 작용해 금융권을 덮쳤다.
연체율이 3% 증가한 이때, 매달 연체율이 증가하고 있다.
다음 달은 또 얼마나 증가하게 될지 걱정이 앞섰다.
“그것도 그렇지만...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한 번 정한 법을 다시 바꾸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기에 남자는 불가하다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럼 어떻게 하자, 이 말입니까?!”
찾으라는 대안은 찾지 않고 계속 딴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슬슬 짜증이 번지기 시작했다.
“정말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최악입니다. 설사 금리를 다시 내린다 하더라도 문제는 끝나지 않을 소지가 큽니다. 채무자 중 사망자가 5%가 넘습니다. 설마 사망자의 명의까지 빌려 대출을 하고 다니는 미친놈이 있을 줄은... 회수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몇몇은 해외로 잠적해 돈을 돌려받는 것도 어렵습니다.”
“휴...”
어쩌다 일이 이 지경에 몰리게 된 건지, 자리한 사람들의 얼굴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그중에 파산을 신청한 사람만도 매달 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올해를 어떻게 버틴다 쳐도 내년은 무립니다.”
미국 전역으로 신용불량자 사태에 빠졌다. 자금 회수가 어렵다는 의미는 은행의 부도를 예고한다.
어렵게 버티는 실정에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내년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몰랐다.
미래가 불투명했다.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할 거 아닙니까. 회수가 불가능하면 부동산이라도 압류해 가져오세요.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죽습니다.”
“이럴 때 KJ그룹 같은 사람이 있다면...”
한국의 카드대란으로 발생한 금융위기는 제법 유명했다. 한국에 KJ가 있다면 미국에는 록펠러가 있다지만, 그들은 이런 쪽으로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누가 보더라도 손해 볼 투자, 투자 대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너무도 적었다.
“그런 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이니, 그런 생각은 거두시지요.”
“...죄송합니다. 너무 답답해 그랬습니다.”
한 명의 희생으로 기업을 포함해 수백만의 사람이 피해로부터 벗어났다.
IMF 외환위기도 그렇고, 왜 그런 사람이 한국에 자리를 잡고 사는지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쯧, 모두 해산하시고, 절대 어떤 곳도 만기를 연장해 주지 마세요. 못하겠다면 바로 압류하고 처분하세요. 아시겠습니까?”
이제는 생존이 달린 전쟁이 되어 버렸다.
중년인은 살기 위하여 모든 기업의 위기를 등한시하고 모든 채무를 거두어들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러다 정말 큰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대통령님.”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은 기적적으로 3대째 재선에 성공을 하였다.
KJ그룹과 타협을 보고 가까스로 위기를 기회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경제 대통령이란 점도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말.
미국의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멍에가 다시 빌 클런턴의 목을 졸랐다.
“안 됩니다. 다시 초저금리로 내렸다가는 지금보다 더욱 위험에 노출이 될 겁니다. 그건 피해야 하는 선택입니다.”
미국의 경제를 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 초저금리 정책을 펼쳤는데, 설마 이런 형태로 위기에 직면하게 될 줄 몰랐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대출, 능력 이상의 자산운용.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던 미국이라 하기에 너무도 최악의 모습이었다.
“이 무슨 망신인. 쓰읍.”
실장의 말에 인상을 굳혔다.
몇몇 이들이 다시 금리를 낮춰 위기를 면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하나, 클린턴은 그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여기서 흔들리면 안 된다. 이대로 진행한다.’
잠깐 흔들렸던 마음을 추스르며, 각오를 다졌다.
남은 건 정면 돌파를 하여 이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이라 각오를 다졌다.
“우린 이대로 갑니다. 절대 금리를 낮추지 않습니다.”
***
미국이 금융위기의 조짐을 보이며 어두울 때, 북한과 한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안녕하십니까. KBC 김혜원입니다. 이곳은 북한을 관통하는 삼팔선입니다. 긴 시간 우리는 기다렸습니다. 지난 전쟁으로 갈라서야 했던 북한과 한국. 오늘을 기점으로 일부 철조망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통일역이 들어섰습니다.”
개성공단으로 이어지는 삼팔선 중간에 새로운 역이 신설됐다.
많은 역명이 있었지만, KJ그룹은 북한 정부와 협의 끝에 역명을 ‘통일역’이라 지었다.
통일역은 환승구간으로 평양과 압록강이 있는 방향으로 나눠진다.
평양으로 이어지는 철로는 개성-해주-사리원-평양-신안주-정주-신의주를 지나 중국과 러시아로 다시 나눠졌다.
“그동안 KJ는 대구에서 신의주까지 2시간 내 도착할 수 있는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었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자기부상 열차는 대구와 목포에서 이산가족을 태워 화성을 거쳐 통일역에서 가족과 상봉...”
2006년 6월 6일 현충일을 기하여 아주 특별한 행사를 마련했다.
주변에 모여들어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도 진한 기대감이 머물렀다.
“모두 외쳐 주세요. 통일역으로 향하는 우리의 열차가 출발을 알립니다. 5. 4....”
3!
2!
1!
빠아앙─
두 개의 큰 화면에 비치는 두 기차에서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슈웅─ 펑!
동시에 맑은 하늘 위로 폭죽이 쏘아 올려졌다.
와아아아─
우리의 꿈을 싣고 KTX 자기부상열차가 출발하였다.
“정말 꿈만 같지. 윤희야.”
“진짜, 저 열차가 정말로 북한으로 향하게 될 날이 올 줄 몰랐어.”
윤희의 눈에 감동이 진하게 맺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통일역에 11시에 도착할 거야.”
“매일 이렇게 됐음 좋겠다.”
“그렇게 될 거야. 그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
우리는 두 손을 꼭 잡고 화면에서 멀어지는 열차를 눈에 담았다.
***
북한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아버지, 출발 시각입니다.”
“그래, 출발하자꾸나.”
김정일과 김정남, 두 부자는 식솔들을 챙겨 헬기에 올랐다.
프로펠러가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빙글빙글 돌았다.
“정남아, 솔직히 말해 보거라.”
지난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수많은 대화를 하였다. 그 한 걸음을 다가서기 위하여 김정남이 보인 노력은 상당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김정일의 심경에도 어떤 마음의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식솔들은 다른 헬기에 오른 상태.
현 헬기에는 두 부자만이 탑승해 있었다.
“넌 한국과 하나가 되었으면 하느냐?”
“......”
생각도 못 한 질문에 김정남은 크게 당황했다. 설마, 이 타이밍에 이런 질문을 던질 줄이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김정남으로서 지금의 질문은 참으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걱정 말거라. 내가 죽으면 다음 대에 올라설 사람은 너다. 난 너의 솔직한 마음을 듣고 싶구나.”
무엇일까? 무엇이 김정일로 하여금 지금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하였을까?
아무리 좋게 말하고 있다 하더라도 속마음을 진실되게 밝히기에는 무척 부담스러웠다.
“내 들은 바 있어 그렇다.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거라.”
눈을 가리고 있던 안경을 벗어, 수건으로 닦고 다시 안경을 썼다.
시선은 헬기 창 넘어 던진 상태로.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언젠간 넘어야 할 산이다.
김정남은 깊게 고민 끝에 자신이 품고 있던, 지금까지 숨겨왔던 마음을 내보이기로 하였다.
“전 북한을 사랑합니다. 다른 국가에 비해 가난하다 하더라도 제가 나고 자란 고향입니다. 그런 고향이 다른 국가에 비해 낙후되고 갇혀 사는 것에 늘 가슴이 아팠습니다. 북한도 한국처럼 될 수 있을 텐데. 한국보다 더 부유한 국가가 될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들을 해오다, 정수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김 회장과 작당해, 내 눈을 피해 이런저런 일들을 벌였고.”
“......”
“내가 모를 거라 생각을 했더냐?”
창으로 가져갔던 시선을 돌려 아들을 바라봤다. 김정일은 웃음기 없는 얼굴. 그렇다고 기분이 크게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아셨습니까...”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김정일은 신경을 쓰지 않은 척, 아들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겨 왔지만, 눈과 귀를 가리고 있지 않았다.
수많은 정보가 쌓이면 쌓일수록 하나의 점으로 이어졌다.
“한국과 통일이 되면 우리 가문은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김정남의 눈을 마주 보았다.
두 눈은 허공에서 만났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가문으로 기억에 남게 될 겁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느냐.”
“물론 지금의 영광은 사라지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전 확신합니다. 한국과 하나가 되는 길이 우리의 북한을 더욱 부강하게 키우고 나아가 어떤 국가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자신합니다.”
김정남은 확신이 깃든 목소리로 자신 있게 말했다.
“...부강한 북한이라.”
김정일은 아들에게 가져갔던 시선을 돌려 다시 창밖으로 가져가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마치, 그의 말을 음미하기라도 한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