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JK그룹 최진영 부사장
NG그룹 계열 카드사가 KJ그룹으로 넘어간다는 공식 발표가 있는 시각, JK그룹은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JK글로벌 분식회계가 터지고 최현식 회장과 김동석 본부장 등이 잡혀 들어간 상황에, KJ그룹에서 거래정치 통보가 떨어져 혼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KJ에서 위약금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이날 KJ그룹의 일방적인 거래취소에 대한 위약금을 보내오는 걸로 계약적인 문제도 깔끔히 해결됐다.
“하, 정말 골치 아프네요. KJ그룹에서 회토류를 공급받지 못하면 대체...”
다른 라인을 거쳐 가져와야 한다는 소리인데, 대책이 서지 않았다.
KJ그룹에서 가져오는 회토류 가격이 저렴한 부분도 컸는데, 원가 부분에서도 유리했고.
하나, 이제 이건 옛말이 되었다.
모든 경쟁에서 뒤처진 도태한 기업이 되어 버렸다.
“김 회장님의 뜻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JK는 망하게 될 겁니다.”
기업에 있어 돈보다 중요한 게 경쟁력이다.
대부분의 원자재가 KJ로 인하여 원가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러한 영역에서 벗어나 버렸다.
“어떻게 돌리자는 말입니까? 김 회장님의 말을 못 들었습니까?”
할 말은 많지만, 자리한 몇몇 사람들로 인하여 꾹 입을 다물었다.
JK가문의 사람들이 경영에서 손을 떼어야 관계가 회복될 거란 말을 어떻게 할까?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현재로서 KJ를 찾아가 김 회장의 마음을 돌리는 일과 해외로 나가 새로운 거래처를 모색하는 겁니다.”
상석에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한 임원진 중 한 사람이 조심스러운 의견을 꺼냈다.
“...뭘 또 그리 눈치를 보십니까? 내가 보더라도 회장님과 김동석 본부장, 최진구 대표님의 잘못이 맞는데 말입니다. 저도 모르는 일을 그렇게 저지르고 있을 줄 몰랐습니다.”
조용히 듣고 있던 최현식 JK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 최진영 부사장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가족을 깎아내렸다.
‘이 문제를 내가 해결을 한다면, JK의 다음 대는 내가 된다.’
위기는 늘 기회를 만든다.
최진영은 지금의 위기가 자신에게 주어진 딱 한 번의 기회란 생각을 하였다.
어차피 아버지인 최현식 회장은 다시 기업의 자리에 앉기 힘들다.
하나, 첫째 형인 최진구 대표는 또 다른 상황.
두 사람의 몸이 묶였을 때, 지금이 적기였다.
“......”
“......”
최진영의 직설적인 말에 회의장은 조용하다. 눈치를 보지만 그래도 할 말을 쭉 잇던 인사들은 숨소리 나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이 문제, 제가 맡도록 하죠. 제 지시가 있을 때까지 위약금 봉하시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KJ그룹을 대체할 기업을 알아보세요.”
“알겠습니다.”
최진영은 이번 일을 확실히 살려보기로 하였다. 주저앉고 있는 주가를 살리고, JK그룹의 회장 자리에 앉겠다는 야심을 내비치며 시선을 KJ그룹으로 향했다.
***
JK그룹이 이러고 있을 때, 밖은 또 다른 문제로 시끌시끌했다.
“우리는 절대 정부에서 내놓은 계약서를 따를 수 없다! 이건 월권행위다!”
“깡패 정부는 부동산 거래를 원상태로 돌려놔라!”
정부에서 내놓은 부동산에 관하여 불만을 표시했다. 광장에 모여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에서 만든 계약서까지 좋다. 하지만, 계약서에 적힌 필수 조항들이 문제가 되었다.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기간 내 돌려주지 못할 시, 집은 전세가 그대로 세입자에게 넘어가게끔 되어 있었다.
날짜는 세입자가 이사하기 이틀 전까지 지급하라 명시까지 되어 있으니 건물주 입장에서 이건 너무 불리한 조항이었다.
건물을 매입하기 위하여 들인 부채에 대한 한도까지 걸려, 예전처럼 대출을 활용해 줄지어 건물도 못 사게끔 막았다.
그들에게 있어 이건 불공정 거래였다.
“우리의 생계권을 보장해라!”
“여러분 절대 우리는 여당을 뽑으면 안 될 겁니다!”
급기야 몇몇은 여당을 뽑지 말자며 선동까지 하였다.
2003년 대통령 선거 하루 전날.
“이제 이 자리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자리에 앉아 계신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청와대에 자리한 황비선은 TV에서 중계되는 시위와 집회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담았다.
소심하게 시작된 대통령의 업무, 그러다 찾아온 기회.
모든 기회를 누리고 지지기반을 차곡차곡 쌓아나가 오늘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누군가의 적이 되어 비난을 받게 된다는 건 무척 씁쓸한 일이었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내려가시면 욕 좀 잡수시겠습니다.”
“왜 이 자리가 욕먹는 자리인지 아주 잘 느꼈습니다. 하하.”
대통령의 자리는 절대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것.
대통령도 사람이다. 옳고 그름은 순전히 본인의 선택.
맞다고 생각이 드는 길로 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반대된 입장은 나오기 마련이기에 어떻게 극복을 하는지에 따라 욕을 덜 먹는 수준에서 그친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의 난 완전 쓰레기가 되었어. 쯧.’
안전하고 길게 안정된 삶을 꿈꿨는데, 그건 이제 물 건너갔다.
“그거면 아주 큰 수확이지요. 전 대통령님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정호찬 비서실장은 목이 터져라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중계하는 TV를 껐다.
더 봐야 영양가도 없다 여겼다.
2003년 선거일.
-여당 후보 남국현 후보가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남국현 당선인은 황비선 전 대통령의 정책을 잇기로...
황비선 대통령의 우군으로 있던 여당 남국현 의원이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북한과의 통일정책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국민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여당을 선택하였다.
후릅, 크─
시원한 감탄이 중년인의 입에서 나왔다.
얼마 만에 마음 편히 마셔보는 술인지 모르겠다.
긴 시간 감옥에 있다 나온 사람마냥, 얼굴은 해방감에 사무쳐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테이블 건너편에 있는 이는 황비선 전 대통령이 자리했다. 이제 자리에서 내려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편히 부르시면 됩니다. 이제 정치라면 지긋지긋합니다. 한 번 해보니 정치가 저와는 맞지 않는 옷이란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누구에게는 명예의 자리이지만, 반대로 지옥의 자리기도 하였다.
자유로이 개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갇힌 생활을 하였던 시간.
처음에는 뭐라도 되는 양 활동했다면, 자리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그릇이 작음을 느꼈다.
“그럼, 교수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칭이라 간지럽군요. 정말 회장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저 또한 교수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거 쑥스러워서 원. 이제 정치에는 절대 발을 들이지 않으렵니다. 교수 일에 집중할까 합니다.”
정말 지겨웠던 모양이다.
‘나 같아도 절대 안 하지. 욕만 먹고 자유도 보장받지 못하는 자리에 앉아봐야 씁쓸하기만 하지.’
“잘하신 선택입니다. 앞으로도 쭉 응원하겠습니다.”
황 대통령에서 교수로 돌아온 그를 축하해 주었다.
그와의 인연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모를 일이나, 그의 인생에 대한 건배를 바란다.
챙─ 소리와 함께 지난날을 자축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회장님 JK 최진영 부사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진영?”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이름을 보면 그쪽 직계 같은데.
모든 재벌그룹에 속한 가족관계를 달달 외우고 있지 않을뿐더러, 기업의 경영진도 진짜 중요한 몇몇을 빼고는 관심 밖이라 알고 있지 않다.
“최현식 회장의 둘째 아들입니다. 이번 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를 틈타 다음 대 회장 자리를 노리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호오라.”
미리 조사를 마쳤는지 이 실장은 물어보지 않은 사항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방에서 기다리죠.”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고개를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이 재밌게 됐어.”
위약금으로 토탈 천억대를 물어주고, 모든 거래를 끊어 버렸다.
그들은 거금을 받은 대신,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 주가는 끝없이 내려서고 있었다.
벌써 40%가 빠졌다.
“아침부터 찾아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문을 열고 확실히 처음 보는 인상의 남자가 들어왔다.
미래의 기억을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본 역사에서는 큰 영향력이 없던 사람이었나 보다.
‘이번엔 나의 개입으로 바뀌었을 거고.’
“죄송은 됐습니다. 그보다 저를 찾은 이유가 뭔가요?”
소개는 생략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어 소개는 무의미.
얼굴을 익힌 걸로 족하다.
“음, 현 JK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시리라 사료됩니다.”
“제가 JK 직원도 아니고, 제가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습니까. 뉴스에 잠깐씩 등장하는 내용 정도가 다입니다.”
후우─
그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눈빛은 당당했지만, 속은 꽤나 타는 모양.
“글로벌 분식회계로 피해 본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피해보상을 할 겁니다.”
“좋은 일 하십니다.”
“그 후 글로벌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 조치가 있을 겁니다.”
이건 마치 내 직원이 내게 보고하는 모습이지 않나?
“한데, 그걸 저에게 일일이 말하는 이유가 뭡니까?”
“회장님께서 내린 결정을 철회하여 주시고, JK가 아닌 저에게 기회를 주셨음 합니다. 지금 KJ가 가진 JK 지분 7%, 저에게 써주셨음 합니다.”
“나를 이용해 자리에 앉으시겠다, 그 말로 들리는군요.”
“맞습니다. 전 후계자 자리에 오르는 데 여러 악재가 많습니다. 지금이야 특수한 상황이니 제가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아버지나 형님이 풀려나게 되면 저는 다는 그림자로 남게 되겠지요.”
“음...”
이건 생각도 못 한 전개다.
다짜고짜 JK와 틀어진 거래를 되돌려 달라 말할 줄 알았는데, 편이 되어 달란다.
그래서일까?
약간 호기심이 동했다.
“내가 가진 지분이면 JK를 드실 수 있다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적어도 이 땅에서 회장님을 무시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연기금도 회장님의 손을 들어주리라 봅니다. 이 정도면 제가 다음 대 JK그룹의 주인으로 오르는 건 확실시 될 겁니다. 그 후 아버지와 형님의 지분을 가져와 지분 방어에 들어갈 참입니다.”
보기보다 꽤 계획적인 사람이다.
형의 그늘에 가려 뜻을 펼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 있나 보다.
‘지금 모습을 보면 첫째보다 둘째가 낫네. 확실히. 장자 계승 원칙만 아니었다면 JK는 더욱 크게 성장했을지도...’
하지만.
“모든 걸 되돌려 놓을 터이니 편이 되어 달라는 건, 거래와 맞지 않은 것 같은데. 제가 가져갈 만한 게 없네요.”
지금까지 이야기에서 KJ가 이득을 볼 수 있는 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포커스가 최진영 부사장에게 맞춰 있었다.
“요즘 KJ와 육성이 모바일 사업과 인터넷 사업에 주력을 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저희 JK망을 5년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호오, 이것 봐라.
이거 좀 당긴다.
KJ그룹이 무엇을 원하는지, JK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위약금은 당연히 모두 돌려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싶은데...”
아주 작정하고 나왔구나.
“추가 맞지 않습니다. 다시 거래를 재개하면 JK의 주가는 다시 크게 오를 겁니다. 또한, 위축된 JK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겨우 망을 무상으로 5년 제공받는 건 너무 저렴하게 먹히는 거 같은데, 제 말이 틀렸습니까?”
“...무엇을 원하십니까?”
“폰 대리점 저에게 넘기시죠. 이 정도면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거래가 되리라 보는데 말입니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 부사장님.
이건 되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인 그런 거래였지만,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는 기회인 건 맞았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황당한 표정을 보며, 그의 선택을 기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