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재벌 강림하다-133화 (133/145)

133화

#2003년

“싱거운 녀석.”

그날이 있고 며칠 후, 김정남의 생각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뜬금없이 흘러나온 그 한마디는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국인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부모에 대한 사랑, 정확히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러한 감정을 잊고 살아왔다.

“모를 노릇이야. 그놈의 눈을 보면 모든 걸 아는 눈치야.”

그런데 그게 대체 뭘까?

김정남은 눈살을 찌푸려, 남한이 있을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무언가 암시하는 듯한 말은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만 생각하자. 녀석이 말한 것 중 가벼운 이야기는 없었으니. 이유가 있겠지.”

당장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노릇이나, 들어서 나쁠 건 없다 여겼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해보려던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정수의 말을 따르고자 하였다.

“맨정신으로 안 되겠어. 한잔하고 자자.”

오늘 저녁은 아주 긴 밤이 되리라 봤다. 생각할 게 많은...

***

-개성공단 가동, 중소기업 개성공단으로 입주하다.

-KJ그룹 베어링스 은행과 주거래 은행을 맺어...

휴전선과 가까워 한국에서 가장 접근이 용이한 이 장소에 한국의 기업들이 들어섰다. 소련이 붕괴되고 외화벌이가 힘들어진 북한은 원화를 벌어들이는 기회를 가져갔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은 한국으로 이동되며, 한국에서 분류작업을 거쳐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로 무역이 이뤄질 계획이다.

“북한에서 채굴되는 희토류는 국내와만 거래가 이뤄질 겁니다.”

북한의 희토류 채굴이 시작됐다.

중국의 희토류 매장량은 4400만 톤으로 추정.

압도적 1위 희토류 자원 국가이다.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말이 나올 정도.

생산량은 12만 톤.

하지만 여기에 변수가 생겼다. KJ그룹이 중국에 대항할 북한의 희토류 광산을 개발하게 된 것.

“희토류는 채굴, 분리, 정련, 합금화 등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을 요합니다. 또한, 광물 내 유용한 성분의 함량이 높아야 경쟁력이 있음을 채굴과정에서 확인했으며, 그간 중국에서 쌓아온 노하우와 경험, 기술을 접목해 한국에 보다 질 높은 희토류를 공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의 매장량은 비공식 세계 1위이다. 이는 북한과의 계약과정에서 ‘비밀’에 부치기로 하였다.

‘정말 놀랐지. 2억 톤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문제는 품질이야. 전부를 채굴해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만약, 매장된 희토류 대부분이 상급이상이라 치면, 세계의 시선은 북한으로 향하게 될 터.

하나, 다행히 계약조항에 희토류 공급을 KJ그룹에 맡기겠다는 조항이 있었다. 즉, 어떤 국가도 KJ를 거치지 않고는 북한의 희토류를 가져갈 수 없다는 의미.

“KJ그룹은 북한과 한국이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될 겁니다. 한국과 북한의 하나 된 모습, 기대하여 주세요.”

찰칵찰칵.

플래시 세례로 번쩍이는 방 안, 기자들의 얼굴에 진한 기대감이 서련 모습에 슬며시 입가가 올라간다.

“끝으로 우리 KJ여객은 안산, 당진, 대구 등에 북한으로 가는 열차 노선을 결정했습니다.”

여기서 말들이 많았다. 왜, 사람들이 붐비는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건설을 하지 않고 유동인구가 적은 동네 위주로 하는지에 대해.

나의 대답은.

‘그래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한 곳에 너무 많은 시스템이 밀집되면 인구는 한쪽으로 더욱 몰릴 수밖에 없고, 집값은 더욱 널뛰기하여 일반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는 판단에 지금처럼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역시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KJ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어쩔 텐가?

“대구에서 개성공단까지 노선은 총 3개입니다. 이 이상 늘릴 계획은 없습니다.”

특별한 상권이란 이런 게 아닐까?

수도권이라 하여 모든 걸 구비해 놓을 필요는 없다. 각 지역의 단점을 해소하고 장점을 만들어 한 곳으로 밀집된 인프라를 사방으로 퍼트리겠다는 것이 KJ그룹의 핵심 계획이었다.

그래서 KJ그룹의 주요 계열사의 본사는 수도권이 아닌 바깥 지역을 중심으로 맞춰져 있었다.

절대 밀집된 지역, 포화된 지역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KJ그룹이 들어서는 곳은 땅값이 오른다’가 정설처럼 내려와 새로운 도시 문화가 이뤄졌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서울에는 전철노선과 철로를 추가로 연결할 계획은 없습니다. 이상입니다.”

모든 인터뷰를 끝냈다.

가파르게 오르는 서울 땅값의 원인을 줄인다면 대한민국은 좀 더 살기 좋은 국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정도면 부동산 거품을 최소화할 수 있겠지.’

부동산은 매년 꾸준히 오를 것이다. 있는 자들의 노력으로.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산을 늘릴 목적으로 말이다.

거기다 정부 입장에서 국가 경기를 끌어올리는 구조로 부동산 정책을 꾸준히 활용할 터, 기업은 적정선을 지킬 필요가 있다.

***

-황선비 대통령이 IMF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에 빌린 자금 전부를 갚았다는 공식 발표를 하였습니다...

-내일은 전국적으로 맑은 날이 이어지겠고, 호남지방에 약간의 소나기가 내리..

외환위기 당시 빚진 자금을 경제가 크게 성장하면서 모두 상환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뉴스가 끝나고 광고 방송으로 넘어갔다. 파란색 옷을 입고 나와 해맑게 웃으며 두 손을 입에 모아 외치는 여배우의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저 처자 참하네.”

“참하면 뭐에 쓸라고. 며느리로 들이지도 못할 여자를. 껄껄.”

중년인들은 소주를 꺾으며, TV에 등장한 여배우의 모습에 입맛을 다셨다.

아직도 결혼의 문턱조차 가지 못하는 자녀들로 인해 고심이 많은 모습이다.

“눈이 높아서 그래. 그냥 아무 처자나 만나서 정붙여 살면 그만인걸. 에잇. 쯧쯧.”

“내 말이. 요즘 애들은 이래서 안 돼.”

말은 그리했지만, 머릿속은 TV 속에 나오던 여자의 이미지를 생각한다.

어여쁜 며느리를 데려오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씁쓸할 뿐이다.

“여, 주인장. 소주 두 병에 오징어 데친 거 추가.”

속이 탔는지 안주와 소주를 추가로 주문했다.

“어허, 이 친구 보게. 그만 마셔. 많이 마셨어.”

“걱정하지마. 오늘은 내가 계산할 테니까.”

“돈이 어딨어 계산을 한대, 이 친구가. 겨우 연금이나 받아가면서 생활하는 양반이.”

“카드 만들었어. 저기 나왔던 처자 보고. 써보니 이게 참 좋아. 기념으로 내가 살 테니까 부담 없이 마셔.”

“허허, 그럼 나야 좋지.”

중년남성은 카드를 꺼내 자랑을 하고는 싱긋 웃었다. 그 모습에 맞은편에 앉은 중년인도 함께 웃고는 잔을 기울였다.

이런 현상은 식당가뿐 아니라, 서점 백화점 등지에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

“이거 정말 위험해 보입니다.”

대통령 선거철로 떠들썩한 시기.

“사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호영 실장이 들어와, 뽑아온 자료를 건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전년 대비 8배가 늘어난 현금대출.

1인당 보유카드 1.8장이 4.6장으로 늘어났다.

“카드 돌려막기로 대출 비중이 크게 불어난 걸로 보입니다.”

“이걸 정부도 알 건데, 그쪽에서 어떻게 대처할 거라 보이십니까?”

“뻔하지 않겠습니까? 길거리에서 카드 가입을 막고, 신용카드에 대한 규제에 나서리라 봅니다.”

이것 외에 다른 방도는 없겠지.

미국도 서서히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는 가운데, 한국의 무분별한 카드대란으로 외환위기에 이어 금융위기가 와버렸다.

“이번 일로 카드사와 금융권에 큰 타격이 발생하리라 예측됩니다. 정말이지... 회장님의 선견지명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베어링스 은행에서 발급된 카드는 국내 전체로 보았을 때, 2년 전 대비 46% 마이너스 실적을 기록했다. 잠깐 공격적으로 나선 일이 었었지만, 회원을 최대한 가려 받았다.

실적은 줄었지만, 리스크는 여타 은행에 비해 무척 적다 할 수 있었다.

“좀만 들여다보고 사람의 심리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따르릉.

방안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시 대화를 멈췄다.

익숙한 발신자 번호가 뜬다. 청와대다.

“전화 받았습니다. 김정수입니다.”

입가에 검지를 올려 주의를 준 후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청와대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야 늘 같지요. 한데 무슨 일이십니까?”

-음... 대통령님께서 회장님과의 독대를 원하십니다.

“독대라...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뭔가 기분이 묘하다. 촉이 말해준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거라고.

-지금 돌아가는 시장 분위기에 따른 이야기입니다.

말이 조심스럽다.

정확한 답을 피하고 있었다.

전화로 하기에는 복잡하고 곤란한 이야기란 소리.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청와대로 오시면 되십니다.

이럴 경우, 깊게 들어가서 좋을 거 없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쁘실 터인데, 이리 시간을 내주셔서.

“아닙니다. 어디 우리가 남입니까. 국가에서 저를 위해 힘을 써주고 있는데, 저도 도움을 드릴 수 있어야 맞는 거죠.”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이 이치에 맞다.

물론, 받기만 한 적은 없지만, 말은 예쁘게 해서 나쁠 건 없다.

“아무래도 우리가 나눈 주제와 같은 이유로 청와대에서 부르는 거 같습니다. 지금 나갈 거니 차 준비해 주세요.”

조용히 지나가나 했더니, 역시 조용할 날이 없다.

외투를 걸치고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한 시간 전.

“일이 괴팍하게 됐습니다.”

처음 시작은 좋았다. 내수시장이 몰라보게 좋아졌으니까.

한데, 시간이 지나고 현실과 마주한 순간 최고의 수라 생각했던 수가 최악의 수로 찾아왔다.

“이번 일이 잘못되면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거라 생각하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황비선은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정말 최악이었다.

1999년 48조 원이던 카드사의 현금대출은 2002년에 접어들어 350조가 넘어갔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400조가 넘어갔다.

연체율은 28.3%.

신용불량자는 400만 명에 육박할 거란 통계가 나오며, 대한민국에 위기를 가져왔다.

“이대로면 카드사는 부도로 이어지게 될 겁니다. 이는 은행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겁니다.”

“허허, 이거 어찌하면 좋을지...”

“아무래도 KJ그룹 김 회장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좋으리라 봅니다. 듣기로 카드영업을 멈추고 그간 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유일하게 피해가 없는 곳이 KJ입니다. 아무래도 김정수 회장은 이번 일을 예측해 미리부터 준비한 걸로 보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정 실장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이거이거. 이럴 게 아니라 정 실장 말대로 김 회장을 불러 도움을 청해야겠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KJ그룹의 도움 외에 다른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현금이 가장 많으며,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보유한 젊은 회장.

그의 도움만이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유일한 수단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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