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월드컵_스마트를 열다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는 오후 시간, 하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누가 이사님 전화 당겨 받아봐.”
팀장도 비어 있는 상황, 김도진이 팀원들에게 말했다.
“구매팀, 김형식 대리입니다.”
받은 사람은 김도진 앞에 자리한 김형식 대리였다. 김형식은 수화기를 들어 부서를 말하고 이름과 직급을 이야기하였다.
“지금 이사님 자리 비우셨는데, 핸드폰으로 하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뚝─
수화기가 내려졌다.
“누구야?”
“서서제조 사장이요. 아무래도 결정한 눈치네요.”
“그래? 그럼, 서서제조로 무엇을 넘길지 정해둬. 나는 그쪽에 들어갈 설비랑 이것저것 알아봐야겠다.”
김형식 대리의 말에 상황파악을 마친 김도진 과장은 빠르게 지시를 내리고, 본인도 바로 업무에 들어갔다.
“아직도 연락이 없으면 실패한 거 아냐?”
“나도 잘 모르겠어. 아직 젊고 경험이 미천해,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파악을 하질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싶기도 하고. 아니면 이미 KJ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든가.”
자리를 비운 홍수빈 이사는 대표실로 올라와 어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거 김새네. 그 난리를 치고... 에잉. 쯧.”
당장 연락이 와도 부족할 판국에 오지 않는 연락에 속이 탄 홍수형 대표는 참았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연기를 뿜어대며 물이든 종이컵에 재를 털었다.
지이잉─
“와, 왔다! 그만 투덜대고 조용히 해봐.”
“뭐?!”
답답함에 말라가던 기대심이 오아시스를 만난 듯 다시 축축하게 젖어갔다.
홍수형은 피우던 담배를 끄고, 귀를 쫑긋 세워 전화기에 집중했다.
“아고, 대표님.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됐나 싶어 연락을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어떻게 결정은 하셨습니까?”
영업 미소를 입가에 잔뜩 실어 전화를 받았다. 홍수빈 이사는 화통한 목소리로 말하며 대답을 이끌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도 저대로 고민의 시간을 잠시 가지다 보니. 투자를 받겠습니다.
“하하, 참 선택이십니다. 서로가 좋은 조건에 건 만큼, 만사형통하실 겁니다.”
-계약서를 보내주시면, 검토하여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귀에서 핸드폰을 떼어냈다.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올려 두고, 빤히 바라보는 홍수형 대표에게 시선을 가져갔다.
씩─ 짓는 미소에 홍수형 대표의 입가도 길게 찢어졌다.
“된 거야?”
“됐다고, 푸하하. 우리 회사도 이제 줄이 생겼어.”
두 형제는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의 일에 기뻐하며 손을 마주쳤다.
짝! 소리가 방 안에 짜르르 퍼졌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저도 잘 부탁합니다.”
2002년 2월 22일 금요일.
서서제조는 태광기계의 투자를 받아 토대를 다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계기를 마련을 하였다.
***
“승원이 형이 태광기계의 투자를 받아 공장을 확장한다고요?”
“그렇습니다.”
“태광기계가 어떤 곳이에요?”
“산업기계를 만드는 곳으로 재무제표는 크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산업기계 시장에서 열 번째에 위치해 있고, 대표가 무리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안정적인 회사입니다.”
이 비서의 막힘없는 보고를 들으며 생각에 빠졌다. 전이면 모를까, 지금에 이르러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쪽과 승원이 형이 어떤 끈이라도 있던가요?”
“끈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회사가 왜 그런 무리를 하면서까지 서서제조에 투자를 했을까요?”
서서제조가 나쁜 회사다 뭐 그런 의미는 아니다. 어떤 연고도 없는 곳에서 억 소리 나는 투자금을 내걸어, 그 부분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아서다.
“가장 현실적이고 그럴듯한 이유는 역시 회장님에게 있는 거 같습니다.”
“저요?”
“그렇습니다. 이미 서서제조가 회장님과 연관된 곳이란 건 주변 공장에는 파다하게 소문이 난 상태입니다. 아마 그중 한 곳에서 소문이 태광기계로 이어진 걸로 보입니다.”
음, 가장 그럴듯한 이유이기는 하다.
KJ그룹은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거대 그룹 단체이기 때문이다.
KJ그룹이 시장을 조금만 틀어도 미국, 유럽, 아시아 증시가 크게 요동을 칠 정도이다.
국가의 정책이 바뀌기도 하며, 수억, 수십억 명이 울기도 웃기도 한다.
“믿을 만한가요?”
“믿을 만하리라 봅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회장님과 연관이 있음을 알면서도 일을 벌일 만한 간 큰 기업은 없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네요. 그렇다면 그쪽의 뜻대로 이뤄주도록 하죠. 그래야 딴 맘을 먹지 않고, 확실하게 서서제조를 밀어줄 테니 말입니다.”
“그 말씀은...?”
“KH자동차, 항공기 관련 협력사에 이르세요. 설비들 늘려 인원을 추가로 뽑고 생산량을 늘리라고. 태광기업에 비율을 높게 쳐주고 그 외 다른 곳에는 골고루 발주를 넣으라 하세요.”
마음 같아서는 태광기계에 일을 몰아줘, 서서제조로 가는 물량을 늘리고 싶었지만, 상도덕은 지킬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런 일이 외부로 알려져 정치권에서 잡고 늘어지면 무척 피곤한 일에 휘말리게 된다.
그건 절대 사양이다. 정치권에 책 잡힐 행동은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았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나가려는 이 비서를 잡았다.
“붉은색으로 된 티셔츠와 망토로 활용할 정도의 크기로 된 태극기를 대량 제작하라 하세요.”
“...네?!”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시선이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아마, 모를 거다. 대한민국이 4강까지 오르게 되면서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게 되리라고.
“한일 월드컵입니다.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로 부족 현상에 시달리게 될 테니 미리 재고를 쌓아 두세요. 남으면 다음 월드컵에 판매하면 되니까, 부담 없이 만드세요.”
이런 불확실한 건, 강하게 지시를 내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도 제작하게 될 터이니까.
“알겠습니다.”
***
2002년 4월, 스마트폰 출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애플과 육성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각자의 특색에 맞게 광고 마케팅에 나섰다.
-우리는 걸어 다니면서 인터넷을 한다. 스마트하게 바라보는 세상을 즐기다. Y-One-E육성.
E육성에서 성공적으로 개발한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무게감이 살짝 느껴지는 스마트폰이 시야로 들어왔다.
“저게 최선이지.”
예상대로 터치와 버튼이 혼합되어 있었다. 배터리 크기도 제법 크다.
“아직 배터리 기술이 그리 좋지 못하니, 뭐. 보조배터리도 같이 나오겠네.”
배터리 기술은 인터넷 다음으로 중요하게 될 기술이 될 터.
그래도 과거보다 상당히 진보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을 없을 것이다.
-찰칵, 찰칵.
무게감 있게 내보인 육성과 달리 화사한 화면 속에 사람들이 등장해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추억을 스마트하게 담자. 선명한 화질 속에 담겨있는 우리의 모습을 아이폰에 담아보아요. I Phone. 애플.
육성은 인터넷을 위주로 광고를 했다면 애플은 카메라 기술과 화질에 승부를 걸었다.
가격은 대동소이.
마치 서로의 가격을 알고 있었다는 듯, 비슷한 가격으로 시장에 공개됐다.
“다른 핸드폰과 다르게 특이하게 생겼다.”
“그르게? 그런데 겁나 비싸네.”
일반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컬러폰과 달리 상당히 고급지게 포장된 상자 속에 들어가 있는 스마트폰을 감상했다.
가치를 증명한다는 듯, 금색 테두리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화면도 엄청 크다.”
“비싸기만 하지, 실용성 제로야. 잘 봐. 배터리 유지시간이 고작 4시간이다. 저래 가지고 어떻게 사용하냐?”
“보조배터리도 함께 주잖아. 그 정도면 괜찮은 거 아냐? 중간중간 충전도 해서 다니면 되는 거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긍정적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진짜 컬러폰 나온 지가 얼마나 됐다고 저런 게 나오냐?”
“글게. 진짜 빠르네.”
학생들은 친구들이 들고 있는 핸드폰과 눈앞의 스마트폰을 번갈아 보며 비교를 하였다.
“가지고 싶다.”
컬러폰이라며 자랑하던 아이들의 지난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때만 하더라도 혁신이라며 좋아했는데.
훨씬 뛰어난 핸드폰이 등장했다.
“야, 저기 봐봐.”
그때 아이들의 시선이 궁금증으로 물들며, 친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가져갔다.
-월드컵 16강 이벤트 4% 할인.
-월드컵 8강 이벤트 8% 할인.
-월드컵 4강 이벤트 16% 할인.
-월드컵 우승 이벤트 선착순 ‘천 명’ 무상 지급 + 나머지 분들에게 20% 할인.
“와, 대박!”
“야, 우승을 하겠냐?”
“야, 그래도 4%, 8%가 어디냐?”
학생들은 한국의 월드컵 성적을 16강에서 8강으로 점치고 있는 듯하였다.
하지만 그것만 하더라도 대박 할인.
침을 꼴깍 삼키며 한 학생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작게 중얼거렸다.
“엄마한테 말해야겠다. 핸드폰 바꿀 때도 됐고.”
아이들 중 유일하게 흑백폰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 마침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먼저 간다. 기대해라. 내가 1등으로 사주마.”
약간의 기대를 가슴 속에 듬뿍 떠안고 발길을 돌렸다.
모두의 관심이 월드컵에 꽂히던 때, 스마트폰의 등장은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이번 행사에 수많은 기업들이 이벤트에 나섰다. 자동차, 컴퓨터, 신발, 가전제품 등등 특별할인 행사에 들어가 소비자들의 소비 욕구를 끌어올렸다.
-대한민국 16강전이 시작됐습니다.
한국은 일본과 나란히 16강전에 들어갔다.
-대한민국VS이탈리아, 경기 시작됩니다.
경기가 시작됐다.
희열과 흥분, 기대감 속에 시작된 경기는 사람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거리로 나온 사람들,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외쳤다.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하늘 높이 검지를 찌르며 한국 선수들을 응원했다.
-골문으로 돌진하던 프란치스코 토티 송중국의 태클과 함께 바닥을 구릅니다. 할리우드 액션인가요? 전혀 엉뚱한 곳을 붙잡고 바닥을 구릅니다. 바이런 모레노 심판 카드를 듭니다. 레드카드! 프란치스코 토티, 할리우드 액션으로 퇴장을 당합니다. 대한민국 할 수 있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기쁨의 포효가 경기장의 공기를 두들겼다.
사람들은 격하게 올라오는 흥분감에 도취했다.
그리고...
1:1 연장 후반 10여 분이 지나는 시점, 이변이 벌어졌다.
하늘로 떠오른 공을 안정환이 달려와 헤딩으로 그물을 흔들어 놓았다.
손가락에 낀 반지에 키스를 하며, 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경기장을 달렸다.
오, 필승코리아! 오 오래 오래 오! 오! 오!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기장을 채우는 응원단의 목소리가 TV 중계석을 뚫고 한반도 전체로 퍼졌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렸다.
-대한민국 8강 진출!
-스마트폰 할인 이벤트 8%에 만나보세요!
-대한민국의 4강 진출을 기원합니다.
기업들은 즉각 광고권을 따내어 대한민국의 4강을 기원하며 바뀐 할인 이벤트를 전파를 하였다.
“회장님, 대박입니다. 응원복이 모두 소진됐습니다.”
8강 진출은 쇼핑업계에 커다란 실적을 안겨주었다. 충분히 준비한 재고가 동나, 추가 제작에 들어가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제가 뭐라고 했어요. 남으면 다음에 또 팔면 된다 하지 않았나요. 남는 재고 걱정하지 마시고 찍으세요. 우리나라 분명히 4강까지 갈 겁니다.”
“이번에도 회장님의 배팅에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나를 제외한 세계인들은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곧 벌어지게 될 파란을.
대한민국의 전설로 긴 시간 이어질 순간을.
“자, 모두 진정하세요. 분명 기쁜 일이지만, 우리는 할 일이 많습니다. 다음 산업을 견인하기 위하여 모두 월드컵에 정신을 돌리고 있을 때, 수소와 태양열, 배터리 기술에 집중합니다.”
월드컵은 월드컵.
“앞으로 KJ그룹은 전기 자동차에 모든 자원을 투자할 겁니다. 거기에서 배터리 기술과 충전기술은 전기 자동차의 핵심기술이 될 겁니다.”
모두의 흥분감을 달래고, 다음으로 향할 방향성을 알렸다.
KJ그룹은 빠르게 다음 라운드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