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베어링스 은행 북한지점 (2)
“일단 세금에 대한 부분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어. 50%에서 60% 정도. 대신 조건을 달았어.”
세상만사 쉽게 돌아가는 건 없구나.
“조건이라 하시면...?”
“임금을 기존에 책정된 것보다 좀 더 챙겨줘야 할 거 같아.”
아무래도 형님이 반대극복을 한 모양.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알겠어요. 조금 올린다 해서 기업들이 크게 반발하진 않을 거예요. 그 부분은 정부에 전해 기업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통해 조절할 수 있도록 할게요.”
애초에 책정된 임금에서 더 올린다 하여 한국에서 지급하는 임금보다 훨씬 낮다.
기업에 있어서 그리 큰 손해는 아니다.
“그래. 한데 말이야. 은행설립 건은 반반이야. 미안하게 됐어.”
“그 의미는 뭔가요?”
“아버지가 직접 대화를 하고 결정하실 모양이야.”
“아...”
“타국의 은행이 북한에 들어온다는 것이 내키지 않으신 거야. 그럼에도 자네를 보겠다는 건 그간의 일도 있고, 그나마 신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를 줄 생각인 게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조금 안타깝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제대로 해주지 못해 미안할 뿐 것을.”
“아니에요. 그 정도만 하더라도 큰 성과라 보고 있어요.”
국내 금융기업에서 유일하게 북한의 문턱을 두들기고 있다. 이건 매우 큰 의미를 둔다. 가장 큰 건, 약 2500만 명의 인구가 자리한 북한에서의 독점운영이란 뜻.
독점이란 표현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어떠한 국가도 북한에 발조차 붙이지 못했는데 KJ그룹은 ‘가능성’을 내비쳤다.
“아버지가 이쪽으로 오실 거 같으니, 미리 준비해 둬.”
이거 더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북한이 중국에서 사업하는 것보다 난이도가 더 높았다.
“전 피로 좀 풀 겸 샤워 좀 해야겠습니다.”
정남이 형님과 조금 더 대화를 하다, 피로를 풀 겸 욕실로 향했다.
피곤해 꽉 막힌 머리를 풀고자 차가운 물에 잠시 몸을 맡겼다.
***
-위원장님이 출발하셨습니다.
“알겠네. 준비하겠네. 아버지가 출발했다는 연락이야.”
샤워를 마치고 환복하고 내려온 때, 기다려온 연락이 왔다.
“나는 밖에서 대기하게 될 거야. 아버지는 자네와 단둘이 대화를 하길 원하시거든.”
“네, 알겠습니다. 그리 알고 준비할게요.”
크게 준비할 건 없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지.’
심호흡을 해 괜스레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위원장의 방문을 기다렸다.
“오셨습니까.”
약 20분 정도가 지나고 김정일 위원장이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일세. 김 회장.”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간 정남이 형을 통해 전달하고 일을 하다 보니 꽤 오랜만에 보는 것만 같다.
“잠시 나가 있어. 둘이 대화를 하고 싶으니.”
“네.”
예견대로 정남이 형을 방에서 나가게 하고 단둘만의 자리를 만들었다.
“앉지.”
위원장과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은행을 차리고 싶다고 들었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듣고 싶은데, 말해 줄 수 있겠는가?”
게임은 시작됐다.
“북한에 오고 나서 문제점들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특히 화폐의 이동이 원활하지 않은 부분에서 북한과의 거래에 대한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만약 KH가 북한에 자리를 잡고 거래를 돕는다면 어떨까 생각에 미치다 지금과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음.”
“결코 북한에도 나쁘지 않으리라 봅니다. 위원장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북한 주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화폐는 외국의 화폐입니다.”
말을 하다 슬쩍 위원장의 눈치를 살폈다.
“계속해보게.”
다행히 크게 불편한 모습은 아니었다. 살았다.
“월급은 한국 원화로 치르게 될 겁니다. 그런 중간 과정을 KH가 맡아 북한은행과 거래를 한다면 굳이 화폐의 흐름이 보다 원활하게 돌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KJ는 북한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최초의 외국은행이 되겠고.”
“그렇습니다.”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뭔가?”
“안정적인 자금흐름이 될 겁니다. 필요하실 때, 은행에 들르신다면 충분한 대출을 해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북한에 있어 몹시 좋은 조건이라 봤다.
늘 돈이 부족한 국가가 아니던가?
물론 내 돈으로 미사일 개발을 하게 되겠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삼팔선 철조망을 없애고 군사만 물려도 충분한 성과야.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키워, 아무도 무시 못 할 국가로 재탄생하는 거야.’
꿈만 같던 일이 조금씩, 아주 천천히 현실로 향해 달려갔다.
종점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안정적인 자금흐름보다 대출이 확실히 와닿는군.”
두근두근.
이 순간에도 심장은 강하게 뛰었다.
“위원장님이 실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북한에 큰 득이 될 겁니다. 국민들의 주머니가 풍족해진다는 건 북한의 재정도 풍족해짐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번 일로 위원장님은 전보다 더욱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실 겁니다.”
국가의 원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이 무엇이 있을까? 대부분 한 가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건 국민들의 신앙과 같은 지지.
물론, 한국과 미국과는 다른 북한의 정치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무시하기 힘들었다.
“나는 재정과 지지를 얻고, 김 회장 자네는...”
“북한의 시장을 얻게 되겠지요.”
“후후, 아주 철저한 기업가야. 자네는.”
“칭찬 감사합니다.”
“한데, 말이야. 중간에 내가 뜻을 바꾼다면 어찌할 텐가?”
“위원장님의 뜻이 그렇다면, KJ는 손해를 감수하고 물러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답이 딱히 없다. 쓰린 심장을 붙들고 철수하는 수밖에 없다.
“후후, 자네는 말이야, 이런저런 수를 쓰려 하지 않아서 좋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눈빛이 마음에 들어.”
“......”
“좋아, 설립을 허가하지. 한데, 한 가지 조건이 있네.”
“말씀하시죠.”
“적당한 자리에 우리 북한 인물을 그곳에 앉혔으면 하네만.”
됐다! 저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놓은 상태.
심호흡을 작게 하고는,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북한 지사장으로 정남이 형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 밑으로 한국인 경영자가 앉게 될 것이고, 은행원은 한국인과 북한, 5대5로 맞춰 배정할 계획입니다.”
“마치 내 생각을 알기라도 하듯, 바로 말하는군. 그 정도면 받아들이지.”
“감사합니다. 저를 믿고 맡겨주셔서.”
“볼일은 끝났으니, 잘 쉬다 가게.”
드디어 해내고 말았다. 큰 장애물이라 생각했던 벽을 허물고 북한에 베어링스 은행이 들어서는 데 성공을 하였다. 저택을 나서는 위원장을 바라보며 주먹에 힘을 주었다.
“잘 됐나 보군.”
“형님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앞으로 형님께서 꽤 바빠지실 겁니다.”
“날 너무 부려 먹으려 하는 거 아닌가?”
“추후, 위에 오르시면 적당한 사람 앉히시면 될 일입니다.”
“편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허탈해져.”
“하하, 이럴 게 아니라, 우리 기념으로 비싼 양주 하나 따지 말입니다. 이런 날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이런 기쁜 날 술이 빠진다면, 술에 대한 모독이다.
수행원들을 시켜 술상을 보게 하고 둘만의 조촐한 술 파티를 즐겼다.
“한반도를 위하여 건배.”
챙─
갈색 액체가 출렁이며 청명한 소리가 방안에 공기를 타고 흘렀다. 우리는 기분 좋은 미소를 입가 걸진 채, 시원하게 액체를 들이켰다.
***
-김정수 KJ그룹 회장이 북한을 방문해 역대급 대사건을 일으키고 돌아왔다. 중국과 러시아까지 철로를 연결하는 사업과 개성공단 건설에 나서는 데 이어서 북한에 베어링스 은행이 들어선다.
-개성공단에 들어서게 될 모든 회사는 주거래은행으로 베어링스 은행과 거래를 하게 된다.
“허허, 이거 이거. 정말 놀랍습니다. 어떻게 하면 회장님처럼 이렇게 쉽게 사업을 할 수 있는 건지. 진심으로 제자가 되어 배우고 싶을 따름이에요.”
황비선 대통령은 순수하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북한과의 교류가 현실화되어 가고 있었고, 거기에 더하여 화폐 교류까지 이루어지게 되었다.
정말 혀가 내둘러지는 상황이다. 지금껏 어떤 정부도 해내지 못한 걸, 김정수 회장이 이룩하니 허탈한 심정마저 들었다.
“맞습니다. 이래서야... 김정수 회장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수 회장의 행동 하나에 국가의 운명과 방향성이 결정되는 구조가 되었다.
정치권에서 꼭 잡아야 하는 인물로 부각이 된 것이다.
“이번 기회를 확실히 잡아야 할 겁니다.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세요. 그들의 경계가 옅어졌을 때, 확실하게 입지를 다져 놓아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북한과 월드컵을 준비하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님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 좀 합시다.”
황비선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확실하게 살려 통일 대통령이라는 업적을 세우길 바랐다.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길거리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노래가 여기저기 퍼져 사람들의 귓가를 즐겁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걷는 기분으로 스마트폰을 꺼내어 아침 일찍 올라온 기사를 읽어갔다.
-KJ그룹 베어링스 은행 주가 전일 대비 12% 상승. 외국인 매수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베어링스 은행이 세계 정상급 은행으로 우뚝 서려 한다.
-북한 정부는 이번 KJ그룹과 협상 끝에, 유일한 외국은행으로 받아들여...
기사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놀라움으로 변하였다.
-통일 시 KJ그룹 베어링스 은행의 역할 중요해져...
“이 정도면 진짜 통일되는 거 아냐? 완전 대박이네.”
바로 이 대목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진짜 통일되면, 우리 할머니 행복하시겠다.”
“너네 할머니?”
“말 안 했던가? 우리 할머니 6.25 전쟁 당시에 할아버지랑 헤어졌어. 큰아빠도 북한에 있다더라. 그런데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실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 모두 KJ그룹에서 벌이는 철로 건설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모자를 쓴 남성은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걸쳐,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할아버지와 큰아빠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눈가가 시큰해지는 것이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할아버지 살아 계셨으면 좋겠다.”
“그러게 말이야. 흑백사진으로만 봤는데, 나랑 완전 붕어빵이더라. 그래서 할머니가 나를 엄청 예뻐하셔.”
“잘 될 거야. KJ가 나서서 못한 일이 있었냐.”
“그렇지?”
“당근 빠따지.”
친구는 모자 쓴 남자의 등을 토닥이고 활짝 웃으며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어, 야. 늦었다. 뛰자!”
등굣길에 보인 시간, 08시 40분.
잠시 길거리에 멈춰 기사를 보며 이야기를 하다 지각 위기에 처했다.
둘은 황급히 학교로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