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베어링스 은행 북한지점
“베어링스 은행을 북한에 설립할까 합니다.”
며칠이 지나 베어링스 은행 임원진들을 대거 소집해 회의를 가졌다.
“북한에 설립은 좀 위험하지 않을지요?”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가 먼저 입을 열어 우려를 표했다. 워낙 알 수 없는 국가이기에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는 모습이다.
“분명 북한은 변수가 많고, 위험 리스크가 큰 국가입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전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큰 이득에 있어 리스크를 안고 가는 건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다른 기업이, 국가가 하지 못한 걸 우리가 성공을 한다면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겁니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염려스러운 얼굴이 회의실의 분위기 속에 기회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얼굴은 풀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최근 북한을 중심으로 벌이는 사업에 많은 자금이 투입되어 불안감이 떠나질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칫 북한에서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아무리 KJ그룹이라 할지라도 큰 타격을 받게 될 겁니다. 지금 공사비용에 인텔, 마이크로, 베어링스의 자금 대부분이 투입됐습니다.”
그룹 내에서 가장 큰 매출과 자본을 가진 계열사에서 북한의 대형 프로젝트를 위하여 자금을 끌어와 투자에 나섰다.
즉, 이번 프로젝트에 계열사들의 자금이 분할되어 들어가 있다는 의미다.
“맥어보이 대표, 당신의 생각과 우려는 아주 잘 압니다. 다른 기업들도 당신과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잠시 말을 끊고 주변을 둘러봤다.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와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는 임원진들의 시선들.
그들의 얼굴에도 부정적인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누구나 생각하는 부분을 우리도 같이 따라서야 최고가 될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시선을 옮겨 임직원들을 바라봤다. 시선의 마지막은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가에 주름이 짙게 지며 고심하는 얼굴로 변해갔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북한에 모든 자금을 집어넣기에 걸리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거기서 배 째란 식으로 나온다면 우리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투자금을 날리고 허공만 바라봐야 할 겁니다. 지금 대만, 중국 등 벌써 천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투입됐습니다.”
세계를 먹겠다 뭐 그런 것도 아닌데, 겁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회장님께서 내리신 지시로 인하여 실적이 반 토막 난 상태입니다. 경쟁사에 밀리면서 고객들이 떠나고 있는 중입니다.”
영국에 걸쳐 미국에 이르기까지 베어링스의 규모는 금융업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앞으로 벌어질 미국의 금융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조치로 시장을 축소해 리스크를 최소화를 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모기지 사태, 금융위기는 KJ그룹이라 하더라도 무척 위험하고 큰 타격으로 다가올 대형 사건이기에 대출의 벽을 높였다.
요즘 베어링스 은행은 예금과 적금, 투자를 빼면 제대로 실적을 올리는 건 없었다. 투자수익이 나쁘지 않으니,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
다른 금융권이었다면 진즉 망했거나, 상당한 부담을 느껴 적자에 허덕일 거다.
“제가 한 가지 묻겠습니다.”
이번 일에 대해 확실히 해 둘 필요성을 느꼈다. 아무래도 나가는 돈보다 고객 이탈을 두려워해 우려를 표하는 모습이다.
금융권이 확실한 실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 그건 대출이다. 한데, 그걸 50% 이상을 넘게 막아 버려 실적이 낮아지면서 기업가치가 하락하니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자,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출이 정상이라 보십니까? 무작위로 대출을 해주는 걸 떠나 사람들은 그 돈이 마치 제 돈인 마냥 대출을 받은 돈으로 소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신용검증도 하지 않고 카드를 발급해 주어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고. 한 달에 천 달러, 2천 달러를 버는 사람들이 그 돈들을 다 갚을 수 있을 걸로 보이나요?”
“지금 미국은 초저금리로 이자 부담이 덜해 부담이 확 준 상태입니다. 지금 시장을 잡지 않으면 상황은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갈 소지가 큽니다.”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의 목소리가 아닌, 그의 측근으로 있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기업인이고 회사원인 이상 실적은 매우 중요할 거라 본다. 하지만, 정말 진짜 지금은 아니었다.
“미국 정부에서 위험을 느끼고 금리를 대폭 상승을 시킨다면, 과연 저소득층에 집중된 대출을 그들이 막을 수 있을 걸로 보이십니까?”
집을 살 때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담보대출상품.
이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맞물리며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대출을 통해 부동산 매수에 나섰다.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은 무조건 오른다 믿었고 이는 대출 증가로 이어졌다.
지금 미국은 대출의 파도 속에 부동산 신고가를 연일 갱신하고 있었다.
“JP모건, AIG, CAN파이낸셜 보험사, HSBC 은행,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이 시장을 잡기 위하여 대출 규모를 90% 늘린 시점입니다.”
그들의 중심에는 리먼브라더스가 있을 테고.
그리고 미국 내에서 4번째로 손꼽히는 대형 투자은행이 리먼브라더스였다.
‘이게 발전되어 모기지사태가 일어나지. 그때가 베어링스 은행이 공격적으로 나설 때이고.’
나의 큰 그림이 그려진 건, 2000년대에 들어서다.
진한 돈의 향기가 코끝을 찔려온다. 세계 금융권의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그 기회를 위하여 꾹 참고 때를 기다렸다.
“그만큼 시장에 돈이 된다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까?”
“돈이 된다는 건, 왜 돈이 되는 걸까요?”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에게 되물었다.
“많은 이용자들을 거니는 만큼, 거기서 얻어지는 부가가치의 규모가 확대돼 기업의 실적으로 나타날 겁니다.”
미래를 모른다면 당연한 답안인지 몰랐다.
당장 해당 시장에 뛰어든다면, 상당한 실적이 나게 될 터이니.
하지만, 실적이란 곧 자금의 회수를 의미했다. 실적만 높으면 뭐 하나? 최종적으로 KJ로 들어오는 돈이 있고 그것이 매출로 이어져야 의미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 거대한 리먼브라더스가 실적이 부족해 무너졌을까? 아니다. 자금 회수가 안 되니 무너지게 된 것이다.
실적만 좋고 돈이 안 되는 사업이었다는 소리다.
“그럼, 우리 내기 하나 할까요? 앞으로 3년입니다. 이때 미국연방준비제도에서 금리를 인상한다는 발표를 하게 될 겁니다. 제 생각이 틀렸다면, 그때 대출 규모를 확대해 잃어버린 고객을 되찾아 오겠습니다. 어떠세요.”
그를 보며 씩 웃어 보였다. 그때가 지나면 미국 금융사들은 대혼란에 빠져 허둥대게 될 것이다.
이번 내기는 KJ그룹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 내기나 다름없었지만.
“좋습니다.”
지루한 이 시국에 재밌는 일이 될 터였다.
“그럼 지시를 내리지요. 내년부터 금융권과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언급한 곳의 지분이 많이 들어간 곳부터 시작해 투자금을 회수하도록 하세요. 우린 당분간 미국금융권에는 투자를 하지 않겠습니다. 부동산도 전부 매각하세요.”
내기 전 확실한 방향성을 지시했다. 수익이 줄어들었으니 대체제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필요 없는 모든 부동산을 매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정도면 북한에 지사를 차려도 큰 부담이 되지 않겠죠.”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끝내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는 뜻을 꺾었다.
“대신, 내기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마세요. 제 꿈은 세계 금융을 KJ그룹 아래 두는 거니까요.”
***
-KJ그룹 계열사로 알려진 베어링스 은행이 미국에 가지고 있는 부동산 일부를 처분하는 한편, 투자금에 대한 차익 실현에 나섰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 KJ그룹은 중국, 대만, 북한에 무리한 투자를 감행하면서 자금조달을 위한 대안으로 일부 자산을 처분한 걸로 보입니다.
갑작스러운 KJ그룹의 시장과 반대된 움직임은 모든 국가와 투자전문가들의 관심을 받기 충분했다.
TV는 KJ그룹을 두둔하면서도 무리한 투자와 개발하는 데 위험요소가 많다며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기사로 보도되는 내용에 중년남성은 함께 있는 은발로 염색되어 보이는 60대로 보이는 이에게 물었다.
“이래서 사업이란 걸 무리하면 안 되는 거지요. 이런 좋은 기회를 날리니, 후후. 김 회장이 좀 많이 해먹었습니까? 우리는 김 회장이 처분하는 부동산을 매입해 더 비싼 값에 팔면 그만이지요.”
허허거리며 웃는 남성은 KJ그룹에 대해 웃음으로 넘기며 이번을 기회로 삼고자 하였다.
“맞아요. 이때 돈을 벌지 언제 벌겠습니까?”
KJ그룹에서 가지고 있던 부동산 대부분은 노른자 땅 위에 있던, 매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그런 부동산들이었다.
두 중년인은 이번에 벌어진 KJ그룹의 결정에 만족해하며 입가에 웃음꽃을 피웠다.
그러한 상황들 속에 미국에 위치한 한 도시.
“딜런(Dylan), 준비는 어떻게 됐어?”
“빠짐없이 다 준비됐어. 그런데 정말 이게 가능할까?”
로건(Logan)은 딜런의 말에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시선은 가방에 둔 채로.
“뭔 걱정이 그리 많아. 걱정 말라고. 멍청한 은행은 우리가 챙겨온 서류 같은 건 보지도 않고 돈을 퍼주기 급급할 거니까.”
로건은 친구인 딜런의 겁먹은 모습에 인상을 찡그리다, 가슴을 열고 자신감을 앞으로 활짝 열고 확신을 심어주었다.
“만약, 걸리기라도 하면 우리 끝이라고.”
“그럴 일 없다니까 그러네. 우리 형도 그렇게 해서 부동산 매입하고 큰돈을 벌었다고. 이건 다시 없을 기회야. 절대 쫄면 안돼.”
로건의 형은 2000년이 시작되는 해 은행에서 감당하기 힘들 걸로 보이는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매입해 큰 시세차익을 남겨 백만장자가 된 걸로 유명했다.
“잘 들어. 딜런. 네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은행원은 우리를 의심할 거라고. 대담하게 굴어. 우리는 절대 안 걸릴 거야.”
“휴...”
“이것만 몇 번만 하면 우리가 원하는 건물을 계약할 수 있어. 돈은 그때 갚으면 돼. 이걸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우린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거라고.”
“......”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실제로 은행원은 어떤 조사도 하지 않고 창구에서 바로 돈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로건 본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자신감을 내보일 수 있었다.
“알았어.”
“좋아 잘 생각했어. 가자. 돈 벌러.”
로건은 딜런을 챙기고 은행으로 들어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한참을 기다리던 시각, 순서가 바뀌며 차례가 돌아왔다. 로건은 앞장서서 창구 앞에 섰다.
“대출을 받으러 왔어요.”
“잠시만요. 여기에 원하시는 금액과 공란을 채워주시면 바로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창구에 있는 여직원은 종이를 챙겨 로건에게 건넸다.
“한 장 더 주시겠어요. 친구도 같이 빌리기로 해서.”
“네.”
종이가 한 장 더 꺼내져 로건을 통해 딜런에게 전달됐다.
둘은 흥분된 마음을 뒤로하며 종이에 표기된 부분에 모든 정보를 기입하였다.
“접수되셨습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대출이 진행될 겁니다.”
꿀꺽, 둘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로건도 긴장하고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둘 다 긴장하면 의심받을 게 뻔하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한 것이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원하시는 돈이 처리됐습니다.”
오...
로건과 딜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늘도 저희 지점을 이용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류를 쓰는 시간이 오래 걸려 그렇지 돈을 받기까지 과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둘은 돈이 든 통장을 들고 나와 입가에 미소를 진하게 지었다.
“내가 뭐랬어. 죽은 사람 명의로 돈을 빌린 것도 모르고. 큭큭. 돈을 빌려주는 멍청한 모습이라니.”
“이건 대박이야! 우린 부자라고!”
로건은 씩 웃으며 말했다.
“다음 은행으로 이동하자. 거기서도 다른 이름으로 해서 돈을 빌리자.”
처음이 힘들었지, 두 번째부터는 쉬웠다. 둘은 떨리던 가슴을 진정하고 용기백배된 모습으로 다른 은행으로 향했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 전체에서 드문드문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