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김정은의 최후
“......”
이리저리 왔다 갔다 방 안을 맴도는 김정은은 불안감에 제대로 자리에 앉아 있지를 못했다. 이쯤 되면 연락이 올 법도 한데,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은 없었다.
“양금룡 중좌는 지금 뭐 하는 거야!”
몇 번이고 연락을 취했지만, 갑자기 연락이 끊긴 양금룡 중좌는 불안감을 가속화시켰다.
매일같이 찾아와 보고를 하던 이가 며칠 전부터 찾아오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절대 그래서는 안 돼...”
횡설수설하는 김정은의 모습은 지금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의 상태는 무척 심각해 처음 보는 사람이 보면 성격 장애자로 오해하기 딱 좋았다.
“전화, 전화...”
김정은은 동동 구르던 발을 멈추고 전화기를 찾았다.
볼록 튀어나온 배를 흔들며 책상 위에 올려둔 전화기로 손을 가져갔다. 몇 번이고 해댔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다.
“대체 양 중좌는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 벌써 3일째요. 3일째!”
수화기로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내뱉은 한마디는 조마조마함을 담고 있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양 중좌가 꼭 필요했다.
-위원장님의 지시로 훈련에 참석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 복귀하면 즉각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이 새끼가! 내가 누군지 알고 그딴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당장 불러! 귀환시키라고!”
귓속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김정은은 참았던 인내심이 뚝 하고 끊겼다.
평소와 보이던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죄송합니다.
뚝, 전화가 끊겼다. 감히 누가 있어 자신에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싶지만.
연달아 좋지 않은 방향으로 터지는 사건에 불안감이 강하게 엄습해왔다.
“......”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조심스럽던 목소리가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정은은 느낄 수 있었다.
“하필 이때에 훈련을 보낸다니. 이상해. 이상하다고. 이건 말이 되지 않아.”
계속 어긋나는 톱니바퀴는 정은의 가슴을 두들겨 답답하게 만들었다.
“엄마에게 말해야 돼. 더 늦기 전에.”
혼자 고민을 하던 끝에 내린 결정은 엄마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엄마라면 어떻게든 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죄송합니다. 위원장님의 명령이십니다. 당분간 건물 밖으로 나가시지 못하십니다.”
한데, 시작도 하기 전에 문제가 생겼다. 밖으로 나가려던 길을 인민군들이 막아섰다.
“지금 누구의 길을 막고 있는지 아는가!”
어린 나이지만 목소리에서 위엄이 실렸다. 불안한 동공을 바로 해 사납게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위원장님께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럴 리 없다. 비켜!”
“위원장님의 명령장입니다.”
김정은의 폭력적 언행에 인민군 장교는 김정일로부터 전해 받은 명령장을 내밀었다.
“......”
“이건 위원장님의 서한입니다.”
얼어붙은 김정은에게 김정일 위원장의 친필이 담긴 종이를 건넸다.
김정은은 종이를 받아 들어 펼쳤다.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외출을 금한다. 이를 어길 시 그에 따른 합당한 죄명을 물어 벌을 내리겠다.
분명히 아버지 위원장의 친필이다. 아버지의 친필을 모를 리 없는 김정은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째서...”
절망이 두 동공에 맺혔다.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지금까지 벌인 일을 아버지가 알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양 중좌는 어떻게 됐나?”
굳이 대답을 듣기 위한 물음은 아니었으나, 불안감은 확신으로 바뀌게 되면서 양금룡 중좌의 거처를 물었다.
“돌아오기 힘드실 겁니다. 더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쿵!!
머릿속으로 강력한 지진이 일었다.
“아...”
흔들거리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정은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련님을 모셔라.”
상급 장교로 보이는 남자가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모든 작전권을 가진 남자에게 김정은은 어떤 도발도 반항도 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 건물로 들어갔다.
“너희들도 잘 들어라. 절대 이번 일은 외부로 발설되어서는 안 될거야.”
남자는 자세를 잡고 손을 모자챙에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그들을 보다 건물로 시선을 옮겼다.
“끝났군.”
남자는 감옥으로 변한 건물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
-미정부 최종협의를 위해 평양에 방문 통보.
미국 행정부에서 최근 진행한 대미협약에 대한 감사함은 전하기 위하여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언론을 통하여 발표를 하였다.
세간의 시선은 단번에 미국으로 집중됐다.
“하여튼 저쪽도 꼼수 짓은 참 잘해. 안 그래요?”
미정부의 행사로 인해 KJ그룹의 기사가 묻혔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을 가진다며 동네방네 떠들어 댔는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정돈 해야 안전장치가 마련돼 저쪽에서도 움직이지 못하리라 봤는데 말이죠.”
“덕분에 무사했네.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군.”
개성공단 관문을 지나 평양으로 향하는 길. 정남이 형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 눈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이렇게 하나둘 빚을 쌓아가는 거지.’
처음에는 어떻게 될지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확신으로 바뀌어 가니, 마음이 편안하게 다가섰다.
“자네를 만난 건 어쩌면 내 인생의 가장 큰 반전이었는지 모르겠어. 아니지. 큰 행운이라 하는 게 옳겠지.”
차츰 평양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지난날을 떠올려 방긋 웃는 모습에 나까지 미소가 그려진다.
나쁜 일을 더 많이 경험을 한다 하지만, 마음을 크게 먹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행운은 기회가 되어 반드시 찾아온다.
“그리 생각한다면 절대 잊지 마세요.”
어느덧 김정일 위원장이 업무를 보는 조선로동당 건물이 시야로 들어왔다.
“고맙네. 김 회장.”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도착해 내리니 김 위원장이 함박웃음을 머금고 두 손을 내민다. 자연히 그의 시선은 뒤따라 내리는 정남이 형에게 쏠렸다.
“다친 곳은 없느냐.”
“보시는 대로 멀쩡합니다.”
몸을 가볍게 털며 자신의 건강함을 내보였다. 전생에도 두 부자는 얼굴에 지금과 같은 미소를 품었을까?
지금 보이는 둘의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빠와 아들의 모습이었다.
“들어가십시다.”
김 위원장의 태도가 전과 달리 조금 유해졌다 느끼는 건 나뿐일까?
“저 잠시 드릴 게 있습니다.”
생각은 잠시 뒤로 미루고.
등을 돌려 건물로 들어가려는 위원장을 멈춰 세웠다.
“줄 거?”
“이건 형님이 말해주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김 위원장의 눈치를 쓱 살피다, 바로 코앞에서 사적인 자리에서만 부르던 호칭으로 불렀다.
정남이 형은 대수롭지 않은 눈치인 반면, 김정일 위원장은 살짝 놀란 모습으로 변하다 진한 호기심을 보였다.
“음, 그러지. 다른 건 아니고 절 암살하려던 놈을 잡았습니다.”
“......!!”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는지, 위원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설마, 직접 해당 인물을 잡아 왔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그놈은 어딨느냐.”
곧 살기가 주변을 채워갔다.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은 한기는 곧 차량으로 향했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목숨만... 전 위에서 내려온 지시만을 받고...”
트렁크에서 칭칭 묶인 채 꺼내진 남자는 김 위원장을 보자 몸을 움츠려 부들부들 떨며 애원을 하였다.
이래서 사람은 죄를 짓고는 편히 살 수 없는 모양이다.
“이 북한에 나보다 위에 있는 이가 있었던가? 말해보게. 대체 그놈이 누구인지, 내 직접 면상을 봐야겠으니!”
“제발, 제발...”
위원장도 알고 있을 터다. 이런 추잡한 짓거리를 누가 했을지.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한 인물을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리라.
“일단 이놈을 가두고 따로 심문해 관련된 모든 놈들을 즉결처분을 내렸음 합니다.”
자신을 죽이려 하는 자를 곱게 내버려 둘 위인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터다.
형님은 이번 기회에 김정은과 그의 가족의 뒤를 봐주는 모든 종자들을 없애버릴 생각으로 보였다.
동생인 김정은은 어떻게 하지 못하겠지만, 그것만 뺀다면 즉시 처리할 수 있으리라.
“독방에 가두고 저놈의 가족, 친인척 전부를 잡아들여 모든 걸 토해내게 만들도록.”
“위원장님! 위원장님! 죄송합니다. 제발 부디 자비를! 당장 불겠습니다. 이번 일은 모두 김정... 큭!”
질질 끌려가던 남자가 누군가를 언급하려 하자, 정남이 형은 달려가 주먹을 뿌려 얼굴을 과격했다.
강한 일격에 남자의 몸이 축 처졌다.
“... 가자.”
환했던 위원장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았다. 방금 그자가 누구를 언급하려 했는지 아주 잘 안 탓이다.
위원장은 정남이 형을 씁쓸히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
***
모두가 잠들 저녁 시간.
“말해 보거라. 정은이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김정일 위원장은 첫째 아들인 정남을 불러내 독대를 했다.
얼굴에 상당한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으시겠습니까?”
하나 정남은 오히려 되물었다.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이번 일에 대한 결정을 아버지의 입에서 듣고 싶어서다.
“난 신경 끄고 말해 보거라. 괜찮으니.”
그러나 김정일은 직접 언급을 피했다.
정남과 반대로 의견을 듣고 둘째 아들에 대한 처벌을 결정할 생각이었다.
“아버지나 큰 어머니에게 상처가 될지 모릅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정남의 눈빛에 결심이 섰다.
“저를 죽이려 했던 모든 배후들을 총살하고 큰 어머니와 정은이를 해외 관사로 보냈음 합니다.”
아버지 면전에 대고 동생 가족들에 대한 사형을 언급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를 따졌을 때, 지금의 결정이 가장 옳은 선택지였다.
“내 참고하마. 그럼 이건 여기서 끝내고, 김 회장과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게냐?”
오후에 있었던 ‘형님’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돈다.
어떤 일들을 겪었길래, 호형호재하는 사이가 되었을지 몹시 궁금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정수와는...”
이제 와서 정수에 대한 호칭을 회장이라 칭하지 않고 가볍게 불렀다.
동시에 과거 처음 만났던 때부터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물론, 비밀스럽게 나누던 이야기로 시작해 공감대가 맞아 협력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은 쏙 뺐다.
“그랬구나. 너에게 있어 김 회장은 아주 특별하겠어.”
“맞습니다.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다, 이번 일로 인해 마음의 빚을 지게 됐습니다.”
“우리 가문에 은혜를 끼쳤으니, 당연 보상을 해줘야겠지.”
위원장은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을 해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생각해 둔 바도 있다.
지금 김정수 회장이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일지 충분히 알고 있기에 뒤로 질질 미루던 걸 주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늦었다. 이제 가보거라.”
“주무세요.”
김정남은 오랜만에 가진 독대의 자리를 끝내고 방을 나섰다.
어둠으로 물든 방 안.
하아─
김정일 위원장의 한숨이 길게 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