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북&미, 경제 중심 KJ그룹
“도련님에게 전해야 해.”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남자는 건물 저편에서 나오는 김정남을 보고는 걸음을 급히 옮겼다. 그의 걸음은 으슥한 골목이 아닌 넓은 도로로 나와 사람이 붐비는 장소로 이동했다.
스스스─
그의 뒤를 따라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물고기를 한쪽으로 몰 듯, 천천히 거리를 좁혀 갔다.
“......”
모자 쓴 남자 앞쪽으로도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대기해 있었다. 그들의 걸음은 무척 자연스러웠다. 사람들 속에 녹아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로 짐작하게 하였다.
“......”
하지만, 이건 순전히 착각.
이런 일을 매번 경험을 한 남자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걸음을 골목으로 돌렸다. 그의 걸음이 다급해 졌다.
“제길!”
뒤에서 따라오는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걸음 소리는 묵직했고 빨랐다.
남자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너무 가까이 접근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망할.”
이제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확연히 느껴졌다. 자신의 뒤를 따르는 이가 한두 명이 아님을. 그리고 자신이 쫓기고 있음을.
“도망은 여기까지. 저희랑 같이 가주시죠. 무력행위 시 뒷일은 저희도 책임을 지지 못합니다.”
남자의 앞으로 쫙 깔린 수십의 사람들. 그들은 다름 아닌 KJ그룹 소속 경호팀들이었다. 각자 품속에 총으로 보이는 무기가 들려 있었는데.
“끄아아악!”
바로 테이저건이었다. 남자를 포위하고 있던 경호원 한 명이 테이저건을 남자에게 발사해, 남자를 바닥에 눕혔다.
“가지.”
남자는 경호원들에게 구속된 채, 힘없이 끌려갔다.
***
“으으.”
1시간 정도 기다렸나, 기절해 있던 남자가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이거 누가 알면 인신매매 집단인 줄 알겠네. 중국에 이어 이젠 북한인가?”
그의 정체를 확인한 결과, 남자는 예상대로 북한 소속 비밀요원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이런 걸 시켰을 일은 없고, 김정은과 관련된 사람으로 보인다.
“이제 정신 좀 차리지?”
혹시 모를 변수와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포승줄로 칭칭 묶어둔 남자의 축 처진 고개가 서서히 위로 올라왔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이던 그는.
“당장 나를 풀어라! 풀지 않으면 북한의 적으로 간주해, 이를 상부에 보고하겠다.”
일어나마자 한다는 소리가 미친 소리다.
“테이저건 한 방에 정신이 가출했는지, 눈 뜨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그딴 소리야? 그래, 좋아. 상부 어디? 김정일 위원장은 아닐 거고, 정남이 형도 아닐 거고. 김정은이?”
움찔.
경황이 없어 그런 건지, 정신을 막 차려 그런 건지, 고도의 훈련이 되어 있을 그의 몸이 티 나도록 반응을 보였다.
“김정은이가 맞나 보네.”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이미 얼굴로 다 말하고 있는데. 정은이가 맞다고.”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
군복을 입고 작대기 하나를 달았을 때.
잠에 취해 있다 막 일어났을 때.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
남자는 정말 바보스러운 얼굴이 되어 바라봤다.
“다 아는 사실을 굳이 숨길 필요는 없어. 지금 가장 똥줄 탈 사람이 북한 내에서 그쪽 세력밖에 없다는 거 다 아는 사실이니. 그건 됐고, 정은이가 미국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라던가?”
“말조심해라! 도련님은 너 같은... 앗.”
정은이 정은이 하니 심사가 뒤틀렸나 보다. 이런 황당한 실수를 다 하고.
막 정신이 깨어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 심기를 후벼 파니 아주 재밌는 상황이 벌어진다.
“새삼 놀라는 척하기는. 그래서 정은이한테 어떤 지시를 받았나?”
그냥 염탐만 하라는 그런 단순한 지시를 받았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흐흐, 내게 무언가 알아내려 해봤자, 이미 늦었다.”
?
“그게 무슨 뜻이지?”
갑자기 훅치고 들어오는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김정남 그 서자새끼는 오늘 죽는다. 크크. 얼굴이 창백한 걸 보니 이제 현실감이 오는가? KJ그룹은 이제 끝이다.”
역사가 크게 뒤틀림을 느꼈다. 예상은 일이지만, 이렇게 빠르고 적극적으로 나설 줄이야.
“아주 좋은 정보, 고마워. 너의 발언은 아주 유용하게 쓰일 거야. 정남이 형 어떻게 생각해요? 형님 오늘 죽는다는데?”
심각한 표정을 짓던 얼굴을 가볍게 풀고, 입가에 긴 호선을 찢어 한쪽을 말아 올렸다.
“그, 그게 무슨...”
남자가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다.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동무.”
“어,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하얗게 탈색되어 경직되었다.
시간은 현시점에서 2시간 뒤로 돌아가 본다.
***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아.”
이 시점에 우리의 행사를 감시할 만한 자가 누구일까? 한국, 중국? 두 국가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김정은.”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야심이 대단하다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 들은 바 있다.
그에게는 충분한 배경이 있었고, 그럴만한 이유 또한 있다.
정남이 형이 이번 일을 성공리에 끝내면 가장 손해 보는 인물, 후계자에서 밀려나며 현 거처가 불투명해진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아직 공항에 이르려면 멀었을 거야.”
생각을 끝내고 즉시 핸드폰을 들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지만 받지를 않는다.
“설마,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니겠지.”
김정은이 김정남을 해했다 하여, 김정은은 어떤 제재도 받지 않을 거다.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다.
수뇌부의 과한 충성으로 벌인 일이라 하면 거기서 일은 끝날 것이다.
제발, 제발 받아라. 제발!
-무슨 일인데, 계속 전화인가?
아! 받았다. 다행이다. 아직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보다.
“형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급히 백악관으로 다시 돌아오셔야 할 거 같습니다.”
아직 출발 전.
경호원이 남자를 잡아 오기 전까지 이곳에서 기다려야 한다.
또한, 정남이 형이 탄 차량은 노출된 상태,
- 클린턴이 말을 바꿨나?
짜증이 깃든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닙니다. 제 말 잘 들으세요. 아무래도 형님을 노리는 사람이 있는 거 같습니다. 백악관 안에서 저희 차로 바꿔 타고 이동함이 좋아 보입니다.”
- 뭐, 그게 정말인가?
“형님이 떠나는 시간에 맞춰 움직인 사람을 포착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나오고부터 뒷덜미가 따끔했는데, 제 생각이 기우였으면 좋겠지만, 분명히 형님을 노리고 있는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아무래도 자네의 생각이 맞는 거 같군. 꼬리가 붙었어. 제기랄! 안으로 들어가 있게. 백악관 안이라면 그들도 힘들겠지.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다행히 연락이 닿았다. 망할, 김정은.
내 계획을 방해하려 들다니.
아무래도 타지로 추방하기보다 확실하게 처리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겠다.
“잡아 왔습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잠시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던 차, 남자를 쫓던 경호팀이 돌아왔다.
“국적은 어디로 보였습니까?”
“북한입니다. 중국어로 말해 교란하려 했지만, 북한 측이 맞을 겁니다.”
“역시... 잘하셨습니다. 차를 끌고 백악관 안으로 들어오세요. 정남이 형이 곧 돌아올 겁니다. 우린 그때 출발합니다. 그 남자는 캐리어에 숨기세요.”
북한 측 인물을 미국에 보일 수 없다. 일이 복잡해지는 건 최대한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백악관 비서실...
수화기를 들어 백악관에 연락했다.
“죄송하지만, 잠시 백악관 안쪽 주차장에서 대기할 수 있겠습니까? 개인적으로 약간의 사정이 생겨 말입니다.”
- 무슨 일로 그러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것이, 죄송합니다. 지극히 개인 일이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 그럼 저희 측도 힘들 걸로 보입니다.
“설명은 나중에 꼭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클린턴 대통령님을 바꿔주신다면...”
-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말하는 중간에 비서 측에서 기다려달라는 말이 들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작게 들려오는데,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 갑자기 기다리게 해 죄송합니다. 마침 대통령님께서 허가를 하셨습니다. 이야기는 추후 꼭 말씀해 달라 하셨습니다.
하, 살았다. 아직 운이 다하지 않은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께 그리하겠다고 전해주세요.”
한국은 미국에 우호적이며, 미국도 한국에 있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오늘 협상을 만족스럽게 끝내 그런지 빌 클린턴이 호의를 베풀었다.
“이 호의 추후 갚도록 하지요. 모두 안으로 들어가세요.”
북한 측 남자를 캐리어에 완벽히 숨긴 우리는 백악관 안으로 들어갔다.
“김정남 씨도 올 겁니다. 저쪽으로 안내 부탁합니다.”
“그러지요.”
주변을 감시하고 있는 이에게 부탁하고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적당히 시간이 흐를 쯤, 정남이 형이 타고 간 차량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자는 잡았나?”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나오는 물음.
“네, 승합차에 있습니다. 지금은 캐리어 숨겨 놓았습니다.”
“아무래도 저 차는 위험해 보이니 저랑 같이 호텔로 이동하시죠. 경호원들 틈에 껴서 이동한다면 저쪽에서도 확인하기 힘들 겁니다.”
“덕분에 살았네. 오늘 일은 절대 잊지 않지. 김정은...”
분노의 불길을 태우는 정남이 형을 우리 차량에 태우고, 뒷좌석에 가방을 사람처럼 꾸며 태운 후 공항으로 돌려보냈다.
약 3분 후, 우리도 백악관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
현시점으로 돌아와, 해당 소식이 들려왔다. 정말이지 아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치밀하게 준비를 했더군. 공항에 도착하는 차를 트럭으로 깔아뭉갤 줄은 몰랐어. 덕분에 죄 없는 내 기사만 죽었어.”
아주 간발의 차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저들의 계획은 성공리에 끝냈을 터.
정말이지 악랄하기 이를 데 없는 성정이다.
아직 미성년인 나이에 이런 계획을 세우다니.
“나를 해하려 한 건, 북한에 대한 반역임을 모르지 않겠지. 이번 일을 반역죄로 여겨 재판에 넘길 것이다.”
정남이 형은 이번 일을 반역으로 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을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에게 알리려는 모습이다.
이 생각에는 나도 동의한다.
잘만 하면 김정은의 입지를 확실하게 깎아 낼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네 가족과 더불어 너와 관련된 모두는 처형으로 다스리겠다.”
한국에서는 힘든 일이지만, 북한에서는 가능한 일.
위기가 기회로 바뀌어 우리에게 찾아왔다.
남자는 절망으로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떨궜다.
북한 측 사람이니, 이번 일로 자신의 미래를 예측했으리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곳에 한동안 머물다 저와 같이 한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넘어가시죠. 김정은도 형님이 죽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겁니다.”
“계속 신세를 지게 되는군.”
“보답은 나중에 하세요. 공짜로 도와드리는 거 아닙니다.”
“그렇다면 북한에 돌아가기까지 자네의 도움을 받겠네.”
정남이 형의 얼굴에 드리워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이번 일로 북한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