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스마트폰
“정말 이런 게 세계적인 기기로 자리매김할 거라고?!”
이재진은 책상 위에 보이는 ‘스마트폰’이란 프로젝트명을 멍하니 바라봤다.
동생들로 아팠던 머리는 ‘스마트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동생들의 일은 이제 떠오르지도 않았다.
“이거 하나로 컴퓨터 대용으로 활용이 가능하고, 거기에 전화가 된다라...”
아무리 봐도 믿어지지 않았다. 더욱 황당한 건 모든 조작방법이 버튼이 아닌 터치인 점.
나아가 지문인식으로 잠금장치를 푸는 부분은 그간 가져온 생각들을 처참하게 밟아 버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자료를 믿어도 될지 의심마저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대표님.”
이마에 골을 만들어 자료를 파고 있을 때, 문을 열고 직원이 들어와 이재진 앞에 섰다.
“조사해보라는 건 해봤나요?”
직원이 들어오자 시선을 다시 앞으로 가져갔다.
단발에 사무적인 표정을 얼굴에 달고 있는 여성의 입을 응시했다.
“미국의 애플이란 곳에서 저희와 같은 프로젝트에 들어갔음을 확인했습니다.”
“애플이면, 그곳?”
“네, 그렇습니다. 과거 컴퓨터 업계에서 제법 알아주다 사장되는가 싶더니,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스티브 잡스.
아직 세상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업들 사이에서 스티브 잡스의 이름은 꽤 유명했다.
특히 IT업계에서 스티브 잡스를 모르는 인물은 손에 꼽았다.
“그 작자가 여기에 관심을 뒀다고?”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는 직접 한국에 방한해 김정수 회장을 만나 특허에 대한 인수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합니다.”
“허... 이걸?!”
이재진으로선 납득이 가지 않았다. 분명 새로운 기술이란 점과 그간 생각해 보지 못한 제품이란 건 인정한다. 한데, 이 아이템이 과연 세상을 바꿀 힘이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심지어 기기값도 만만치 않다. 이런 고가의 제품을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럼에도 이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말이지.”
제작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고, 필수가 되었다. 어떤 이유도 필요 없었다.
매제가 추천을 하기도 했고, 이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이 없던 탓이다.
“고생했어요. 이건 이 정도로 하고, 연구소 인수작업에 들어가세요. 그곳에서 이 스마트폰 개발에 착수합니다.”
고민의 시간을 길었지만, 결정과 행동은 빨랐다.
“연구인력은 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많이 뽑으세요. 각 분야에서 성적을 낸 이라면 얼마를 원하든 채용을 하세요. 앞으로 우리 E육성은 IT투자를 멈추고 스마트폰 제작에 집중합니다.”
이재진은 최종 결정을 내리고, 스마트폰에 모든 걸 걸었다.
이제 자신의 인생은 스마트폰에 달렸다.
***
“회장님께서 일부 부품을 한국으로 돌리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한국 본사에서 내려온 보고는 미국에 자리한 계열사들을 때아닌 소동이 일게 만들었다. 갑자기 내려온 부품업체 이전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정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핵심기업을 인수한 회장님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합니다. 그런 상황에 대대적인 부품사의 이동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미국 정부에 불씨를 지피는 꼴입니다.”
KJ그룹에서 취급하는 사업 대부분이 세계시장을 주무르는 반독점 사업들.
자금과 같은 상황에 기업까지 옮긴다고 한다면, 과연 미국 정부에서 좋게 받아들일지.
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제가 보기에 이러한 부분을 회장님께 언급해 미리 미정부와 협의를 나누길 권하는 게 먼저로 보입니다.”
이들도 미국 정부에서 암암리에 들리는 이야기들.
KJ에 대한 애사심이 높은 이들은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KJ그룹 미국 계열사 대표진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다.
그들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
“KJ그룹에서 이상 움직임이 발견됐습니다.”
KJ그룹 미국지부 경영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각, 또 다른 장소에서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또 미국의 기업을 노리던가?”
“그것까진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KJ그룹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습니다. 기업 인수에 대한 사항이 아닌 다른 부분으로 보였습니다.”
CIA라 하여 모든 걸 100%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모아온 정보를 취합해 몇 가지 값을 도출해내 좁혀갈 뿐이다.
“어떤 부분으로 보이던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걸 모아 종합해 본 결과, 몇몇 기업들을 한국으로 이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라도 있나?”
“그렇습니다. 지금 한국 정부에서 경상수지 120억 달러를 목표로 잡고 수입을 줄이고 밖으로 나가는 달러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KJ그룹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정책을 따르지 않고는 힘들 겁니다. 게다가 세계 유일의 반독점 기업입니다. 그렇게 큰 기업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여 정보팀에서는 기업 인수가 아닌 부품기업들을 한국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 작자들이!”
빌 클린턴은 들려온 보고에 얼굴을 붉게 만들어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냈다.
빌 클린턴.
만성 재정적자를 사상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인물.
2900억 달러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2370억 달러 흑자를 내어 경제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런 상황에 경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사업체 중 하나인 수출기업을 한국으로 이전하려는 KJ의 움직임은 미국에 대한 도전이라 봐도 무방했다.
“KJ의 기부활동으로 미국의 재정에 여유가 생긴 것도 사실이나, 전체적인 상황을 보자면 미국은 김정수 회장으로 인해 곪아 가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확실한 제재가 필요로 해 보입니다.”
CIA 국장은 이번 사안에 대해 확실히 해줄 것을 빌 클린턴에게 요청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대한 애국심 하나로 지금껏 버텨온 그로서는 KJ그룹 김정수 회장이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참고 있던 건, 미국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기에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을 뿐.
결코 좋아서 그랬던 건 아니다. 하나, 이제는 이야기가 달랐다.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산업들을 옮긴다면, 그건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그때는...
“나도 동감이야. 절대 그딴 행위는 내 입장에서도 안 될 말이야. 계속 감시해 수시로 보고하게.”
결코 좌시하지 않으리라.
빌 클린턴은 KJ그룹 본사가 있을 방향으로 사납게 노려봤다.
***
-해당 지시 건에 대하여 말씀드립니다. J그룹은 미국 정부의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인인 회장님이 미국의 알짜배기 기업을 대거 인수 후 반독점을 만든 상황인 이때, 한국으로 부품기업을 옮기게 된다면 미국 정부의 반감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 죄송스럽지만, 회장님께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협상을...
“먼저 하고 일을 진행하는 게 좋다, 이건가?”
메일함을 확인하니, 지시한 내용에 대한 회신이 남겨 있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랬다.
‘미정부에 찍힌 상황이니, 조심해라.’
기부와 재단을 설립해 어느 정도 해결이 됐을 거라 생각을 하였는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미국에 있는 경영진들이 입을 모아 메일을 보낸 것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이거 참. 북한 문제도 풀기 전에 이런 건 좀 별론데. 머리가 아파오네.”
국내에서 사업하려면 어느 정도는 정부가 실행하는 정책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진행한 프로젝트이건만.
설마, 시작도 하기 전에 문제가 생길지 몰랐다.
미정부를 너무 쉽게 생각한 잘못이 컸다.
“빌 클린턴이 이리 쪼잔한 사람일지 몰랐네. 그만한 자금을 풀었으면 그냥 넘겨도 될 건데. 어쩐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다 두통을 일으킨다. 탄탄대로로 쭉쭉 뻗어 나갈 줄 알았던 상황이 이상하게 틀어져 버리니,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미국으로 넘어가 빌 클린턴을 만난다 하여 당면한 문제가 바로 풀릴 일은 없기에 어떤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하였다.
어떻게 풀어야 이 문제를 뒤탈 없이 깔끔하게 풀 수 있을까?
오늘따라 잘 굴러가지 않는 짱구를 열심히 돌려봤다.
“빌 클린턴의 재선은 이뤄지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다음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문제가 있고. 시간도 오래 걸려. 어쩐다.”
빌 클린턴은 이번을 기점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고, 다음 대는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이 당선된다.
경제 대통령이라 스스로를 내세우던 최악의 대통령.
이건 이거고.
음...
좀 더 가까운 미래를 생각해 보자.
“분명 그가 혹할만한 뭔가 있을 터인데. 생각이 날 것도 같고.”
다음으로 넘어간 생각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원하는 것, 그가 하려던 정책과 방향을 현시점과 맞춰 생각을 해봤다.
It's the economy, stupid!!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Buy one, get ont free~
하나를 사면 하나가 공짜~
그가 내세운 슬로건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아주 좋은 생각이 날 것도 같다.
키워드는 경제, 하나를 사면 하나가 공짜.
1+1정책.
“그리고 뭐가 있었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생각들이 서서히 정답으로 향하는 길로 안내한다.
헤매던 미로 속에 탈출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클린턴 재단 설립.
-의료보장법 실패.
어, 잠깐. 그래!
생각났다.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선출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부분.
그건 공약으로 내세웠던 의료보장법이다.
하지만, 이건 복잡한 법문과 여러 사고들로 국민적 지지의 동력을 잃은 빌 클린턴은 보수파의 조직적인 반대에 부딪혀 해당 법안은 부결돼 없던 걸로 되어 버렸다.
“돈이야, 매년 내는 기부금의 성격을 뒤틀면 KJ그룹 입장에서도 큰 무리가 따르지 않을 거야. 그의 잃어버린 지지율을 해결할 수 있겠지. 물론, 이런다 해서 그의 지지기반이 되돌아오지는 않겠지만.”
여자와의 불륜이 끊이지 않던 빌 클린턴.
그가 이번 일을 해결한다 하여 역사는 바뀌지 않을 터다. 그리고...
“이 방법을 쓴다면 좀 더 확실해지겠지.”
끝으로 두 번째 보험을 생각해 냈다. 반년 이상을 기다기는 쉽지 않더라도 몇 달 정도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국내 부지를 다듬고 넘어올 준비를 하면 될 터이니.
“도덕적으로 좋지 않은 행동이지만, 내 뜻대로 가려면 어쩔 수 없지. 이것만큼 잘 먹히는 것도 없을 테니. 양심에 어긋나긴 하지만.”
끝으로 생각해 낸 방법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연락을 넣으세요. 급하게 의논할 이야기가 있다 하시고.”
그건 북한을 이용하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북한과 대북정책으로 수교 활동 직전에 갔다. 이는 조지 부시 행정부로 인해 중단이 되지만.
그들이 추진하는 안건을 역이용을 해보기로 하였다.
-회장님.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통화를 하고 싶어 하십니다.
계획이 어느 정도 세워질 무렵, 비서실로부터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