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북한
똑똑─
노크 소리가 작게 방 안에 퍼진다.
“들어와.”
김정일의 짧은 음성.
끼익, 경첩 소리를 내며 김정일을 닮은 뚱뚱한 몸매에 김정은이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들어왔다.
“그래, 무슨 일이냐? 여까지.”
업무 중이던 김정일은 책상에서 시선을 떼고, 문 앞에 서 있는 김정은에게 시선을 가져갔다.
얼굴에 쓰고 있던 안경을 고쳐 썼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김정은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방 안에서 보이던 살벌한 눈빛은 사라지고, 대신 불안감이 자리했다.
“말해봐.”
이번에도 김정일의 말은 짧았다.
꽉 쥐어지는 김정은의 손.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김정일의 눈에 고스란히 잡혔다.
“다음 대 후계자 자리 저한테 주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주 찰나의 고민은 뒤로 미루고, 힘겹게 입술을 떼어내 머릿속에 박혀있던 생각을 뱉어내었다.
“그게 왜 궁금한 것이냐?”
김정일은 시큰둥한 얼굴이 되어 되물었다.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고 특별한 일인가 싶어 관심을 가졌더니, 아직 언급도 한 적 없던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김정일의 안색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아버지께서 그... 형에게 일을 주셨다 들었습니다. 분명 다음 대 후계는 저로 알고 있었는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
김정은은 찔러오는 김정일의 눈빛에 말을 끝까지 잊지 못했다.
“후계자? 내가 그런 말을 한 적 있던가?”
“그, 그게 무슨...”
“나는 네게 후계자라 한 적 없다 했다.”
짧고 굵직한 한마디.
그 한마디는 매우 강력하고, 지금껏 가져온 모든 생각을 무너트리는 발언이었다.
김정은은 다가온 큰 충격에 멍청한 눈빛을 김정일에게 보내었다.
“한심한 것. 넌 학업에 충실해.”
지금 김정은의 나이는 10대 청소년.
한국 기준으로 봤을 때 아직 한참 어린 나이이다.
그리고 자신 또한 아직은 정정.
김정일은 김정은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네 형의 반만 닮거라.”
김정남은 약 5개국어 이상을 하는 걸로 알려졌으며, 제네바 대학교의 학사과정은 프랑스어로 진행되며, 입학과 졸업을 위해서는 DELF B2 이상이 필요하다. 그 외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아주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자로 알려졌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알려진 김정남.
사생아라는 장애가 있지만, 첫째이며 유능하다는 점에서 김정남은 후계자로서 부족하지 않았다.
이뿐만일까?
그의 능력은 아주 다양했으며, 해외를 장기간 돌아다닌 덕분에 눈까지 트여 있었다.
이보다 확실한 인물이 북한 내 또 누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익...”
김정은은 김정일의 강한 한마디에 자존심에 심한 스크레치가 생겼다.
그런 그의 모습에.
“한심한 것. 나가봐.”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김정일은 축객령을 내렸다. 두 눈에는 한심함으로 가득했다.
“......”
김정은은 더는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방을 나섰다. 두 주먹을 힘껏 말아쥐고서.
“휴...”
나간 아들을 바라보는 김정일의 얼굴에 수심이 짙게 드리워졌다.
애초에 정실부인에게서 아들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의 시선은 잠시 바깥으로 향하다, 이내 다시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이로 향했다.
***
쿵! 쿵!
북한과 마주하는 삼팔선 경계를 일부 헐은 개성.
노후된 철로를 회수하고, 새로운 철로를 까는 작업이 한창이다.
개성 사리원 평양을 지나 의주까지 연결하는 이 공사는 KJ그룹과 북한의 김정남 주도하에 공사가 진행됐다.
“이렇게 남북이 힘을 모아 공사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후후, 그렇지.”
북한 개성으로 이어지는 철로를 보니 흡족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정남이 형(?)은 뻗어가는 철로를 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싱숭생숭. 복잡미묘한 얼굴.
웃고 있지만, 매우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습니까?”
“소식통에 의하면 그 조그만 게 나선 모양이야. 그의 모친이 힘을 쓰고 있어.”
최근 들려온 소식?
“똥줄이 탔는지, 후계자 자리를 달라고 한 모양이야.”
아, 그럴 수 있겠네.
“형님은 괜찮은 겁니까?”
“당장은 날 건들지 못하겠지. 아버지도 있으시고, 거기서 죽기 싫다면.”
아직 입지에서 정남이 형이 여러모로 열세다. 사생아라는 부분이 큰 약점이 되어, 첫째임에도 나이도 어린 김정은에게 밀리고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리턴.
만약, 김정은이 권력을 잡게 된다면, 북한에 들이고 있는 사업은 완전히 고꾸라지게 된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정남이 형이 다음 대 위원으로 올라서는 게 좋다.
“위원장님 반응은 어떤가요?”
“잘 모르지만, 아직은 중립을 지키는 모습이야.”
“형한테 별다른 말은 없고요?”
“뭐, 그렇지.”
음, 아무래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봐야겠다. 뇌물이라도 듬뿍 먹이자.
그러기 위해서 정남이 형한테 퍼주기식 사업을 하고 있는 거기도 하니까.
그의 실적이 올라야, 후계자의 자리를 더욱 확고하게 다질 수 있으리라.
“그보다 자원개발은 어떨 거 같아?”
화제가 변했다. 다음으로 넘어간 건 희토류 사업 건이다. 아주 중요하게 자리를 하게 될 희토류 사업.
이걸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세계의 중심기업이 될 터.
중국의 희토류는 중국 정부가 허용한 채굴 범위를 넘기지 않는 선에서 작업에 착수했다.
“중국이야 곧 들어갈 거 같은데, 북한은 좀 걸릴 거 같네요. 채굴량조차 조사되지 않았으니, 차차 준비를 해봐야죠. 철로 정리가 끝나는 대로. 그리고 이번 안건을 들고 위원장님을 만나볼까 합니다.”
중국에서 눈치를 줄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은 저들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당장 급한 건 아니니, 눈치껏 움직이자.
“보아하니 그 이유로 만나는 건 아닌 거 같고, 그걸로 얼굴도장을 찍을 참인가?”
하여튼, 눈치 하나는 기막힌 사람이다. 그냥 수재라 불리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렇죠. 제 사업을 위해서라도 형에게 힘을 좀 실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제가 또 이런 건 참 잘합니다.”
“...정말 신기한 놈이야. 뭔 생각으로 이런 위험한 짓을 하는지.”
이유가 뭐겠어?
다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지. 당신이 살아야 다음이 있으니까.
난 내 사업에 방해를 받는 걸 극도로 싫어하거든.
지금 이 사업에 5조 원에 달하는 자금이 투입됐다. 지출은 계속 늘어날 전망.
절대 가벼이 다룰 일이 아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실패로 돌아가면 타격이 좀 크다고.
“사업의 신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늘 위험을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위험을 이겨내면 딸려오는 과실은 참 달죠.”
인생은 늘 리스크를 달고 산다. 리스크가 없는 인생은 재미가 없다.
“정말 모를 일이야. 정말 날 후계자에 앉힐 생각으로 그러는 거라면 적당히 해두는 게 좋아. 내가 자네를 배신할 수 있으니 말이야.”
“후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죠. 당장 생각한다고 뭐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 마음대로 하게.”
내가 김 위원장의 첫째 아들을 형이라 부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크크.
여튼 저 사람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 사람의 정이란 게 그렇다. 사이코패스 같은 규격 외 인물은 제외하고 사람들은 정에 약하다.
아무리 싸워도 지겨워도 원수 같아도 정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에게 계속 빚을 주어, 나에 대한 정을 키워볼 참이다.
“한데 왜 저곳은 넓게 해놨지? 저곳이 가장 좋은 위치로 보이는데?”
개성공단역이 생길 주변의 땅을 싹 비웠다. 그곳을 제외하고 다른 곳들은 공장 부지를 위해 대단위 공사에 들어간 상황.
“저곳은 시내로 조성할 겁니다. 상가도 만들고 여러 오락 시설을 만들 참입니다.”
첫 번째 계획, 한국의 문화를 개성공단에 안착시킬 참이다. 물론, 완전히 넘기는 건 아니고, 북한 정부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그러면서 야금야금 한국문화를 북한에 전파하는 것.
이것이 내 주된 계획 중 하나이다.
“음...”
“너무 걱정마세요. 북한 정서에 맞게 시작할 거니까요. 걸리는 부분들이 있다면 형이 편한 대로 조정하셔도 됩니다. 위원장님이 불편하게 받아들이거나, 약점이 될만한 요소는 최대한 없애야 하니까요.”
속마음과 다른 말을 했지만, 확실한 나의 방향성은 전달했으리라 봤다.
“그러지.”
역시 북한의 정서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번 배팅 성공할 거 같다.
***
“오빠, 정말 그러기야? 우리 한 팀 아니었어?”
E육성 본사로 이부영이 발걸음을 하였다. 그녀의 얼굴에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내 말 잘 들어. 절대 매제를 적으로 돌리지 마. 그냥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
이재진은 지난 시간 매제에 대한 두려움을 깊게 느꼈다. 그가 언급한 투자처와 아닌 곳을 분류해 지켜본 바 놀라운 결과로 나타났다.
투자처로 알아본 곳 대부분이 큰 위기에 빠져 경영위기에 빠졌다.
그중 매제가 뽑아준 기업은 뚜렷한 성적은 보이지 못하나,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하마터면 30억이 아니라 배에 해당하는 손실을 내어 큰 위기에 빠질 뻔하였다.
“오빠!”
이부영은 그런 오빠의 모습에 실망을 느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디서 목소리를 높여. 정 불만이 있고 매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혼자서 해. 난 빠질 테니.”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 반면 매제가 내민 손은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지분정리도 깔끔하고, 앞으로 걸어갈 미래가 매우 밝게 다가왔다.
즉, 후계자 자리에 큰 걸림돌이 사라지니 마음마저 편안해졌다.
“정말 왜 이래?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바뀔 수 있는 거야? 지금 후계자로 낙점됐다고 이러는 거야?”
“마음대로 생각해.”
“지금 오빠 자리가 안전해 보여? 아빠가 가진 지분을 KJ에 넘기면, 오빠는 닭 쫓던 개가 될 거란 걸 몰라?”
이부영은 다급하다. 그녀도 잘 안다. 막냇동생이 가지고 있던 지분을 깔끔하게 정리한 걸.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자신들을 대하는 것과 막냇동생을 대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노라면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말조심해. 다시 말하지만 나와 너희들과 관련 짓지 마. 그리고 난 분명 경고했어. 괜한 일로 윤희와 매제의 기분을 상하게 해, 나에게까지 피해가 온다면 절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거야. 그때는 너에게 갈 백화점 지분을 KJ로 넘길 거야.”
지금 아주 중요한 시기에 있다. 이번 일이 성공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사소한 가족들 문제로 방해를 받고 싶은 생각은 일절 없었다.
만약, 가족으로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리면, 그때는 동생이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이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도 아주 잘 아는 것이다.
그리되면 진짜 자신에게 떨어질 육성은 1도 없어진다는 걸.
그리고 자신의 오빠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다른 재벌 가문에 비해 가족 간의 사이가 좋더라도, 틀어지는 건 한순간.
약자는 결코 보호를 받지 못한다.
“할 말 끝났으면 가봐. 그리고 윤희에게 잘해. 이건 경고가 아니라 조언이야. 소영이에게도 허튼짓하지 말라 전하고.”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손을 저어 이부영을 내보냈다.
“휴, 정말 이상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이재진은 내보낸 동생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쓰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기를 잠시.
그의 시선은 책상 위에 있는 종이로 집중됐다.
두 동공에는 곧 네 글자에 집중됐다.
-스마트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