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오늘의 이슈는 서서제조
축 서서제조 개업을 축하합니다.
-KJ그룹 김정수 회장.
번창을 기원합니다.
-김보균 정지예.
서서제조 출입구 주변으로 화환과 화분이 세워져 있다. 수는 별거 아니었지만, 화환을 보낸 이의 이름을 보면 무게감이 달랐다.
“누나, 보여? 이 화환들이.”
서승원은 세워진 화환에 적힌 회사명과 이름을 보며 입가를 길게 찢어 미소를 만들었다.
단 한 번도 어려움이란 걸 모르고 살던 때보다 지금 이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고 뿌듯하게 다가왔다.
“다행이야. 정말로.”
사업을 시작한다 했을 때,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2억의 자금이면 적절한 투자처를 찾아 묶어 두기만 해도 몇 년 뒤면 100%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기에 투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었다.
KJ그룹과 연관된 곳 한 군데만 잡아도 10년 뒤면 몇 배에 해당하는 수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동생의 ‘꿈’에 차마 반대를 하지 못했다. 5천에 해당하는 빚을 갚고, 2천 정도를 주식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모두 동생 사업에 돈을 쏟아부었다.
중소기업청을 찾아 사업에 관련된 지원을 받아 작게나마 사업장을 설립할 수 있었다.
“예전의 아빠가 운영하던 때보다 더더 좋은 기업으로 만들 거야. 사회에 환원도 할 수 있는 그런 기업으로.”
KJ그룹만큼 크게 키우기는 힘들겠지만, 롤모델을 KJ그룹을 삼아 목표로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하였다.
“넌 잘할 거야.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오늘따라 씩씩한 서효린이다. 서효린도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하였다. 그녀는 승원의 두 손을 잡고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들 오기 전에 저기에 테이블 깔고 준비하자.”
앞쪽에 작은 공터가 있다. 그곳에 오늘 있을 개업식을 위한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
“개업식 하나 보네요. 축하해요.”
“어린 사람이 대단하네.”
뒤늦게 문을 연 사람들이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그래요.”
인사를 건넨 이들의 얼굴을 보니 예의상 건넨 인사말로 보였다. 그들은 합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화환을 본체만체 물 흐르듯 지나갔다.
만약, 화환에 적힌 이름들을 봤다면 기겁했을지 모를 일이나, 아무도 화환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부웅.
그때 들려오는 자동차 엔진음 소리. 따닥따닥 붙어 고급세단이 마당 주변을 가득 채웠다.
“엇, 왔나 보다.”
서승원은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낭패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아직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어쩌지. 이거.”
“일단 가서 맞이하자. 천막이라도 쳐서 그곳에 쉬게 하고.”
서효린은 동생의 손을 잡아끌어 차량이 도착한 장소로 향했다.
나름 판단이 빠른 서효린이다.
***
“우리가 빨리 왔나 보네요. 좀 늦게 올 걸 그랬나.”
차량에서 내려 보이는 풍경에 너무 빨리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있어 부담으로 작용할지 몰랐다.
엄마의 서둘러 가자는 말에 서두르기는 했는데...
“얘는. 저 둘이서 뭘 어떻게 준비를 하겠어. 우리가 도와야지.”
뒤에서 내리는 엄마의 목소리.
서두르자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회장님 오셨어요. 이모, 이모부 안녕하세요.”
“안, 녕하세요.”
여러 번 접한 승원이 형은 큰 부담 없이 인사를 했고, 앞서 달려오던 효린 누나는 어색한 얼굴로 쭈뼛 서 있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아. 아휴, 손 좀 봐.”
엄마가 부리나케 달려가 효린누나의 손을 잡고 거칠어진 피부에 울상을 지으셨다.
안타까움이 담긴 목소리에 효린 누나는 고개를 떨궜다.
“이모,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너무 죄송해요.”
“됐어. 다 끝난 일 가지고. 이리와. 일은 남자들에게 맡기고 우린 음식이나 준비하자.”
엄마는 내게 눈치를 주고는 효린 누나를 데리고 공용으로 사용하는 걸로 보이는 수돗가로 향했다. 뒤로 수행원들이 따라붙었다. 그들의 손에는 과일과 각가지 음식들이 들려 있었다.
“뭐, 이렇게 됐으니 같이 준비하죠.”
“아니에요. 저기에 천막을 쳐두려 했으니 쉬고 있어요.”
“아니다. 우리도 돕겠다.”
“아니에요. 이모부. 쉬세요. 바쁜 걸음 하셨는데, 혼자서 가능해요.”
거참,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 보통 복수를 외치며 바닥을 기기 일쑤인데.
그래서 마음을 정한 것도 있지만. 아빠와 엄마가 좋아하시니 나도 참 좋다.
“아니에요. 일찍 온 이유도 돕기 위해 왔으니, 같이 해요. 혹시 알아요? 제 손길에 운수가 닿아 대박이 터질지.”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에 히죽 웃으며, 농 아닌 농을 던졌다. 그리고 반은 진심이기도 하다.
‘되도 않는 이상한 소문으로 회사에서 정리를 당했다지.’
뒤늦게 들은 보고였다. 내 선택 하나에 그 작은 중소기업들이 그리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 몰랐다. 일 잘하고 평가가 좋은 직원을 자를 정도라니.
당시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그 부분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그 정도의 피해를 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천막부터 치고 시작하죠.”
“......”
나를 어려워하니 가져온 목장갑을 끼고 천막 칠 장소로 이동했다.
같이 온 수행원들도 거들었다. 사람들이 많으니 모든 것이 빠르게 준비됐다.
“무사 번창을 바랍니다.”
준비가 끝나고 개업식 고사를 진행했다. 먼저 엄마와 아빠가 절하고 돼지 입에 봉투를 꽂았다. 얇지만 고액의 봉투.
듣기로 봉투당 천만 원씩 들어가 있는 걸로 안다.
“성공을 기원합니다.”
부모님이 천만 원씩 2천만 원을 넣으셨다.
그렇다면.
부모님보다 자식 된 입장에서 적게 낼 수 없다.
8천만 원을 봉투에 넣어 1억을 맞췄다.
인원은 별로지만 속은 알찬 고사다.
웅성웅성.
그때였다. 주변이 소란스럽다. 시선을 돌려 떠들썩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맞네. KJ그룹 회장이.”
“허메... 어떻게 된 일이래?!”
“저 화환을 보라고. 떡하니 KJ라고 써있는 거.”
사람들이 모여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제야 무슨 일로 사람들이 모였는지 알겠다. 공단에서 거리가 떨어진 장소라 할지라도 주변에 영세 사업장이 제법 되었다.
그곳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이 소란스러움에 나와, 몰려있던 우리를 보다 나를 알아본 모양이다.
“어쩌죠?”
승원이 형의 곤란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모두 다 같이 먹자꾸나. 이 음식들을 우리끼리 먹기에 너무 많지 않니.”
엄마가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인자함과 배려 만큼은 천사보다 더 천사다우시다. 교회를 가면 돈 내야 복 받는다 하지만, 엄마는 아낌없이 퍼주고 싶어 하신다.
“효린아, 가서 사람들 모셔와라. 자리도 넉넉하니 다 같이 먹으면 좋겠다.”
뭐 별수 있나? 이것이 엄마의 성정인 것을.
재벌 아들의 어버이가 되셔도 성품은 한 점 바뀌지 않으셨다.
오히려 더욱 고귀한 성품으로 바뀌셨다.
끽─
음, 외제차 한 대가 길가에 멈췄다.
“오빠, 어머님, 아버님. 정말 죄송해요. 오는 길에 길을 잃어서.”
윤희였다. 워낙 시골 같은 구석에 있어 오는 게 늦은 모양이다. 하기야 여기서도 지도 보며 올 정도였으니, 서울에서 학교를 마치고 오는 길이니 오죽할까.
“안녕하세요.”
“결혼 축하해요.”
윤희를 처음 본 승원이 형과 효린 누나가 다가가 윤희를 맞이한다.
한 줄기 빛을 보는 둘의 모습에 뿌듯한 미소가 쓱 올라왔다.
“오빠, 저도 왔어요.”
그러고 보니 이윤희 옆에 영희가 보인다. 길을 헷갈린 것도 있지만 영희와 함께 오느라 좀 더 늦었나 보다.
“그래, 잘 왔다. 인사는 천천히 하고. 일단 사람들 모으자.”
“사람들?”
내 말에 윤희와 영희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본다.
“저 음식을 우리끼리 다 먹기 힘들다는 어마마마께옵서 저기 계신 분들을 모두 이리로 모시라 하신다. 가죠.”
“어, 응.”
효린 누나와 승원이 형을 데리고 사람들에게 향했다.
“모두 시간 괜찮으면 다 같이 드시죠. 다 같이 먹어야 음식도 맛이 있지 않겠어요. 거기도 그냥 보고 계시지 말고 이리 오세요.”
우리는 여기저기 뛰어다녀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싹싹 긁어모았다. 어느덧 모이게 된 사람들은 약 50여 명.
이제 좀 개업식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50여 명의 사업들은 모두 절을 하며 서서제조의 번창을 기원하며 돼지머리에 1만 원권 지폐를 꽂았다.
돼지는 어느덧 지폐들로 꽃단장을 하며 웃는 얼굴로 바뀌어 갔다.
“허허, 서서제조 사장님이 설마 KJ그룹의 사촌일 줄이야.”
“내 말이. 조만간 크게 될 회사고만.”
몇몇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 잔 드시죠. 서 대표님.”
“제 잔도 부탁합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내가 아닌 승원이 형에게 술을 권하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나에게 다가오기에는 눈치가 보이나, 승원이 형은 다른가 보다.
“감사합니다. 제 잔도 받으세요.”
지난 시간 회사를 다니며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많이 배운 모습.
절로 뿌듯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건 비단 나만이 아닌 모양이다.
“승원이가 많이 성장했구나.”
“그러게요.”
엄마와 아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욱 좋아하는 모습이시다.
이 모습이 평생 가셨음 좋겠다.
“녀석.”
끝으로 영희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나만 평생 좋아할 것처럼 보이던 녀석의 눈빛이 묘하다.
인간사 모를 일이라 하더니. 어디 연결고리를 만들어 줘볼까?
생각하며 조용한 시선으로 지켜봤다.
18시 30분.
“모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뒷정리도 도와주시고. 꼭 보답하겠습니다.”
승원이 형의 인사와 함께 개업식은 끝났다. 모두 자리로 돌아가고, 이제 남은 건 우리 식구와 영희뿐이다.
“영희야, 오늘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와라.”
슬슬 복귀하려던 시간, 영희를 슬쩍 밀었다.
“네? 제가요?”
“힘들게 차린 음식들이야. 하고 와.”
이 정도면 되리라 봤다. 운명이면 이어질 터이고 아니면 각자의 인연이 있는 거겠지.
영희는 주춤주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승원이 형에게 다가갔다.
멀리서 보는 내가 다 화끈거리며 오글거린다. 부끄러워하던 녀석이 다가가자 하하호호 웃으며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좋은 징조인지도.
“그럼, 우린 갑니다.”
18시 50분.
우리 일행은 서서제조를 벗어났다. 줄지어 도로로 진입하는 차량들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아, 취한다.
***
“도련님. 이대로 보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이쪽으로 넘어오려던 후계자 자리가 김정남 도련님 진영으로 넘어갈 위험이 큽니다.”
북한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김정은이 거주하는 건물로 군복을 입은 중년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그간 해외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던 김정남의 행보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자새끼를 누가 도련님이라 부르라 했나요?”
김정은의 눈이 도끼눈으로 변했다. 그의 눈에 진한 살심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죄, 죄송합니다.”
“용서를...”
김정남을 도련님이라 부른 이들에 대해 호통을 친 김정은은 바로 고개를 숙이는 이들을 보며 경고했다.
“다시 한 번 내 앞에서 그 새끼를 나와 같은 호칭으로 부른다면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모두 차렷 자세로 고개를 45도 올려 그의 경고를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시죠?”
모두가 알아들은 눈치이자, 김정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집무실에 계십니다.”
김정은의 발걸음이 김정일이 있는 집무실로 옮겨졌다. 중년인들은 허리를 쭉 펴고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