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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재벌 강림하다-111화 (111/145)

111화

#체질 개선

서승원은 딱히 지인이 없다. 학교에 다니며 사귀던 지인들은 집이 망한 이후 연락를 피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멀어졌다.

그중에 여자친구도 있었다. 긴 시간을 사귀었음에도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며 놓아달라는 이별 통보에 헤어졌다.

그때의 슬픔과 충격은 아직도 생생히 머릿속에 각인돼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확 주저앉았다.

누나를 제외한 모든 여자는 사치스럽고 남자를 이용해 등골을 빨아먹는 기생충쯤으로 여기게 됐다.

“......”

그래도 지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괜찮을까...?!”

시야로 들어오는 넓고 큰 저택.

동네에서 가장 크고 화려함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최고 재벌이 귀거하는 대저택.

모든 담벼락이 대리석으로 치장돼 재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지인이라 말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꿀꺽.

KJ그룹 김정수 회장과 그의 부친과 모친.

서승원에게는 사촌이 되고, 이모부와 이모가 된다.

서승원은 갈팡질팡한 마음으로 저택 앞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늘 여기서 발을 돌리게 됐다.

“아냐. 반성하고 그간의 잘못을 사죄하기로 했잖아. 들어가자.”

결심은 늘 거대한 저택 앞에서 가로막혔지만, 오늘만큼은 다르다.

주먹에 힘을 꽉 쥐고 결연한 표정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딩동─

초인종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벼락이라도 떨어진 표정이 서승원의 얼굴에 맺혀 떠나질 않았다.

“오셨습니까.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끼익 문이 열리며 경비원이 나왔다.

“네?”

경비원의 행동이 이상하다. 마치 올 걸 알고 있었는지, 거리낌 없이 길을 내주었다.

“지금 별관에 계십니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어버버버.”

서승원은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싶어 경비원과 별관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저택 주변에는 CCTV가 상시 가동 중입니다. 몇 번이고 이곳에 들르셨다 가신 걸 다 알고 계십니다.”

아...

얼굴이 붉어졌다. 뜨겁다. 부끄럽다.

그제야 주변에 깔린 CCTV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게 시야로 들어왔다.

그간 모두 지켜보고 있었음을 깨닫자 당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강하게 들었다.

저벅저벅.

부끄러운 마음과는 별개로 걸음은 별관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본능처럼, 한 발짝 두 발짝 천천히 움직였다.

“이모, 이모부...”

별관에 들어설 찰나, 두 사람이 두 동공에 들어왔다. 엄마의 언니인 정지예. 그리고 이모부 김보균.

털썩.

서승원은 두 사람을 본 순간, 멈춰 선 자리에 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머리를 바닥으로 향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좀 더 일찍 와서 부모님의 잘못을 사죄드리고 싶었는데... 너무 무섭고 겁이 나고 죄스러워 발을 들이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모, 이모부.”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서승원은 그동안 지내오며 느껴왔던 죄스러움을 털기라도 하듯 눈물을 쏟아내며 부모님의 지난 과오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승원아, 일어나. 이게 뭐 하는 짓이야.”

“... 커흠.”

서승원의 행동에 정지예가 화들짝 놀라 달려와 서승원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는 김보균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지켜봤다.

진즉 알고 있던 소식에 마음의 준비를 몇 번 해봤지만, 역시 이런 상황은 낯간지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김보균은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다행히 아내가 먼저 나서는 모습에 안도했다.

“이모... 전... 그러니까...”

“인석아. 됐어. 됐으니까, 다 용서하고 이해하니까, 그만 일어나.”

정지예는 눈가를 적시며 무릎까지 꿇고 사죄하는 서승원을 나무랐다.

그만 일어나 얼굴을 들라고, 모든 걸 용서했고 잊었으니 그만하라고.

몇 번이고 말하며 서승원을 달랬다. 그리고 얼굴을 끌어안고 지난날 있었던 아팠던 일들을 떠올렸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때의 기억들을.

“정수 엄마 이만 들어가지. 승원이도 출출할 터인데.”

한참을 바라보던 김보균은 지예를 불러 눈치를 주었다.

“아, 아니에요. 이모부. 전 누나랑 먹으면 돼요.”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한 서승원은 고개를 좌우로 급히 털어 보이며 손을 내저었다.

“효린이도 왔어?”

“아뇨. 그게. 실은...”

서승원은 지난날 일들을 간단히 설명하고 앞으로 그가 무엇을 하며 살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이곳에 들린 두 번째 이유를 말했다.

“그래서 개업을 하게 됐는데,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와 주셨음 해서...”

“가야지. 우리가 안 가면 누가 또 간다고. 축하해. 정말 고생했어.”

정지혜가 눈물로 젖은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어떤 소식보다 가장 값진 소식이라 생각했다. 마음에 크게 자리를 잡았던 돌덩이가 이제야 쑥 내려가는 기분이다.

늘 마음이 쓰였는데, 전보다 더욱 좋아진 그의 분위기에 기뻤고, 앞날을 개척해 가는 모습에 두 번 기뻤다.

“잘했다.”

김보균도 새로이 성장한 서승원의 모습에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매몰차게 등을 졌던 과거가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서승원의 부모에 대한 화였지, 그의 자녀들이 아니었다.

“꼭 갈게. 그리고 잠깐만 기다려봐.”

서승원의 두 손을 꼭 잡고 있던 지예는 서둘러 본관으로 향했다. 보균과 승원은 갑작스러운 정지예의 행동에 살짝 당황하며 뻘쭘하게 자리를 지켰다.

“생활에 불편함은 없고?”

정지예가 자리를 뜬 공백의 시간.

김보균이 용기 내 입술을 떼어냈다.

“네. 회장님 덕분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서승원은 그가 없음에도 ‘이름’이 아닌 회장이라 불렀다.

“...그래, 다행이구나.”

뭐라고 말하고 싶었던 보균의 눈에 씁쓸함이 더해졌다. 언제 이렇게 바뀌었는지.

그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로 하였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었다.

“개업하는 데 따로 필요한 건 없고?”

“네, 없어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정말 뜻하지 않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자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원수일 수 있으나, 서승원은 원수가 아닌 은혜로 삼았다.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그에게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만약, 그때 강하게 나서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아직도 스스로가 쓰레기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다 자멸했을 테니까.

“... 그래.”

보균의 말은 거기서 끝났다. 저 멀리서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 가득 든 보따리를 들고 걸어오는 정지예가 보였다.

“그게 다 뭔가?”

보균이 궁금해 물었다.

서승원은 설마 하는 눈빛으로 지예를 바라봤다.

“아이들 먹을 것도 그리 많지 않을 텐데, 몇 가지 챙겨 봤어요. 승원아. 이건 이모가 주는 거야. 가져가서 먹어.”

“이건...”

코로 스며드는 익숙한 시큼한 냄새가 뇌로 전달됐다.

“김치야. 알타리랑 배추김치 좀 가져왔어. 가져가서 먹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모. 집에 먹을 게...”

“가져가.”

“하지만...”

“정수 엄마. 애 혼자 저걸 다 어떻게 가져가라고 저리 쌓은 겨.”

서승원의 부담스러운 눈동자가 보따리로 향할 때, 김보균은 혀를 내둘렀다.

“차 없니?”

“...... 네.”

서승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쯧쯧.

김보균은 혀를 쯧 차고는 고개를 돌려 한 남성을 지목했다.

“미안하네만, 자네가 좀 도와줄 수 있겠나? 조카집까지 저것들 좀 운반해 주게. 사례는 섭섭하지 않게 해줌세.”

“아닙니다. 이런 일도 저희의 일 중 하나입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남자는 예의 있는 모습으로 허리를 굽히고는 보따리를 전달받았다.

“이모부 정말 저 괜찮아요.”

“가져가. 다 네 이모가 생각해 챙긴 건데, 뒤로 물릴 수 없지. 편하게 집까지 가져가거라.”

김보균은 따뜻한 미소를 품으며 처음으로 서승원의 등을 다독였다.

“다음엔 누나랑도 같이 오고.”

“이모부... 정말 감사합니다.”

서승원은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으로 인사를 하였다.

“명절 때도 오고.”

“네. 꼭 올게요.”

그거면 됐다. 김보균은 만족한 얼굴로 지예를 바라봤다.

“이모랑 이모부는 우리 조카들을 응원해. 개업식날 초대해줘서 고마워.”

정지예는 다시 서승원의 양손을 잡고 애정이 깊은 눈으로 바라봤다.

그 모습에 서승원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개업식날 뵈어요. 김치 맛있게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서승원은 돌아갔다. 진한 김치 냄새를 남기고.

“저 죄송한데 KJ 본사에 들를 수 있을까요.”

저택을 나서는 차량, 안에 자리한 서승원은 조심스레 물었다. 백미러로 기사의 눈과 마주쳤다.

움찔, 마주친 순간 부담 100배로 온몸을 내리눌렀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KJ사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는 가벼이 웃으며 좌측으로 틀던 핸들을 브레이크를 잡으며 우측으로 틀어 방향을 꺾었다.

휴...

다음으로 향한 곳은 KJ그룹 본사 빌딩.

차량은 지하주차장에 세워졌다.

“이곳만 오면 숨이 턱 막히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최고층을 누르고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긴장한 몸을 풀고 떨리는 정신을 잡고 발끝에 힘을 주었다.

절대 겁먹지 말자를 연신 외치며, ‘띵!’ 소리에 맞춰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사전에 소식을 들었는지, 엘리베이터 앞에 직원이 대기해 있었다.

“잠시 여기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지금 회장님께서 회의 중이시라 마치는 대로 회장실로 모시겠습니다.”

“아, 네.”

여직원의 말에 사전에 연락을 해보고 올 걸 그랬나 깊게 후회를 하였다.

사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건 무척 실례되는 행동이었다.

째깍째깍. 분침이 5에서 6으로, 6에서 7로 넘어갔다.

어느덧 시간은 30분 정도가 흘렀다.

“그건 그렇게들 하시고, 이 실장님은 빠른 시일 내 투자를 마무리 지으세요.”

기다린 지 35분이 지나던 때, 기다려온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여직원이 그러지 않았나? 직접 온다고.

꾹 참고 기다렸다.

“회장님께서 방으로 모시랍니다.”

기다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수의 목소리가 흐려질 즘, 여직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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