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귀국
쉬이이─
모든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김정남은 태국에서 좀 더 머물다 북한으로 돌아가겠다 말했다.
나름 양심적인 양반인 듯, 카드는 다른 데 사용하지 않고 식비로만 사용했다.
“다녀왔습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귀국 후 장인어른 댁을 방문했다. 두 손 가득히 들고 온 태국을 여행하며 준비한 선물 꾸러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허허, 우리 새신랑 왔는가.”
“호호, 어서 와요. 사위. 그런데 이건 뭔가요?”
장인어른이 두 팔을 벌려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장모님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입가에 웃음꽃으로 가득하다.
“큰 건 아니고 태국의 왕실에서 만든다는 튜브꿀을 가져와 봤습니다. 이건 장모님. 이건 장인어른, 이건...”
쇼핑백에 들어 있는 튜브꿀을 꺼내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전달했다.
‘정말 힘들었지...’
선물을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모든 걸 가지고 접해봤을 재벌그룹의 주인 된 자가 접해보지 않았을 게 뭐가 있을까?
이 집에 들어와 육개장 사발면을 남몰래 먹는 모습은 보지 못했는데. 육개장 사발면 박스라도 사올 걸 그랬나.
장난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암튼, 그러한 과정속에서 선택한 선물이 바로 호불호 없는 튜브꿀이었다.
“고마워요. 이런 건 챙기지 않아도 되는데. 다음엔 그냥 와요.”
장모님은 끝까지 존칭을 붙여 부르신다.
“흥, 딸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거지?”
윤희의 불만이 가득 목소리에 그제야 가족들 시선이 돌아갔다.
눈가에 장난기가 가득하시다.
“잘난 사위가 오니 이제 윤희가 보이지 않네. 호호.”
“엄마!”
“얘는. 고막 나가겠다. 손주 보기 전에 고막 나갈 일 있니? 살살 얘기해. 살살.”
“......”
장모님의 장난에 윤희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만 놀려. 그러다 진짜 삐져서 시댁으로 가겠어.”
“호호. 귀여워서 그랬죠. 잘 다녀왔어?”
“됐습니다. 이 못난 딸은 잘난 사위의 칭찬만으로 참으로 감동이옵니다.”
단단히 삐졌다.
“그만하고 인사 올리자.”
“힝, 진짜 내가 오빠만 아니었어도.”
“후후.”
“큼.”
그래도 제법 화목한 가정이다.
뒤에서 서 있는 두 자매를 제외하고는.
시샘이 가득한 눈빛이 콕콕 피부를 찔렀다.
“사위는 잠시 나 좀 보지.”
인사를 마치고 장인어른이 독대를 요청했다.
“네.”
분위기를 잡는 걸 보니, 중요한 이야기가 있을 걸로 짐작이 되었다.
“재진이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윤희에게 있던 지분들을 재진이에게 처분을 했다고.”
“네.”
“음.”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씀을 드리지만, 윤희를 가문의 지분싸움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육성전자 지분 1%는 장인어른과 이어진 연결고리로 남겼습니다. 전 이재진 부회장... 아니 죄송합니다. 형님이 다음 대로 적합하다 봅니다.”
사실 이건 나도 잘 모른다. 그저 큰 파이를 나눠 먹으면 모두가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더 강할 뿐.
만약 장인어른이 10년 더 젊었다면 육성전자는 더욱 큰 기업으로 바뀌었을까?
“음... 솔직히 난 윤희에게 지분을 넘기고 KJ와 함께 커갈 수 있도록 유도할 셈이었네. 그런데 재진이가 그러더군. 전자 1%만 남기고 윤희에게 주었던 지분을 전부 인수했다고.”
“......음.”
역시 그랬나?
그것만큼 좋은 방향도 없으리라. 그리되면 철수한 컴퓨터 사업을 새로이 꾸려나갈 동력을 얻게 되는 거니까.
“전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육성전자는 초창기부터 시작해 급격히 덩치를 키워온 기업입니다. 이제는 쉴 때도 되었다 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 뭣하지만, 형님은 E육성을 성공시키는 데 실패할 겁니다.”
씁쓸하지만, 미래는 말한다.
실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음... 그렇게 보는 이유가 뭔가?”
“일단 설립 시기부터 문제입니다. 후발주자라 리스크도 큰 상황에 곧 닥칠 파도를 인지하지 못하고 나섰습니다.”
“큰 파도?!”
“그렇습니다. 지금 시장은 연일 긴장하고 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를 IT 거품을요. 꿈과 목표는 장대하나, 실패할 겁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며 미래였다.
게다가 공정위원회에서 일감 몰아주기와 내부거래 등 경고까지 받아 경영은 상당히 위축되고 끝내 접게 된다.
“이 내가 도와줘도 말인가?”
“장인어른께서 제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지 모르나, 도와줘도 힘듭니다. 우리나라는 계속해서 체질이 바뀌고 개선이 되는 과정에서 공정위원회에서 강한 압력을 행사할 겁니다.”
“마치 미래를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를 하는군.”
뜨끔했지만.
“미래가 아닌 시장의 움직임이 그렇습니다.”
침착하게 넘겼다.
“그럼 이를 극복할 방법이나 아니지, 자네의 눈을 보면 대책이 보이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미워도 자식이다. 비록 여러 사건을 일으켜 밖으로 내보냈지만. 어떻게 무시하며 살겠나?
후계자 문제도 걸려있고.
아마 형님의 성공에 대한 마음이 절실할 것이다.
불편하게 바라보던 두 눈동자가 이제는 애처롭게 변했다.
‘도와줘도 되는가?’
생각을 해봤다. 이로 인해 벌어질 뒷일까지 생각을 해보자면 음...
역시 그게 좋겠다.
“직접적인 도움을 드리지 못하지만, 해결방법은 제시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하나, 여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된다면 E육성은 상당히 힘들어질 겁니다.”
돈도 많은 회사이니, 할 건 많다.
“경청하겠네.”
“음, 죄송하지만 형님도 함께 대화를 해볼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당사자도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백날 이야기를 해도 당사자가 바뀌지 않으면 이 계획은 무용지물이다.
나는 방향을 제시하는 자. 움직이는 자는 재진이 형님이다.
“음, 그러지.”
기분이 나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넘기는 장인어른의 모습에 속으로 살포시 웃었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가는 그룹 회장, 시야가 제법 넓고 눈치가 빨랐다.
장인어른께 이런 표현을 써 조금은 죄송하다.
“부르셨어요.”
잠시 후, 재진이 형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조금은 경직된 모습.
이 방에서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나와는 입장 차이가 확연히 다르니, 장인어른을 대하는 자세도 다르리라.
“이리 앉거라.”
터벅터벅 걸어와 앉는 모습이 무척 무겁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네가 비록 학벌이 우수하고 경영자 선배 격이나, 여기 김정수 회장은 스스로의 실력을 입증해 현 자리에 앉은 사람이다.”
어라, 호칭이 바뀌었다. 그렇다는 소리는 지금 이 자리는 가족이 아닌 KJ그룹 오너 입장으로 참석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역시 장인어른.
“......”
재진이 형님의 눈동자가 쓱 날 바라본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
내 뜻을 알아챘는지 눈빛이 바뀌었다.
“네게 도움이 되는 말이니, 나쁘게 듣지 말고 귀 기울여 듣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형님이 받아들였다. 이거 괜히 떨린다.
“이야기하시게. 김 회장.”
갑자기 변한 공기로 나 자신도 조금은 얼떨떨하다.
하나, 그렇다 하여 마음이 무겁다거나 압박을 받는다는 소리가 아니다.
아무리 KJ그룹 회장 입장으로 대하는 거라지만, ‘가족’이고 윤희의 오빠다.
조금은 조심할 필요가 있기에 대화의 강도를 어느 정도로 맞춰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된다.
“이야기에 앞서 대표님께 드릴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KJ그룹 회장.
재진이 형님은 E육성의 대표.
이제 이 자리는 가족이 아닌 기업 간 대화다.
“말 하시죠.”
“제가 하는 말은 무조건 지켜져야 하며, 따라 주셔야 합니다. 만약, 이야기 도중 내키지 않는다면 이곳을 나가 주세요.”
역시 매운맛이 최고.
유하게 할 수 있겠지만, 가족이라 하여 유하게 나가지 않기로 하였다.
이번의 충격이 형님의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
내 한마디에 분위기는 무겁게 내려앉았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을 거다.
“들어보고 결정하지요.”
“E육성을 살리고 싶다면 제 의견을 100% 수용해 주셔야 합니다.”
지금 E육성의 손실은 천천히 쌓여갔다.
이 손실을 더 쌓아 나가 역사대로 흐를지, 반대로 내 의견을 받아들여 역사와 반대된 방향으로 향할지.
이건 전적으로 형님의 선택에 달렸다.
“음...”
“생각할 시간을 드리지요.”
사이가 틀어질 각오로 고압적으로 나갔다.
1분, 5분.
방 안은 조용하다. 장인어른은 형님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얼굴에는 못마땅함이 가득하다.
“좋습니다. 무조건 따르지요.”
“좋은 선택입니다. 그럼, 말씀드리지요.”
알아본바 E육성의 손실은 현재 30억. 아직 초기라 큰 손실은 없었다.
또한 뚜렷한 실적을 내는 기업도 없는 상태.
“첫째 욕심을 버리세요. 욕심은 상황과 환경에 맞게 그리고 능력에 맞게 부리심이 좋습니다. 지금의 E육성은 절대 네트워크 마켓이나 구글 마이크로처럼 될 수 없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전부 내 회사이며, 주가는 초대박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E육성의 노림수가 여기에 있다. 조금만 성장을 한다면 비싼 상속세를 낼 필요도 없이 지분을 사들여 승계를 이어갈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다.
그리고 경영자로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수 있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의 입장에서는 꼭 성공을 해야 하는 사업이 된 것이다.
“둘째, 제가 언급한 회사를 제외한 다른 곳은 일절 투자를 하지 마세요. 만약 한 곳이 있다면 손절하세요. 크라듀, 미라콤아이앤씨, 시큐아이만 투자를 하세요. 그리고 KJ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받아 신규 핸드폰 개발에 들어가세요. 그걸 KJ에서 대리점을 꾸려 판매토록 하겠습니다.”
KJ는 핸드폰을 개발하지 않겠다 말했지, 특허를 내지 않겠다 말하지 않았다. 난 이를 육성에 제공해 특허료를 받을 거다.
이왕 하는 거 퍼주기식 도움이 아닌,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을 짰다.
손정의 회장이 일본에 아이폰을 최초로 판매하면서 큰 수익을 받듯이.
이와 같은 방향으로 도움을 줄까 한다.
“이게 중요합니다. 이건 회장님께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비자금 없애세요. 그리고 모든 걸 투명하게 관리를 하셔야 노후가 편하실 겁니다. 계열사 협력사 간 일감 몰아주기를 중지하고, 부당지원을 없애세요. 이렇게만 한다면 육성에 닥칠 위협은 사라지고 큰 손실 없이 크진 않더라도 미래가치가 있는 기업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겁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끝입니다. 이것이 제가 제시할 수 있는 모든 것들입니다.”
“......”
“......”
두 사람은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형님과 장인어른이 어떤 심정일지 모르나, 난 할 만큼 했다.
이제 둘이 알아서 내가 제시한 대로 움직여 줄 일만 남았다.
“그리고 이제 와 말하는데, 육성그룹의 거래은행을 한일은행에서 베어링스 은행으로 변경해 주셨음 합니다. 제 조언의 가치가 적어도 이보다 못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이득이 되는 부분을 가져왔다.
어안이 벙벙한 방 안은 나만이 얼굴에 미소를 품었다.
***
며칠이 지난 시간. 육성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부적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는 모양으로 보였다.
“으아... 미치겠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장시간 쌓인 서류는 다른 곳에 정신을 두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철도투자비, 개성공단으로 흘러갈 자금 등의 결재 뭉치들이 눈을 뻐근하게 만들었다.
₩ 130,000,000,000원(금 일천삼백억 원)
₩ 2,000,000,000,000원(금 이조 원)
......
승인 김정수
잠깐 사이에 13장에 달하는 문서에 대한 결재를 끝냈다. 결재한 종이만 약 13조 원의 가치.
이젠 1조 따위 돈으로 보이지 않았다.
으자자자!
욱신거리는 손목을 턴 뒤, 양팔을 위로 올려 허리를 꼿꼿하게 쭈욱 펴 뒤로 젖혀 당겼다.
뻑뻑하던 몸이 조금은 풀어졌다.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는 게 좋겠어.”
푹 쉬다 돌아와 단번에 많은 일을 처리했더니, 몸이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이런 날은 적당히 일하고 집에서 쉬면서 적응기를 거치는 게 장기적으로나, 건강상 좋았다.
“저, 퇴근합니다.”
시간은 4시.
회장의 특권은 자유로이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점.
고로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내일부터 다시 파이팅하기로 하였다.
오늘 일은 내일의 내게 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