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변하는 대한민국 세계 무대에 오르다
한국은 빠르게 변화를 맞이해 갔다. 제약, 전자, 건설, IT, 운송 등 KJ그룹의 주도 아래 빠르게 자리가 잡혀갔다.
‘완제품은 대한민국에서 만들어라.’
이 말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 되었다. 인텔과 같은 곳을 제하면 대부분의 완제품이 한국에서 이뤄졌다.
그러한 상황 속에 KJ그룹은 또 하나의 전설이 되어 국민들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철도청의 만년 적자 문제 해결이 가능할까? KJ그룹에서 철도청 인수작업에 착수했다. 업계는 이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나, KJ그룹만큼 탁월한 주인이 없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김정수 회장, 철도청 운영에 대한 공식 언급.
“KJ그룹은 철도청의 문제 중 하나를 해결했습니다. 인수 시 로템과 통합하여 하나 된 기업으로 운영될 것이며, 만년 적자 사업을 북한, 중국, 러시아 진출과 혁신적인 운영으로 적자 폭을 줄여나갈 예정입니다. 종국에는 철도청은 적자를 면하고 세계에서 인정하는 세계적인 철도기업으로...”
김정수 회장의 폭탄 발언은 로템 투자자를 흥분케 하였다.
-로템 주가 상한가 찍다!! 설립 이후 처음으로 로템이 상한가를 찍으며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높아져 갔다.
“이거 정말 대박 아니야? KJ가 로템에 이어 철도청을 받아들여 합병하면, 어휴.”
“정부에서 운영하는 것보다 훨 안정적이지. KJ가 망하면 세계가 망하는 거야.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KJ그룹이 어떤 기업인가?
인텔 직원 수 20만 명.
베어링스 그룹 1만 5천여 명.
마이크로 소프트 8만여 명.
KJ전자 50만 명.
KJ자동차 7만여 명.
등등...
도합 약 100만 명이 넘어서는 기업이 바로 KJ그룹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치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KJ가 파산을 하면 세계 1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백수가 된다.
그런 날이 온다면 세계는 큰 몸살을 앓게 되리라.
“이번에 로템에 올인 때렸다.”
그때 남자가 기습적인 발언을 하였다.
“뭐?! 그거 너무 위험한 거 아냐?! 아직 확정도 아니잖아?! 그러다 아니면 어쩌려고 그래.”
친구는 뜨악한 얼굴로 우려를 표했다.
“너 그게 안 될 걸로 보이냐? KJ라고. KJ. 정부가 개짓을 해도 KJ 못 당해. 그리고 나 말고도 때려 박은 큰손들 널렸다. 그거 망하면 정부 X되는 거야.”
“나도 그럴까?”
“대출만 아니면 돼. 그냥 있는 돈 박아 넣어. 저금해서 언제 집 살래?”
“좋아. 까짓거 나도 올인이다! X발!”
남자는 친구의 자신감에 마음이 확 넘어갔다. 결혼자금으로 모아온 2천만 원을 모두 로템에 붓기로.
***
“나 어때요?”
“잘 어울린다.”
예쁘네.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이건요?”
“그것도 괜찮네.”
그리고 잘록한 허리라인.
“이건?!”
“... 좋아.”
쇄골 밑으로 보이는 가슴골.
“이것도 봐줘요.”
“잘 어울려.”
하지만, 이런 감성도 슬슬 한계에 당도했다.
“짠!”
“......”
3시간째 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이제 곧 4시간이 되어간다.
그 드레스가 그 드레스.
큰 차이점을 보이는 건, 어깨가 보이고 안 보이고, 다리가 보이고 안 보이고.
노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런 것들을 반복적으로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며 패션쇼를 선보인다.
“이제 골랐어?”
다시 30분이 지난 시점. 결연한 표정으로 나오는 이윤희 얼굴에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다른 데 가봐요.”
“......”
이 여자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유명 디자이너들이 운영하는 샵을 전전하며 드레스, 티파니 등을 입고 쓰며 3차전에 돌입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내 개인 일정을 포기해야 할 거 같다.
“축하합니다.”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이제 KJ도 곧 후계자를 들이겠습니다. 껄껄.”
6월 24일 10시.
결혼식 날이 되었다. 드레스는 무려 일주일에 걸쳐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내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 당일을 마주했다.
-육성그룹.
-엔지그룹.
-한진그룹.
-대진그룹.
-버크셔 헤더웨이.
-알리바바.
-청와대.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김정일.
-JP모건.
-시티그룹.
-모건스탠리.
-......
요란하지 않게 가까운 사람들만을 꾸려 결혼식을 하려던 계획은 아주 보기 좋게 어긋나 버렸다.
세계 각국의 유명한 경제계 사람들이 들이닥쳤고, 각국의 정부 사람들도 결혼식에 참여를 하였다.
“자연스러운 포즈 부탁드립니다.”
“정말 멋지십니다.”
찰칵찰칵.
심지어 각국의 언론사들까지 식장에 난입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 축하의 표현을 해주었다.
“축하드립니다.”
“오빠, 결혼 축하해요! 결혼했다고 저 잊으면 안 돼요! 알았죠!”
이호영 실장과 영희가 찾아왔다. 오늘은 둘 다 옷차림에 상당히 힘을 주었다.
딱 봐도 고급원단으로 만든 슈트를 차려입은 이호영 실장.
가슴부터 허리라인을 강조하는 짧은 원피스를 입은 이영희.
오늘 처음 알았다. 몸매가 참 좋다.
볼을 부풀리며 말하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그럴 리가 있나? 언제 든 연락해. 맛난 거 사줄게. 실장님도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저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사진 많이 찍어드릴게요!”
영희가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씩 웃고는 이 실장을 따라 식장으로 들어갔다.
우글우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었다.
-하객분들께 알려드립니다. 곧 예식이 시작될 예정이오니, 모두 자리에 착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후 예식을 알리는 멘트가 들려왔다. 바깥에 대기해 삼삼오오 모여 대기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홀 안으로 들어섰다.
엄마와 장모님이 우아한 한복차림으로 중앙을 걸어 단상 위에 있는 초에 불을 지폈다.
아름다운 불꽃이 가로로 이어졌다.
짝짝,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홀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멀찍이서 두 분을 바라봤다.
이제야 좀 실감이 난다.
“신랑 입장!”
내 인생의 변곡점에 자리했다. 사회자의 외침에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의 박수 속에 내 걸음은 어느 때보다 당당했다.
“신부 입장!”
단상 아래에 서서 등을 돌려 신부의 모습을 바라봤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장인어른의 손을 잡고 천천히 들어서는 천사가 눈동자로 들어왔다.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워지는 그녀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감사합니다.”
“내 딸을 잘 부탁합세.”
장인어른의 손 위에 얹어진 하얗고 작은 손이 내 손 위로 옮겨졌다.
눈빛을 잠시 마주했다.
“갈까.”
“네.”
윤희가 살포시 웃는다. 행복에 물든 모습. 이제 이 행복을 지켜줄 의무가 나에게 생겼다.
2000년 6월 25일.
나는 품절남이 되었다.
***
쉬이이─
신혼여행은 태국으로 9박 10일을 떠났다.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해변을 감상하며 취하기도 하였다. 잠들 시간이 될 때면 바다를 등지고 우린 하나가 되었다.
그러한 뜻깊은 시간 속에.
“오빠, 저 사람 낯익지 않아요?”
예상치도 못한 인물을 만났다. 두 여자와 어린아이를 사이에 두고 걷는 뚱뚱한 남자.
“김정남?!”
그랬다. 그는 다름 아닌 김정남이었다.
언론에 자주 등장해 잘 알려진 얼굴이기에 윤희가 알아본 모양이다.
하하. 이런 행운이 다 있나.
지금껏 찾아 헤매던 인물을 태국에서 만났다.
“아, 맞다. 김정남! 헐...”
아무리 육성가의 핏줄이어도 김정남의 출연은 충격적인가 보다.
그것보다 이대로 놓칠 수 없다.
이건 하늘이 내게 주신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윤희야, 미안한 부탁 하나만 하자.”
“오빠, 설마... 아니죠?”
신혼여행까지 와 신혼 외 다른 일을 하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언제 또 이런 자연스러운 만남이 찾아오게 될지 모른다.
“저들과 식사 자리를 가지자.”
북한에 공사를 하고 있는 만큼 나름 명분도 섰다.
불안감으로 가득한 윤희의 어깨를 꼭 잡고 눈을 마주했다.
“휴... 정말 오빠를 누가 말려요. 이건 분명히 아셔야 돼요. 나니까 이해하고 오빠를 따르는 거지, 다른 여자였으면 신혼여행 와서 각방 썼을 거예요.”
아주 잘 안다. 반대된 상황이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윤희의 미간이 살짝 들썩이나 싶은 순간.
“가요.”
윤희가 내 손을 잡고 김정남의 가족이 있는 장소로 이끌었다.
너란 여자.
‘매력적이야. 고맙다. 이해해줘서.’
앞으로 잘해야겠다.
“실례합니다.”
세 걸음을 남겨두고 김정남 일행을 불렀다.
“......”
“......”
등을 지고 걷던 김정남의 고개가 뒤로 돌아간 순간, 볼 수 있었다.
경계심이 가득한 그의 눈빛을.
“먼저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전 KJ그룹 김정수라 합니다. 이쪽은 제 아내인 이윤희입니다. 괜찮으면 같이 식사 자리를 가지고 싶은데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
그럼에도 경계심을 쉽게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순수한 호기심과 신혼여행을 와 우연히 만나게 되어 실례를 무릅썼습니다.”
정중히 사죄했다.
“그 유명한 분이 맞군요. 결혼을 했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설마, 이곳에 보게 될 줄은. 좀 당황스럽군요.”
잠자코 있던 그의 입이 떨어졌다. 얼굴 표정과 달리 목소리는 꽤 침착했다.
“한데, 내게 무슨 이유에서 식사를 제안하는 겁니까?”
사람은 역시 유명하고 볼 일이다. 기업이 명함이 되어 그의 경계심을 한풀 꺾게 만들었다.
“잘 아실 겁니다. 한국에서 북한을 뚫고 중국까지 철도를 연결하는 사실을.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나와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말은 저리하지만, 바뀐 얼굴로 보이는 모습은 전혀 반대된 얼굴이다.
그렇다면 큰 거 한 방을 날려주면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 봤다.
“없다면 만들면 되는 거 아닙니까? 꼭 이 이야기 아닐지라도 김정남 씨에게 그간 호기심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혹시 압니까? 제가 김정남 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지 말입니다.”
나는 봤다. 변화하는 그의 모습을.
“그게 무슨 의미십니까?”
“또 모를 일 아닙니까? 북한공사 관계자가 김정남 씨가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봤습니다.”
“잠시만.”
김정남은 내 이야기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시선을 가족에게 돌렸다. 거리를 좀 떨어트려 둘에게 무어라 말하는 모습.
두 여성은 김정남의 목소리에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여자는 여자들끼리 나누라 하고 남자끼리 자리를 가졌음 하는데, 어떻습니까?”
음.
“윤희야, 어때?”
“오빠의 아내가 정말 저라서 다행이네요.”
끙...
“다음 날은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들어줄게.”
“그 말 잊으면 안 돼요. 뒤에 경호원 아저씨들도 있고. 큰 위험은 없을 거 같으니까. 전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내가 이래 보여도 내조는 잘할 자신 있다고요.”
가슴을 활짝 열어 자신감을 내비치는 윤희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아무리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아직은 사회 초년생.
부담스러울 터인데, 참으로 고마운 여자다.
“고마워. 잠깐이면 돼.”
“고마운 줄 알면 앞으로 나 잘 챙겨요.”
“그래.”
윤희의 도움으로.
“그럼, 제가 머무는 호텔로 가시죠.‘
김정남과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