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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재벌 강림하다-105화 (105/145)

105화

#도움과 기회

철컥, 턱.

문이 열렸다 조용히 닫힌다.

“......”

뻘쭘히 서 있는 그림자가 바닥 아래로 길게 늘어졌다.

시선을 들어선 이, 서승원에게 가져갔다.

“오랜만입니다.”

“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음? 음...

뭘까? 이 어색함과 새로움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굳이 호칭에 대한 문제는 뒤로 미루자.

승원이 형과 나 사이에 벌어진 거리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운데 두꺼운 성벽 몇 개는 있는 상황.

“큼. 그게...”

확실히 많이 변했다. 예전의 그가 아님이 목소리 자체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편히 말하세요. 그때 일은 많이 흐려졌으니까.”

조금은 긴장의 끈을 낮춰주자.

“실은... 휴. 지난 일은 죄송했습니다. 부모님의 일은 대신 사죄를 드립니다. 진즉 사죄를 드렸어야 했는데. 이 말을 드리러 왔습니다.”

“......”

얼굴 표정은 그게 아닌데. 허벅지 위에 올린 두 주먹도 그렇고.

이게 무슨 일일까?

그게 아닐 터인데.

확실히 달라졌다.

“받아드리죠.”

“감사합니다. 이제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음...

거참. 이건 이것대로 골치다.

아무래도.

“아뇨. 일어나지 마세요. 아직 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그냥 나서야겠다.

사정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마지막 양심은 남아 있는 모양이다.

“부담 갖지 말아요.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니까요.”

“......”

눈치를 보며 다시 자리에 앉는 승원이 형.

조금은 적응이 안 된다.

곰팡이 슨 감정이 심장에 머무른다. 그닥 좋지 않다.

“눈을 보면 알아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그게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세요. 정말 필요한 말을.”

이 정도 환경을 조성해 줬다면, 충분히 눈치를 챘으리라.

내가 직접 언급을 할까 하다가 그건 또 아니라는 사실에 일단 꾹 눌러 참았다.

“... 도... 와주세요. 회장님. 도와주세요. 부탁입니다. 누나가 아픕니다. 도와준다면 이번에 받은 은혜 꼭 갚겠습니다. 부탁입니다.”

“......”

가족이란 무엇일까. 그래 이게 가족이다. 이용하기 위한 수단과 이익을 좇는 관계가 아닌! 나를 희생해 돕고 싶은 사람.

이것이 내가 원하는 가족이요, 인간관계다.

어긋남이 아닌, 지금처럼 행동을 했다면 서로에게 어떤 상처도 남지 않았을 터.

“그 말 진심입니까?”

“네. 무일푼으로 이용해도 좋습니다. 누나만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정말이에요.”

마음을 울리는 진실의 목소리.

난 저 모습을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좋아요. 도와드리죠. 대신 방금 내게 한 말은 지켜야 할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큭.”

바닥으로 떨어지는 투명한 액체.

눈물을 보는 건 그때 이후로 처음이다.

그리고 그의 눈물에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변했다’

이제 승원이 형은 예전의 그 양아치가 아닌, 진정한 사람으로 거듭났다.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내 마음이 움직여 도움을 드리는 거뿐이니, 내게 한 말만 지키세요.”

“꼭 갚겠습니다.”

“이제 나가보세요. 밖으로 나가면 이 실장님이 대기해 있을 겁니다. 그분이 주는 걸 가져가세요.”

그래, 잘한 선택이다.

엄마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방금 전 그 사죄. 시간 되면 저택에 들러 엄마와 아빠에게 사죄를 드리세요. 가장 큰 상처를 받으신 두 분입니다.”

이모와 이모부는 몰라도 바뀐 둘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다. 가족의 핏줄로 이어질 기회를.

이제 집이 평온하길 바란다.

***

띵!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회장실로 들어가던 때, 머릿속으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후회도 하였다.

‘괜히 왔어. 좋게 맞이해 줄 리 없을 건데...’

과거에 보인 못난 모습들.

머릿속으로 스쳐 가는 과거를 들춰보면 너무도 부끄러운 행동들을 많이 했다.

인간쓰레기라며 깎아내리던 자신.

알고 보니 쓰레기는 눈동자에 비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문이 열린다. 앞서 걷는 남자가 뭐라 뭐라 하는데, 솔직히 잘 들리지도 않았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만이 머릿속을 두들겼다.

“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전에는 동생이었던 그.

이제는 쉽게 쳐다볼 사람이 아니게 됐다.

아, 어떤 욕이 날아와도 달게 먹자. 주먹이 오면 좋게 받아들이자. 그것이 내가 짊어질 업보이리라.

“... 진즉 사죄를 드렸어야 했는데. 이 말을 드리러 왔습니다.”

라고 생각을 하며 머리 숙여 사죄를 하였다. 지난 시간을 깊게 반성을 하며.

그래, 이게 맞다. 도움을 바라지 말자.

“그럼 전 이만...”

일어나려 하였는데.

“... 아직 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흘러가는 분위기가 이상하다. 이게 아닌데. 생각을 하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대로 무너졌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도와주세요.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큭.”

정수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 나를 잡았던 거다.

창피하다. 부끄럽다. 미안하다. 고마웠다.

“나가보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동생이지만, 거대한 거인으로 보였다. 동시에 싣고 다니던 버거운 짐이 이제야 가벼워지며 크게 안도가 되었다.

문을 열고 회장실을 나섰다.

“이건 회장님께서 내린 지시입니다. 현금 2억이 든 통장과 현금카드입니다. 그리고 이건 베어링스 은행에서 발급한 한도 무제한 VIP카드로, 병원비는 이걸로 하시고 현금은 빚을 갚는 데 활용하시라 하셨습니다. 생활비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

“이제 반듯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 고맙습니다.”

2억 원과 무제한 한도의 블랙카드.

그것도 세계 금융회사라 불리는 베어링스 은행에서 발행된 로얄카드다.

세계 0.01%에게만 지급된다는 그 카드가 손에 쥐어졌다.

손이 떨린다. 끝난 줄 알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몇 번이고 고맙다며,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였다.

“아... 정말 착하게 살자. 정말로.”

심해로 빠지던 어둠에 태양이 비쳐 들어온다. 희망이란 이름으로.

위축된 마음을 다시 한 번 활짝 펴게 만들었다.

“누나 퇴원 축하해.”

그리고 보름이 지난 날.

누나는 무사히 퇴원을 하였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

“음, ...”

카드사용 리스트.

- ₩0.

카드를 사용한 흔적이 없다. 사용하라고 특별히 내줬는데, 단 1원도 사용하지를 않았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자존심에 카드를 가위로 잘랐나?

아니면 분실이라도 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호의로 줬다지만, 아무에게 지급되는 카드가 아닙니다. 그리고 현금 2억을 챙겨줬으니 크게 사용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장 KJ그룹 계열사에 투자만 하더라도 배당금을 받고 지내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겁니다.”

음, 이건 맞는 소리.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니, 재테크로 눈을 돌릴 법도 하다.

사람은 마음의 여유에 따라 생각의 넓이와 깊이가 달라진다.

승원이 형이 당장은 별 볼 일 없이 살아도 당당히 수능을 보고 국내에서 들으면 알법한 대학에 입학했던 인물.

옛 영광을 찾고자 한다면 재테크만 한 것도 없다.

“알아서 하겠죠. 그건 그쯤 하도록 하고. 철도청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죠.”

다 큰 성인이고 이제 제 앞가림을 하니, 크게 신경 쓰지 말자.

우리의 대화는 철도청 이야기로 넘어갔다.

***

2000년 8월.

철도청에 대한 감사팀이 만들어져, 기습적으로 감사에 들어갔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날.

“이런, 연락이라도 미리 해줬다면 좀 좋았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이리 드시지요.”

철도청은 초비상에 걸렸다. 대표는 후다닥 나와 감사팀 사람들을 맞이해 시선 돌리기에 나섰다.

“놀러 온 게 아닙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이니,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회계자료부터 시작해 처리결과보고 자료들 가져오세요.”

조금은 강압적인 목소리. 철도청 대표와 분명한 선을 그었다.

건설교통위원회 사람들에게 특명이 떨어졌다.

‘잡을 수 있는 모든 걸 잡아라.’

이 뜻은 확실한 명분을 잡아, 철도청을 압박하겠다는 의미였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그러지 마시고 이쪽으로...”

“한 번 더 그러시면 대표님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30분 내 준비 바랍니다.”

“... 알겠습니다.”

오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철도청 대표는 밖으로 직원들을 소집해 자료준비를 할 것을 주문했다.

철도청 직원들은 준비된 건들이 없어 혼란을 겪었지만, 그렇다고 또 가만히 넋을 놓고 있을 수 없기에 허겁지겁 자료들을 찾아 꺼냈다.

“......”

30분이 아닌 1시간 반 정도가 다 되어서야 우여곡절 끝에 자료를 준비할 수 있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 보지 않나요? 이건 우리가 몇 번이고 찾아와 언급한 상황들입니다. 한데 이 중에 지켜진 게 단 하나도 없습니다.”

위법부당, 법령정비, 예산조치, 일반정책 등과 관련 부분들이 단 1%도 손을 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만성적자 재무구조의 개선 방안, 철도 관련 시설물들에 대한 안전성 확보방안과 부실공사방지.

철도구조개혁에서 발생할 문제에 대한 대책 등 그 어떤 것도 내놓은 답이 없었다.

철도청에 방문해 자료를 검토한 지 2시간.

감사를 진행할수록 긴 한숨과 짜증 섞인 말들이 메아리쳤다.

“이용실적이 저조한 철도회원들의 정리, 철도회원제도의 운영개선방안도 나와 있지 않고. 대구복합화물터미널도 그렇고. 주한미군이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철도부지 유상화 등등 그 어떠한 것도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네요. 회계는 말할 것도 없고. 대체 그동안 뭘 하고 계신 겁니까?”

감사가 나올 때면 몇 번이고 지적해오던 사항들이나, 제대로 이행하거나 고친 것들이 단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다.

회계는 기대도 안 했지만, 작년 대비 매출은 올랐지만 이익 부분은 말도 안 되게 떨어졌다.

“그게 어디 하루아침에 뚝 하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시간을 좀 달라지 않았습니까. 고속철도 개통 문제도 있고, 화물터미널은 사업주관업체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 국방부에서 예산이 없다는 걸 저희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철도청 대표는 억울한 울상을 지었다. 하나, 눈빛은 절대 오늘 일을 잊지 않겠다는 독사의 눈을 하고 있었다.

“이 부분이 위에 올라가면 어떻게 될 거라 보십니까? 지금 대표님 말이 먹힐 거라 보세요? 지금 이 자료들을 보면 대표님의 무능함밖에 보이지 않아요. 대체 그 자리에 앉아 뭐 하는 겁니까? 월급을 빨아먹는 사람도 아니고 말입니다.”

끝에 ‘기생충’이란 말을 쓸까 하다 간신히 누락했다.

아무리 대놓고 까기 위한 일이라 하지만, 말에는 분명 적정선이 존재했다.

절대 약점이 잡힐 만한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

건설교통위원회 감사팀은 이번에 확실히 꼬투리를 잡고 철도청을 크게 흔들 참이다.

“곧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립니다. 세계가 우리나라를 주목하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말입니다. 그때도 시간이 없고, 그때는 또 월드컵이라 공사를 미뤘다 말할 건가요?”

남자는 끊임없이 철도청을 공격했다.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표현이 목소리에 고스란히 실렸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한 달 내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각오를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볼 것이 없다는 듯, 테이블 위에 준비된 서류들을 내팽개치고 대표실을 나섰다.

“......”

철도청 대표는 한 번 제대로 휘젓고 간 건설교통위원회 감사팀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 절망감이 실린 어두운 표정이 얹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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