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서승원
“누나!”
서승원이 식당 안으로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네에?!”
바닥에 쓰려져 있는 누나를 보며 승원은 물었다. 두 눈동자가 두려움에 급격히 흔들린다. 촉촉하게 젖어가는 두 눈 위로 눈물방울이 맺혔다.
“나도 몰라. 갑자기 홱 쓰러지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어휴. 아직도 내 심장이 벌렁거리네.”
사장은 가슴 위로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였다. 정말 놀랐는지, 손끝이 잘게 떨렸다.
“환자분 어디 계세요?!”
말하던 사이 또다시 문이 열리며 소방대원들이 들것을 가져왔다.
둘이 대화는 끊겼다.
“저희 누나 괜찮은 거죠? 네?”
승원의 신경은 사장에서 구급대원으로 옮겨졌다.
“그건 가봐야 알 거 같아요. 쓰러진 지 얼마나 됐어요?”
승원의 물음에 간단히 대답하고 질문을 이었다.
“이제 9분 10분 정도 된 거 같은데.”
“알겠습니다. 혹시 보호자 되시나요?”
“네. 제가 동생이에요!”
대원의 목소리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타세요.”
간단한 응급처치를 한 후 들것에 실어 응급 차량에 실었다. 승원은 그들 뒤를 따라 안에 탑승했다.
“음... 혹시 환자분 중간에 어떤 증상들은 없었습니까? 가령 두통이라든가. 시야가 나빠졌다거나?!”
의사가 진단을 하며 넌지시 물었다.
“......”
승원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너무 피곤해서 밥맛이 없다. 먼저 잘게.
-피곤해서 그런가 머리가 좀 아프네.
-눈이 잘 안 보여서 안경 샀어. 렌즈는 관리도 불편하고.
의사에 말에 승원은 입을 다물었다. 최근 들어 확실히 바뀐 부분이 있었다.
그 시기가...
‘내가 정리해고를 당하고부터야...’
-난 식당에서 잘 먹잖아. 너 먹어.
-오늘 좀 늦어. 먼저 밥 먹어.
식사량도 확 줄었다. 쉬는 날 같이 식사한 적도 극히 드물었다.
마치 어린 시절 엄마의 모습을 보는 듯한 행동들이었다.
승원은 그때를 떠올려 고개를 힘겹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정확한 건 진단을 받아봐야 압니다만, 음. 정확한 건 MRI와 혈관 조영술을 찍어봐야 알 거 같습니다.”
“!”
고급장비의 명칭이 나오자 승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네.”
하나 이내 체념했다.
미래를 위하여 조금씩 모아두었던 종잣돈.
누나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서승원 급한 발걸음으로 창구로 향했다.
“......”
접수를 마치고 기다린 지 1시간 정도 흘렀다.
끼익, 문이 열렸다.
“보호자분... 이쪽으로.”
밖으로 나온 의사의 표정이 좋지 못하다.
꿀꺽. 승원은 불안한 눈을 하고서 의사의 뒤를 따랐다.
“여기 보이는 뇌동맥 영상을 보시면 아지랑이처럼 보이시죠. 모야모야병의 특징입니다. 소아에게는 뇌경색으로 올 수 있으나, 성인에게는 뇌졸중으로 발병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크게 발전하지 않은 상태라 다행입니다.”
“... 서, 선생님. 우리 누나 살 수 있는 건가요?!”
“완치는 힘듭니다. 그저 완화해주는 정도가 다입니다.”
“아......”
절망적이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그것들을 혼자 감당하기에 지금은...
하...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니 눈앞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완화되면 지금보다 나아지는 거요?”
“네. 단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고, 환자에게 무리한 운동과 스트레스는 좋지 못합니다. 늘 안정을 취하게 해주시고, 특히 여름엔 수분공급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되도록 추운 곳은 피하시길 바랍니다.”
“.....”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란 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네...”
“입원 수속 밟으시고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한 달간 지켜봅시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승원은 눈을 질끈 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
병실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누나를 내려봤다. 지금 보니 전보다 마른 모습에 얼굴이 무척 피곤해 보인다.
“잘 치료 받아. 돈은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게.”
누나에게 말한 건 아니다. 스스로에게 말하고 답을 구한 것이다.
한동안 병실에 머무르다, 이내 결심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대출이 어려우세요. 직업도 없으시고.”
1금융을 찾았다. 하나, 보기 좋게 까였다.
“죄송합니다. 대출이 어려울 거 같습니다.”
2금융도 거절을 당했다.
“100만 원이 한도인데, 받으실래요?”
“... 네.”
이거라도 받아야 했다. 수중에 있는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500만 원 나왔습니다. 잘 쓰시고 잘 갚기 바랍니다. 요기서 10%는 우리가 가져가는 돈. 아시죠?”
“......”
부족한 돈을 사금융에까지 손을 벌려 얻었다.
10% 떼여 450만 원.
사기라는 걸 알지만, 다른 방법이 없기에 최대한으로 당겼다.
가족을 잃는 것보다 나으리라 봤다.
‘일용직이라도 하면 어떻게든...’
떨리는 가슴을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누나 일어났어?”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 반.
서효린은 입원 후 하루가 다 지난 밤에 눈을 떴다. 약물치료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도 아니면 푹 쉬어서 그런지 전보다 혈색이 많이 좋아졌다.
“병원비 많이 나왔지? 나 이제 괜찮은 거 같아. 퇴원할래.”
아무리 말괄량이로 지냈지만, 효린도 배운 여자.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지 충분히 짐작이 되었기에 서둘러 퇴원 수속을 밟고자 하였다.
“아냐, 그냥 쉬어. 수술이 아니라서 병원비는 크게 나오지 않았어. 좀만 더 쉬었다 퇴원하자.”
“하지만...”
전보다 마음이 많이 약해진 효린이다. 효린은 동생의 눈빛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지만, 눈이 말해준다.
더는 물어보지 말고 뜻대로 해달라고.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나오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자신으로 인하여 다시 뒤로 가야 한다 생각하니.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사람들이 말하는 자업자득, 벌인가 보다.
“그럼 난 중간정산하고 회사에 다녀올게.”
“몸조심해.”
승원은 병실을 나와 창구로 향했다.
“150만 원이에요.”
중간정산금 150만 원.
한 달 일해도 벌기 힘든 돈이 한순간에 나갔다.
“하아...”
전세대출에 신용대출, 4금융에 매달 나가는 돈이 70만 원가량.
병원비가 점점 목을 졸라왔다.
“하... 어떻게 하면 좋지.”
노가다라도 하면 이자를 갚을 수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그 일자리조차 좀처럼 구하기 쉽지 않았다.
일도 꾸준하지 않고, 오히려 일을 쉴 때가 더 많다.
-KJ그룹에서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김정수 회장은 안산과 일산 신도시개발을 발표하며...
“......김정수.”
어느 건물에서 뉴스가 들려왔다.
승원은 힘없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방송이 들려오는 장소로 시선을 가져갔다.
“......”
벽 모서리 상단에 설치되어있는 TV 화면에서 정수의 모습이 비쳤다.
당당하고 여유 있는 모습.
몇 년 전 모습과 너무도 판이하게 바뀐 정수의 모습은 소싯적 자신이 꿈꿔온 모습이기도 하였다.
“도와줄까?”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최악의 장소이기도 하였고.
당장 다음 달 병원비도 문제이고. 이자 내기도 버겁다.
자칫 전세 보증금을 빼고 다시 반지하로 가야 할 수 있었다.
누나에게 있어 가장 좋지 못한 환경.
“.....”
갈팡질팡 고민하던 두 눈동자에 결심이 섰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향하던 발걸음은 옆으로 돌려 KJ빌딩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
“안산 고잔신도시 일대에 30평형 아파트가 2400세대, 일산에 24평형 1500세대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안산은 수도권에 비해 부동산이 저렴한 반면, 일산은 매매가가 상당히 높게 책정되어 있어 안산은 비교적 큰 평수로, 일산을 보통 평수로 아파트 건설을 추진했다.
“대만은 어때요?”
“1차 공사는 내년 봄에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걸로 보이고, 한인타운과 호텔은 2003년에 완공될 예정입니다.”
“북한은?”
“북한은 내달부터 착공예정이고, 한진 미래 대진그룹과 일정을 맞춰 기초작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지금은 포장도로 작업에 한창입니다.”
드디어 북한개성공단 착공준비에 들어갔다. 삼팔선 철조망 일부를 자르고 철로 공사도 한창.
북한에서는 노후된 철로를 뚫고 표준궤로 맞바꾸고 있다.
“모두 수고가 많으십니다. 좀만 더 힘내서 전설을 만들어 봅시다. 세계에 KJ그룹의 위상을 알릴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감사의 뜻으로 올해는 모든 계열사에 연봉의 60% 인센티브를 지급하겠습니다.”
사람을 더욱 열심히 움직이게 하는 동력원은 역시 돈이다. KJ그룹에 연일 호재가 뜨니, 보상으로 전 직원에게 역대급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로 하였다.
‘이제 철도청 감사 이후만 기다리면 되려나?’
철도청의 악재로 남았던 로템을 인수했다. 철도청을 인수해 적자 폭을 메꾸고 세계로의 여행을 계획해 보자.
“이만 회의는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회의를 끝냈다. 회의는 무척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회장님.”
밖으로 향하자, 이 실장이 다가온다.
“서승원 씨가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서승원이 찾아왔다고?
음.
“아무래도 그 일 때문이겠죠?”
“그런 걸로 보입니다. 정보원에 이르면 사금융까지 손을 대 대출 빚이 상당한 걸로 보입니다.”
최근 서효린의 소식을 들었다. 그 문제에 대해 고심을 하다 뒤로 미뤄왔는데.
한계에 봉착한 걸로 보였다.
“이제는 만나줘도 되겠지요.”
서승원과 서효린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들려온 소식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말은 지난 과거를 차츰 잊게 만들었다.
게으르고 개념 없던 모습들이 상당 부분 희석됐다.
“회장실로 들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지금 서승원은 1층에 있을 터.
올라오는 동안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자.
***
안절부절.
용기를 내 찾아온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괜히 찾아온 건 아니겠지...”
기다린 지 1시간이 됐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그저 기다리라는 말만을 남기고 올라간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찾아온 걸 후회했다.
“나라도 만나주지 않겠지... 그동안 저지른 짓이 있는데...”
아빠의 잘못은 무척 크다.
엄마의 잘못도 마찬가지.
그리고 누나와 자신은 그의 가족들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어려운 사정 따위 쳐다보지도 않았다.
크게 아쉬운 것도 없기에 가족이되 가족이 아닌,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내왔다.
그런 행동들을 보여왔는데, 도움을 줘?!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도움을 줄 정도라면, 진즉 도움을 줬으리라.
저벅저벅.
“응?!”
안절부절 손을 꼼지락거리며 그냥 갈지 고민하던 때, 검은색 그림자가 햇빛을 가렸다.
바닥이 검게 변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와 같이 위로 가시죠.”
“네?!”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가려고 있던 중,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만나준다고 하던가요?”
“사적인 면을 빼시고 회장님을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네.”
남자는 무뚝뚝한 어조로 조금은 강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그보다 정수가 만나주겠다는 사실에 그런 생각은 깔끔히 지워졌다.
속으로 몇 번이고 반복적이고 기도하며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