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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재벌 강림하다-103화 (103/145)

103화

#새 출발

“걱정하지 마. 그럴 일은 없으니까. 그러니 섣불리 나설 생각하지 마.”

이재진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그룹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지리라.

‘마이너스의 손’ 오명을 벗어나겠다.

“하지만, 아빠 눈빛 못 봤어? 막내에게 다 줄 눈빛이었다고!”

“맞아! 이러다 유산까지 넘길 기세야.”

언니인 이부영의 목소리에 이소영이 나서서 불만을 드러냈다.

잘 나가는 KJ그룹의 안주인으로 들어가는 것도 부러울 지경인데, 재산까지 막냇동생에게 넘어간다면 평생을 괴로움 속에 지내리라.

그건 절대 있어서 안 될 일이었다.

그간 육성의 그늘 아래 원하는 건 다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재산이 윤희에게 넘어간다면 공주로서 살아온 삶은 종지부를 찍고 돈 많은 평민으로 살아야 했다.

“다시 경고하는데, 만약 괜히 나섰다 아빠 눈 밖에 나는 일을 만든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알았어?”

이재진이 믿는 건 E육성.

반드시 이번 사업을 일으켜 경영자로서 인정을 받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

“일정은 그리하는 걸로 하고. 축하한다. 축하하네. 사위.”

“고마워요. 아빠.”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이거 괜히 쑥스러운 호칭이다.

하하하.

내 반응이 웃겼는지 자리는 웃음으로 흥건히 젖어갔다. 반달이 이제 하늘 중천으로 떠오른 밤.

잔잔한 노랫소리에 맞춰 우리의 심장도 세차게 뛰었다.

‘그런데 저들은 언제 욕심을 벗어던지려나. 윤희는 육성지분에 관심도 없던데.’

그러던 중 남몰래 윤희를 쏙 빼놓고 저들끼리 속닥이는 장면을 목도했다.

거리는 멀었지만, 입 모양만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네.’

많은 기억들을 공유하면서 저도 모르게 얻어걸린 능력.

웃고 떠들고 대화를 하면서도 한쪽 뇌로 다른 사람의 대화를 듣고 기억할 수 있게 됐다.

한 번에 두세 가지의 일을 처리하는 게 가능하다는 의미다.

나란 놈 정말 천재가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더 이상 큰 문제가 생기지 않게 육성에 관련된 지분구조를 정리하는 게 좋겠어.’

가장 무서운 게 핏줄의 재산 싸움이다.

그런 더러운 꼴을 보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정리하는 게 좋으리라 봤다.

“윤희야, 우리 잠깐 이야기하자. 자리 좀.”

“?”

부모님과 장인이 대화하는 자리, 조용히 윤희를 불러 이재진 남매가 있는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에요?”

입을 다물고 따라오던 윤희가 자리에서 적당히 멀어지자, 입술을 뗐다.

“내가 끼어들 문제는 아니지만, 너를 위해서 조금 참견을 해야 할 거 같아. 불편해도 들어줘.”

“... 뭔데 그래요? 말해 봐요. 뭐든 괜찮으니까.”

참 착한 여자다.

“나랑 결혼하면 넌 KJ의 안사람이 돼. 세계가 인정하는 그룹의 사람이 되는 거야.”

내 입이 이런 말을 하려니 쑥스럽지만, 다음 말을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했다.

“네.”

“그리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여자이기도 하고.”

“......”

“난 재단과 학원법인을 너에게 줄 거야.”

“......”

“네가 말했지? 졸업하면 재단에 취직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버크셔헤드웨이와 KJ의 합작 법인재단.

400억 달러가 넘어가는 세계 최대 재단 기업.

그리고 40억 달러 규모의 학교법인.

이 모든 걸 윤희에게 넘길 예정이다.

“오빠, 전 그렇게 필요 없어요. 그냥 오빠가...”

“아니, 줄 거야. 대신 조건이 있어. 너에게 있는 육성전자 지분 1%만 남겨두고 모두 가족들에게 넘기자. 아마 큰형님께 넘긴다면 좋은 값에 받을 수 있을 거야.”

어차피 육성은 이재진 전무, 즉 큰 형님이 가지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재산으로 복잡하게 싸워 이미지에 타격을 받느니, 깔끔히 털고 나오는 게 좋으리라.

1%는 장인어른의 선물인 셈 치자.

“알겠어요. 그럴게요.”

선뜻 대답을 해주는 그녀.

분명 힘든 결정이었을 터인데,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내 뜻을 받아 주었다.

에버랜드 21만여 주 8.3%, SDS 275만여 주 4.6%, 네트웍스 292만 주 2.81% 등의 복잡한 지분을 정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가치만 하더라도 약 2천억여 원.

여기서 프리미엄을 얹는다면 3천억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으리.

“여기서 사랑놀음인가? 그렇다면 아예 데리고 가 살지 그러나. 사위.”

화들짝!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껄껄. 키스라도 하려 했나 본데. 내가 방해해 미안하네.”

“......”

“......”

이거 단단히 오해를 받았다.

화통하게 웃으며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애초부터 우리를 보러 온 게 아닌 건물로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픽.

큭.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별일 아닌 거에 서로 놀라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라니.

“좀 억울한데, 진짜 할까. 키스.”

“변태...”

구름이 달을 가려주는 때, 내 입술은 조용히 다가가 윤희의 입술을 덮쳤다.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과 혀끝을 따라 신경계를 자극했다.

오늘 밤... 참으로 길 거 같다.

-육성그룹 이건호 회장, KJ그룹 김정수 회장을 사위를 받아들이다. 돌아오는 금요일 친족들끼리 모여 약혼식을 가지고 현충일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

-재계는 육성그룹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한편, 경쟁자인 미래차그룹과 엔지그룹의 부러움에 사무친 눈빛이 오간다.

-결혼식이 발표되고 육성전자의 주가가 금일 5.3% 뛰며 투자자들의 기대를 끌어안았다.

KJ그룹 기대주로 육성전자가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게 정말이야?”

이재진의 놀란 얼굴이 시야로 들어온다. 며칠 전 은밀한 대화를 하며 윤희를 압박할 것 같던 그의 눈빛이 변했다.

“난 이제 KJ 가문의 안사람이야. 육성에는 관심 없어. 난 애초부터 경영자로 들어갈 생각도 없었고.”

육성의 지분을 털기 위하여 남몰래 큰형님을 만났다. 윤희는 분명한 어조로 확고한 뜻을 내비쳤다.

“윤희는 이제 재단과 학원을 맡게 될 겁니다. 물론, 기초적인 업무이해와 적응 기간을 거쳐 두 법인을 이끌 겁니다. 육성지분은 KJ에서 가지고 있는 걸로 충분하리라 봅니다.”

내가 윤희보고 육성지분을 처리하라고 한 이유.

KJ가 가진 지분과 윤희가 가진 지분을 합하면 육성 입장에서, 특히 후계자로 내정돼있는 이재진에게 있어 위협으로 다가올 터.

괜한 피로도를 올리기보다 최대한 서로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랐다.

“음...”

갑작스러운 사태에 적응을 못 하는 모습.

그도 당연하리라. 윤희도 사람인 이상 야심이 없다고 보기 어려웠으니까.

한데, 육성에 관련된 모든 지분을 내놓는다 하니, 그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와르르 무너지리라.

“대신 좋은 값에 쳐주심 좋겠습니다.”

“이 사실을 아버지도 아시나?”

형님의 말투가 하대로 바뀌었으나, 이는 정상적인 현상이기에 크게 불쾌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뇨. 하나, 이해는 하리라 봅니다. 육성전자 1%는 최소한의 연결고리로 남겨났으니. 수긍하고 넘어가리라 봅니다.”

“나보다 우리 아버지를 잘 아는 눈치야.”

“눈칫밥으로 이 자리에 오른 사람이 눈치는 잘 챙기고 살아야지요. 그래서 금액은 어떻게 해주실 겁니까?”

장인어른은 윤희에게 뭐라도 더 해주고 싶어한다. 형제들에게는 많은 걸 주었지만, 막내인 윤희에게는 제대로 된 선물(?)을 주지 못하였기에 애정은 다른 남매보다 더하다.

하나, KJ재단과 학원법인을 윤희에게 넘긴다 말한다면?

분명 좋아하리라 봤다.

“눈치라. 웃으라 한 말은 아니겠지. 2300억. 이 정도가 한계야.”

2300억.

동생한테 쓰는 돈치고 짜다 싶지만, 그렇다고 나쁘지 않은 금액이다.

두 배는 넘겼으니까.

“어때?”

“내가 돈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오빠 고마워.”

“이제 형님의 지분은 후계자로 자리를 다지기에 충분하리라 봅니다. 더는 윤희에게 적개심을 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크음.”

“오빠.”

윤희도 잘 알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 행동에 더 조심했을 거고.

그래서 일부러 윤희 앞에서 입을 열었다.

“전 형님을 지지할 겁니다. KJ가 보유하고 있는 육성의 지분 양을 잘 아시리라 봅니다.”

윤희가 만족했음 오케이.

이걸로 끝내자.

“조만간 집으로 식사 자리를 만들지요.”

“고맙네.”

쑥스러워하는 모습이라니.

별일이다.

이제 좀 조용히 살 수 있겠지. 두 자매님들만 빼고.

“가자.”

전자를 제외한 모든 지분을 처분했다.

여러 숙제가 남았지만, 형님을 편으로 만들었으니 윤희를 못살게 굴 이는 없으리라 봤다.

***

“아...”

털썩!

“이봐! 효린이 무슨 일이야?! 여기 응급차 불러. 어서!”

영업준비 중에 한창인 11시.

서효린이 쟁반을 놓치며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며 쓰러졌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

누가 보더라도 무척 좋지 않은 몰골이다.

사장은 깜짝 놀라 전화기를 들고 있는 직원을 불러 119를 부르라 외쳤다.

“이게 무슨 일이야. 어쩐지 오늘 상태가 좋지 않더라니. 그 누구야. 그 동생이란 사람한테도 전화해서 알려줘.”

종종 식당을 들러 같이 퇴근하는 서승원.

서효린의 핸드폰을 뒤져 서승원의 연락처를 찾아 연락을 하였다.

“여기 XX식당인데요. 서승원 씨 되시죠...”

***

“......”

회사에서 정리된 지도 한 달이 훨씬 넘었다. 그 기간 동안 경력을 살려 보려 했지만, 아무도 뽑아주지를 않았다.

“큭.....”

무슨 일을 하고자 하면 아빠의 이야기가 오갔고, 엄마의 언니인 KJ그룹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력서에 거짓 정보를 넣어도 등본에서 걸렸다.

“정말 살길이 없는 걸까?”

-안산을 떠나라.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면, 지역으로 가야 할 거야.

사장의 말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위험부담을 안고 가기 어렵다던 사장의 목소리.

단 한 번의 어긋남이 앞길에 큰 장애로 찾아왔다.

지난날 자신이 벌인 무수한 실수들이 후회로 물밀듯 밀려왔다.

좀 더 빨리 정신을 차렸다면, 부모님의 그릇된 행동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

끝장이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

-KJ그룹 김정수 회장이 육성그룹 이건호 회장의 막내딸인 이윤희 씨와 오는 6월 마지막 주 토요일 백년가약을 맺게 됩니다. 앞으로 KJ그룹과 육성그룹의 향방이 투자자들의 ....

“정수는 결국 육성과 결혼하는구나.”

자신도 한때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있었다. 집이 갑자기 무너지지 않았다면 식을 올렸을지 몰랐다.

하지만.

‘부모님이 우리 사이 다시 생각해보래. 미안해.’

그것이 당시 여자친구의 마지막 말이자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시 바닥에 누웠다.

멍하니 천장을 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지이이─

핸드폰이 울린다.

승원의 시선이 천장에서 머리맡에 놓아둔 핸드폰으로 향했다.

-.... 서승원 씨 되시죠! 여기 식당인데 효린 씨가 쓰러졌습니다. 지금 119를 불렀는데

벌떡!

“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효린 씨가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어서 와보심이 좋을 거 같아요.

“아...”

좋지 않은 일은 몰아서 찾아온다 했던가?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상황에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서승원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5분이면 가니까, 바, 바로 가겠습니다. 누, 누나!”

신발조차 제대로 신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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