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새로움의 시작
“최근 엔지그룹에서 추가자금을 투입하여 육성을 앞지르고 18.8%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예상가는 9조 6천 정도고, 육성은 17.7% 9조 원 정도입니다. 뒤로는 국민 16.7%로 8조5천억에 세 번째로 많은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KJ는 4.2% 점유율에서 7.4%까지 끌어올렸고, 한 달 내 9%에 진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상가 4조 5천억 수준입니다.”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너무 빨리 올라도 문제.
“이대로 흐른다면 3개월 내 15%를 넘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니에요. 넘기지 않도록 조절하세요.”
15%를 만들라 했지 넘기라 말한 적은 없다.
지금은 10위권만 지키며 월드컵 시기를 기다리면 된다.
고객들의 부채를 감당해야 하는 기업들에게 손을 내밀면 자연히 그들의 시장은 KJ의 시장으로 변한다.
그리고...
“신차는 어때요?”
K5가 10년 당겨진 모델로 시장에 나온다. 외제차보다 더욱 세련미를 가진 차체를 가지고.
참고로 이건 0세대. 1세대 모델이 되려면 헤드라이트(HID)개발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았다.
다음 세대에 외장은 크게 건들지 않고 내부 인테리어와 헤드라이트를 교환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고객들 호응이 상당히 좋습니다. 독일이나 일본 차보다 더 세련되고 귀티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미국 2만 대, 영국 1만 대가 사전계약으로 잡혔습니다. 2분기 매출은 2조 3000억 정도 잡힐 걸로 보입니다.”
“드디어 출격이네요. 오래 기다렸습니다.”
진짜 오랜 시간을 매출 없이 돈만 쏟아부으며 기다려 왔다. 이번 신차 발표에 K5 디자인에 전 세계인들이 크게 놀라워했다.
어디를 가도 빠지지 않은 세련된 외관은 여느 외제차와 비교해도 크게 꿀리지 않았다.
오히려 몇 년은 앞선 디자인이라며 사람들은 엄지를 추켜세웠다.
“모두 고생하셨어요.”
이 차를 개발하기 위하여 들어간 재화보다 이들이 노력한 값이 더욱 크다.
이들이 있기에 KJ가 있는 거고, 지금의 자동차가 탄생할 수 있었다.
“회장님께서도 고생하셨습니다. 그간 근심이 많으셨을 터인데, 이제 두 다리 쭉 펴고 주무시지요.”
“그러게요. 오늘 밤은 아주 꿀잠을 잘 수 있을 거 같네요.”
임원진들은 서로 축하와 위로의 말을 건네며 독려하였다.
“이참에 여러분께 한마디 건네겠습니다.”
좋은 분위기를 충분히 맛보도록 기다렸다, 이내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발표했다.
“지금 우리는 아주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다음 대 시장은 자동차와 금융에 상당한 투자가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중 금융 부분은 잘들 하고 계시지 괜찮지만, 자동차는 첫발부터 시작해 마무리까지 확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지를 구축해 가는 건 어렵지만, 무너진 이미지를 다시 살리는 건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최고의 차를 꾸준히 고객에게 공급하는 겁니다.”
기업들은 처음만 잘 만들고 ‘매출’, ‘원가’, ‘이익’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기존에 잘 들어갔던 차량의 안전자재나 부속품들을 저가 부품으로 바꿔 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완제품 가격 인상.
사유는 인건비 인상을 기본 전제로 두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겁니다. 경차를 만들더라도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추구해야 합니다.”
지금이 중요하다. 기연자동차의 이미지를 지우고 전혀 다른 새로운 브랜드로서 시장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티코라 해서 값싼 자재로 볼품없는 인테리어를 하지 마세요. 그냥 마진을 남기지 않는다 생각하고 누가 보더라도 괜찮다 싶게끔 꾸미세요.”
기업의 인식은 잘못됐다. 저가 차이기에 단순하게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기업에 애정이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이야 모르겠지만, 미래로 흐를수록 고객들의 눈은 높아지고 똑똑해질 겁니다. 그때 기업은 선택을 해야겠지요. 우리는 그 선택을 미리 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개판으로 만들면 사람들은 쳐다도 안 볼 겁니다. 그건 우리의 얼굴에 낙서하는 꼴이에요. 하나를 만들더라도 고급지고 예쁘게 만드세요. 저소득자를 위한 고급 경차를 만든다는 마인드로 말입니다.”
1천만 원 경차를 1천만 원 경차처럼 만들어 판매를 하는 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라 여겨졌다.
값싼 차는 이유가 있고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
사라지게 해주겠다.
“알겠습니다.”
***
“오빠, 나 어때요?”
윤희는 늘 뒤에 ‘요’를 붙인다. 편하게 하라 그랬는데, 이게 편하다고 한다.
“이상하지 않죠?”
잘 빠진 몸매를 자랑을 하기라도 하듯 하얀 셔츠에 가슴 아래까지 끌어올린 검은색 치마를 입고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너무 걱정은 하지 말고. 우리 부모님은 그런 건 신경 안 써. 잠옷 입고 와도 끄덕일 분들이야.”
재벌이 됐다 하여 본연에 가지고 계시던 성향이 어디 가시지 않았다.
아직도 스테이크 랍스타보다 된장찌개에 고추장을 섞어 비벼 드시는 걸 더 선호하시는 두 분이시다.
‘오늘 같은 자리에 된장찌개는 아니겠지... 그래도 오늘은 고기 좀 잘랐음 좋겠는데.’
그리고 나는 부모님과 달리 삼겹살을 참 좋아한다. 소개를 시키는 자리에서 삼겹살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쩝.
“그래도 처음 뵙는데. 그건 아니죠.”
재벌의 핏줄이지만, 참 수수한 걸 좋아하는 여자다. 위화감을 주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위로 있는 언니와 완전 다른 모습.
“됐어. 그 정도면 충분히 예뻐.”
다행이다. 다른 여자가 아닌, 윤희를 만나서.
“처음 뵈어요. 이윤희입니다.”
집에 들어서자 부모님이 나와 우릴 맞이했다.
“참 곱네. 고와. 어여 들어와요.”
“......”
엄마가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아빠는 헛기침으로 인사를 대신 하셨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호호호.”
“큼.”
딸이 없는 덕에 종종 둘째 계획을 가지셨던 두 분.
‘또 아들 낳으면 어쩌려고요’
엄마의 한 마디가 계획을 무산시켜 버렸다.
‘기쁘긴가 보네. 딸이 생겨서.’
딸을 바라오던 두 분. 비록 친딸은 아니지만, 당신들께서는 아들의 부인이기 전에 딸로 여기시며 좋아하신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이윤희가 수줍게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될까?”
“큼.”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아빠는...
“당연하죠. 친딸이다 생각하시고 대해주세요.”
“호호.”
“큼.”
엄마가 윤희의 손을 좋아하신다. 아빠도 좋은가 보다.
입 주변이 움직이신다.
“우리 아들이 저리 완벽해 보여도 여자를 제대로 만난 적이 없어. 부족한 내 아들과 만나줘서 고마워.”
저기 엄마. 칭찬을 할 거면 칭찬만 하지. 그건 또 뭔 말이야!
칭찬 같으면서도 아닌 말. 조금 상처를 받으려 했다. 그런 생각을 품고 계셨다니.
“오. 그래요.”
그렇다니까. 난 내 아들이 평생 결혼 못 하고 살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를 몰라.“
”... 전 잠시 나가 있을게요.“
분명 소개 자리인데, 나를 씹는 자리가 되었다. 윤희가 호기심이 진한 눈으로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고, 엄마는 당신의 이야기를 집중해 들어주는 딸이 생겨 좋은지 처음 봤음에도 오래전에 알고 지냈던 딸인 마냥 옆에 두고 열심히 ‘나란 놈’에 대해 PPT를 하셨다.
쓱 일어나 옆을 보니.
”......“
아빠는 입을 닫고 두 여자의 대화를 웃으며 듣고 계신다. 아마도 이런 집안은 세상에 이곳이 유일하리라.
‘뭐 됐나. 이 정도면.’
호호호.
허허.
소개 자리가 아닌 격식 없는 평소의 우리의 집이다.
불편함 없이 들어주는 윤희에게 감사한다.
1시간 후.
“굳이 시간을 들여 날을 잡을 필요 있니. 상견례는 다음 주에 하기로 하고. 약혼식, 결혼식도 바로 잡자. 애기는 어떠니?”
“저도 좋아요.”
“어쩜 이리 예쁠까. 고마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우리의 상견례 날짜가 정해졌다.
***
2000년 5월 25일 목요일 저녁 5시 30분.
상견례 날이 찾아왔다.
“정수야, 나 괜찮니?”
오늘은 양가 상견례가 있는 날이다. 설마, 육성그룹 이건호 회장이 내 장인이 될 날이 올 줄이야.
20대 초만 하더라도 재벌의 삶이 부럽고, 선망하며 재벌의 핏줄이랑 결혼하면 어떨까?
이런 망상에 사무쳐 살았는데.
엄마가 이 옷 저 옷을 고르시다 힘겹게 선택한 옷을 입으시고 다가와 묻고 계신다.
치마가 아닌 밝은 네이비(?) 색상의 통 큰 바지, 그 위로 같은 색상의 겉옷을 입고 허리끈으로 조여 허리 라인을 강조한 무난한 스타일.
누가 보더라도 있는 집 여사님 차림새다.
“괜찮아요. 잘 어울리세요.”
엄마를 향해 엄지를 세웠다.
“큼.”
옆에서 헛기침을 하시는 아빠에게 시선을 옮기며.
“아빠도 멋져요. 굿.”
쌍 따봉을 날렸다.
“회장님, 준비됐습니다.”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밖에 대기해 있는 차량을 확인하며 세 식구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즉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반갑습니다. 이건호올시다.”
육성저택 정원에서 상견례를 가졌다. 넓은 이곳에서 약혼도 예약이 되어있는 중.
이건호 회장... 아니. 장인과 장모님이 나와 엄마와 아빠와의 인사 자리를 가졌다.
이거 좀 쑥스러운데.
“이재진입니다.”
“이부영이에요.”
“이소영이에요.”
이재진을 시작으로 두 자매가 소개를 하였다. 이재진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고, 두 자매는 알 수 없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봤다.
“우리에게 귀한 따님을 주어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우리 막내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런 아이를 어여삐 봐주어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합니다.”
아빠가 말하자 예비장인이 맞받아 윤희를 내리고 나를 올렸다.
이거 부끄러운 건 내 몫인가.
“윤희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약혼을 가지고 바로 결혼을 가졌으면 하신다고.”
“그렇습니다. 사실 굳이 약혼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지만, 두 아이가 하고 싶다 하니 약혼식을 치르고 6월 내 결혼식을 올렸으면 합니다. 느리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거 좋은 의견입니다. 굳이 질질 끌 필요야 없지요. 안 그러한가? 사위?”
왜 저 ‘사위’라는 말이 소름이 끼치게 들릴까?
회장이 칭하던 호칭이 이제는 달리 써야 하였다.
“윤희만 괜찮다면 언제든 좋습니다.”
이제 장인어른이라 불러야 하는 이건호 회장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별일 없기를 바란다.
“그렇다는데, 윤희야?”
장인어른의 눈빛이 점점 밝아진다.
“나도 오빠만 좋다면 언제든 좋아요.”
똘망똘망하게 바라보는 윤희의 눈동자에 피식 웃었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지요. 내달 현충일에 약혼식을 가지고 결혼 준비도 필요할 터이니 마지막 주 토요일에 결혼식을 가지면 적당할 성싶은데, 사돈은 어떠십니까?”
이미 일자를 정하고 온 듯싶다.
나쁘지 않은 일정이다.
“나도 사돈과 같은 생각인데. 둘은 어떤지 듣고 싶구나.”
아빠가 나와 윤희에게 묻는다.
“좋아요.”
“네. 저도 좋아요.”
윤희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도 찬성을 하니 그렇게 하십시다.”
“정말 좋은 날입니다. 하하. 앞으로 자주 왕래를 가지며 잘 지냈으면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약혼식과 결혼식이 정해졌다.
조금은 허무하리만치, 걱정과 달리 너무도 빠르게 이뤄졌다.
***
상견례를 시작한 지 40분이 지난 시점.
조금은 떨어진 장소에서 윤희를 제외한 세 남매가 자리를 가졌다.
“오빠 이대로 있을 거야? 이러다가 우리 개털 된다고.”
이부영은 잔뜩 독기가 오른 눈으로 떨어진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막냇동생 이윤희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불안감에 급격히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