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북한으로
음메─
소를 실은 차량들이 궁궐이라 불리어도 아깝지 않을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로 줄지어 들어섰다.
가장 앞쪽에 검은 승용차가 트럭을 이끌어 입구 앞으로 다가섰다.
철컥.
문 너머로 30대 중반쯤 보이는 북한 장교가 다가와 문을 열어주었다.
내려서니 아래로 빨간 융단이 깔려있다.
“환영합니다.”
장교 뒤쪽으로 검은색 개량 한복(?)을 입은 누가 봐도 ‘김정일’ 위원장인 사람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주변엔 기자들이 깔려 맞잡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김정수입니다. 대통령님과 주석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를 보고 싶다 하셨다고요.”
“하하. 맞습니다. 주석이 어찌나 칭찬을 하던지. 역시 장군감입니다. 굶주린 맹수의 눈.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역시 맹수는 맹수를 알아보는 법이지요.”
무슨 말이야. 내 눈이 어디가 어때서.
“위원장님만 하겠습니까? 국가를 수호하며 나아가 이 나라의 빛다우십니다.”
내 사업을 위해서 이빨 따위 열심히 털 수 있다. 조국을 배신하는 행위만 아니라면, 사업가로서 이빨은 충분히 팔 수 있다.
자존심만 팔지 않음 된다.
“김 회장에게 들으니, 참 듣기 좋습니다. 한데, 저 소는?”
“국가를 위해 힘쓰는 데 노고가 많으시니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 선물입니다.”
그도 뇌물임을 모르지 않을 거다. KJ에 큰 수익을 안겨줄 국가인데 잘 보일 필요가 있다.
그의 남은 수명은 앞으로 7~8년 정도.
확실하게 북한에 KJ를 심어 뿌리를 내려보겠다.
‘그러자면 미국과 일본 쪽에도 줄을 만들 필요가 있어. 미국이야 어떻게 해본다 치고. 일본은 생각을 해보자.’
김정남은 위조여권을 이용해 아들을 데리고 일본 놀이동산을 가게 된다. 그러다 일본 공안에 걸려 밖으로 추방되고, 그 과정에서 김정일의 눈 밖에 나면서 후계자 자리에서 밀린다.
“역시 남자는 소지요. 하하. 감사히 받으리다. 내 김 회장이 온다는 소식에 식사를 준비했으니 드시지요.”
김정일 위원장이 꽤 마음에 드나 보다. 소는 북한 장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만찬회가 준비되어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일반 재벌집 이상의 규모를 갖췄다. 이게 가족들이 먹는 곳인지 5성급 이상의 호텔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무척 화려했다.
“이건 녹두지짐이라는 우리나라 전통음식입니다. 녹두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넣어 반죽해 만든 겁니다.”
김정일이 순수 음식에 대해 설명하며 하나하나 가르쳐 줬다.
개성무찜, 돼지종다리쌈, 주암잉어찜, 어복쟁반 등등의 북한 전통음식들로 가득했다.
“이렇게 준비해 주지 않아도 되는데. 잘 먹겠습니다.”
단둘만의 식사 자리에 10인분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의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다.
이걸 다 먹는 건 무리. 하나씩 맛을 보는데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사내대장부는 잘 먹어야지요. 잘 드시니 참 좋아요.”
좋은 것도 많다. 왜 김씨 일가가 전부 살이 뒤룩뒤룩 쪘는지 알겠다.
몇몇을 빼고.
“실력 좋은 요리사가 있는지 모든 음식들이 맛이 좋습니다. 배가 잔뜩 차서 더는 못 먹겠네요.”
기권이다. 이렇게 처먹으니 살이 찌지. 돼지들아.
“그럼 식사는 이쯤하고, 강 주석과는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중국 정부가 한국 인물을 그렇게 밀어주는 건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 참 궁금해 참을 수 있어야 말이지요. 대체 그를 어떻게 마음을 쏠리게 한 겁니까?”
날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이야기를 들으니 충분히 납득이 갔다.
“알게 된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숨김없이 저의 모습을 보였을 뿐, 어떤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적당히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좋게 봐주었을 뿐입니다.”
“정말 그게 다입니까?”
“네. 다른 건 없었습니다.”
그날 있던 진실을 절대 말 못 한다.
“음...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오늘 김 회장이 온다 하니, 잘 봐달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오랜 동무처럼 느껴져 참 신기했습니다. 수완이 참 좋으십니다.”
“계속 저를 좋게 봐주시니, 뭘 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리는 일방적인 칭찬의 장이 되었다.
“내게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면 됩니다.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주석에게 대하듯 해주세요.”
그랬다가 남북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
배짱이란 상황에 맞게 하는 게 좋다. 강택민은 중국을 경제 국가로 키우기 위해 나를 살려뒀을 뿐, 그 외 다른 이유는 없다.
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미래정보와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조금만 어긋나도 총을 들이댈 인물이다.
강택민 주석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앞으로 볼 날도 많은데, 조금 편하다 싶을 때 편히 대하겠습니다.”
북한이 중국의 영향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음, 그렇다면 지금 언급하면 좋지 않을까?
“위원장님. 위원장님께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황비선 대통령에게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실은 개성지역 공단개발. 제가 부탁을 했던 안건이었습니다.”
중국을 믿어보자.
모 아니면 도다. 빽도는 없다.
“그래요? 왜 개성에 집착하는지 궁금해지는군요. 한국이 우리 북한을 그렇게 신경을 쓰고 있는지 몰랐는데 말입니다.”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다. 표정을 보니 나에 대한 호기심은 아직 식지 않았다.
“아주 간단합니다. 북한은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남북의 원활한 교류는 제 핵심 사업이며, 러시아와 중국과의 수출 수입 사업에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하게 될 겁니다. 당연히 북한도 성장하고, KJ도 크게 성장하게 될 겁니다.”
통일한국이 되면 러시아와 중국과의 경계가 맞닿게 된다.
그때 철도업은 크게 성장하게 될 터다.
물론, 과정은 쉽지 않겠지만 계획대로 잘만 흐른다면 적어도 본 역사와는 조금은 다르게 흐르리라 내다봤다.
“이제야, 왜 주석이 김 회장님을 다른 이들과 다르게 대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갑자기 이건 또 뭔 소리야.
“말에 거짓이 없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아주 신선해요. 정치가 없는 인간이라. 게다가 머리를 굴리지 않고 본인의 생각을 고스란히 밝히는 사람은 내 살다 처음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 또한 위원장님께 숨기는 건 있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숨기는 게 없을까요.”
“크크, 크하하. 내 남조선 말은 다 믿지 않는데, 김 회장이라면 나쁘지 않겠다 생각이 듭니다. 설마, 이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줄 몰랐어요.”
김정일 위원장이 입을 크게 벌리고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웃다 턱이 빠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 위원장의 새로운 면을 봤다. 이런 모습도 있구나 싶었다.
배추머리가 크게 들썩거렸다.
“KJ와 손을 잡으면 위원장님에게 상당히 이롭게 작용할 겁니다. 물론,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 시 어떤 도움도 드릴 수 없습니다. 이건 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하지만, KJ에 특권은 주신다면 눈치껏 적당히 서로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운영을 하겠습니다.”
솔직함이 컨셉으로 잡힌 이상 당당하게 진실되게 나아가기로 하였다.
아예 이미지를 만들어 버렸다.
“북한 사정은 아주 잘 압니다. 자금은 이쪽에서 될 겁니다. 북한에서 들어갈 비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충분한 원자재만 준비해 주심 됩니다. 그리고 대가로 자원 개발에 대한 권한을 KJ에 넘겨주셨음 합니다. 일부 자원을 북한에 납품하고 나머지를 한국으로 가져오겠습니다.”
무료로 개성공단을 개방해 주는 대신, 지하자원을 받는다. 이 얼마나 공평하고 따스한 거래인가?
크게 바라지 않는다. 비철금속이나 금광 정도면 충분하다.
“음.”
“물론, 인건비는 한국과 비슷하게 맞추기는 어렵습니다. 반값 정도가 적당하겠지요. 하나 매년 인건비는 상승하게 될 겁니다. 국력은 국민들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러니 마치 내가 북한과 중국의 간자와 동급에 위치한 놈 같다.
친중, 친일, 친중, 친미.
이건 사람들에게서 욕먹어도 어쩔 수 없는 일.
하나 미래는 나란 놈에 대해 크게 회자되리라 봤다.
“사업적인 목적 외에 엄한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뭣하면 언제든 위원장님 마음대로 제 사업을 중단시켜도 됩니다.”
이럴 땐 도박이 필요하다. 자신감을 가지고.
여기서 흔들리면 안 된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한쪽이 이번 사업을 멈추게 되면 위원장님도 저도 같이 손해를 보는 겁니다. 전 손해를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좋습니다. 주석의 말도 있고, 김 회장에게 두 사업권에 대한 권리를 주도록 하지요. 앞으로 김 회장님은 북한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을 겁니다.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사람들에게 말하세요. 바로 구해서 드리지요.”
됐다! 역시 사람은 입과 인맥이 받쳐주면 일은 수월하게 흐른다.
비록 약 2시간에 걸친 거듭된 설득에 이뤄진 일이나, 결과는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다.
“믿고 맡겨주어 감사합니다. 앞으로 KJ는 북한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될 겁니다.”
‘이제 김정남을 찾자. 그의 후계자 자리를 지켜주어 빚을 지게하고 그의 사상을 완벽한 민주주의 사상으로 만들자.’
그 후 일은 북한의 화폐를 원화를 사용하도록 유도를 할 것이다.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모든 북한 사람들에게 모든 월급을 한국 돈으로 주어 그걸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 예정이다.
북한 깊숙이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장사할 수는 없겠지만, 개성 주변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봤다.
조금씩 내가 계획한 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건 하늘에 맡기자.
-긴급속보입니다. 김정수 회장이 이번에도 큰일을 해내고 한국으로 복귀했습니다. 사업차 북한에 방문한 김정수 회장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단판을 지었습니다.
-한국-북한 철도 연결 역사 건설.
-추후 중국, 러시아 연결 예정.
-중국 협의 완료. 러시아 추후 예정.
-개성지역 공단조성 승인. 1차 350만 제곱미터(약 100만 평) 단지개발 시작. 공사일은 6월 예정.
-인건비, 국내 인건비 50% 책정.
-KJ그룹 중국투자개발에 이어 대만까지. 아시아를 잡아먹는 거대 괴물이 되다. 1차 투자 규모 30조 투입 결정!
-KJ그룹 열차제조기업 로템 인수. 인수가 4800억 원.
KJ그룹의 소식이 신문과 인터넷 사이트에 장문으로 길게 나열돼 세상에 알려졌다.
수많은 댓글과 축하글이 기사 전체를 채웠다.
“아니, 이 무슨 일인가? 어떻게 사위 될 사람이 장인 될 내게 아무것도 알리지 않고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어.”
이 소식은 육성그룹 이건호 회장에게도 전달됐다. 이건호는 해당 소식을 신문으로 보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아빠, 우리 오빠랑 육성이랑 묶지 않기로 한 거 잊었어?”
윤희가 그런 이건호 회장을 보고는 슬쩍 웃었다.
“딸 키워봐야 소용없다고 하더니... 쯧쯧.”
딸의 냉혹하고 냉정한 말에 상처를 받았다. 말이야 그리했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지킬 줄 알았는데.
이건 남보다 못하다.
-미래, 대진, 한진 30% 지분....
정말 가슴이 쓰라렸다.
“뭘 그렇게 쳐다봐. 그리고 우리 오빠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처럼 보여. 자, 이거.”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던 이건호 회장의 손에 갈색 봉투가 올려졌다.
“이게...?!”
“거기 나와 있는 사업 중 15%를 육성에 넘기겠대. 다른 덴 10%씩 주는데, 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5% 플러스해서 줬다니까... 뭐, 뭐야. 그 표정.”
“하하하하하. 내가 딸을 잘 키웠어. 이제 육성이 국내 2위 건설사가 될 거야. 누구를 닮아 이리 예쁘더냐.”
씁쓸하던 이건호 회장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윤희는 황급히 방으로 도망쳤다.
하나, 이건호 회장은....
“좋구나. 좋아! 하하하.”
종이를 허공에 띄워 함박웃음을 지었다.
육성에도 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