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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재벌 강림하다-89화 (89/145)

89화

#도굴 천재 김치환

-내가 훔치지 못하는 건 없었다. 왕릉에 묻혀 있던 보물을 빼돌리기도 하였다.

-경찰들은 나를 잡지 못했다. 땅굴에 만들어 놓은 수많은 함정에 걸려 모두 죽고 말았다.

-내가 파지 못할 땅굴은 없었다. 단단한 바위가 내 앞에 있더라도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내 나이 70살이 되었다. 더는 도굴하기에 힘든 나이. 1430년대 갑인자에 대한 정보가 들려왔다. 나는 그 정보를 모아 유종의 미를 장식하고 은퇴를 결심했다. 하나, 그건 함정이었다. 늙고 지친 나의 몸은 예전처럼 날렵하지 못했다. 결국 경찰에 잡혀 죽을 때까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다.

-내 마지막을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탈옥을 위한 땅굴을 파기로 하였다. 일은 은밀하게 진행됐고 장장 1년이라는 긴 시간, 마침내 탈출로를 만들게 되었다. 그곳은 화장실로 이어진 내 또 다른 세상.

-경찰은 날 잡지 못했다.

-비록 유종의 미는 거두지 못했지만, 감옥에서 탈출해 유일하게 잡히지 않은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

세상이 빙글 도는 기분을 느끼다, 콧속으로 흙내가 진하게 풍겨왔다.

이건 또 무슨 현상일까?

“회장님, 회장님! 회장님!”

귓가로 들려오는 따갑기 그지없는 목소리.

“이 실장님...?”

“정신이 드십니까?!”

이 실장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천재 도굴꾼 김치환의 기억의 파편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흙을 파고 어두운 동굴을 탈출해 하얀 햇살이 반겨주는 이 기쁨과 설렘.

이 기분은 분명 그의 기억에서 얻어온 감정이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이 타이밍에 나온 그의 기억은 불가능하다 말하는 이들을 비웃었다.

어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의 땅굴은 100%에 가까운 기적을 일궈냈다.

“머리에 쓸 랜턴, 드릴, 모종삽, 망치, 징을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버팀목으로 쓸 나무들도 부탁합니다. 나무들 길이는 50센티미터입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이 실장과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설마 하는 심정이 그들의 뇌리에 스쳤는지,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하나...

“제가 직접 들어갑니다.”

“회장님! 지금 땅굴이라도 파실 작정이십니까?! 안 됩니다. 절대로!”

이 실장이 앞을 막아섰다.

“그렇습니다. 김 회장님 심정은 잘 압니다. 하지만 너무 무모합니다. 자칫 잘못 파기라도 하면 그대로 매몰당합니다.”

언제 다가왔는지 천수이벤 총통까지 다가와 앞을 막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꼭 사람들을 구해야겠습니다. 시간을 더 끌다 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걸 확인한 이상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습니다. 뭐 하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준비하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 대상에는 이 실장도 포함돼 있었다.

“회장님, 절 욕해도 좋습니다. 당장 해고를 하셔도 전 절대 비키지 못합니다.”

하, 이렇게 나오면 힘들어진다. 하지만 난 이를 꾹 악물고 내 더욱 강력하게 나아가기로 하였다.

“이건 회장으로 지시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으로서 부탁입니다. 만약 저곳에 동생이 갇혀 있다면 그래도 저를 말리실 건가요? 총통님도 자녀가 있으시죠? 자녀가 저곳에 있다면 말리실 겁니까?”

“......”

“......”

둘은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저게 정답이다. 가족을 내버려 둘 가장은 이 세상에 없다.

있다면 그 사람은 또라이나 사이코패스이다.

직원들은 나에게 있어 가족이고, 내 동료다.

전장에서 동료를 벌이는 행위는 절대 있을 수 없다.

“절 믿으세요. 꼭 무사히 구출하겠습니다.”

“... 정말 회장님은... 혼자 모든 걸 감당하려 하십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아니 저도 가겠습니다. 제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 회장님 옆입니다.”

이 실장의 고집이 꺾였다. 한데 또 다른 고집이 발동했다. 이건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거 같다.

“...... 자재는 우리 쪽에서 준비하겠소.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오. 내가 해야 할 일을 김 회장에게 맡겨 미안합니다.”

천수이벤 총통은 허리를 숙였다. 한 국가의 원수가 내게 허리를 숙인 건 그가 유일했다.

“맡겨주세요.”

둘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더는 장애가 될 사람은 없었다.

“내 목소리 들리나요. 이 차장님. 이 차장님.”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무전을 했다.

-ㄷ... 립니다.

송수신상태는 좋지 않지만, 뜻을 이해하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지금 계신 곳에 대한 정확한 위치 정보가 필요합니다. 혹시 랜턴이나 주변을 식별할 거라도 들고 있나요?”

-라이터가 있어요.

이번엔 정확히 들렸다.

“주변에 공간은 어때요?”

-사무실과 비슷한 규모로 보이는데, 한 9에서 10평 정도 될 거 같.... 다.

잠깐의 기다림 속에 이 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한 넓이는 아닐 거다. 다행이다. 생각보다 비교적 안전한 장소에 있는 거 같다.

“주변에 머리와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의자나 나무 등이 있다면 지지대로 만들어 아래로 들어가 몸을 보호하세요.”

-... ㄴ....ㅔ.

“그들이 갇힌 지점이 어디인가요?”

그들의 안전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제 그들이 있을 만한 장소였다.

“10평 정도 공간이라면 저쯤으로 짐작됩니다. 저곳에 장사하던 장소가 있는데, 그곳 외에 그만한 공간이 나오기 힘듭니다.”

“확실한가요?”

“그렇습니다.”

동네 주민과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들에게 물어 위치를 재차 확인했다. 두 그룹이 지목한 장소가 동일했다.

오후 5시.

“이 지점에 땅을 파주세요.”

굴삭기가 동원됐다. 사람들이 갇혀 있는 장소에서 7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

굴삭기의 붐이 앞으로 쭉 내밀어지며 연결된 암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 버킷을 땅에 박았다.

“여기는 흙을 버릴 장소로 활용하고, 이 지점부터 땅을 파고 들어갈 거니 여기는 작은 언덕으로 만들어 주세요.”

“저 회장님, 과거에 이와 같은 일을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전혀 관련도 없는 일에 막힘없는 지시에 놀라웠는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궁금한 시선을 보냈다.

“약간의 경험이 있습니다. 대충 건물 구조나 도면 등은 볼 정도는 됩니다.”

땅굴에도 여러 지식이 필요하다. 도둑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게 이쪽 계통이었다.

‘뛰어난 경험과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도 필요하지.’

덕분에 또 잡기술을 알게 됐다.

그리고 신기한 건.

“정말이지 회장님은 기술도 많으십니다. 그런데 요즘 운동을 하셨습니까? 지금 보니 팔뚝과 어깨가 평소보다 굵고 넓어 보이십니다.”

바로 신체적인 변화였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던 허리와 등이 단단해진 느낌이다.

어깨는 또 어떻고. 넓어진 게 느껴진다. 잘 맞았던 옷이...

“여기서 힘 좀 썼다고 좀 달라졌나 보네요. 이제 준비가 된 거 같으니, 전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흙은 나오는 길목에 둘 테니, 수거해가세요.”

“회장님. 그냥 인부에게...”

“그 이야기는 끝났잖아요. 그리고 이 일은 다른 사람보다 제가 더 잘합니다. 아까 말했듯 잘못 건들면 터널은 무너지게 될 겁니다. 땅굴은 보다 섬세한 작업을 요해요.”

‘그러니까’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깔끔히 무시했다.

“여기서부터 5미터 부근까지 최대한 넓고 크게 파주세요. 거기서부터 제가 직접 들어갑니다.”

초기 진입로는 사람 2명이 오고 갈 정도의 크기로 파고 5m 지점부터 폭 60cm 높이 50cm 규격으로 천천히 파면서 안으로 진입하기로 하였다.

매우 힘든 작업이 될 것이다. 작업자들은 랜턴을 최대한 구해 10m 단위로 땅굴에 배치하기로 하였다.

푹! 푹!

작업이 시작됐다. 사람들이 모여 입구로 쓰일 터널을 파기 시작했다. 그들의 작업장면을 조용히 지켜보다 장비를 챙겨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버팀목은 3m 단위로 설치하세요. 안전이 최우선인 점 명심하셔야 합니다.”

위이잉-!!

휴대용 드릴을 이용해 단단한 부분에 구멍을 낸 후 징과 망치를 이용해 천천히 땅굴을 만들며 안으로 진입했다. 어느새 통로는 약 10미터가량 팠다.

전신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역시 힘이 증가했어.”

처음 장칠성의 기억을 받아들였을 당시가 떠오른다. 운동의 ‘운’자도 시작해 보지 않았던 때.

믿기 힘든 일이 몸에 일어났었다. 다리 근육이 유연해지며 발놀림이 빨라졌고, 눈치가 좋아졌었다.

지금은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까지 발달해, 흙과 돌을 부수는 데 큰 힘이 들이지 않았다.

게다가 요령까지 터득한 상태.

손놀림에 망설임이 없었다.

파스스.

30미터까지 왔다. 거리는 밖에서 가져온 줄자로 쟀다.

턱, 턱턱, 턱턱턱.

망치에 타격을 받아 박힐 때마다 떨어지는 흙먼지.

마스크로 인해 호흡이 가빠왔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캉! 캉! 캉!

단단한 돌을 만났다. 다시 징을 이용해 두꺼운 돌을 깨트려 앞으로 이동했다. 힘겨울 땐 선으로 끌고 온 드릴을 이용해 구멍을 뚫고 망치로 부수고, 삽과 손을 이용해 뒤로 치웠다.

정리된 곳은 나무를 세워 땅굴이 무너지는 걸 막았다.

50미터까지 왔다. 이제는 온몸이 저려온다. 김치환의 기억을 물려받아 생긴 그의 끈기와 힘이 아니었다면 이쯤에서 포기했을지 몰랐다.

“회장님! 그러다 쓰러질 수 있습니다. 잠시 밖에 나가 쉬었다 하세요.”

뒤에서 들려오는 이 실장의 목소리. 그가 뒤에서 따라와 물을 공급해 주어 큰 힘이 되었다.

“아니에요. 지금도 안쪽은 하루를 굶은 채 갇혀 있어요. 1분 1초라도 저들을 구해야 합니다. 제가 쓰러질 때는 모두가 밖으로 무사히 나왔을 때에요.”

나로 인해 벌어진 사고, 내가 해결 짓겠다.

“...... 큭.”

이 실장의 앓는 소리. 그의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몇 시간이 걸렸을까. 이제는 시간개념도 사라졌다.

몇 시간은 판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손바닥은 이미 피로 얼룩진 상태.

한데, 이제 그 감각도 이제는 무뎌졌는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헉헉.

“돼, 됐다.”

75M 좀 못 되게 땅을 파는 데 성공했다. 이제 마지막 작업이 남았다.

“이제부터 중요해요. 위에서 흙과 돌이 떨어질 수 있어요. 흙으로 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즉각 뒤로 보내세요.”

“전 괜찮으니 편히 작업하세요.”

이 실장의 목소리가 들리니 안심이 된다. 데려오기를 잘했다. 이곳을 나가면 정말 잘해줘야겠다.

퍽! 팍팍, 터엉! 땅! 땅!

삽, 징, 망치 등을 반복적으로 이용해 땅굴 천장을 파헤쳐 홀을 만들어 갔다. 홀을 만드는 작업은 오던 길보다 더욱 험난했다.

몸으로 쏟아지는 흙과 돌가루들은 몸의 움직임을 힘들게 만들었고, 호흡을 하기에 악조건이었다.

보안경을 써도 먼지는 어떻게 막을 수 없었다.

통!

그때였다. 입술을 꽉 깨물며 떨어지는 체력을 끝까지 붙들고 박아둔 징을 향해 망치를 두들길 때 못으로 빈 깡통을 뚫는 아주 가벼운 감각이 손에서 느껴졌다.

이 감각, 오로지 한 가지를 의미했다.

“이 차장님! 모두 거기 계십니까. 저 김정수입니다. 계시면 대답하세요.”

“회, 회장님. 회장님이 어찌 여기를...”

“살았어. 살았다고! 우리를 구하러 왔어. 엄마. 흑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심이다.

“부상당한 사람이 있나요?”

무전으로 물어보지 못했던 말. 랜턴을 여기저기 비춰 사람들 상태를 확인했다.

“가벼운 타박상입니다. 혼자 걸을 수 있습니다.”

정말 다행이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이 없었다. 하늘이 도왔다.

“모두 여기로 나가세요. 아래쪽에 이 실장이 있을 겁니다. 줄지어 따라가시면 됩니다. 어서 움직이세요!”

“회장님부터 가세요. 제가 마지막으로 움직이겠습니다.”

먼저 현지인들이 통로로 들어갔다.

하나, 직원들은 자신들 몸보다 나를 먼저 챙겼다.

“전 괜찮아요. 이곳에 갇혀 힘들었을 터인데, 어서 가세요. 제가 뒤를 따르겠습니다. 가족을 만나셔야죠.”

“큭, 죄송합니다. 회장님.”

“뭐가 죄송합니까. 살아 계셔서, 아무 일 없이 있어 줘서 감사합니다. 어서 가세요.”

사람들은 순차적으로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회장님! 어서 오세요!”

아래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땅굴을 따라 위로 올라와 들려왔다.

이제 남은 건, 나 하나.

“모두를 구했는데, 대체 왜 불안한 기분이 들지?”

모두를 구했다는 감상에 잠시 빠지다,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 불안한 감각.

“아냐, 이제 끝났어. 이제 가자.”

들어 차오르는 불안감을 털어내고, 몸을 땅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발과 손은 빠르게 밖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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