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재벌 강림하다-86화 (86/145)

86화

#웃으면 복이 온다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XX시장.

“할아버지 이리 와요. 오늘 싸게 드릴게.”

“막 들어온 고등어 왔어요! 싱싱합니다.”

“한우, 돼지 할인갑니다!”

오늘은 XX시장 오일장이 열린 날이다. 좌판을 깐 사람들이 모여 호객행위에 나섰다. 여기저기 큰 목소리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하여 힘썼다.

“이거 얼마여.”

“3천 원인데, 2500원에 드릴게.”

시장 상인들이 지나가는 노인을 붙잡았다. 하나라도 더 팔고자 금액을 후하게 부르는 이도 있었고, 시원하게 깎는 사람도 있었다.

“6천 원 같은 3천 원은 없는가?”

“아고, 내가 2500원 받고 5천 원 치 드릴게.”

“크음. 그럼 저기 저 나물 좀 담아봐.”

상인의 후한 모습에 입가가 길게 호선을 그렸다. 노인은 시금치, 콩나물 등을 비닐에 담아 계산을 치렀다.

검은 비닐봉지 안을 꽉 채우니, 비닐이 찢어질 거 같다.

“저 운동화 얼마야?”

“영감님 오셨수. 1만 원. 저건 1만2천 원.”

“음, 저걸로 줘봐.”

“이게 신발도 가볍고 통풍도 잘돼서 참 좋아요. 영감님한테 딱이네. 사이즈 뭐로 줄까요?”

“음 괜찮구먼. 270으로 줘.”

하얀색 운동화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만족했다는 듯, 시장에 쭈그려 앉아 헌 운동화를 벗고 새 운동화를 신었다. 헌 운동화는 여기저기 해져 바람구멍이 나 있었다.

“수고하시게.”

새 운동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질질 끌며 다니던 그의 걸음이 지금만큼은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노인은 검은 비닐봉지 두 개를 든 채 집으로 향했다.

“할멈. 장 봤어.”

“영감 오셨슈. 어메, 많이도 사 왔네. 둘이 먹는데 뭘 이렇게 많이 사왔대요.”

“애기덜 오면 먹으라 하면 되지. 뭔 걱정이야.”

“잘했어요. 근데, 그 회장 양반은 뭐래요?”

“그 회장이 날 어떻게 알고, 애들 오면 그 말 하지 말어. 또 쓴소리 하니께.”

마루턱에 앉아 곰방대에 재를 뿌려 불을 지펴 입에 물었다.

한쪽 다리를 올려 다리를 꼬고 하늘을 올려봤다.

“날은 참 좋은디, 세상은 너무 더러워.”

“아휴, 또 그 소리. 대통령 하지, 왜 그러고 있을까.”

“커험.”

부인의 목소리에 민망한지 헛기침을 토했다. 헛기침에 맞춰 입에서 연기가 흘러나왔다.

“나 요 앞에 다녀올게. 바둑이나 한판 둬 볼까.”

말이 궁색해진 노인은 곰방대를 내려두고, 뒷짐을 쥔 채 터벅터벅 밖으로 향했다.

“어? 저거 거칠이 아녀?”

이호영이 다녀간 지 8일이 지난 날, 오랜만에 보이는 거칠이 노인에 노인들의 눈길이 모아졌다.

“어서 이 실장에게 연락혀. 거칠이 왔다고.”

그의 등장에 여기서 가장 연배가 높은 노인이 지시를 내렸다. 막내로 보이는 노인이 달려가 수화기를 들었다.

“이 실장이여? 나여. 고 씨. 거시기... 자네가 찾는다고 하던 거칠이 영감이 지금 왔다는디? 어여 내려와야?”

고 씨라 소개한 고 노인은 들어오는 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속닥였다.

***

벌컥!

“회장님!!”

깜짝이야, 이 실장이 무슨 일로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와 공기를 두들겼다. 귀청이 나가는 줄 알았다.

“무슨 일이에요?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열심히 펜을 놀리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이 실장으로 인해 서명을 망쳤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민망해하는 이 실장에게 시선을 가져갔다.

“죄, 송합니다. 너무 급한 마음에... 실례를 끼쳐드렸습니다.”

다 이유가 있겠지. 큰 문제도 아니니 그냥 넘기자.

“그 편지의 주인을 찾았습니다.”

“아니, 이렇게 빨리요?!”

“저도 그게 이렇게 빨리 찾게 될 줄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저희 1층에 마련한 어르신들 쉼터에 계시던 분 중 한 분이셨습니다.”

“이럴 게 아니지. 어서 내려가죠.”

100만 원 수표 10장을 들고 로비로 향했다. 발걸음이 바빠졌다.

띵! 소리에 맞춰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자, 장군.”

“멍군.”

“둘이 양박.”

쉼터에 들어서니 어르신들이 장기와 바둑 고스톱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어느 분이죠?”

시선을 이리저리 굴러보지만, 짐작되는 사람이 없었다.

“회장 양반 없구만. 거칠이 찾재? 저짝으로 가보드라고. 걔 있으니께.”

방황하고 있는 와중 어느새 다가온 어르신이 손가락으로 끝에서 하나 둘 세 번째 자리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노인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어르신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고 세 번째 자리로 걸어갔다.

“에낑, 반집 부족하네.”

승패가 결정이 났는지 인상을 찡그린 채 바둑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꽤나 아쉽나 보다.

내가 왔는지조차 눈치를 채지 못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누가 말으ㄹ...?!”

바둑판을 한없이 바라보던 시선이 위로 향하며 거친 말을 뱉으려는 모습을 보이던 때.

하던 말을 멈추고 입을 떡 벌리다 급히 다무신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어르신이 맞다고.

“편지 잘 받았습니다. 해서 이것과 관련해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최대한 정중하게 부탁을 하였다.

“뉘신지?”

표정과 말투가 어색하다. 연기를 했다면 대중들에게 욕을 엄청 먹었을 타입이다.

그만큼 눈앞의 어르신은 거짓을 모르고 사신 아주 순수한 분이란 의미가 되었다.

아마 거칠게 말하는 건, 자신의 그런 모습을 숨기고자 꺼낸 방어적인 측면이 강하리라 봤다.

“부탁합니다.”

이번엔 정중하면서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

“이미 어르신이 제게 보낸 편지의 주인공이란 사실은 모두에게 소문이 났습니다. 이 편지지에 써진 글씨체가 그 증거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평생을 숨길 수 있으리라 봤나 보다. 그렇지 않았다면 본인이 직접 손글씨로 쓰지 않았을 터다.

“참 똑똑한 회장 양반이야.”

“후후.”

참으로 단순하신 분이다.

“저와 저기서 잠깐의 대화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긴 시간은 뺏지 않겠습니다.”

“큼.”

어르신이 주변의 눈치를 살핀다. 모아지는 시선 속에 헛기침 소리.

이렇게 보니 참 순수하신 분들이다.

“가시죠.”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쉼터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스타벅스로 향했다.

“어르신의 성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곧 죽어가는 노인네 이름 알아서 뭐에 쓰려 물어봅니까.”

아무래도 이름을 알리는데 부담을 가지나 보다. 물어보지 않는 게 좋으리라 판단됐다.

“알려주시기 어렵다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이라 말하기 뭣하지만. 지금 드리는 질문은 대답해 주셨음 합니다.”

이름이야 모르면 어떤가?

누구인지 알게 됐으니, 이 정도에서 만족하자.

“뭡니까?”

“어째서 저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고, 이런 큰돈을 저에게 맡기셨는지 궁금합니다.”

“......”

어르신의 얼굴에 슬픔이 묻어나는 건 개인적인 착각에 비롯된 걸까?

“난 말입니다. 6.25 전쟁을 시작으로 월남전을 경험했지요. 아직도 그때 일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요. 어머니, 아버지, 친구, 동생들까지. 이 나라를 살려 보겠다고 희생된 사람들 대부분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돌아왔다 쳐도 전부 장애를 들고 있었지요.”

아련함이 가득한 눈빛 속으로 슬픔이 공기를 타고 전달됐다.

아려오는 가슴. 그 당시 발생한 수많은 전쟁과 사건들이 해일이 되어 머릿속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나야 이렇게 잘 살아 있지만, 죽은 자들의 가족은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삽니다. 어른이야 그렇다 쳐도 아이들은 무슨 죄겠습니까.”

“......”

“나라에서 자기들 밥그릇 싸움하기 바쁠 때, 오로지 회장님만이 직접 나서서 그들을 도우셨습니다.”

“제가요?”

그런 적 없는데.

내가 언제?

“모르실 겁니다. 국가유공자가 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들 모두는 어렵게 살고 있지요. 노숙자가 되기도 했고, 고아가 된 이들도 있습니다.”

모를 만하다. 즉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의미는 누군가의 가족이 내가 벌이는 사업으로 인해 배를 채우고 있음을 의미했다.

어르신은 그 부분을 떠올렸을 터.

‘충분히 이해가 가. 저분은 국가유공자로서 혜택을 받고 있겠지.’

지금 보니 손에 상처가 가득하다. 몇 바늘을 꿰맨 지 모를 상처들이 여기저기 훈장처럼 나 있었다.

“즉, 어르신은 누가 그들의 유족인지 모르기에 모두에게 도움을 주었음 한다는 거지요?”

“......”

“어르신의 생각은 잘 이해했습니다. 한데,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돈이 됐든 밥이 됐든... 지금과 같은 방법은 맞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전 그들에게 직접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직접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그 어떤 보상보다 값지지 않나 싶습니다.”

내 도움은 한계가 따른다.

하여 나는 그들에게 일어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자 한다. 뚜렷한 무언가를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제부터 차차 개발해 나갈 예정이다.

“그리고 이건 도로 가져가세요. 어르신이 정 돕고 싶다면 저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 움직여 돕길 바랍니다. 정체를 숨겨 선의를 베풀기보다, 자신을 알리시고 6.25, 월남전 등 당시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국민들에게 전하는 것도 좋으리라 봅니다.”

“......”

손에 든 천만 원을 어르신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이 돈은 쓸 수 없다.

정확히는 나를 통하는 것이 아닌, 어르신이 직접 나서서 움직이길 바랐다.

“허허...”

어르신의 허탈한 웃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게 맞다고 봤다.

“직접 나서서 도울 생각 있다면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KJ에서 지원을 약속하겠습니다.”

“......”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르신에게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봤다.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

그런 어르신을 뒤로하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

“한국에서 구호물자가 도착했습니다. 이제 살았습니다!”

대만 난터우 현지지, 푸리, 르웨탄 지역에 복구의 삽질이 한창이다.

이재민들이 생기면서 당장 이들에게 필요한 건 쉼터와 식량이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를 수용할 공간이 현저히 부족했다. 식량과 식수도 부족한 상태.

그런 상황에 한국에서 KJ마크를 달고 거대한 컨테이너 화물차들이 구호물자를 싣고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다.

“KJ다! 살았어!”

“사람들에게 먼저 식량과 식수를 공급하고 자네들은 저 빈 공터에서 천막을 치게.”

KJ는 미국에 자리한 타겟, 국내에 자리한 식품사들을 동원해 모든 물량을 대만으로 보냈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컨테이너에서 식수와 식량부터 꺼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황급히 줄지어 서서 배식을 기다렸다.

“정말 KJ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자리한 정치인들은 큼지막하게 적힌 영문을 바라봤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KJ가 잃어버린 빛을 찾아 주겠습니다.

-KJ그룹은 대만과 함께합니다.

“김정수 회장에게 정말로 큰 빚을 졌어. 김 회장은 언제 방문을 한다고 하던가?”

“다음 주 월요일에 방문을 한다 들었습니다.”

“우리 대만의 은인이야. 극진히 모시게.”

중년인은 김 회장을 최고의 귀빈으로 대우할 것을 주문하고 배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향했다.

그는 국자를 들어 사람들의 배식을 도왔다.

암울하기만 하던 대만에 희망의 빛이 깃들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