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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재벌 강림하다-85화 (85/145)

85화

#나가주게

“담배 피웠던가?”

차에서 내린 대표가 담배를 꺼내며 묻는다.

“아니요.”

세상 나쁜 짓은 했어도 담배는 입에 댄 적 없던 서승원이다. 누구보다 몸은 끔찍이 챙기는 중이다.

흐읍, 후─

어두운 밤하늘로 하얀 연기가 올라가 흩어졌다.

담배 연기를 뱉는 양진택 대표의 얼굴이 좋지 못하다.

“이제 다닌 지 얼마나 됐지?”

“이제 6개월 됐습니다.”

긴 시간 방황을 하다 겨우 자리를 잡았다. 6개월간 현장 일을 배우기 위해 노력한 끝에 범용 선반과 밀링을 다룰 수 있게 됐다.

그 시간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수준급에 올라 한 사람의 몫을 톡톡히 하게 됐다.

“6개월..., 오래 다녔네.”

“그런데 왜...?!”

갑자기 퇴근하는 사람을 불러, 분위기를 잡는 대표의 모습이 의아하게 다가왔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리 뜸 들이는 건지.

“직원들 평판이 좋더군.”

30명이 일하는 작은 중소기업이다. 가공회사치고 30명이면 큰 회사에 속했다.

“감사합니다.”

어쨌든 칭찬이 왔으니, 감사를 전했다. 하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대체로 이런 분위기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렀다.

“미안하게 됐어.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자네. 그 한국제조 대표의 아들이라면서. 서교원이라고.”

양진택은 얼마 전 일을 떠올렸다.

-자네 회사에 그 사기꾼의 아들이 다니고 있다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사기꾼 아들이라니?!

-허, 그 왜 있지 않아? KJ그룹 김정수 회장의 이모부라던 인간.

-아, 알지. 그 아들이 우리 회사에 있다고?!

-그래. 내 조카가 가다 우연히 봤다던데.

-그럼, 다니나 보구나, 하면 되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열심히 사는 사람한테.

-어허, 이 사람 몰라도 뭘 모르네. 그 사람 부인이 누구야?

-김 회장의 이모겠지.

-그 사람이 김 회장의 어머님께 뭔 짓을 벌이려 했는지 그걸 그새 까먹은 거야? 사기 치고 해외로 잠적하려 했다고. 그걸 김 회장이 잡아다 감옥으로 보냈고.

-다 끝난 일 아닌가.

-어허, 이 사람 큰일 날 사람이네. KJ에서 이 사실을 알면, 과연 좋게 볼까? 집안을 말아먹게 한 인간이 그 사람인데.

-음...

-사업 망하고 싶어. 지금 있는 회사를 어떻게 키웠는데. 지금 소문이 자자해. 그 사기꾼 아들은 받으면 X된다고.

당시 처음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들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직원들의 평을 들었다.

-요즘 젊은 애들 같지 않아요. 아직 부족하지만, 일도 잘하고, 가르칠 맛이 나는 친구예요.

-좋아요.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어요.

-잔업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해요. 숙련도도 올라서 제 한몫 이상을 합니다.

-불평이 없어요. 그런 사람 처음 봤다니까. 허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원들의 평가를 들으니, 더더욱.

하나, 선택의 순간은 찾아오고 말았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우리도 먹고살아야지. KJ 눈 밖에 난 사람들과 거래하기 힘들다는데 어쩌겠습니까? 나도 이러기 싫은데, 업계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거래처 몇몇 곳에서 거래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에 양진택은 결정을 내렸다.

“......”

서승원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현실로 다가왔다.

“최근 몇몇 거래처에서 거래를 하지 않겠다더군. KJ의 눈치를 본다고.”

“......”

“미안하네. 나도 자네 같은 사람을 내보내기 싫네만. 회사는 유지해야 하지 않나.”

“......”

“그간 일도 열심히 해주고, 내 미안한 마음도 드니. 위로금으로 3개월 치 챙겨 줍세. 보너스 명목으로 소정의 돈도 들어갈 거야.”

양진택은 너무 미안했다. 완전히 깨끗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내 식구는 챙긴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다. 한데, 그걸 이번에 지키지 못했다.

대기업의 혜택은 보장해 주지 못하더라도 직원들의 편의는 최대한 챙겨주려 노력한 사람이 양진택이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편의를 봐주셔서.”

그의 마음을 아는 걸까.

서승원은 씁쓸한 마음을 감추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돼. 돈은 당겨서 이번 주중 지급해 줄게. 그동안 열심히 일해줘 고맙네.”

“...덕분에 많은 걸 배웠습니다.”

“괜찮다면 집까지 태워줄까 하는데, 어떤가?”

“아닙니다. 가면서...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안산에서 일하기 힘들 거야.”

“... 감사합니다.”

양진택 대표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서승원은 씁쓸한 마음을 가슴에 묻고 걸음을 옮겼다.

“이래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나... 이럴 줄 알았으면 담배 한 대 달라고 할걸.”

밤이 차다.

밤이 찬 만큼, 마음도 차갑게 다가왔다.

***

끼이익.

경비실 문이 스륵 열리며 이호영 실장이 모습을 보인다. 안으로 들어서니 많은 인원이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안으로 들어선 이는 이호영 실장. 그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와 모니터를 응시했다.

“수상해 보이는 사람 몇몇이 후보로 올랐습니다. 한데... 음.”

“왜 그래요?”

“전부 노인들이었습니다.”

“노인?”

“우리가 1층 로비에 어르신들 쉬다 가라고 쉼터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건물 1층에는 겨울에는 난방을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어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편히 쉬다 가란 의미에서 만들어 놓은 장소가 있었다.

“로비로 들어와 데스크 주변을 맴도는 영상이 잡혔는데, 다른 사람들도 전부 비슷한 행동들을 해서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원은요?”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쉬운 일이 없다. 이호영은 인상을 쓰고는 멈춘 화면으로 보이는 얼굴들을 유심히 살폈다.

“저 영상들 프린트해서 주세요.”

기다리고만 있다 진짜 1년, 2년 걸려서 찾을 거 같다. 그래서 직접 나서 찾아보기로 했다.

“여기 있습니다.”

몇 분 정도 기다리자 총 다섯 사람의 얼굴이 담긴 프린트가 뽑혀 나왔다.

이호영은 프린트지를 챙겨 경비실을 나섰다.

“어르신들 안녕하세요.”

“옹, 이 실장이고만.”

이호영이 향한 곳은 노인들의 쉼터였다.

“오랜만이시네요. 몸은 괜찮아요? 무릎 아프다면서요.”

“나, 괜찮아. 2층 의사 양반이 어찌 잘 치료해주는지 팔팔햐.”

KJ의 또 다른 사업군. 직원들을 위해 개원시킨 종합병원이 있다. 그곳은 KJ 직원들만 이용한 곳으로 활용했는데, 60대 이상의 어른들 기준으로 무료로 검사를 진행했다.

“그거 다행이네요.”

“근댜, 바쁜 양반이 여긴 어인 일이래?”

이호영 실장이 KJ그룹 내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라는 사실은 신기하게도 이곳에 터를 잡은 노인들도 알 정도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회장은 놀기만 하고 이호영 실장만 일 시킨다고 혀를 쯧 차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혹시, 이분들 아세요?”

영상에서 뽑아온 프린트를 내보였다.

“기다려 봐. 눈이 침침해서.”

노인은 끈을 이용해 목에 있던 안경을 다시 써 종이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이건 김 씨 같고, 이건 최근에 들어온 이 씨고. 여기 세 사람은 저기 있는 쟈들 같은데. 이봐. 이봐!”

오랜 시간 머물렀던 노인은 이곳에서 대표역을 맡고 있었다. 나이도 있고 가장 큰 연장자이면서 말주변이 좋은 사람이라 주변 사람들이 잘 따랐다.

노인은 뒤에서 바둑을 두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세 사람을 불렀다.

“와요. 성님.”

세 노인이 다가왔다. 셋 다 키는 170가량 되어 보이는 70대 초 노인들이었다.

“여기 사진 좀 봐. 자네들 아녀?”

“음, 나 사진이 왜 여기에 있지?”

“뭐래 이게?!”

“... 맞는 거 같은디?”

노인의 물음에 세 노인은 순서대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의아한 눈으로 끔벅이며 바라봤다.

“혹시, 이런 편지 쓴 사람 계신가요?”

이호영은 품속에 들고 있던 봉투를 꺼냈다. 봉투 겉면에 ‘미안하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문구 적혀 있었다.

“음, 글 잘 썼네.”

“그러게. 배운 사람 글씨야.”

“음... 익숙한 글씨체인데. 어디서 봤더라...”

노인들의 반응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던 때!

“그게 정말이십니까? 어르신!”

가장 마지막에 입을 연 중절모 노인의 말에 크게 반색했다.

장시간 걸릴 것이라 내다보던 일에 실마리가 잡혔다.

“확실하지. 이런 잘생긴 글씨를 잊을 리 있나. 가만 보자...”

“혹시 이 중에 있는 분인가요?”

다섯 장의 종이를 그에게 가져갔다.

“보자, 보자. 이 두 사람은 글을 못 쓰고, 이 사람은 음... 없어. 이 다섯 사람은 아냐.”

“아...”

크게 기대를 했던 탓인지, 이호영의 입에서 처음으로 실망의 숨소리가 터졌다.

“누군데 그래?”

그때 큰 어르신이 중절모 노인에게 물었다.

“그 왜 있잖아요. 말 거칠게 하는 양반. 딱 보니 그 사람 글씨네.”

“아, 그 거칠이.”

“...!!”

모두가 아는 듯 하자, 실망으로 물들던 이호영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혹시, 여기 자주 오시나요?”

“암. 오니까 알지. 얼마 전에는 술도 함께 했는데. 그런데 자네가 왜 그 사람을 찾나?”

오─!!

이호영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회장님이 꼭 찾고 싶어 하십니다.”

“헙, 김 회장이? 뭔 죄라도 저질렀나?”

회장이란 단어가 나오자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어떤 사람은 ‘이를 어째’ 걱정을 했고, 누군가는 ‘그 양반 나가서 회장 욕하다 걸린 거 아냐?’ 중얼거리기도 했다.

“좋은 일입니다. 그분이 익명으로 하여 어려운 사람을 도와달라는 친필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안에 돈까지 넣으셔서. 그래서 찾게 됐습니다.”

숨길까 하다 크게 문제 될 사안도 아니라는 판단에 솔직히 털어냈다.

노인들 사이에 오해가 생겨 이상한 소문이 나돌면 안 된다는 판단에 내린 결정이다.

“음, 맞는 거 같네. 그 영감이.”

이호영의 말을 듣자 중절모 남자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자, 주변에 자리한 노인들도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거칠이가 아이들을 참 좋아해.”

“얼마 전에는 배곯는 아이들에게 용돈도 쥐여주고 보냈어.”

“그 아이들 보면 매일 한탄했잖유. 아이들이 뭔 죄라고 썩은 부모 만나 저리 고생한다고.”

“맞지. 키우지도 못할 거 뭣 하러 낳아서 애들 고생시키냐고 욕을 한바탕하고 갔지.”

한 노인의 말이 터지자, 여기저기서 너도나도 참여해 ‘거칠이’ 별명을 가진 노인을 주제로 놓고 대화를 이었다.

노인들은 모두 거칠이를 두둔하며 엄지를 세웠다.

“저, 어르신...”

그 틈에 제대로 끼지 못하던 이호영은 힘겹게 끼어들어 입을 열었다.

“그 거칠이 어르신을 언제 만날 수 있겠어요?”

“그건 나도 모르지. 지가 오고 싶음 그때 오것지.”

“......”

“걱정 마. 오면 말해줄게. 최근 이 근방으로 이사 왔다 했으니, 종종 들를 것이여.”

거칠이 노인과 꽤 가까운지, 제법 많은 정보를 들고 있는 중절모 노인이었다.

“그럼 꼭 좀 부탁합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걱정 말어. 내 연락할게.”

“감사합니다.”

드디어 찾았다. 이호영 실장은 벅찬 감정을 억누르고 자리를 떴다.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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