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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재벌 강림하다-83화 (83/145)

83화

#깃발을 꽂다

스르륵.

차량이 높게 솟은 파크 하얏트 베이징 호텔 출입문에 멈췄다.

수많은 경호 인력이 주변을 에워싸, 차량에서 내리는 강택민 주석을 보호했다.

“처음 뵙습니다. KJ 김정수입니다.”

한 국가의 주석이 직접 호텔로 오겠다는 소리에 호텔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불편하게 씨리.

“오, 김 회장님. 이거, TV로 볼 때보다 헌칠하니 잘생겼습니다.”

인자한 할아버지가 두 팔을 뻗어 웃으며 걸어온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딱 저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주석님은 인자하니 참으로 보기 좋은 인상입니다.”

좋은 말에는 좋은 말로 상대해 주자.

중국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않지만, 돈을 생각하면 중국은 효자국가다.

“그런 소리는 또 처음 듣습니다. 내게 그런 말을 건넨 사람은 김 회장님이 유일합니다.”

어련할까, 중국은 정부에 찍히면 사형감인데.

“그럴 리가요. 친할아버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허허.”

분위기는 좋다. 우리는 웃음 속에 연회장으로 향했다. 경호원들이 만든 길을 따라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저기 김정수 회장 맞지? 저 사람 강택민 주석이고?!”

“어! 그렇네. 야 찍어! 특종이다!”

찰칵찰칵!

우리를 알아본 기자들이 달려와 사진을 찍어댔다. 시선을 슬쩍 돌려 강택민 주석을 보니 싫지 않은 모습이다.

‘나라를 홍보할 생각이니, 이런 자리도 나쁘지 않겠지. 지켜보자.’

나도 무시하고 기자들을 지나쳤다. 최대한 입가를 옆으로 찢으며. 중국 기자들도 있기에 친해 보이는 게 여러모로 좋았다.

“친할아버지라. 하하. 그거참 듣기 좋은 소립니다. 회장님 같은 손자가 있다면 매일 업고 다닐 겁니다.”

“이거, 그런 불효도 없겠네요.”

하하하.

기자들을 무시한 채 폭소가 터졌다. 곧 기자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널찍한 방 안만이 눈에 들어왔다.

동그란 원형 테이블에 수십 개의 의자가 자리했다.

“우리 중국에 KJ가 친히 기술지식을 나눠주신다 들었습니다.”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다 제 주머니 채우자고 하는 일이죠. 누가 뭐래도 전 투자자이며 사업가이니 말입니다.”

공기가 변했다. 인자하게 보이던 그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할아버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자신의 터전을 지키는 늙은 호랑이가 눈앞에 있었다.

“조사한 대로 무척 솔직합니다.”

“솔직한 기업인이 되자. 제 슬로건입니다.”

“아주 좋은 자세이십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죠.”

“허허. 그렇지요. 우리 정치가들이 배워야 할 자세입니다.”

능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언제 먹이를 한입에 삼킬지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다.

“과합니다. 배우다니요. 제가 중국정치를 배워야 맞지요.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진실이면서 진실이 아닌 거짓.

중국의 문화와 정치를 알면 사업하기에 편하다. 딱 그뿐이다.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허허. 참 듣기 좋습니다. 다른 기업인들과 다른 모습. 김 회장님의 성공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그리 높게 평가를 해주시다니, 이를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공기는 무겁지만, 분위기는 비교적 가벼웠다. 사업 이야기를 슬며시 꺼내며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답답한 순간만 빼면 어디서나 볼 법한 일상적인 대화였다.

“나도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중국의 성장을 지켜봤습니다. 주석께서 맡고부터 중국은 매년 8%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더군요. 그 시점부터였던 거 같네요. 중국에 매력을 느낀 건.”

“하하, 그렇습니까? 하면, 그런 매력적인 국가에 인터넷 말고 또 원하는 바가 있습니까? 듣자니 알리바바에 상당한 규모로 투자를 하셨던데.”

“알리바바는 원하지 않습니다. 알리바바는 한국과 중국을 이어주는 교두보 역할 정도면 된다 봅니다. 덕분에 주석과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 거지요.”

“크크.”

분위기가 또 변했다. 변한 공기 속에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갈증. 갈망이 전해진다. 무엇을 원하는 걸까?

저 욕심은 무엇이고.

“역시. 욕심이 납니다.”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아직 팍 떠오르는 부분이 없었다.

“중국으로 귀화할 생각 없습니까?”

“...?!”

이거였나? 그가 계속 고민하던 것이.

이걸 꺼내기 위한 시간이었나 보다.

“귀화를 한다면,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죠. 당원으로 대우해 드리고, KJ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겠습니다.”

“......”

이걸 좋게 생각을 해야 할지. 그 어렵다던 당원에 들어가고 사업을 밀어주겠다?

분명 매력 있는 제안이다.

하지만.

“그건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중국은 양날의 검보다 더 위험하다. 정부의 입김에 따라 울고 웃는 기업. 차라리 외국인 입장에서 중국과 거래하는 게 가장 좋다.

‘할 거라면 미국이나 영국으로 하고 말지. 중국은 땡이야.’

설사 고위공직자까지 올라갈 수 있더라도. 애초부터 한국을 버릴 생각 따위는 없다.

“한 지역에 KJ를 위한 도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중국에 바라는 건 투자와 기술을 전해 중국의 발전을 돕는 정도입니다.”

주석 자리를 내게 넘긴다면, 이건 좀 흔들릴 건 같지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이쯤에서 마무리 짓는 게 좋다.

“만약, 이걸로 저의 투자를 거부하신다면. 바로 중국을 떠나겠습니다.”

돈은 차고 넘친다. 그리고 중국은 어쩔 수 없이 KJ의 기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세계에 뻗어 있는 기업들이 KJ를 통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이거, 이거. 야심가라 들었는데, 그건 또 아닌가 봅니다.”

“어떻게 받아들이셔도 좋습니다.”

“선이 뚜렷한 분이란 건 알았지만, 좋습니다. 이 제안은 없던 걸로 하지요. 하나,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최고의 대우로 김 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란 남자, 중국 정부에 사랑을 받나 보다. 역시 돈이 최고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사업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 기업과 합작법인을 만들어 중국에 인터넷 시장을 확대하기로 하고, 인텔에서 할인된 금액으로 공급해 주기로 계약을 마쳤다.

1차 총 대수는 1천만 대.

가히 압도적인 수치였다.

“휴, 끝났다.”

나를 위해 특별한 행사를 준비했으니, 참석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이건 뒤로 미뤘다.

당분간 중국에 올 일이 많아질 예정이기에 기회는 언제든 있다 여겼다.

중국의 최고 공직자를 배경으로 삼게 됐는데, 굳이 급하게 움직일 필요 없다는 계산에서다.

그리고.

쉬이이─

“중국 음식은 너무 느끼해. 입맛에 안 맞아.”

된장찌개가 그리웠다. 난 해외에서 살기 힘든 미각을 타고났나 보다.

-KJ그룹 미국을 넘어 중국에 터를 잡는다. 중국의 강택민 주석과 독대를 가진 김정수 회장은 중국 기업과 인터넷 합작법인을 설립해 인터넷 시장을 확대하는 한편, 1천만 대에 이르는 컴퓨터를 공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한 대당 백만 원씩만 따져도 이게 얼마냐? 천만 대면.”

“내가 그걸 계산할 수 있는 머리를 가졌다 보냐? 완전 개 부럽네. 어떻게 그 인간은 신내림이라도 받았대? 하는 일마다 대박이냐?! 그 운 중에 0.1%만 물려받고 싶다.”

KJ의 행보는 늘 이슈를 안고 살았다. 잊을 만하면 빵빵 터트리는 기업. 여타 기업은 프로젝트 하나 성공시키기도 힘든데, 그가 찾는 길은 늘 황금으로 가득했다.

“하... 난 언제 차 사고 집 사고 결혼할 수 있을까.”

“현실 진짜 불평등하네. 아, 몰라. 여기 소주 하나요!”

둘은 TV에서 방송하는 뉴스를 보며 먹다 만 국밥에 소주로 쓰린 마음을 달랬다.

“... 김정수.”

한편 주문을 받고 소주를 전달한 여자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작은 목소리로 TV 속 주인공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우리는 이렇게 사는데, 너만... 너만 아니었어도...”

여성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금방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름은 서효린. 작년 사기로 수감된 정지은과 서교원의 첫째 딸이다. 회사가 부도나고 중상층에 위치하던 호화생활은 옛 과거가 되었다.

지금은 하루 끼니도 걱정할 시기. 회사 사무직으로 일을 알아보려 했지만, 고졸이라는 벽에 막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나름 명품으로 치장하던 옷은 이제 그림의 떡. 지금은 그저 1~2만 원짜리 비브랜드 옷을 입었다.

“효린 씨, 뭐 해요! 저기 주문하는 거 안 보여요!?”

“아, 죄송합니다.”

“하아, 불쌍해서 뽑아줬더니. 아씨. 담배 땡기네.”

정신을 TV에 뺏기면서 주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장은 효린을 보며 인상을 구기다 자리에 있는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

“......”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두 남자가 있었다. 두 남자 중 덩치가 작은 남자가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전송했다.

***

지이잉─

-서효린, XX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걸로 확인. 업무능력 하.

-서승원, XX제조사에 입사해 기술을 배우는 중. 업무능력 중.

핸드폰이 부르르 떤다. 안의 내용을 확인하니 서효린과 서승원에 대한 소식이 담겼다.

“음.”

서효린은 낭비가 심한 타입이고, 꾸미기를 좋아하던 여자다. 서승원도 그에 못지않았는데. 이건 의외다.

“효린 누나야 그렇다 치고, 서승원은... 의외인데?”

놀기 좋아하고 자존심이 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남자. 더럽고 냄새나는 걸 싫어해 기계 근처에는 가지 않던 사람이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시작했다.

업무 숙련도는 중. 이들이 이렇게 평가를 내렸다는 건, 진짜 열심히 살고 있음을 의미했다.

“술 마시며 방탕한 생활이나 할 줄 알았는데, 많이 변했구나.”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준 건 반지하 월세방을 저렴하게 내어준 정도밖에 없었다. 타인의 명의로.

한데, 둘은 반전세를 탈출해 대출을 받고 2층 전셋집을 구했다 하니, 한편으로 대견했다.

“이모랑 이모부보다는 낫네. 둘을 망친 건 환경에서 비롯된 거였어.”

분명 둘은 나를 욕하고 있을지 모른다. 둘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홀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전혀 이상하지 않다. 부모를 감옥으로 보내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이쯤 되니 조금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 좀 더 지켜보자. 그때가 되면 약간의 도움 정도는 괜찮겠지.”

그럼 엄마도 크게 안도하며 편안히 지내실 거다. 예전보다 살이 빠진 모습이 걱정이었는데.

조금은 용서할 마음이 생겼다. 그렇다고 KJ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

두루룽─ 쿵!!

그 시각 대만에서 땅이 크게 흔들리며 대지진이 발생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대지진은 대만에 재앙을 남기고 사라졌다.

-긴급속보입니다. 대만 난터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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