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중국
세계 인구수 75억 명.
그중 중국의 인구는 약 13억 명에 육박한다.
머지않아 미국을 압박할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될 국가.
KJ의 깃발을 꽂기 위하여 중국 땅을 밟았다.
“회장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공항에 들어서니, 마윈 대표가 신이 난 얼굴로 반겨주었다.
발음이 살짝 새는 영어지만,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주 잘 지냈습니다. 대표님도 잘 지내셨습니까.”
즐거워하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회장님 덕분에 매일을 웃으며 지냅니다. 하하.”
마윈 대표의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제가 뭐한 게 있다고. 한데, 요즘 일이 잘 안 풀린다고요?”
“공교롭게도... 그렇습니다.”
머쓱한지, 그것도 아니면 부끄러운 탓인지 마윈의 어색한 웃음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감정 속에 씁쓸함을 느꼈다.
‘뭐, 무리도 아니지. 중국 환경이 그런 걸 어찌할까.’
분명 중국은 기회의 땅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갖춰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 국가이기도 하였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은 국가가 중국이었다.
“요즘 중국을 방문하는 투자자들이 많다 들었습니다.”
“분명 호재는 맞지만, 그러면 뭐 하나요.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국가나 다름없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멉니다.”
베트남보다 가난하던 한국이 90년에 들어서면서 빠른 발전을 이룩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분류되었다.
그 중심에 KJ그룹이 크게 활약 중이다.
“금방입니다. 그리고 제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KJ는 중국에 인터넷 기술을 전수해, 중국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온 거고요.”
과연 중국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현재 중국 주석에 자리한 강택민이라면 충분히 대화가 통하리라 내다봤다.
경제 개방, 개혁 노선을 지지하는 그자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와우, 제법 그럴싸한 건물이네요.”
마윈 대표로 따라 저장성 항저우에 위치한 작은 빌딩으로 향했다.
기억 속에 자리하는 근사한 건물 대신 작은 빌딩이 자리했다. 머지않아 기억 속에 자리한 멋진 건물로 바뀌게 되겠지만.
“KJ에 비하면 초라하지요. 이리 모시겠습니다.”
마윈 대표가 앞장서 건물로 들어갔다. 잠시 빌딩을 감상하다 그의 뒤를 따랐다.
***
“주석, 한국의 김정수 회장이 공항에 도착해, 알리바바 마윈 대표를 만나 독대를 하고 있다 합니다.”
김정수 회장의 방문은 공항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강택민에게 전해졌다.
“그의 방문 목적이 인터넷 기술을 전수해주기 위해서라지?”
“그렇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보는가?”
고민의 기색이 가득한 그의 얼굴에 얕은 주름이 잡혔다.
“한국이 미국과 유럽보다 열악하다 하지만, KJ에서 보유한 기술은 세계 최고라 들었습니다. 또한, 인터넷 기술만 놓고 보자면 단연 세계 최고라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인터넷 기술은 아주 유명하다. 컴퓨터 보급률과 한국에만 자리하는 ‘PC방’으로 인해 발생한 특수 효과는 한국의 인터넷 시장을 크게 발전시켰다.
“음, 그럼 만나보는 게 좋겠지. 다른 누구도 아닌 KJ그룹 회장이라면.”
강택민은 긴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KJ그룹 김정수 회장을 만나보기로.
가장 만나기 어려운 사람인 강택민을 작은 파도타기 몇 번으로 움직였다.
KJ그룹의 영향력을 입증하는 모습이다.
***
중국에 들어온 지 이틀째 저녁.
“정부에서 찾아왔습니다.”
쉬고 있는 호텔로 중국 정부 관계자가 찾아왔다. 보고 있던 책을 덮고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소파에서 엉덩이를 뗐다.
“들이세요.”
방 안으로 들어온 수행원은 지시에 작게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인맥이 빵빵해도 만나기 어렵다는 중국 주석을 만나게 될 줄이야. 내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그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신 김 회장님을 뵙습니다. 전 강택민 주석을 모시는 왕학체입니다.”
왕학체 의원.
말끔히 옆으로 빗어 넘긴 머리에 쌍꺼풀 없는 눈이 그의 성격을 말해준다.
“어서 오시지요. 제 소개는 따로 드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편하실 대로.”
나를 찾은 인물이 나를 모를 이유가 없기에, 내 소개는 생략하기로 하였다.
딱히 준비된 것도 없기에 호텔 안에 있던 차를 꺼내 그를 맞이했다.
“절 찾은 건 주석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겠지요.”
차를 입에 가져가는 그를 탐색하며 물었다.
“그 부분은 주석께서 말씀해 주실 겁니다. 전 김 회장님이 정확히 어떤 분인지 알고자 합니다.”
뭐? 이건 뭔 말이야.
“주석께선 김 회장님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궁금해하십니다.”
“그 말은 의원님이 절 미리 만나 대화를 통해 알아보고 이를 주석에게 전달하겠다, 뭐 그런 말입니까?”
“비슷합니다.”
비슷하기는, 그 뜻으로 말하고서.
어디를 가든 ‘정치’와 연관된 사람은 낯짝이 두꺼운 법인가 보다.
이건 세상이 참으로 공평하게 흘러 좋지 않은 의미로 감사하다. 너무도 알아먹기 쉽고, 내가 악역을 자처하지 않아도 되니.
“그래서 제가 어때 보이나요?”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그와 눈을 마주했다. 탐색할 거라면 열심히 해봐라.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보자.
“전 관상가가 아닙니다. 제 느낌을 정할 뿐이니, 평소대로 해주시면 됩니다.”
“큭. 크크. 크하하하.”
참으려던 어이없는 웃음이 입 밖으로 터졌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어떻게 저 얼굴로 이런 대사를 입에 담을 수 있는지.
연구대상이다.
“왜 웃으시죠?”
직접 거울을 보고 본인에게 그렇게 말해봐. 웃지 않고 배길 수 있나.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잊고 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하하. 죄송하게 됐습니다.”
“......”
“사람이 괜스레 옛 유머를 떠올리면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이 있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걸 떠올렸다 보시면 됩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졌지만, 괜한 일을 만들 수 없기에 애써 변명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주석께서 하신 말도 있고. 김 회장님은 아주 대단한 분이시더군요. 중국이 세계와 담을 쌓고 산 사이 단시간에 높은 성장을 보이셨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이래저래 투자를 하며 살아가다 보니 지금 자리에 오르더이다.”
나에 대해 무엇을 알아가려고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드러난 정보는 말해줄 용의는 있었다. 물론, 상대의 태도에 따라서.
“회장님께 붙은 수식어가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투자의 귀재, 천재 개발자, 독식자. 뭐 하나 가벼운 게 없었습니다. 그 비결이 궁금한데, 그 부분에 대해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내 능력이 꽤 욕심이 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하나, 미래를 읽는다. 둘, 세상을 본다. 셋, 욕심으로 채운 재화는 사람들에게 베푼다. 이게 내 성공의 핵심입니다.”
“......”
“KJ는 버크셔헤드웨이사와 파트너쉽을 맺고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이 재단은 미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습니다.”
“......”
“기업이란 말입니다. 사람들의 사랑을 먹고 성장합니다. 그 사랑은 관심이 될 수 있고, 재화가 될 수 있겠지요.”
이 부분이 포인트다. 기업의 가치는 재무제표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건 50점짜리 답안이다. 진정한 가치는 기업을 찾는 사람들 수에서 나온다.
재무제표가 백날 좋아 봐야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점유율을 잃고 처참하게 무너진다.
물론, 시장을 독점을 한다면 싫어도 사용하게 되겠지만.
“이해했습니다.”
“이 정도면 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까?”
“저희가 조사한 정보와 일치합니다. 다음에 중국을 찾는다면, 저를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교육비를 지불해 드리지요.”
음... 좋은 건가?
갑자기 태도가 변하고 표정이 바뀌니 꺼림칙하다.
“그러지요.”
“주석께서 내일 점심을 함께하고 싶다 하셨습니다. 차량은 저희 쪽에서 준비하겠습니다.”
왕학체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실례가 많았습니다.”
건방지게 굴던 자세가 확 바뀌었다.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왕학체 의원이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지요. 주석께는 시간을 내줘 감사하다 전해주세요.”
왕학체 의원은 빙그레 웃고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 이거, 완전 귀신에 홀린 기분이네.”
텅 빈 방. 왕학체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정말이지, 세상에는 별 특이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
중국관저.
강택민 주석 집무실.
“어떻던가?”
“소문대로의 인물입니다. 먼저 자극을 하지 않는다면, 중국에 큰 이득을 안겨주리라 보입니다.”
“그래?”
“좋은 파트너가 되리라 봅니다.”
왕학체는 김정수 회장과 함께였던 시간을 떠올렸다. 긴 시간이 아닌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화를 하면서 여러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사업적으로 욕심이 대단한 사람.
이윤을 나눌 줄 아는 사람.
협상이 가능한 사람.
먼저 악의적으로 건들지 않는 이상 먼저 칼을 품지 않을 사람 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이 꼭 품어야 할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품지 못한다면 확실한 우군으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알려진 재산만 수천억 달러가 가뿐히 넘는다.
추정치는 1조 달러.
마이크로 소프트, 인텔, 베어링스, 블롬즈버리, KJ전자, KJ에너지, KJ제약, KJ식품, KJ자동차 등등.
대부분이 독점적인 운영에 재단에서 쏟아내는 지원금은 KJ를 함부로 건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 KJ에서 재단을 포함해 여러 사업들에 대해 철수를 선언하면 공황에 빠질 위험이 컸다.
KJ의 특혜를 받는 국민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놓고 봤을 때. KJ는 세계시장의 중심에 선 핵심 기업이라 말할 수 있었다.
“품는다라...”
강택민은 고민했다. 과연 중국이 김정수 회장을 품을 수 있을지.
김정수 회장이 순순히 따를지.
“중국 일부를 KJ공단으로 만들어 준다 하면 따르지 않겠습니까?”
“KJ를 위한 공단을 말인가?”
“그렇습니다. 다른 기업이야 모를 일이지만, KJ 정도면 그 정도의 값어치는 한다 여겨집니다.”
“음... 내 생각해 보지.”
왕학체의 의견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KJ를 품는다는 건, 세계를 얻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주석 각하, 시간 됐습니다.”
중국 시각으로 11시가 된 시점. 대기 중이던 수행원이 둘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벌서 그리되었나? 출발하지. 중요한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자네는 이번 사업에 필요한 인력을 미리 준비시켜 놓게.”
강택민 주석은 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잊고 있던 지시를 내렸다.
“다녀오십시오.”
왕학체 의원은 밖으로 향하는 주석을 보며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가지.”
부릉, 차량이 서서히 움직여 관저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