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이호영 비서실장
하얀 하늘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을 만끽하며 출근길에 올랐다.
깍깍, 까치가 푸드덕 날아올라 날개를 저었다.
“까치라, 좋은 소식이라도 있으려나?”
이맘때 즈음이면 보게 되는 까치의 모습이지만, 괜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한국국민이면 한 번씩 가지게 되는 미신에 대한 생각.
어쨌든 분명 들뜨고 기분이 좋은 날이다.
푹!!
“......”
내가 방금 잘못 봤나? 방금 하늘 위에서 뭔가 떨어졌는데?!
“아, 저 새가 진짜! 회장님. 잠시 차를 갓길로 세워야 할 거 같습니다. 방금 지나간 까치가 차량 앞 유리에 똥을 싸지르고 갔습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까치 떼가 앞쪽 유리에 축제를 벌이고 갔다. 저렇게 흠뻑 맞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제대로 맞았다.
“그러세요.”
안전을 확보하고 갓길에 차량을 멈췄다. 기사가 똥을 닦는 동안 책을 꺼내어 읽었다.
나도 언제고 자서전을 써보기 위하여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하며 간접 경험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사람의 생각과 사고 등을 접할 수 있어 재밌었다.
“출발하겠습니다.”
앞 유리가 깨끗하다.
기사가 들어와 출발신호를 알렸다.
푹!
“응?!”
이번에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차량이 덜컹하며 무언가 밟고 지나가다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다.
“... 차량 바퀴에 이상이 생긴 거 같습니다. 바로 보험사를 부르겠습니다.”
허참... 오늘 일진이 묘하게 흘러간다.
강제로 독서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차량은 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수리가 끝나고 출발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모두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었지만, 재수 없던 시간을 날리고자 애써 즐거운 얼굴로 직원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세요.”
남민희 비서대리가 앞에 서서 방긋 웃는다.
“그러게요. 오늘따라 참 좋네요. 하하.”
거짓말이지만, 굳이 그걸 밝히진 않았다.
웃는 미녀를 보니 엉망이던 기분이 한결 누그러진다.
“오늘 옷 예쁜데, 선이라도 보나요?”
그러고 보니 오늘 남 대리의 옷이 다른 날과 달리 꽤 신경 쓴 모습이다.
화장도 좀 신경을 쓴 거 같고.
“에이, 아니에요. 그냥 저도 새해라는 기분에... 호호.”
남 대리가 민망한 얼굴로 웃는다. 이렇게 보니 또 귀여운 매력이 있다.
“오늘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회장님도 짱 멋지세요.”
“고마워요. 오늘도 잘 부탁해요.”
남 대리에게 간단히 대화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하... 이걸 보니 기분이 확 죽네.”
올려진 보고서와 기억도 안 나는 서류로 쌓인 서류탑에 들떴던 기분이 확 날아갔다. 망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란.
“엿 같네.”
회장이라고 늘 기분이 좋으란 법은 없다. 서류를 급함 보통 보류 등으로 대충 정리하고 급한 서류부터 넘겨 갔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이 실장을 보지 못했는데, 아직 출근하지 않았나?”
늘 먼저와 인사를 올리던 사람이 오늘은 얼굴을 보지 못했다. 서류를 정리하다 든 생각.
잠시 일을 멈추고 수화기를 들어 비서실에 연락했다.
-네, 회장님.
“오늘 이 실장님 출근 안 했나요?”
-출근 전이십니다.
“따로 연락은요?”
-아직 연락은 받지 못했습니다.
“음... 알겠어요. 오면 내 방으로 들르라 하세요.”
-알겠습니다.
“흠, 진짜 무슨 일이지?”
이쯤 되자 걱정이 들었다. 평소 책임감이 강해 누구보다 앞장 서서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연락도 없이 늦으니 화가 나기보단 걱정이 더 들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보지. 이 실장님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한편으로는 마음이 바뀌어 퇴사를 준비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또 다른 생각은 어제 진탕 술을 마시고 아직도 자고 있는 건 아닌지 싶었다.
전화를 해 볼까 했지만, 기다려 보기로 했다.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
따르릉, 따르릉.
새벽 5시,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는 이호영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는지 몸만 뒤척일 뿐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따르릉, 따르릉.
새벽 5시 2분.
2분이 지난 시간, 전화기는 잠시 끊기는가 싶지만 재차 울렸다.
“으음...”
깊게 잠들었던지 미간에 주름이 지며 잠에서 깼다.
“대체 누구야. 이 시간에...”
겨우 잠에서 깨어난 이호영은 전화를 받기 전 시계를 확인했다.
-5시 3분.
일어나려면 아직 20분 정도 남은 시간이다. 20분에 일어나 씻고 간단한 운동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한데, 지금 시간은 새벽 5시 3분.
누구기에 이 시간에 이리 전화를 하는 걸까?
눈을 비비고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했다.
-이영희.
“영희가 이 시간에 어쩐 일이지?”
이영희. 늦게 본 막둥이 여동생이었다. 일반 여동생 느낌보다 딸에 가까운 동생이었다. 부모님보다 더 가까이 두고 함께 생활해 오던 동생.
그런 동생이 이른 새벽에 전화를 해왔다.
“나야,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오빠, 왜 지금 전화 받아! 엉엉.
“......?!”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에서 괴성에 가까운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확 달아났다.
이호영은 깜짝 놀라 대충 받던 전화를 바로 잡고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이호영은 잔뜩 걱정된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어떡해. 엉엉. 엄마가, 우리 엄마가... 어떡해. 엉엉.
대성통곡을 하며 울어대는 동생의 목소리. 잔잔하게 뛰던 심장이 거친 물살이 되어 쿵쾅쿵쾅 뛰었다.
머릿속으로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엄마가 어떻게 됐는데? 어!”
-엄마가 쓰러졌어. 흑, 화장실 갔는데... 흑. 엄마가... 흑...
“영희야, 지금 어디야? 내가 바로 갈게.”
이호영은 영희와 전화를 더 잇지 못하고 위치를 물었다. 불길함은 확신으로 바뀌어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옷을 대충 입고 방을 나섰다.
-여기 XX병원... 흑흑. 오빠, 나 무서워. 흑흑.
영희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그럴수록 이호영은 마음이 다급하게 더욱 서둘렀다.
부릉─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의 엔진이 이호영의 심정을 대변하듯 부르르 울었다.
이호영은 급하게 기어를 조작해 핸들을 틀었다.
“오빠!”
“영희야!”
2시간 반을 걸려 강원도에 도착했다. 새벽길이라 다행히 차는 많지 않아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이호영은 울고 있는 동생을 불렀다. 영희가 호영을 보고 뛰어와 안겼다.
“엄마는? 설마 아니지? 응?”
호영의 목소리가 떨린다. 시선은 영희에서 영희가 있던 병실로 향했다.
“으앙,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우리 엄마 너무 불쌍해.”
“...... 서, 설마. 아니지. 어? 아니지?! 아닌 거지?”
“으아아앙!”
“어, 엄마! 엄마!”
호영의 걸음이 급해졌다. 안겨든 영희와 떨어져 병실로 향했다.
“보호자 되십니까? 보호자와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 저기에 누워있는 사람...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병실로 들어가자 의사가 있었다. 의사는 호영을 보자 안타까운 음성으로 물었다. 하나, 호영의 귀로 의사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어, 엄마... 아니지...”
얼굴을 천으로 가린 얼굴.
호영은 떨리는 걸음으로 천천히 침대로 다가갔다.
“......”
의사는 호영을 제지하지 않았다. 여자와 호영의 관계는 그의 혼잣말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의사는 말없이 조용히 호영의 행동을 지켜봤다.
“어, 엄마. 이건 거짓말이야. 연기일 거야. 꿈일 거라고.”
천을 걷어 얼굴을 확인했다. 호영은 계속 중얼거리며 차갑게 식은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엄마... 엄마... 으엄마... 큭.... 내가,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일어나. 제발, 부탁이야. 이렇게, 이렇게 가지 마. 응, 엄마...”
가난을 되물려주기 싫다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을 하며 홀로 가족을 지켜오신 엄마.
자식 교육에 모든 걸 다 바친 그녀는 제대로 여생을 살아보지 못하고 쓸쓸히 영면에 들어갔다.
일과 결혼으로 고향을 떠나 경기도에 자리를 잡았지만, 마음은 늘 고향집에 가 있었다.
지금도 성공한 인생이라 말할 수 있지만, 보다 확실한 성공을 위해 일에 집중해 살았는데, 경기도로 넘어오고 얼굴 몇 번 보지 못한 모친의 죽음은 평생의 상처로 남으리라.
“엄마. 이제 모시려 했는데... 그랬는데... 왜... 왜...”
이호영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죄인이 된 기분에 빠진 나머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으엄마... 엉엉.”
밖에서 쉬고 있던 영희가 병실로 들어와 호영의 곁에 앉아 같이 울었다.
병실은 울음바다로 아침까지 이어졌다.
***
“으자자. 휴, 일단 오전 일은 이쯤하고. 이 실장은 아직인가?”
11시 35분.
점심시간까지 20분 정도 남았다.
한데, 비서실에서도 연락이 없고, 핸드폰으로도 연락이 없었다.
“진짜 무슨 일이지?”
잠시 잊으려 일에 집중했는데, 시선이 자꾸 핸드폰으로 향했다.
대부분이 쓸데없는 연락들만 득실거렸다.
“... 아무래도 안 되겠어. 연락을 해보는 게 좋겠어.”
부담을 주기 싫어 기다렸지만,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도록 연락이 없으니 직접 연락을 해보기로 하였다.
지이잉─
지이잉─
“어?!”
-이호영 비서실장.
때마침 핸드폰으로 이호영 실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실장님. 무슨 일이기에 아직도 출근을 하지 않고. 어디서 뭐 하고 계세요.”
다 큰 어른이고 한 번 실수했을 뿐이다. 그것도 아니며 진짜 특별한 일이 있으리라 봤다.
-회장님, 이제야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응? 이상한데?! 진짜 무슨 일 생겼나?
“왜 그러세요.”
이거 기분이 쎄하다. 지난 전생과 천재들의 기억이 좋지 않은 예감을 머릿속에 심어줬다.
대체로 이런 분위기는...
-오늘 새벽에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큭... 경황이...
두둔!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안 좋은 예감은 늘 100% 들어맞는다.
이제 서류는 시야로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신경이 이호영 실장 목소리에 집중됐다.
“그만 말하세요. 병원, 그렇지! 병원을 말하세요.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나라도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냉정함을 유지했다. 하나, 그것이 좀처럼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강원도 정선에 있는 XX병원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니에요. 여동생분 잘 달래주고, 이 실장님도 마음을 추스르고 있어요.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었다. 즉시 비서실로 호출했다.
“이호영 실장님 모친이 돌아가셨습니다. 회사에서 해 줄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해주세요. 화환도 보내시고. 그리고 장례식장과 좋은 땅 알아보세요.”
-헛, 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헬기를 준비하세요. 참석 가능한 직원들, 조사해 차량을 태워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비서에게 지시를 마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연락을 받았는지 헬기가 프로펠러를 거칠게 돌리고 있었다.
“강원도 XX병원으로 가죠.”
헬기가 하늘로 떠올랐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 실장님. 기다려요.”
하늘 높이 떠오른 헬기는 강원도 빠르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