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스티브 잡스 (2)
“우리나라에 잘 사는 인구가 많을까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을까요?”
초등학생에게 할 법한 질문을 다 큰 어른들에게 하고 있다. 하나, 이 질문은 내 다음을 하기 위한 시작점이기에 중요한 물음이었다.
“당연히 부자보다 일반인들이 많지요.”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수는요?”
“그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질문의 유치함에 선뜻 대답을 망설이는 자들이 드문드문 보이지만, 어쨌든 저들은 충실하게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그렇죠. 만약 우리가 그들을 신경을 쓰지 않고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경제는 최악으로 치닫게 될 겁니다. 물가를 안정시키며 경제성장률보다 몇 템포 낮춰 앞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이거지요.”
경제가 성장하는 것만큼 물가를 상승시킬 필요가 있을까? 현재 KJ의 상황은 원자재부터 시작해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종을 취급한다.
그런 만큼 KJ의 방향에 따라 세계 물가가 결정이 되고, 한국과 미국이 상황에 맞게 금리를 조정했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책임감이 따랐다.
“우리 회사가 지출이 20% 늘어난다 해서 흔들릴 기업인가요? 100% 늘지 않는 이상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을 겁니다. 물론 여러분이 생각하는 상식과 제가 생각하는 것은 엄연히 다를 겁니다. 그게 맞고요.”
기업인들은 기업의 이익만을 생각한다. 고객을 생각하는 부분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고객을 생각한다면, 고객이 아닌 ‘사람’ ‘국민’을 생각하는 게 맞다.
사회의 약자를 챙기는 것이 기업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구조라 나는 생각한다.
약육강식에서 보면 알 수 있다. 강자가 살기 위해서는 약자가 많아야 한다. 그들을 양분 삼아 강자는 배를 불린다. 한데, 먹이사슬 최약층이 줄거나 사라진다면?
‘강자는 자멸해 죽는다. 사회도 마찬가지야. 그들을 챙김으로써 내가 있는 것이고, 기업이 사는 거야.’
경쟁 속에 살아가 서로를 채찍질을 해 성장을 한다지만, 그건 한계가 명백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소비자들을 배려한 마케팅, 친서민 정책을 펼쳐 시장규모를 키우는 일이다.
1억 원짜리 지폐를 내미는 고객 하나보다 1만 원 지폐를 내는 고객들을 잡아 두는 게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방법이고 1위 자리를 차지하는 방법이다.
대형 고객만을 잡는 기업은 당장의 매출은 늘지 모르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그들이 외면하면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여러분은 절대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기업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1%의 부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99%의 서민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다시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못마땅한 얼굴도 보이고, 공감하는 얼굴도 보인다.
모두가 내 이야기에 공감하란 의미에서 한 소리는 아니니.
이쯤에서 슬슬 마무리를 짓자.
그저 내 생각을 저들이 알아주면 그걸로 되었다.
“이 KJ에 있는 동안에는 기업의 이익보다 진실되게 고객을 챙기세요. 그리고 고객을 챙기는 만큼 우리 직원들도 챙기세요. 그것이 여러분들이 할 일입니다.”
임원진의 면담이 KJ그룹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자리가 되었지만, 만족했다.
오늘로 기점으로 KJ가 다시 한 번 크게 날길 바란다.
***
“세상에 별난 사람은 많이 만나 봤지만, KJ처럼 별난 기업은 처음입니다.”
다시 들른 KJ그룹 사옥. 한데 전과 다른 풍경이 주변에 자리했다. 아주 독특한 모습이었다.
“왜 저들은 저기서 저러고 있지요?”
누가 보더라도 그들의 복장은 직장인이었다. 빌딩 정원에서 텐트를 치고 노는 듯한 모습. 누군가는 난로에 의지해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며 노트북을 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철봉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또 누군가는 운동복을 입고 주변을 빙글빙글 달렸다.
“가서 물어볼까요?”
“아닙니다. 제가 가서 직접 묻지요. 궁금해서 참을 수 없네요.”
스티브 잡스는 그들 중 난로에 의지하며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는 이에게 다가갔다.
“저, 실례합니다. 지나다 너무 궁금해 이곳을 찾게 됐습니다. 여기는 KJ그룹이 운영하는 빌딩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 이러면 KJ에서 뭐라고 하지 않습니까?”
최대한 정중히 물었다. 영어로 말하는 거지만 목소리에는 정중한 말투가 실렸다.
“KJ 직원입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씩 밖에서 자유롭게 근무하는 날입니다. 각자 취향에 맞게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네? 여기서 일을요?”
“하하. KJ에 대해 잘 모르시나 보네요. 종종 듣는 질문이에요. 저도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 때 신기했죠. 회장님은 직원들이 자유로이 근무를 하며 여러 경험을 쌓길 바랍니다. 그중 하나가 한 달에 한 번 사무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취향에 맞게 근무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기 저 사람들처럼 운동도 KJ그룹에 있어 업무 중 하나로 분류되죠.”
“......”
KJ는 직원의 건강을 지키는 것도 업무에 하나로 보고 있다. 운동을 할 경우 사내에서 따로 심사를 보기도 하며, 성과가 있을 시 포상을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 잘하는 운동 하나씩은 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업무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기업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걸 KJ에서 전부 한다. 회사 사비로 다녀오는 레저, 레프팅 등을 통해 그룹 부서, 계열사 등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 모임을 가져 협력을 이끌어 내기도 하였다.
“정말 신세계가 따로 없어. 왜 난 이런 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모두가 그를 부르기를 천재라 일컫는다. 하나, 천재는 KJ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하지 못했다.
왜 KJ가 세계 1위 기업이 되었는지, 이제야 알 것도 같았다.
‘김정수 회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인물이야. 결코 운으로 지금의 자리를 꿰찬 사람이 아니야.’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천재를 영접한다는 설렘에 빠졌다. 첫사랑을 만나는 심정이 이럴 거다. 지난날 상했던 감정이 말끔히 사라졌다. 지금 심정은 당장 달려가 만나자마자 고백을 하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상당히 유쾌하고 즐거웠습니다.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그리고 달러를 몇 장 꺼내 그에게 주었다.
“미국에 놀러 올 일이 있다면 연락을 주세요. 내게 좋은 말을 해준 당신에게 드리는 겁니다.”
-애플 회장 스티브 잡스
“......”
명함을 받은 남자는 안에 적힌 상호와 이름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설마 지금껏 대화한 상대가...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 회장이라니.
그는 멀어져 가는 그를 보다 손에 쥔 달러 뭉치가 아닌 명함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복권을 긁어야 하나...”
***
“도착했습니다.”
이호영 실장이 들어와 보고를 한다. 그의 뒤로 보이는 두 사람이 시야에 잡혔다. 천재가 그곳에 있었다.
“KJ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TV나 기억 속에 자리한 그의 얼굴을 떠올려 단번에 알아봤다.
그를 소파로 이끌었다.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의 눈에 존경과 선망의 감정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의외의 반응이다.
전날 매몰차게 내쫓아 기분이 상해 있을 거라 봤는데, 그는 잔뜩 들뜬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채 내 앞에 있었다.
“이거 남자에게 고백을 받는 것 같아 묘하네요. 오는 길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봅니다.”
“있었지요. 그것도 엄청 충격을 받을 정도로 기쁜 일입니다.”
“그게 뭔지 궁금한데, 들려줄 수 있겠습니까?”
정말 궁금해 물었다.
“당연하지요. 1층 로비로 들어서기 전, 희귀한 광경을 목도했습니다. 너무 궁금해 난로 앞에 선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지요.”
아, 그거구나. 대충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알 거 같다.
“설마 한국기업이 이런 자유로운 환경에서 직원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운영을 하고 있을 줄 몰랐습니다.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일 이야기 전에 KJ에 대한 이야기다. 정말 궁금한 모양이다.
계속해 변화하는 그의 다채로운 표정 변화가 너무도 재밌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 우물 안에 살며 본인이 최고라 착각하는 사람을 비유한 속담입니다. 전 한 틀에 갇혀 있는 직원들의 생각을 깨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줄 필요를 느꼈습니다. 거기서 착안한 것이 지금의 모습입니다.”
누가 있어 근무시간에 운동을 하고 그걸 성과라며 포상을 줄 생각을 다 할까?
누가 있어 직원들을 밖으로 내보내 자유로이 일할 수 있도록 할까?
때로는 머리가 막힌 직원들에게 퇴근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것도 아니면 수면실에 들어가 한숨 자고 오게 한다거나, 자전거를 타고 세상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유도했다.
메기효과를 아는가?
논에 메기를 풀면 미꾸라지는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열심히 도망을 다니며 살을 찌운다. 살아남기 위한 미꾸라지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여기서 살아남는 미꾸라지는 건강한 미꾸라지다. 난 직원들이 모두 건강한 정신을 가지며 발전하는 프로가 되길 바란다.
물론 메기 이론의 역효과도 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오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정리 절차를 밟게 된다. 그렇다고 쉽게 해고를 하지 않는다. 쓰리아웃제를 적용해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심리 상담을 받으며 스스로를 치유해 발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전 경리가 꼭 돈만 보는 그런 사람으로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직원이 원하면 언제든 부서이동도 가능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는 건 내가 바라는 일이다. 한 분야의 프로도 중요하지만, 직원에게 맞는 적성을 찾아주는 것 또한 회사가 가져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 새로운 세상을 본 기분입니다.”
“하하, 뭐 그리 대단할 건 없습니다.”
“아니요. 정말 대단합니다. 이 방법... 애플에서도 적극 활용을 해야겠습니다. 저도 틀에 박혀 있는 인간일 줄... 여기 와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곳을 찾은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본론도 잊은 채 이야기 주제가 빙글 돌았다. 나는 주제를 바로 하고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제가 너무 말이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궁금한 건 참지를 못하니. 하하... 제가 이곳을 찾은 건 KJ에서 개발한 운영체제 때문입니다.”
그랬던 거군.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 IOS에 있을 것이다.
그의 머리에서 나온 걸 내가 만들어 냈으니, 당연한 결과.
“그걸 저에게 파실 수 있겠습니까. 섭섭하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겠습니다.”
설마,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직접 찾아와 팔아달라고 구걸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간다. 나는 그의 시선을 맞추며 슬며시 입꼬리를 옆으로 비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