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독점
-KJ그룹 세계를 혼돈으로 빠트리다. 세계기술 독점 정주행!
-컴퓨터에 혁명을 일으키다. KJ그룹은 시장에 LCD모니터에 기존보다 작아진 데스크탑을 선보였다. 여기에 더해 컴퓨터 사양까지 업그레이드 된데 이어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 프로그램이 몇 단계는 업되어 나왔다. 기업과 기관은 KJ그룹의 컴퓨터 계약을...
-CRT모니터는 추억 속으로...
-NG전자 컴퓨터 시장 철수하나?!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냐? 육성이야, KJ랑 협력했다 쳐도? 다른 곳은?”
“망했지. 뭘 어째. 훨씬 앞선 기술이라 경쟁기업들이 따라가지 못한다잖아.”
이번 소식은 국민들에게도 지대한 충격을 선사했다. 난생처음 보는 스타일의 데스크탑과 모니터. 디자인도 예쁘면서 공간을 넉넉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뽑혔다.
“에휴, 그럼 내 주식 똥 됐네?”
“똥 됐지. 지금이라도 손절해라. 50%는 건져야지.”
“하...”
LCD모니터가 세상에 등장하자 경쟁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와르르 무너졌다.
당연히 기업들의 주가는 폭락해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했다.
남자의 한숨이 깊어졌다.
그 시각...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KJ는 외계인이라도 잡아 기술정보를 빼내고 있답니까? 어떻게 이런 기술적인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해보려 해도 흉내만 내는 게 다였고, 이걸 새로운 방향으로 설계해 만들려 하여도 모든 특허가 걸려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수준으로는 필름을 만드는 건 무리였다.
약간의 틈도 보이지 않는데, 이걸 무슨 수로 만들란 말인가?
연구진들은 눈앞에 있는 필름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이 전무가 오면 아주 난리 치겠습니다.”
“아무렴요. 아주 눈에 불을 켜고 다니던데. 허허.”
LCD와 관련된 모든 기술을 KJ보다 육성이 먼저 시작했는데, 기술 차이가 너무도 벌어졌다.
이들은 얼마 가지 않아 들이닥칠 이재진 전무를 떠올렸다.
쾅!
말하기 무섭게 문이 거칠게 열리며 벽에 부딪혔다.
“......”
“......”
연구진들은 별안간 벌어진 사태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엔 ‘올 것이 왔구나’, ‘양반은 아니다’ 생각들을 품으며 이재진을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전무님.”
“......”
웃으며 받아 주고 싶지만, 표정이 풀리지 않는다. 연구진들은 굳은 얼굴로 곧 닥칠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내가 오늘 엄청 황당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 귀를 의심했을 정도로 말이지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LCD 개발을 시작한 지 한참이나 지났다. 그럼에도 시작도 하지 못했다는 말은 자신의 지시를 무시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
이재진은 올라오는 화를 간신히 눌렀다.
“자, 누가 설명해 보시죠. 날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당신들 전부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일단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아버지 이건호 회장의 조언.
‘일단 들어라.’ 성격 같아서는 바로 악 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게 사실은...”
이재진의 눈치를 살피던 연구진들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회색 머리카락에 커다란 사각 안경을 쓴 중년인이 나와 입을 열었다.
그는 방금 나눴던 대화들을 핵심만 정리해 이재진 전무에게 설명했다.
“그 말은 KJ 신출내기보다 경험도 많은 당신들이 한참 떨어진다, 뭐 그런 소리입니까? 내 귀로는 그렇게 들리는데, 다시 이야기를 해보시죠.”
이재진은 김정수 회장이 모든 연구자료를 제공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당연히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문제였고,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결론이었다.
적어도 이재진 입장에서는 그랬다.
“......”
“......”
분하고 억울했지만, 수석부터 시작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던 까닭이다.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걸 그들은 10년을 앞서갔으며, 생각도 못 한 기술들을 특허를 출원해 어떤 거 하나도 손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허... 하하. 당신들 이거 성공 못 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나 본데, 다 해고야. 짐 싸야 돼. 알아?”
이재진은 초조했다. 아버지와 협의한 내용은 생각의 폭을 좁게 만들었다.
눈은 앞을 보지만, 생각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밀려오는 압박은 생각의 깊이를 얕게 만들어 눈을 어둡게 만들었다.
“당신들 생각 잘해야 할 거야. 만약 올해를 넘기기 전에 결과를 내지 못하면...”
끼이익.
“못하면 어쩌겠다는 것이냐?”
턱.
“......?!!”
그때였다. 말을 다 끝나기 전에 뒤에서 절대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고막을 타고 들어와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어 버렸다.
“말해 보거라. 못하겠다면 다음 말을.”
“회, 회장님 오셨습니까.”
“회, 회장님...”
뒤에 자리한 인물은 바로 이건호 회장이었다. 이건호는 노기가 가득 실린 눈으로 이재진을 노려봤다.
***
“좋구나.”
KJ로 인해 그룹의 입지가 줄어들어 옛 영광을 잃게 되면서 위기가 찾아왔지만, 이건호는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경쟁 전자 기업들이 사업 철수를 해야 할지, 기업을 매각하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지 어느 기업도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때, 육성은 대담하게 나가면서 새로운 파도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거기에 플러스로 들려오는 소식은 그 어느 때보다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오늘도 만났다 이 말이지.”
“아가씨께서 몹시 좋아하는 눈치입니다.”
“내가 여자라도 김 회장이면 빠져들었을 거야. KJ그룹 회장이란 타이틀 때문만은 아냐. 참 깨끗해. 나와 달리.”
김정수 회장의 과거를 조사했다. 무척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앞만 보며 나가는 모습은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될 만했다.
중간에 운을 통해 인생역전의 기회를 얻었고, 탁월한 투자 감각으로 빠르게 성장해 지금에 이른 능력. 성공하면 그 돈으로 해보지 못한 많은 걸 해보고 싶어 할 터인데, 그는 어떤 유혹에도 휘말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꾸준히 나아갔다.
그건 결코 쉽지 않았다. 자신만 하더라도 주머니에 있는 돈을 쓰고 싶어 참지 못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재벌의 티를 내고자 하는 건 아니었지만, 돈이란 유혹은 어떤 마약보다 빠져나오기 힘들다.
한데, 김정수 회장은 그걸 해냈다.
자금관리도 투명하고 여자관계는 복잡하지 않다. 너무 깨끗해서 문제라면 문제였다.
“될 사람은 확실히 달라. 안 그런가?”
“아가씨도 그에 못지않으신 분입니다.”
“내 딸이지만, 솔직히 김 회장이 아깝지. 그저 내 의도를 알면서 윤희를 예뻐해 줘 고마울 따름이야.”
이건호 회장은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내비쳤다. 후계자 경쟁에서 이겨 육성의 회장이 되었지만, 결코 과장하여 말하는 경우는 없었다.
늘 솔직한 자세를 취했다.
“첫째 녀석만 정신을 차리면 되는데, 말이야.”
그러다 이재진으로 생각이 옮겨졌다. 자신의 첫째 아들이자, 육성그룹의 후계자가 될 녀석.
하지만, 근래 들어 그의 경영능력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한참이나 부족한 아들.
늘 마음속의 짐이 되고 있다.
“녀석은 어떻게 하고 있나?”
“수시로 연구소로 출근해 필름사업에 매진하는 모습입니다.”
“음... 자네 생각은 어떤가? 가능할 거라 보이나?”
이건호 회장의 눈에 작은 기대가 어렸다. 아무리 못났다 생각해도 어쨌든 자신의 아들이다.
아들이 잘되는 건 부모로서 당연한 마음일 터다.
“쉽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고급 인력이 뭉쳤음에도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관련 기술자들을 대거 섭외를 하였지만, 제자리걸음입니다.”
“......”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이건호 회장의 눈빛이 걱정으로 가득하다. 후계자가 처음으로 나선 프로젝트이다. 한데, 결과는 처참하다.
투자자들과 임원진들의 입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 소지가 컸다.
“아무래도 멈추라 하는 게 좋겠어. 연구소로 갈 테니, 차 준비하게.”
이건호 회장은 결국 자신이 나서기로 하였다. 프로젝트를 실패한 모습을 임원진들에게 보이기보다, 자신이 프로젝트를 중단하여 ‘0’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건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녀석에게도 좋은 교육이 됐을 거야. 새로운 사업을 통해 능력을 입증하라 하면 되겠지.”
이건호 회장은 지금 상황을 나쁘게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차량은 이건호 회장을 태우고 용인 연구소로 향했다.
“시끄럽군.”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연구소 건물. 이건호 회장은 복도까지 울려 퍼지는 소리에 인상을 굳혔다.
-당신들 생각 잘해야 할 거야. 만약...
이건호 회장의 걸음이 빨라졌다. 이제는 늙어 힘이 빠진 다리를 바쁘게 방 안으로 옮겼다.
“... 약 올해를 넘기기 전에 결과를 내지 못하면...”
“못하면 어쩌겠다는 것이냐?”
이건호의 얼굴이 노기가 가득하다. 안으로 들어서니 예상대로 아들의 목소리였다.
이건호는 부릅뜬 눈으로 주변을 훑다 등지고 있는 아들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주변은 고요해졌다.
“......?!!”
“말해 보거라. 못하겠다면 다음 말을.”
직원들이 급하게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시선은 아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그게...”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던 이재진은 크게 당황해 말을 버벅거렸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부친의 목소리는 심장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 오늘부로 광학필름 연구는 마친다. 모두 본 자리로 돌아가도록.”
낮고 싸늘한 음성. 이건호는 딱딱한 표정으로 방 안에 자리한 연구진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이제 방 안에 남은 건 이재진과 이건호, 그의 수행원이 다였다.
“자네들도 나가 있게.”
뒤이어 수행원들도 내보냈다. 꼴사나운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기 싫었다.
“나와 한 말은 잊지 않았겠지.”
“아버... 회장님, 그게...”
“그 입 다무는 게 좋을 거야. 이 전무.”
이건호는 가까스로 화를 다스리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수십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며 지나갔다.
“전무에서 물러나. 그리고 스스로 경영능력을 입증해. 그러지 않으면 후계자 자리는 네 동생에게 갈 거야.”
전무라 부르던 호칭이 말하는 중간에 바뀌었다. 이제 그는 전무가 아님을 은연중에 알린 것이다.
“그때까지 사옥에는 발도 들이지 마.”
이건호는 독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들을 전무에서 내려놓고, 김정수 회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소기의 성과를 이루기를 바랐다.
하버드를 졸업한 재원.
결코 부족하지 않으리라 봤다.
“지켜볼 테니 딴생각은 품지 않는 게 좋아. 이번이 네 마지막 기회야.”
그 말을 남기고 방을 벗어났다.
혼나 남게 된 이재진은...
“......”
혼이 나간 사람마냥 멍하니 바닥을 바라봤다.
한참 동안 서 있는 상태로 바닥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