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재벌 강림하다-71화 (71/145)

71화

#이벤트

“네?”

이거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는 현상이 우리 주변을 빙글 맴돌았다.

어색한 공기를 서로 공유하며, 눈을 마주했다.

“혹시 신수영이란 남자 아십니까?”

일단 둘의 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음 계획은 그 이후다.

“아뇨? 제가 알아야 할 사람인가요?”

휴, 여기서 안도했다. 아직 둘은 만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하. 그건 아닙니다. 제가 잘못 알았나 봅니다.”

“그런데 그런 건 왜 묻죠?”

“이왕 알고 지낼 거라면, 만나시는 분이 없는 게 좋다 판단해서입니다. 있다면 제가 실례를 범하는 거니까요.”

아직 이 여자에 대해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 기억들은 이윤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정략이란 종이 한 장 차이.

만나서 감정이 생기면 좋은 뜻을 품고 만나는 것이고, 이것 아닌 그저 단순히 집안끼리의 연결로 감정 없이 만난다면 그건 정략이라 봤다. 그저 마음의 차이에서 나오는 부분에서 정략의 의미가 구분되는 건 아닐까?

‘만나보면 알겠지. 만나보고 판단한다.’

일단 모른 척 넘겨보자.

“무슨 말씀이시죠?”

“전 바보가 아닙니다. 이 회장님이 무슨 의도로 날 이곳에 불렀는지 모를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죠? 아주 타이밍이 공교롭더군요. 아마 내가 자리를 뜨기 전까지 내려오지 않으시겠죠.”

“......”

“그렇다면 내가 만나는 여성은 호감을 가진 이성이 없어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전 이성 관계로 복잡해지는 건 싫어합니다.”

많이 흐려진 옛 기억.

이 부분은 가난하고 부유하고를 떠나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했다.

정말 만날 생각이 있다면 오해가 생길 부분은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준비를 하는 것.

하지만 많은 여자들이 이러한 부분들을 하지 못한다.

‘그냥 친한 오빠야. 남자로 안 느껴져.’

‘교회 오빠야.’

‘예전부터 알고 지낸 오빠야. 그럼 만날 수 있는 거잖아? 너보다 먼저 안 사람이야.’

하아... 갑자기 떠오르기 싫은 기억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우자. 지우자.

생각하니 고통스럽다.

“죄, 죄송합니다.”

이윤희가 허리를 아래로 확 꺾는다. 귀가 붉어진 걸 보니, 무척 낯부끄러운 모습이다. 너무 직설적이었나? 조금 돌려서 말할 걸 그랬다.

“죄송할 문제는 아닙니다. 어차피 누군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정략을 떠나 누구를 만나더라도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그저 윤희 씨가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궁금해 물었습니다.”

다소 기분 나빠할 수 있는 한마디. 하지만 이건 무척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윤희의 고개가 위로 올라왔다. 얼굴은 당황으로 물들어 있지만, 시선은 흔들리지 않는다.

현 상황이 부끄러운 거지, 자신에 대해서는 무척 떳떳한 여자.

좋은 느낌을 가진 여자다.

“......”

“제 말에 마음이 상했다면 죄송합니다.”

이 부분은 내 잘못도 맞기에 사과 말을 전했다. 대뜸 이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여자는 없다는 걸 잘 알기에 그녀의 기분을 조금은 가라앉히고자 사과했다.

“아니에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 아빠도 예의를 벗어났는데요. 저도 아빠 대신 사과할게요. 이럼 서로 비긴 건가요?”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논리적인 부분을 떠나, 얼굴이 무척 두껍다. 부끄러운 표정을 짓나 싶더니, 지금은 여장부가 서 있는 착각에 빠졌다.

“음, 비겼다 하죠.”

“호호. 회장님, 자상하시네요.”

남자가 왜 여자에게 약한 동물인지 여실히 체감하는 순간이다. 미녀의 미소, 그것도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드는 이에게 받는 미소는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거참. 이럴 땐 장칠성의 기억은 소용없네.’

웃기게도 내 기억 속에 있는 천재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들고 있었다.

모태솔로. 어떤 누구도 여자와의 경험이 단 1도 없었다. 있다고 친다면 엄마, 동생, 가족들 정도가 다였다.

‘휴... 내 성격대로 가야지.’

나야 경험은 있지만, 문제는 지극히 짧다는 데 있다. 결국 난 나를 숨기며 연기를 하기보다 본연의 모습을 보이기로 하였다.

“첨 듣는 말이지만, 듣기는 좋네요. 일도 이렇게 됐으니, 만나 봅시다.”

그녀가 자살할 수밖에 없던 건, 그녀가 좋아하게 된 남자를 이건호 회장과 그녀 가족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부분에 있었다.

급이 맞지 않은 가문.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가문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마음이 강했을 테니까.

그리고 다른 재벌 가문의 자녀와는 다른 사고를 가진, 조금은 친서민에 가까운 그녀였다.

내가 밑바닥에서 올라와 그런 걸까? 그녀에게 진한 호감을 느꼈다.

“설마 회장님이 훅 치고 들어오실 줄 몰랐네요.”

“연애도 사업과 같다 생각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게 사업가의 자세입니다.”

“정말 아빠 같아요.”

“음, 그럴 수 있겠네요. 9년 차. 이해합니다.”

“......”

표정이 묘하다. 뭔가 아저씨를 보는 듯한 저 시선.

내가 뭘 잘못했나?

“솔직히 결혼까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서두를 생각도 없고. 알아가는 정도면 적당하겠네요.”

“휴... 좋아요. 그런데 그 딱딱한 말투 고칠 수 없는 건가요?”

“딱딱한? 저 부드럽게 말하고 있는 건데. 음.”

“... 아니에요. 됐어요.”

음 뭔가 이상하지만, 어찌 되었든 좋은 방향으로 흘렀다. 이윤희를 만나면서 그녀가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채워줘야겠다. 그녀의 어려움을 돕지 않고 그녀가 헤쳐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그런데, 장애물이 생기긴 할까? 지켜보자.

“부탁이 있습니다.”

“네?”

“이 회장님께는 비밀로 부...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그건 힘들겠군요.”

이건호 회장에게 비밀로 해 만나볼 생각이었는데, 그녀 주변에 깔린 경호원들이 생각나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밀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호호.”

“자연스럽게 알게끔 하시고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좋아요!”

꽤 발랄한 아이다.

만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만나보게 될 줄은 몰랐다. 술 먹다 눈이 맞아 사귀고 결혼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 봤지만. 이런 경우는 듣지 못했다.

“이제 들어갈까요.”

우리는 걸음을 돌려 천천히 저택으로 향했다. 아직은 어색한 관계.

하지만, 처음보다 좋은 기류가 우리 주변에 흘렀다.

‘신수영에 대해 조사를 해보자.’

적어도 내 옆에 있다면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을 터지만, 최소한의 정보는 모을 필요가 있다 여겼다.

“갑자기 일이 생겨 초대를 해놓고 챙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윤희와 충분한 대화를 마치고 거실로 돌아오자, 이건호 회장이 껄껄 웃으며 반긴다.

“아닙니다. 식사하고 주변을 구경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오늘 좋은 음식들을 먹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호호. 자상도 하시지. 아무 때나 놀러 오세요.”

홍 여사가 기분 좋게 웃는다. 꽤나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이재진이나 다른 두 사람의 표정은 알 수 없지만.

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러겠습니다. 이 회장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허허. 담에 오면 내가 꼭 챙기리다.”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사업가가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이만.”

저들의 배웅을 받으며 차량에 올랐다. 이제는 어둠이 세상을 덮은 시각.

헤드라이트가 어둠을 밝혀 천천히 안산으로 이동했다.

***

나랑 결혼하자.

프러포즈를 한 지 이제 2주일. 결혼이 결정된 마당에 ‘굳이 프러포즈를 해야 되나?’ 생각을 가졌지만, 주변에서 안 하면 평생을 후회 속에 살게 될 거라는 거듭된 압박에 프러포즈를 하였다.

고맙다는 그녀의 목소리. 눈에는 습기가 차올라 눈물을 쏟아낸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오빠가 프러포즈 안 할 줄 알았어. 정말 고마워! 정말 사랑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기뻐 울고 있었지만, ‘안 할 줄 알았어’ 포인트에서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매정했는지 알았다.

“임 주임 축하해.”

“이제 곧 결혼이네.”

“감사합니다. 대리님. 과장님.”

KJ전자에 입사한 지 3년 차.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어 임 주임의 결혼을 축하했다. 임 주임은 모든 부서를 돌아다니며 청첩장을 돌리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임 주임. 한번 그거 신청해 보지 그래?”

“뭐요?”

그대 경리과장이 슬쩍 운을 뗐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 왜 있잖아. 회장님께서 복지라며 결혼하는 사람들이나 이벤트가 필요한 직원들 이용하라고 준비한 차.”

“아...”

그건 롤스로이스 펜텀. 웨딩카나 어떤 이벤트 시 이용하라며 준비된 차량.

심지어 이벤트가 잡히면 회장이 타고 다니는 차량도 내어줄 수 있다 말한 만큼 KJ그룹 계열사는 늘 이야기 주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어떤 누구도...

“그거 했다 잘리는 거 아니에요...”

부담스러워 신청하지 못했다. 워낙 고가이기도 했지만, 그룹 회장님이 타고 다니는 차를 타고 다닐 만큼 배짱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사람이야 그렇지만. 20년을 사귀고 결혼하는 거라며. 특별하게 준비해도 좋은 거 아냐?”

“과장님도 참... 다른 분들도 부담스러워 신청하지 않은 걸 어떻게 제가 해요.”

“그간 사람들이야 일정도 촉박했고, 본인 결혼식이 아니라 자녀 결혼이 많았잖아.”

“음... 정말 괜찮을까요?”

“일단 회사 규정에 잡혀 있으니 괜찮을 거 같은데.”

임 주임은 매우 착실한 직원이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 선후배를 챙기며 단 한 번 짜증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경리과장은 그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축의금이야 회사에서 500만 원 나오고, 별도로 직원들 축의금을 받을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테고. 롤스 웨딩카로 쓰면 신부가 얼마나 감동하겠어.”

신부는 일반 중소기업에 다니는 여자.

어렵게 살아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던 경리과장은 같은 여자의 마음으로 권했다.

“음... 알겠습니다. 신청해 볼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한 번 있는 결혼인데.”

“감사합니다. 과장님.”

자신을 챙기려는 경리과장의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임 주임은 자리로 돌아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정말 잘 될지 모르겠네.”

떨리는 가슴을 듬뿍 떠안고 차량 신청서를 냈다.

“아, 모르겠다.”

총알은 떠났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짝짝짝─

“축하해!”

“축하해요, 임 주임!”

신랑신부가 어깨를 맞춰 식장을 퇴장했다. 신부의 얼굴은 촉촉하게 젖어있다. 결혼식을 진행하는 동안 눈물을 흘린 모습이다.

임 주임과 그의 아내 박연아는 사람들의 축복 속에 식을 마쳤다.

잠시 신부와 떨어져 있는 시간.

“야, 나 떨린다.”

“떨지 마. 너까지 떨면 나도 떨리니까.”

“내가 그 비싼 차를 몰게 될 날이 오다니. 진짜 KJ 쩐다.”

“나도 될 줄 몰랐어.”

기사를 신청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건 진짜 부담스러운 일이어서 따로 지인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그가 바로 옆에 있는 친구 박태수다.

“너희들 잘해야 한다.”

“걱정하지 마. 운전하는 거 빼면 완벽하니까.”

“휴... 그럼 부탁한다.”

임 주임은 화장실에서 벗어나 모든 행사를 마치고 신부와 환복 후 밖으로 나갔다.

“오빠...”

생각 없이 밖으로 나가던 신부는 굳은 얼굴로 눈앞에 펼쳐진 장관(壯觀)을 바라봤다. KJ그룹 회장으로 인해 유명해진 고급차량이 눈앞에 버젓이 대기해 있었고, 양옆으로 사람들이 오와 열을 맞춘 채 도열해 있었다.

“그게 있지. 회장님이 롤스로이스를 대여해 주셨어. 회사 복지인데... 설마 이게 될 줄 몰랐네.”

“오빠...”

신부의 눈에서 다시 한번 눈물이 쏟아졌다. 기쁨의 눈물이리라. 이 장면을 주변에 자리한 사람들이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사랑해. 예슬아.”

임 주임은 그녀를 쏙 끌어안았다. 예슬도 그의 품속에 얼굴을 맡겼다.

찰칵찰칵.

사람들이 누르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둘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에 정신없었다.

-KJ그룹의 최고의 복지 대한민국에 알리다.

-해당 사진은 KJ그룹 계열사 직원의 결혼식 사진이다. 김정수 회장은 그룹 내 직원을 위한 복지로 애용하는 롤스로이스 펜텀을 직원들에게 내놓았다.

그날 저녁, 임 주임의 결혼 소식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져 다시 한 번 KJ그룹이 이슈로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