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재벌 강림하다-70화 (70/145)

70화

#이윤희 (2)

“우리 스키장 동호회 들지 않을래? 거기 짱 멋진 오빠들도 많고, 괜찮은 사람들 많다던데?”

“응? 난 관심 없어. 그리고 오늘 집에 빨리 가봐야 해서 거기 못 가.”

친구가 어디서 무엇을 듣고 왔는지, 윤희에게 스키장 가입을 권했다. 아무래도 혼자 가기 뭐하여 친하게 지내는 윤희에게 같이 가자 말한 걸로 보였다.

하나, 이윤희는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어 안 된다며 딱 잘라 거절했다.

“힝. 혼자 가기 좀 그런데.”

“미안. 그건 좀 생각해보고 말해줄게.”

“할 수 없지. 알았어.”

윤희의 성격은 무척 확실했다. 여느 부잣집 딸과는 달리 소탈하지만, 결정은 칼 같았다. 그녀가 안 된다고 말하면 아무리 졸라도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저씨 왔다. 가볼게.”

“......”

멀리 보이는 검은 승용차. 주변을 경계하는 경호원.

그쪽으로 뛰어가는 윤희를 보는 친구의 표정이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아저씨는 김정수 회장님 본 적 있어요?”

차량에 오른 이윤희의 목소리다. 윤희는 반짝이는 20대의 눈망울을 기사에게 뜨겁게 보냈다.

“하하. 전 멀리서 봐서 어떤 분인지는 모릅니다. 그냥 듣기로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고, 친서민 성향이 짙다는 말이 많습니다.”

“오! 또요.”

“음... 검찰이 작정하고 파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더군요. 음... 이것도 들은 이야기인데, 청와대에서 KJ를 털려다 잡히는 게 없어 포기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오...”

이야기를 들을수록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물이지만, TV에서 봐온 인상과 자신이 상상한 이미지가 맞아떨어졌다.

그래서일까? 괜스레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말해도 아가씨의 마음이 더 중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현 재벌 가문 중에 으뜸이란 건 피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여자관계도 깨끗하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 분은 그분이 유일할 겁니다.”

기사는 이윤희가 KJ와 연결이 되기를 바라는지, 좋은 이야기들로 포장했다.

“정말 멋진 분일 거 같아요. 결혼까지 바라지도 않으니, 좋은 인연이라도 만들고 싶네요.”

이윤희는 난생처음 상상에 빠졌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현실주의라 하지만, 실상은 이상주의자였다.

꿈을 꾸는 소녀. 사랑하는 사람이 굳이 일반인이라도 마음만 맞다면 좋다고 생각하는 게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저 환경이 재벌집이고, 집안끼리 만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로 형성되어 있을 뿐.

이윤희를 태운 차량은 곧 한남동으로 들어섰다.

***

1245제곱미터(약 376평)에 해당하는 한남동 대저택.

공시가격 430억 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 중 하나로 유명한 이건호 회장 저택이 시야에 비쳤다.

“으리으리하네요.”

“회장님 집은 저것보다 배로 거대하면서 새삼스럽게 왜 그러십니까?”

안산에 자리한 저택 대지는 1만 평이 넘어가지만, 실제 살고 있는 부지는 1천 평 정도 된다.

그럼에도...

“한남동이 더 비싸요.”

1천 평 기준으로 이건호 회장의 저택이 훨씬 비싸다. 전체 평수로 따져 위에 건물을 올리면 당연히 압승이지만, 그런 미친 짓은 아직 하지 않았다.

“허허. 다른 사람이 회장님 말을 들었다면 혼란을 겪을지 모릅니다.”

“이크... 제가 실례했네요. 하하.”

말을 하다 보니 선을 살짝 넘겼다. 사실 재벌들 입장에서 100억, 200억은 그리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자존심 대결.

그리고 부의 상징성이 있을 뿐이지, 누가네 집이 더 비싸다 이런 대화는 꺼내지도 않았다.

“회장님께서 그렇게 집을 떡하니 지으시면서 그 지역도 부유존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차량이 저택에 진입할 시점, 기사는 한마디 툭 던진다. 난 그저 내가 편하고자, 부모님이 편하고자 그리 지었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우리집을 중심으로 럭셔리한 저택들이 양쪽으로 빠르게 들어섰다.

“덕분에 안산에 명품 동네가 생겼으니, 좋은 거 아니겠어요.”

안산이 시골이라 놀리던 시대는 지났다. 공단도 빠르게 확대되고, 인구수는 시에 걸맞은 인구가 만들어졌다.

아주 좋은 현상이다.

“도착했습니다.”

대화하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정식집에서 봤을 때처럼 다수의 인원이 마중 나와 맞이했다.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하.”

이건호 회장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 뒤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의 식구들로 이재진 전무부터 시작해 홍 여사와 딸들도 함께 나와 있었다.

“이리 환대를 해주어 감사합니다.”

“세계를 아우르는 회장님이 오시는데, 우리가 직접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번 일도 있고.”

한정식 때의 일이 아직도 마음에 걸렸나 보다. 생각보다 눈치를 많이 보는 양반이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서 집으로 들어가시죠. 거기서 저희 식구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이건호 회장은 주변에 눈치를 줘 주변을 물리게 하였다. 이건호 회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저택으로 발을 옮겼다. 그의 자녀들은 우리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그런데 이 전무 표정이 좋지 않네. 뭔 일 있나?’

다른 사람과 달리 유일하게 표정이 좋지 못하다. 그의 표정을 슬쩍 곁눈질해 보니,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원인 제공자가 나인 거 같다.

이유는 모르지만, 두 눈동자에 적대심이 상당하다.

‘뭐, 크게 신경 쓸 문제는 아니겠지.’

이내 신경을 껐다. 그가 어떤 이유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신경 쓸 문제는 아니란 결론을 냈다.

“준비한 게 많지 않습니다.”

“......”

도착한 곳은 주방이었다. 커다란 테이블 위로 갖가지 음식들이 쫙 깔려 있었다. 그중에는 처음 보는 메뉴도 보였다.

‘아니 이걸 다 누가 먹으라고...’

저 많은 요리들을 다 먹을 수 있을까? 한 30명은 붙어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보인다.

이걸 보고 상다리가 휘겠다고 말하나 보다.

‘전골 요리 하나만 있어도 충분할 거 같은데...’

“준비한 게 많지 않다니요. 하하. 한우만 구워도 될 것을. 오늘 제 혀가 크게 호강하겠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찌개 나물 김치 정도면 충분했다. 어쩌다 특식을 먹어보기는 하지만, 음식쓰레기가 발생하지 않을 정도만 준비한다.

주방, 집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함께 모여 파티를 즐기기도 하는데, 그때 봤던 음식보다 훨씬 많았다.

“그거 다행입니다. 자리에 앉으시죠.”

이건호 회장이 상석에 앉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살짝 틀어졌다. 이건호 회장은 나와 마주 보고 앉았고.

“윤희 너는 여기 앉고 그 옆으로 재진이부터 앉거라.”

가장 어려 보이는 여성이 이건호 회장 옆쪽에 자리했다. 당연히 이재진 전무가 옆에 앉을 거라 생각했는데. 와이?

“제 막내딸 윤희입니다. 이화여대 불문과를 다니고 있지요.”

“안녕하세요. 이윤희예요.”

“아, 네. 상당한 미녀시네요. 김정수입니다.”

다른 두 여성과 달리 인상이 상당히 선하게 생겼다. 목소리는 가늘고 귀엽다. 학교에서 제법 인기가 많아 보였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 그 자체였다.

“저기는 제 첫째 아들 이재진, 그 옆이 이부영, 저기 끝이 이소영입니다.”

“다들 유명하신 분이시네요. 반갑습니다.”

이재진은 유들유들하게 생겼지만, 적대심을 보이는 모습이 상당히 소심해 보였고, 두 여성은 이윤희와 달리 무척 날카롭고 사나운 인상을 가졌다.

“소개도 끝났으니, 식사하시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시죠.”

대충 소개와 인사가 끝나자 이 회장은 식사를 권했다. 이윤희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탐색하는 눈치다.

“이거 양고기가 참 연하네요.”

식사 타이밍에 맞춰 내온 양고기 스테이크가 일품이다. 질길 거 같던 양고기가 풍부한 육즙과 함께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입맛에 맞는 거 같아 다행입니다.”

“정말 호강하고 가네요. 하하.”

약간의 느끼함은 레드와인으로 해결했다. 진한 포도향이 스테이크와 참 잘 어울린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약 1시간의 식사시간.

식탁 위에 있는 모든 메뉴들을 맛보느라 잘 관리된 배가 위로 볼록 튀어나와 작은 언덕을 만들었다.

정말 잘 먹었다.

“저, 회장님. 잠시...”

응?

식사가 마무리되고 이제 대화의 시간을 가지려던 때, 이건호 회장 옆으로 직원 한 명이 다가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작게 뭐라고 속닥였다.

이건호 회장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한다.

“이런, 이거 어쩌죠? 제가 자리를 좀 비워야 할 거 같습니다.”

“아, 전 괜찮으니 편하게 다녀오시죠.”

이런 일은 나 또한 비일비재 일어난다. 그렇기에 그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했다.

“감사합니다. 너희들도 나를 따라오거라. 윤희 네가 책임지고 회장님을 모시고 있거라.”

“아, 아닙니다. 전. 혼자 있어도...”

“제가 모실게요.”

“제 딸아이를 잘 부탁합니다. 회장님. 혹시 실수하는 점이 있다면 따끔하게 혼을 내셔도 됩니다.”

“......”

더 무슨 말을 하기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호 회장은 만족한 얼굴로 세 남매를 데리고 주방을 나섰다.

“이윤희 씨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일은 진행이 됐으니, 그녀의 안내를 받기로 하였다. 그리고 난 지금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끌끌, 저 노인네가 짱구를 굴렸어. 그래도 아가씨는 나쁘지 않군.

-충분히 욕심을 낼 만도 하지.

-멀쩡한 소프트웨어에 바이러스가 출현한 꼴인가. 백신이 필요하겠어.

현 상황에 대한 그들의 기억이 각자 의견을 냈다.

그들의 의견은 나와 일치했다.

“네! 제가 안내할게요.”

“부탁하죠.”

나쁜 뜻으로 일을 벌인 건 아니니, 지금의 자리를 즐기기로 하였다. 재벌 아가씨답지 않게 순수함이 느껴져 좋았다.

그녀의 발 간격을 맞춰 걸었다.

“회장님, 여쭈고 싶은 게 있는데,...”

“편하게 물어보세요.”

“아, 그러니까. 경영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지금 회장님 이야기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이슈거든요.”

KJ그룹을 가지고 갑론을박이 상당하다. ‘언젠간 망한다’, ‘저런 식으로 경영하면 안 된다’, ‘저건 미친 짓이다’의 이야기가 주를 잇고 있지만, 그 와중에는 ‘남들과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의 경영을 배워야 한다’ 등의 긍정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화여대는 후자에 가까운가 보다.

“모두와 더불어 살아가고, 직원의 봉급과 복지는 일에 대한 에너지가 되고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요. 그 이유를 극대화시킨다면 직원들은 시키지 않아도 더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좋은 결과를 안겨 주지요. 그리고 일을 잘한 친구보다 열심히 일한 친구에게 더 좋은 보상을 주려 노력합니다.”

“와, 그건 아빠랑 비슷하네요. 그런데 일 잘한 사람을 칭찬하는 게 더 좋지 않나요?”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전 제 직원이 소외감, 회의감, 우울함에 빠져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잘하는 친구에게는 돈으로 보상이 되지만, 열심히 한 친구는 그렇지 않죠. 열심히 하지만, 결과가 좋지 못한 사람에게는 자신감을 심어줘야 합니다. 자신감을 잃게 되는 순간 최후의 선택은 퇴직이 될 겁니다.”

“음...”

“물론, 사람들이 처음 원하는 자리가 있어 입사를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헤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 상담을 통해 직원의 장단점, 특기, 취미 등을 고려해 그 직원이 가장 잘할 거 같은 부서로 이동을 시켜주기도 하고, 별도의 교육을 시켜 업무적인 능력을 향상시켜 주고도 있습니다.”

“와... 말로만 듣던 신의 직장이 한국에 있었네요. 회장님 말씀만 들었는데, 육성보다 회장님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이 막 생겨요.”

“그런가요? 하하. 윤희 씨가 그렇게 느꼈다니 제가 꼭 틀린 경영을 하고 있는 건 아니네요.”

“정말 멋지세요!”

대화를 나누면서 이윤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됐다. 꽉 막혀 있지 않고, 융통성이 있으며 사람의 기분을 헤아릴 줄 안다. 사람은 말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고, 행동은 그 사람의 습관을 보여준다. 평소 어떻게 지내는지.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사람일지라도 이러한 부분은 쉽게 감출 수 없다.

‘이렇게 괜찮은 여자가 남자 문제로 자살을 선택하게 되다니. 내가 나선다면 이 여자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동시에 그녀의 죽음이 떠올랐다. 집안의 반대로 우울증에 걸린 그녀가 선택한 길. 장애물이 없었던 그녀에게 생긴 장애물. 그녀는 그걸 극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생각을 마친 난.

“윤희 씨.”

대화를 나누며 생각한 내용을 그녀에게 꺼내기로 결정했다.

곧 그녀의 작은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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