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알리바바 (3)
“음, 알리바바라. 나쁘지 않아.”
미팅을 마치고 호텔에서 하루 동안 숙면을 취한 마윈은 거리로 나와 상호에 대해 생각했다.
아직 결정된 상호는 아니지만, 입에 착 감기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한 몸이 된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원래부터 자신과 하나였던 기분에 사로잡혔다.
“헤이, 혹시 알리바바라는 이름을 아시나요?”
스타벅스 커피점으로 향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바리스타 직원에게 알리바바에 대해 물었다.
“하하. 손님 그 유명한 걸 모를 리 있겠습니까? 아주 잘 알죠. 열려라 참깨! 하면 동굴의 바위 문이 열리는 만화 이름 아닙니까? 제 딸도 참 좋아하는 만화영화입니다.”
직원은 한 치의 주저함 없이 바로 대답을 하였다. 그에 마윈은 눈빛을 빛내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무척 흡족했던 탓이다.
“감사합니다. 1달러는 대답해 준 데에 대한 팁이에요.”
데스크 위에 1달러 지폐 한 장을 올려놨다. 기분 좋게 말해준 보답이다.
“땡큐. 당신은 참 매너 있는 신사입니다. 이건 방금 만든 케이크예요. 가져가서 드세요.”
직원은 1달러를 받아들고 조각 케이크 하나를 꺼내 마윈에게 주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1달러의 성의는 케이크로 바뀌어 마윈의 손에 쥐어졌다. 케이크를 먹으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바바에 대해 꾸준히 물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아주 잘 알죠. 미국을 넘어 세계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건 제 성의 표시입니다. 받아 주세요.”
이번에도 1달러를 건넸다. 오늘 사용한 돈은 자그마치 20달러가 넘어갔다.
하지만 마윈은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래 정했어. 알리바바로.”
별거 아닌 조사지만, 이보다 더 좋은 상호도 없어 보였다. 중국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지금, 그에게 있어 중국 기업임은 숨기고 싶은 부분이었다. 글로벌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라도 외국인이 받아들이기 용이한 상호가 필요했는데.
아주 시기적절하게 상호를 찾았다.
***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닙니까?”
2천만 달러라는 큰 금액을 과감히 투자할 줄은 몰랐을 터. 아무리 KJ 주가가 상승세를 타고, 금고에 돈이 많다지만 조금은 무리한 생각이 들었나 보다.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가 우려스러운 얼굴로 응시한다.
“결코 무리는 아닙니다. 설사 제 투자금을 거두지 못한다 하더라도 알리바바는 KJ의 교두보가 될 겁니다. 그 정도만 해도 2천 달러 이상의 값어치를 하게 될 겁니다.”
그는 알까? 그에게 투자를 하기보다 우리가 사업하는 게 회사에 더 큰 이득이 되리란 사실을?
하지 않은 이유는 중국에 우리의 사업을 정착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점이 참 아쉽다.
“아무리 그래도... 1천만 달러 정도만 해도 나쁘지 않은 투자라 생각했습니다만.”
그의 말도 맞다. 원 역사가 1천만 달러를 투자했으니까.
누가? 일본에서.
난 그걸 꺾어 두 배에 해당하는 2천만 달러를 투자한 거지만. 그가 알 턱이 없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 욕심에 의한 결정이었습니다. 자본금이 넉넉해야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지 않겠습니까? 돈 걱정 없이 일해서 일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거죠. 그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베어링스에서 IT에 투자한 금액이 얼마나 되나요?”
내가 영국에 온 이유 중 하나. IT에 묶인 돈을 정리할 것을 지시하기 위하여 온 부분도 있다.
“10억 달러 정도 됩니다.”
1조 원이라. 꽤 많이 투자했다.
“그거 다 빼세요. 야후, 다모도 뺍니다.”
다모 대표에게 미안하지만, 난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회사의 이익 부분도 보지 않을 수 없다.
“야후와 다모는 3자에게 넘기지 않기로 했으니, 현 시세에 맞춰 해결하세요.”
내가 나서기보다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가 직접 나서는 게 모양이 더 좋다.
그를 베어링스 그룹 대표 자리에 앉힌 이유가 관망이나 하라고 앉혀둔 게 아니니.
그리고 직접 찾아가 폭망할 주식을 거래하기가 좀 그렇다. 그럼에도 다모는 살아남겠지만.
‘야후가 죽겠지.’
이미 야후는 구글로 인해 점유율이 낮아지고 있다. 덕분에 꼭짓점을 찍던 야후나 다모의 주가는 차츰 내려앉고 있었다.
“그냥 두 기업을 받아들이는 건 어떻습니까?”
그러던 때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가 의견을 제시했다. 야후와 다모의 인수.
“음...”
지금 야후는 국내에서 다모에 밀리는 상황. 하지만 세계 5대 포털 사이트라는 명성은 유지하고 있다.
‘역시 아직은 아니야. 지금 인수하기에는 너무 금액대가 커. 인수를 하더라도 조금 더 지나고 나서 하는 게 좋아.’
그의 의견에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다다닥 두들겼다. 답은 지분정리. 하지만.
“당장 인수하기에는 인수자금이 크게 들 겁니다. 2000년이 지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을 테니, 20% 정도만 남기로 나머지는 정리하세요.”
이게 최선의 선택이라 봤다. 인수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의 의견을 묵살하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에 최선의 선택을 하였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는 순순히 내 뜻에 따랐다. 그가 실망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건 기우로 끝났다.
영국의 마지막 밤.
모든 일이 흡족하게 마무리되어 한국에서 있었던 괴로운 일들을 일부 털어버릴 수 있었다.
***
“처음 뵙습니다. 제리 양입니다.”
“데이비드 파일로입니다.”
며칠이 지나고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가 움직였다. 도착한 장소는 미국에 자리한 야후 본사.
미국 시장 점유율 90%를 달성한 야후는 미국계 포털 사이트계 황제로 통했다.
최근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구글로 인해 야후의 현 점유율은 60%로 간신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말한다.
‘야후는 곧 사라지게 되고 구글이 새로운 황제로 떠오를 것이다.’라고...
“제임스 맥어보이요.”
제임스 맥어보이는 KJ에서 보이던 모습과 달리 무척 무뚝뚝한 모습으로 두 사람을 대하였다.
어쩌면 지금의 모습이 그의 진짜 모습이지 않을지 싶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베어링스 그룹 전 회장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
그의 회사가 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회사는 세계에서 꽤나 알아주는 유망한 세계적인 기업이었다.
두 사람에게 있어서도 베어링스 그룹은 넘볼 수 없는 그런 위치에 있던 만큼 이들에게 있어 우상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허허. 좋은 이야기였음 좋겠군요.”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의 얼굴이 슬며시 펴지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덕분에 조금은 무겁던 분위기 스르르 풀어졌다.
“야후 지분을 저희에게 매각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20%를 제외한 전량을 야후에 매각할까 합니다. 회장님 지시도 있고, 현 시세에 맞춰 매각할 생각입니다.”
“혹시 매각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KJ 포털 사업에 추격을 받아 점유율을 뺏기고 있다지만, ‘닷컴’사업은 미래가 무척 밝다.
주가는 기대 속에 연일 상승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까지 받아, 인터넷의 황금시장으로 알려진 한국 시장에 집중 투자를 하기 위하여 방한 일정까지 잡고 있었다.
즉,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투자의 귀재들로 모인 KJ그룹집단이 매각 의사를 밝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별 이유는 없습니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매각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 회장님은 씀씀이가 상당하신 분입니다. 또 다른 사업처를 찾아 시장에 진출할 계획인 걸로 보여지는데, 제가 회장님 속을 알 수 있겠습니까? 허허.”
IT시장이 곧 붕괴될 거 같아 일부 지분을 매각한다는 사실은 쏙 빼고 말했다. 이런 말로 이들에게 위기감을 심어 줄 필요는 없다는 판판에서다.
“지분을 가지고 계시면 경영권도 더 단단해지고, 투자자들도 긍정적으로 보지 않겠습니까?”
의심이 많은 그의 표정에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는 그의 의심을 지우고자 노력했다. 노련한 경영가답게 얼굴에는 어떤 표정 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좋습니다. KJ의 뜻을 존중하겠습니다.”
KJ그룹은 세계에서 탑에 위치한 대형그룹인 만큼 이들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KJ그룹이 이 정도의 위치에 서게 될 날이 올 줄 생각도 못 했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자, 제임스 맥어보이는 방긋 웃어 보였다. 꽉 막힌 둑이 뻥 뚫리는 시원한 기분을 맛봤다.
“다음은 다모인가?”
그의 걸음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향했다.
***
-KJ그룹 IT계 공룡기업 야후, 다모커뮤니케이션 지분 매각. 최대 주주에서 3대 주주로 내려서. 소프트 뱅크, 야후의 2대 주주로 올라서다.
-정상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야후와 다모커뮤니케이션 지분을 매각한 이유 “자금확보”, KJ그룹은 현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매각했다 입장을 밝혔지만, 전문가는 “KJ그룹 김정수 회장이 탁월한 투자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거나, 미래를 읽을 줄 안다. 지금의 선택이 현명한 선택...”이라며 KJ그룹의 이번 결정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지금은 닷컴만 찍히면 모든 종목들이 크게 성장한다. 이는 좋지 못한 모습이다. 곧 IT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라며 투자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매각한 소식 때문인지 증시가 주춤하는 모습이네요.”
국내 닷컴주가 상승세를 멈추고 아래로 꺾이는 흐름을 보였다. 본 역사와 비슷하면서 다른 모습이 비치니 묘한 기분에 잡혀 들었다.
‘이것도 잠깐이겠지. 해외기업들이 국내에 상륙하면서 다시 흐름을 탈 테니.’
닷컴주 여파로 국내 반도체 금융 대형 기술주들이 상승세를 탔다. 이러한 동력은 나스닥에서 나타났다.
단숨에 4천선을 돌파해 버리는 힘은 닷컴주가 앞으로 산업에 얼마나 큰 힘으로 작용할지 보여주었다.
“조금은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이호영 실장은 이번의 내 결정이 무척 아쉽게 다가온 모양이다. 더 들고 있었다면 더 큰 돈을 벌었을지 모를 일.
하나, 그건 모를 일이다.
상승세에서 꺾일 때 매각하는 건, 시장에 더 큰 혼란을 줄 수 있다.
KJ가 묵혀둔 자금들이 워낙 많으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뺄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그 시작이 다모와 야후가 되었을 뿐이다.
뭐 그래도.
“너무 아까워하지 마세요. 빠질 때도 알아야 하는 법이에요. 그리고 우리 네트워크 마켓과 구글만 하더라도 현 인터넷 시장에서 수위권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곧 야후와 다모는 힘을 잃고 주저앉게 될 겁니다.”
네이비에 쫓기는 다모. 구글과 네트워크 마켓에 시장을 뺏기고 있는 다모 그리고 야후.
그리 멀지도 않았다. 그들의 시장이 끝나는 것도.
“그보다, LCD사업부는 어때요?”
화제를 전환했다. 인터넷보다 더 중요한 사업.
이제 다 될 때가 됐는데, 소식이 없으니 묻지 않을 수 없다.
내 시선은 자리 끝에 위치한 KJ전자 이학수 대표에게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