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알리바바 (2)
“갑자기 영국이라니?”
새벽같이 떠나는 해외 출장. 예고도 없이 떠나는 영국행에 걱정이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아무래도 지난 일들로 인해 머리를 식히기 위한 여행길로 착각하는 건 아닌지 싶다.
“아주 중요한 사람이에요. 어쩌면 이번 일로 KJ가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여기서 더 얼마나 벌겠다고. 집에서 쉬지.”
부모님 마음은 다 같나 보다.
아직 여자를 만나지 못해 결혼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라도 엄마처럼 행동할 거 같다.
“가서 좀 쉴게요. 호텔 가면 좋은 것도 많이 먹고, 꽤 편해요.”
집과는 다른 편안함을 호텔에서 느낄 수 있다.
물론 집보다 편할 수 없지만, 엄마가 걱정하는 모습에 약간의 거짓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최근 일로 많이 힘드신가 보다.
“사업이 다 그렇지. 가게 내버려 둬.”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아빠가 다가와 엄마를 안고 달래신다.
아빠가 있어 다행이다.
“다녀올게요.”
“끼니 거르지 말고. 아프면 바로 병원 가고. 알았지?”
“알았어요.”
부모님의 걱정 속에 차량에 올랐다. 경호원들이 뒤를 잇고, 차는 곧 매캐한 연기를 흘리며 공항으로 향했다.
쉬이이─
어두운 하늘 기체에 달린 불빛이 영국공항을 밝혔다.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떠오르던 태양이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의 결과다.
***
“곧 회장님께서 도착하실 겁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최대한 예를 갖추시기 바랍니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손목에 찬 시계를 보다 고개를 살짝 우측으로 돌려 마윈을 바라봤다.
섣부른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혹시 몰라 주의를 주었다.
“당연하지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회장님을 함부로 대할 리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회장님을 뵙게 되다니. 꿈만 같습니다.”
마윈의 얼굴이 곧 소풍을 떠나는 어린아이처럼 기대감에 휩싸였다. TV로만 접했던 유명한 인물.
그가 곧 세계 경제이고, 그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움직인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 그런 인물을 자신이 직접 만나게 된다.
마윈은 중국 최초로 그의 얼굴을 보게 된다 생각하자, 마음이 잔뜩 들떴다.
“도착했다고? 알았네.”
얼마 뒤, 제임스 맥어보이 핸드폰이 울리며, 도착 소식을 알려왔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주변을 둘러봤다.
“곧 회장님이 도착할 걸세.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게 통제하게.”
경호원들에게 알려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라 지시를 내렸다.
“가지요. 회장님 타신 비행기가 곧 착륙한다 합니다.”
그의 발걸음이 일반 게이트가 아닌, 다른 장소로 발걸음을 하였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뒤를 따르는 마윈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넘실거렸다.
***
끼리릭, 끽 끽.
건물만 한 바퀴가 땅에 닿으며 소음을 일으켰다.
빠르게 구르던 바퀴는 점차 힘을 잃고 정지했다.
“오랜만이십니다.”
“오랜만이라니요. 얼마 전에 뵙지 않습니까?”
“하하, 한국과 영국은 전혀 다른 장소이지 않습니까?”
“그 말도 맞군요. 하하.”
전세기에서 내리니 경호원들 틈바구니에 껴있는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에게 다가서며 손을 건네 반가움을 표시했다.
“옆에 분이 그...?”
그러기를 잠시, 시선은 옆으로 쓱 이동해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 옆에 뻘쭘한 자세로 서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키는 약 170 정도? 조금 왜소해 보이는 체형이지만, 눈빛은 무척 매서웠다.
“중국 항저우에서 작은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마윈이라 합니다. 유명하신 분을 뵙게 돼 영광입니다. 회장님께서 이룬 업적에 대해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입이 참으로 착한 사람이다. 중국인이라 해서 전부 네가지가 없는 건 아닌가 보다.
‘하긴, 마윈은 좀 특이한 사람이지. 인터넷도 컴퓨터도 전공하지도 않고 심지어 컴맹인 사람이 인터넷 전자상거래 사업을 할 줄 누가 알았을까?’
이 이야기는 나중에 유명해진다.
“좋게 봐주어 감사합니다. 그럼 가면서 대화를 해볼까요?”
발을 한 발짝 내디뎠다.
경호원들이 즉각 움직여 길을 만들고 우리는 저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이동했다.
“중소기업 간의 비투비(기업 간의 거래) 전자상거래 기반이 약하다는 걸 잘 알 텐데, 비투씨(개인과의 거래)가 아닌 비투비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군요.”
지금 시대에 B2B거래는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이다. 네트워크 마켓이나 구글이 크게 성장했다 치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였다.
인터넷 강국 한국도 부족함이 많다 여겨지는데, 중국은 오죽할까?
그가 어떤 경로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 무척 궁금했다.
“저는 한때 베이징에서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인터넷 구축을 하는 일을 맡았는데, 일을 하면서 제조업체와 무역업체들 간의 전자상거래가 필요하다 여기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거래량이 개인보다 많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니, 꼭 필요한 사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실히.
개인의 돈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일정하지 않다.
하지만, 기업은 전혀 다르다. 규모도 그렇고 거래량도 확연히 차이가 났다.
또 이런 말이 있다. 새우를 잡아 부자가 된 사람은 있지만, 고래를 잡아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
마윈은 그 부분을 생각해 이번 사업에 사활을 걸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래를 읽은 그의 눈과 촉.
역시 세계에 이름을 올리게 될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좋은 마인드입니다. 혁신적인 기업은 그렇게 탄생하지요.”
나름 마윈의 선배 되는 경영자.
미래정보와 그의 생각을 빌려 긍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역시 남다르십니다. 하하.”
누구나 할 수 있는 한마디지만, 누가 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데 큰 차이를 보인다.
직장인 시절 내가 이런 말을 했다면, 누가 이런 말을 진지하게 들으며 맞장구를 쳐줄까?
이래서 사람은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 세상에 이름을 알릴 필요가 있다.
“도착했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유지됐다. 중간중간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의 생각을 들으며 마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띵-!
“시간도 시간이니, 간단히 한 잔 즐기며 대화를 이어가죠. 대표님은 어떠세요?”
마윈은 내가 머무는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한 잔 걸치는 데 큰 무리가 따르지 않을 것이다. 반면,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는 입장이 다르다.
“저도 이곳에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저만 빠질 수 있겠습니까?”
“하하, 역시 센스가 넘칩니다.”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회사로 가기에는 늦은 시간. 우리는 진한 알코올 향을 맡으며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기로 하였다.
인터폰을 통해 필요한 안주들을 시키고, 방 안에 비치된 양주를 땄다.
테이블 위에 잔이 놓이고 입속으로 갈색 액체를 흘려 넣었다.
꿀꺽꿀꺽.
크- 술맛 끝내준다.
“비루한 저를 이리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윈의 목소리다. 마윈은 이름도 알리지 못한 본인을 일일이 챙겨주는 모습에 크게 감격한 모습이다.
“이것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세요.”
중국은 꽌시가 중요하다고 하던가?
식사 자리를 가지며 연결되는 인연. 참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관계이지 싶다.
한국은 돈 되면 관계가 형성되지만, 중국은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어 멋모르고 중국에 사업을 한다면, 말아먹기 딱 좋다.
“과분한 투자입니다.”
“과분하기는요. 말도 나왔으니, 슬슬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술을 마신 건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함이었고, 대화를 이끈 건 그의 생각을 확실히 들어보기 위함이었다.
결과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사실 이 사업을 내가 하면 될 일이지만, 중국 진출을 보다 수월하게 하기 위하여 이 사업은 손을 대지 않기로 하였다.
이제 남은 이야기는 투자 규모다.
“난 당신의 사업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2천만 달러면 충분하리라 보는데,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0억 원.
중국에 있어서는 엄청난 액수라 할 수 있었다.
“2, ... 천만 달러라니. 너무 많습니다.”
“당신의 사업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관심도 가고요. 이왕 하기로 한 거 확실하게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로 할 겁니다. 성장 속도는 결국 돈에 달려 있습니다.”
KJ가 돈으로 일군 기업이다.
어떤 기술도 특허도 없던 단순 투자기업이 이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던 데에는 누구보다 많은 자금을 소유하고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분, 경영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관심은 없습니다. 적당히 지분과 미래 수익만 보장된다면, 전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전 당신을 통해 중국으로의 사업을 확장하기를 바랍니다.”
“네?!”
“중국은 아무리 저라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국가지요. 추후 중국에 자리를 잡게 되신다면, 그때 제게 도움을 주시면 됩니다.”
그래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정말로 그거면 되는 겁니까?”
“그거면 되지요. 그리만 해주신다면, 당신과 우리는 영원한 한팀이 되어 세계시장을 가지게 될 겁니다.”
“... 좋습니다. 그럼, 지분은...?”
“62%. 당신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겠습니다. 내가 들고 있다면, 당신의 경영권을 노리는 날파리는 꼬이지 않을 겁니다. 상장 이후 그때 원한다면 분할 매도해 지분율을 올려드리도록 하지요.”
아직은 정해지지 않은 그의 상호. 알리바바. 알리바바는 세계를 아우르는 기업으로 성장해 중국의 대표기업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그의 노력이 있겠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결과에 굳이 손을 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헙.”
내가 제시한 지분율에 깜짝 놀란다.
그럴 만도 하지. 60%가 넘는다면 그의 기업이 아닌 내 기업이나 다름이 없는데.
“계약서에 명시하죠. 일체 경영에 끼어들지 않기로. 그리고 3자에게 매각하지 않기로 말이죠.”
미래의 황금을 남에게 팔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그냥 묵혀두면 다이아몬드보다 더한 가치를 내 손에 쥐여주게 될 기업인데.
“대신, 당신은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겁니다. 시기가 되면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 정도라면...”
끝내 마윈은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비록 내가 많은 지분을 양보했지만, 이건 미래에 그가 가져갈 지분.
걱정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자, 그럼 상호를 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제대로 된 상호도 없이 기업을 운영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본인의 이름을 내건 사업. 국제사회에서 상호는 무척 중요하다. 사람들 머릿속에 쉽게 남을 수 있는 편한 상호.
그것이 가장 좋은 상호이다.
괜히 멋 부린다고 복잡하게 이름을 짓는다는 건 무척 멍청한 행동이며 결정이다.
“음...”
아직 ‘그’ 상호를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도움을 주는 게 좋겠지.
“딱히 정해둔 게 없다면, 내가 하나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오, 회장님의 추천이라니. 당연히 받아야지요.”
그가 화색 띤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도 흥미롭게 바라봤다.
“알리바바. 이것이 제가 추천하는 회사 이름입니다.”
그의 얼굴을 보며 작게 웃었다.
그의 반응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