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알리바바
“마윈 님 되십니까?”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는지, 비서들이 남자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봤다.
꾀죄죄한 얼굴에 볼품없는 옷차림이지만, 직원들은 그를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당당한 눈빛. 현 모습은 별거 없어 보였지만, 눈빛에서 비치는 아우라는 그를 범상치 않은 인물로 보이게 만들었다. 자신감과 당당함이 그의 몸에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남자의 기본적인 정보와 신분을 확인한 직원은 앞장서 대표실로 이동했다. 두 번의 노크 소리에 안에서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리 시간을 내주어 감사합니다. 중국에서 온 마윈입니다.”
작은 체구가 무척 단단해 보인다.
그의 손이 먼저 앞으로 내밀어 졌다.
“특이한 사람이란 건 느끼고 있었지만, 이 모습도 썩 나쁘지 않군요. 제임스 맥어보이요.”
보통은 굽히고 들어와야 맞지만, 그의 모습에서 다른 사람과는 전혀 새로운 모습에 흥미가 동했다.
계열사 대표들 중에서도 자신은 상위권. 아무리 KJ그룹 내 같이 있어도 그 안에서도 급이란 게 존재했다. 빌 게이츠, 라나, 자신을 동일하게 놓고 나머지는 급수가 한참 아래인 사람들로 취급했다.
사람들도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늘 예를 갖추며 자세를 낮췄다.
“투자를 받고 싶다고요?”
“그렇습니다.”
사실 마윈이 이곳을 찾는 데 결코 순탄치 않았다. 세계 공룡그룹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진 기업이 KJ그룹이다.
영향력은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전체로 뻗어 있는 상태. 그런 곳에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마윈이 발을 들이기에는 장벽이 너무도 높았다.
하지만.
“어떤 사업을 하려는지 참 궁금하군요. 들어보도록 하지요.”
KJ는 생각처럼 장벽이 높지 않았다. 투자를 받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했다. 자본금이 비록 ‘0’일지라도 1%의 가능성만 보이면 투자를 해주는 곳이 KJ그룹이었다.
99%의 실천과 1%의 가능성.
KJ가 내건 슬로건이다.
‘1%의 가능성을 우습게 보지 마세요. 세상은 이 1%를 얻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그러니 모든 분들은 99%의 실천으로 1%를 얻기를 바랍니다.’
그 후 회사의 목표가 되었고, 방향이 되었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섭섭하지 않게 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 전 중국에서 50만 위안, 달러로 7만도 안되는 자금을 가지고 중국 인터넷 시장에 뛰어들어 운영 중입니다.”
마윈의 눈빛이 더욱 단단해졌다. 지금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중국에는 일본, 한국, 미국처럼 인터넷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다른 국가와 달리 발전이 더디다. 외국과의 소통이 단절되고 많은 부분이 도태됐다.
그런 상황 속에 미국에 넘어와 처음 접한 문화는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앞으로 인터넷은 인류를 크게 변화시킬 겁니다. 지금도 많은 부분이 변하고 있지요. 네트워크 마켓이나, 구글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중국에는 마땅한 인터넷 기업이 없습니다. 전 그 시장에 도전하려 합니다.”
“아주 잘 읽고 계시네요. 중국은 사업하기 아주 멋진 곳이죠. KJ에서도 중국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입니다.”
세계 인구의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중국.
제임스 맥어보이는 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이 남자 보통은 넘어. 그리고 중국에 인터넷 시장... 결코 나쁘지 않은 사업이야. 회장님께 보고를 드려야겠어.’
제임스 맥어보이는 중국이 탐났다. 하지만 중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 등장한 마윈.
이대로 사라질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102년 동안 지속될 기업을 만들 것이고, 중국 중소기업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할 겁니다. 전 제가 차린 이 회사가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성장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긴 연설 끝에 마윈의 입이 닫혔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아주 좋은 이야기입니다. 전 이번 투자 건에 대해 회장님께 보고드릴까 합니다.”
“네?!”
투자자금에 대해 상당 부분 권한을 들고 있는 제임스 맥어보이지만, 회장의 생각을 듣고 투자 규모를 결정 짓고 싶었다.
KJ그룹은 투자로 시작돼 이뤄진 다국적 공룡기업.
이번에도 좋은 두근거림이 마윈으로부터 흘러왔다.
“계시는 동안 KJ에서 모시도록 하지요.”
“아니, 정말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겁니까?”
대통령도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 KJ회장이란 말이 세계에 알려진 상태.
마윈은 떨리는 눈으로 제임스 맥어보이를 응시했다.
“우리 회장님은 투자에는 도가 트신 분이죠. 전 이번 투자 건에 대해 무척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장님도 큰 관심을 가지리라 봅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눈앞의 중국인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국가 인종을 떠나 비즈니스적으로 상당한 끌림을 받았다.
그를 KJ그룹의 손님으로 인정해 최고의 대우를 약속했다.
***
-벌금 100억에 징역 5년에 처해졌다. 김정수 회장의 어머니로 알려진 정지예 여사에게 100억 보증 대출을 끝으로 해외로 도피할 계획이었음을... 그 죄가 무거워...
-김정수 회장 명예훼손 100억, 앞으로 이들의 운명은?!
서교원과 정지은이 각각 5년 형을 선고받았다. 벌금은 100억.
사기 친 액수가 워낙 엄청나 벌금 자체가 높게 나왔다.
사기 친 돈은 한국제조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처분해 갚는 방향으로 갔다.
“이모, 제발 우리 부모님 꺼내주세요. 흑흑.”
서교원과 정지은의 자녀들이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 부족함 없이 자란 그들. 하나, 이번 일을 계기로 집안이 폭삭 주저앉았다.
온 집안은 빨간 딱지로 도배돼 이들은 옛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귀티가 흐르던 그들의 모습은 이제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던 그런 썩어 빠진 집안이에요. 심지어 엄마한테까지 사기 치고 해외로 도피해 잘 먹고 잘살 생각이었던 가족입니다. 그 안에는 저 둘도 포함됐고요.”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둘의 학교도 해외로 옮겼고, 그곳에서 사업을 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었다 한다.
아마도 엄마를 믿고 벌인 일이었으리라 내심 짐작했다. 그런 이들에게 자비를?
난 단 한 번도 그런 자비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사기꾼에게도 그런 아량을 베풀 정도로 난 부처가 아니다.
“......”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착잡한 심정으로 둘을 바라볼 뿐이다.
“여기는 제가 알아서 정리할게요. 들어가 계세요.”
아빠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며 늘 말씀하시던 아빠도 두 사람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들어가. 여기는 정수가 처리하게 하고.”
가족 하나가 잘못된 길을 가니, 온 가족이 힘겹다.
더는 이곳을 찾지 못하도록 만들어야겠다.
엄마도 이제는 이모에 대한 애정이 많이 옅어졌다. 아빠는 엄마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정수야. 미안해. 제발 좀 살려주라.”
“정수야, 이번만 잘 넘겨주면 두 번 다시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을게. 제발 부탁해.”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며 무시할 때는 언제고. 인생이라는 게 참 재밌다.
그때 이들은 알았을까?
아래로 향하던 시선이 위로 향하게 될지.
“그냥 나가세요. 전 두 분에게 어떤 것도 해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빚은 네 사람이서 잘 갚아 보세요. 제 명예훼손비도 꾸준히 갚아나가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갚을 수 있을 거라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있어 평생의 짐으로 남게 되리라 봤다.
자업자득. 이들을 보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정수야!”
“100억을 어떻게 갚아! 망했다고! 우리 집!”
“경기도 외곽에 반지하 괜찮은 곳 많은 거 아시죠? 먹고 사는 데 크게 지장은 없을 거라 봅니다. 뭐 하세요. 끌어내지 않고.”
제 발로 나가기 싫다는데, 직접 끌어내는 수밖에.
난 악독해지기로 하였다.
이런 사람들은 조금의 틈만 보이면 달려든다. 확실하게 선을 끊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
“#@#...”
살려달라고 했다가, 죽여버리겠다는 되도 않는 소리를 해대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문을 닫았다.
“엄마, 아빠.”
둘을 처리하고 두 분이 계시는 방으로 들어갔다.
“제가 어떻게 했음 하는지 말씀해 보세요.”
엄마와의 정리를 깔끔하게 해야 한다. 나중에 마음의 병이 강해져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에 조심히 물었다.
“감옥에서 나오면... 아니다. 그냥 놔둬.”
무언가 말씀하시려다 입을 닫으신다. 분명 내게 원하는 게 있다. 그렇게 동생에게 당하고도 동생을 챙기시려는 걸까?
“엄마, 이모와 이모부는 큰 잘못을 저질렀어요. 뉴스를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죠. 그럼에도 감싸고 싶으세요?”
“... 정수야.”
엄마의 입이 무겁게 열린다.
“기회를 주면 안 될까?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에게까지...”
“좋아요. 대신 엄마. 조건이 있어요.”
엄마가 말을 멈췄지만,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거 같다.
“두 번 다시 이모 가족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연락을 차단하시고 출소했을 때도 보지 않는다면 둘에게 약간의 기회를 줄게요.”
엄마에게는 미안하다. 그런데 이러지 않으면, 계속 이모에 빠져 사실 거 같다.
이참에 확실하게 연을 끊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고마워. 아들... 흑흑.”
이 상처는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하나 있는 가족을 버리는 일이다.
엄마와 약속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나간 둘에게 사람을 붙이세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감시하세요.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밖으로 나와 바로 지시했다. 엄마와 약속을 했지만, 난 기회를 주겠다 했지 바로 도움을 주겠다 하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에 따라 내 결정은 달라질 것이다.
“회장님, 안에 계시는 동안 베어링스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러기를 잠시, 집사가 다가왔다.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가요?”
“그렇습니다. 꽤 중요한 일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제가 직접 연락해 보지요.”
“알겠습니다.”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가 웬일이지?
가족에 대한 일은 어느 정도 해결 지었으니, 뒤로 미루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저장된 번호를 검색해 눌렀다.
“접니다.”
20초 정도 지나고 나서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께 보고를 해야 할 일이 있어 이리 연락을 드리게 됐습니다.
음, 그에 대한 권한을 꽤 높게 해줬는데, 그럼에도 내게 보고를 할 정도의 일이라.
무엇일지 무척 궁금해진다.
“제게 보고할 정도면 꽤 큰일이겠네요? 목소리를 들으니 나쁜 일은 아닌 거 같고. 뭔가요?”
-중국에서 마윈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투자를 요청한 일이 있는데, 보통 인물은 아닌 걸로...
뭐, 잠깐만. 마윈?!
내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저 방금 누구라고 했나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인물.
그자가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만약, 그 인물이 맞다면...
-마윈이라 했습니다. 혹시 아는 자입니까?
아차.
“아닙니다. 대표님이 관심을 가지는 자라니. 저도 만나보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아닙니다. 제가 움직이죠. 최대한 정중하게 모시세요.”
마윈, 내 기억 속에 자리한 그 사람이 맞다면 이건 대박이다.
중국 진출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는데. 일이 잘 풀릴 거 같다.
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
내가 잡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