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재벌 강림하다-63화 (63/145)

63화

#가족

“엄마, 이제 적당히 하세요. 이모가 엄마에게 어떻게 했는지, 아빠 아플 때 어떻게 했는지 잊었어요? 그 집 잘 먹고 잘살 때 우리에게 돈 한 푼 주지 않은 곳이에요.”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자주 들었다. ‘이모한테 미안해서 그래. 내가 더 잘 챙겨주지 못해서. 너무 불쌍해서.’

난 그 이야기가 귓등으로도 들려오지 않았다. 엄마가 하는 말 중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부모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정도.

다른 건 절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저 엄마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 그런가 보다 말없이 넘겼다.

이제 엄마도 바뀌어야 할 때다. 언제까지 못난 동생과 그녀의 가족들을 감싸 우리가 피해를 입을 수 없다.

“정수야. 꼭 그래야 해? 엄마 동생이잖아.”

이럴 때 보면 답답하다. 답답해서 사랑하는 부모임에도 거리가 느껴진다.

“죄송해요. 만약 제가 이러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길거리에 나앉게 됐을 거예요. 그래도 이모 편을 드실 거예요? 이모가 나쁜 길로 빠져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 한다 하더라도 엄마는 그런 이모 편을 드실 거예요? 이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정말 모르시겠냐고요.”

그간 참아왔던 모든 말을 쏟아냈다. 세상에 이런 바보 같은 분도 많지 않을 것이다.

“엄마. 엄마에게 있어 가족은 이모만이 아니에요. 아빠가 있고 제가 있어요. 이모 하나로 우리 가족이 피해를 봤음 좋겠냐고요.”

언성을 높이고 싶다. 속 시원하게 소리를 지르고 싶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왜? 우리 엄마니까. 바보처럼 순수하고 착한 저분이 내 엄마니까.

“......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하... 정말 엄마의 눈물은 보기 싫었는데. 엄마는 끌려가는 두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바닥을 바라보며 서럽게 우셨다.

기자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사진을 찍으려 하였지만.

“이 모습을 기사로 쓰는 분이 있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기자들에게 단호하게 경고를 줬다.

내 경고는 경호원들을 움직였고, 경호원들은 철벽같이 벽을 둘러 우리를 가렸다.

“이 실장님. 고생 많았습니다. 별도의 보고는 필요 없으니 오늘은 일찍 퇴근해 편히 쉬세요. 오늘 일에 대한 보상은 섭섭하지 않게 돌아갈 겁니다.”

엄마를 차량에 태우고 오늘 하루 고생한 이연희 실장에게 감사를 전했다. 가장 고생했을 그녀, 그녀를 엄마 곁에 붙이길 잘한 거 같다.

이 실장은 작게 미소를 짓고는 자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차량 문이 닫혔다.

커튼을 쳐 바깥은 보이지 않는 상황.

우리는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

***

-긴급속보!! KJ그룹 김정수 회장의 사촌으로 알려진 서 모 씨와 정 모 씨가 사기,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최초 신고자는 김정수 회장으로 엄벌에 처하게 해달라는 첨언까지 걸었다.

-또한 이번 한국제조에 관련되어 퍼지고 있는 ‘곧 KJ와 거래를 하게 될 예정. 그래서 확장을 위한 투자자 모집 중. 조카에게 창피.’라는 소문도 단 한 번도 언급한 적 없는 내용이라며 서 모 씨에게 명예훼손 고소조치를 취했다.

-여타 재벌기업과 다른 움직임을 보인 김정수 회장. 같은 핏줄, 학연, 지연으로 뭉치면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지금껏 재벌 가문과 정치계가 그러했다. 한데, 김정수 회장은 이모 서 모 씨 가족을...

“이런 개새끼가 진짜! 어쩐지 내가 이상하다 했는데... 시발!”

상위권에 올라온 메인 기사를 보자 중년인은 목을 부여잡더니 벌떡 일어나 거친 욕설을 뱉으며 분노를 표출했다.

기사에 떡하니 보이는 두 얼굴. 분명히 자신이 아는 그놈이 맞았다.

빌어먹을 새끼! 그때 눈치를 채고 의심을 해야 했는데.

왜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선택해 일을 벌이는지, 그 부분에 대해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 큰 실책이다.

쾅─!!

방문을 신경질적으로 강하게 닫고 급히 주차장으로 향했다. 부릉! 걸리는 시동 소리는 그의 기분을 대변하듯 거칠게 울며 ‘끼익!’ 타이어 긁는 소리와 함께 도로로 내달렸다.

“당장 내 돈 내놓지 못해! 당장 내놓으라고!”

“결제가 벌써 4개월째 밀렸어. 얼만 줄 알아? 2억이야 2억. 믿고 있던 사람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

“너희들도 다 한통속이야. 알고 있었지! 너희들 대표가 이러는 거 알고 있었잖아! 당장 돈 내놔!”

한국제조 공장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납품도 해야 하는 마당에 그러지도 못하고,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곤욕을 치렀다.

“저도 모르던 사실입니다. 대표님 진정하세요.”

“당신이라면 진정하게 생겼어! 어서 내 돈 내놔! 내 돈!”

회사가 곧 망할 거란 사실을 알았는지,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 현장을 점령하는 한편, 밖으로 나가는 모든 차량을 막아섰다.

광기가 잔뜩 서린 목소리가 한국제조공장을 잠식했다. 긴 시간 납기를 미루거나, 결제를 미뤄 밀린 미수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분노.

KJ만을 바라보고 투자를 감행한 투자자와 서교원의 지인들.

그들은 한뜻이 되어 한국제조공장을 압박했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요. 이게 전부 대표... 큭!”

“이 새끼야! 내가 모를 줄 알아. 너희들 한통속이잖아. 우리 돈 가져갔음 내놔야 할 거 아냐!”

서지원 이사. 서교원의 친동생으로 한국제조 이사를 맡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말하는 도중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지 말고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뒤로 밀려나 땅바닥에 맞은 그는 자신을 친 상대를 올려봤다.

비철을 공급하는 광진비철 대표 나석진이었다.

“이 새끼가 다 아는 사이끼리 거짓말을 해도 정도가 있지. 야 개새끼야, 당장 내 돈 안 내놓으면 너도 콩밥이야!”

“뭐야? 서 이사 당신도 한패야? 개시발놈의 집안이 뭐 이따위야. 야 이 X만아, 모르는 일이라며!”

“그치? 친동생 새끼가 아닐 리 없지. 그 피에 피라더니. 내 돈 먹고 튀려고 그래?”

서교원의 동생인 줄 몰랐거나, 잠시 주저하던 사람들은 나석진 대표의 음성에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서교원에게 향하던 분을 서지원에게 향했다.

“자, 잠시만. 알았어요. 알았다고! 줄게요! 줘.”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손들에 겁을 먹은 서지원은 발악하듯 외쳤다.

그는 시선을 황급히 돌려.

“김 과장! 김 과장! 빨리 이 사람들에게 돈 줘. 빨리!”

경리과장을 불러 당장 결제할 것을 지시했다.

“아, 네? 네네!”

워낙 경황이 없던 터라 경리과장은 당황해 대답이 늦었다, 이내 말의 뜻을 알아듣고 자리로 달려갔다.

그제야 달려들던 사람들의 손길이 멈추고, 잠시 대치상황이 되었다.

“이 대리, 어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돈 다 보내!”

밖에 나가지 못한 채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고성을 불러 자리에 앉혔다.

사무실은 누구 하나 제대로 말 한 번 꺼내지 못했다.

궁금한 시선이 둘에게 머물다 그들은 시선을 돌렸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 여기서 묻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닌 걸로 보였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슬며시 시선을 밖으로 던졌다.

“어, 이거 왜 이래?!”

그러던 중 이소영 대리 입에서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는 공기를 타고 김소정 과장에게로 향했다. 시선을 밖으로 던지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이소영에게 향했다.

“무슨 일이야?”

“결제가 안 돼요. 과장님.”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거래대금을 확인하려던 김소정 과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소영에게 향했다.

“기다려봐. 설마, 아니겠지. 아...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다 다시 멈칫. 김소정은 자리로 돌아가 수화기를 들었다. 다급한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제발 아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두 손으로 수화기를 꼭 잡았다.

“한국제조입니다. 자금결제를 하려 하는데, 결제가 먹통...”

잠시 후 거래하는 은행 담당자가 전화를 받았다. 김소정 과장은 황급히 이상 현상에 대해 물었다.

-해당 기업은 거래 정지당했습니다.

“네?!”

-결과 나오면 은행에서 직접 찾아갈 겁니다. 이만.

일방적인 통보가 수화기 너머에서 귀로 꽂혔다. 김소정은 서 있던 몸을 의자에 앉히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다... 끝났어...”

그녀의 목소리는 이소영 대리와 그 너머에 자리해 있는 직원들에게 전달됐다.

사무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얼마 뒤 팩스기가 시끄럽게 울어댔고, 잠잠하던 바깥이 다시 소란스럽게 변했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뚫고 사무실로 진입하고 있었다.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세요. 지금부터 컴퓨터와 그 밖의 문서에 손을 대면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일을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로 입건하겠습니다.”

검찰에서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한국제조를 찾았다. 강렬한 포스를 뿜어내는 검찰은 종이를 내보이며 모두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주문했다.

파란색 상자가 사무실 여기저기 펼쳐진다.

직원들은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깨닫고는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자신들이 곧 일자리를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감했다.

-한국제조 검찰 압수수색 진행.

-은행결제 정지. 검찰은 경리과장을 포함해 회사 임원진들을 대거 잡아들여 검사를 벌이고 있다.

“어떻게 할까요?”

신문을 보고 있던 와중 이호영 실장이 묻는다.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세요. 제 명예훼손은 100억으로 하시고, 검찰과 법원에 연락해 우리 가족인 만큼 선처 따위 개나 주라 하세요.”

“... 알겠습니다. 지시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조금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로 인해 받은 피해는 결코 적지 않다. 그건 증시에서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엄마와의 사이가 많이 서먹하게 변했다.

엄마는 방에서 하루 종일 슬픔에 빠져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다.

“어쩔 수 없어요. 이대로 놔뒀다면 더욱 잘못된 길에 빠져 더 큰 범죄자가 되었을 테니까요.”

두 사람의 소지품에서 항공권이 나왔다고 한다. 여행을 가기 위함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시기가 공교롭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아무래도 큰 거 한 방 제대로 해 먹고 해외로 잠수타려 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끝났다.”

그들로 벌어진 엄마와의 관계는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급속도로 몰려오는 피곤함에 등을 뒤로 젖혀 눈을 감았다.

조금 쉬고 싶다.

그 시각 영국 베어링스 은행 본사로 아시아계 사람이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입장했다.

8대2로 올려진 머리를 쓱 옆으로 밀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휴, 잘될 거야. 여기가 안 되면 골드만삭스를 찾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그룹으로 알려진 베어링스 그룹.

남자는 중국어로 뭐라 뭐라 말하며,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기를 반복했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닫혔다.

그는 이내 비굴하고 약한 모습이 아닌,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로 엘리베이터 문에 시선을 집중했다.

얼마 뒤, 다시 ‘띵’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남자의 걸음이 앞으로 쭉 뻗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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