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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재벌 강림하다-59화 (59/145)

59화

#사기

“아니, 어떻게 그렇게 단호하게 끊을 수 있어! 싸가지 없게!”

정수가 방으로 들어가고 정지은 부부는 손님방으로 들어와 기를 쓰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지은은 남편인 그에게 오늘 있었던 조카의 태도에 대한 화를 표출하며 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게 말이야. 이모가 말하는데 돈 좀 만졌다고 무시하고 돌아가? 형님도 그래. 애새끼가 개념 밥 말아 처먹는 짓거리를 하면 혼내야 될 거 아냐.”

남편인 서교원은 정지은의 언니인 정지예와 그녀의 남편인 김보균을 욕하며 화를 냈다.

“맞아. 거기서 내가 뭐가 되냐고! 정말 창피해 죽을 뻔했다고.”

그 수많은 수행원들과 가정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살다 살다 그런 망신은 없을 터였다.

“방송에서 나올 때는 세상 착한 놈으로 다 나오더니.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둘은 쉬지 않고 친조카를 까기 바쁘다. 생각만 해도 화가 치미는지 코를 벌렁이며 콧김을 뿜었다. 정지은은 두 귓불이 새빨갛게 익었다.

“절대 이대로는 못 가.”

그러다 정지은이 눈동자에 불꽃을 만들어 활활 태웠다.

“어떻게 하게?”

“어떻게 하긴. 닭이라도 잡아야지. 꼭 조카의 투자를 받을 필요 없지. 지켜봐.”

정지은의 입꼬리가 옆으로 쓰윽 말려 올라갔다.

***

“하아… 오랜만에 놀러와 어쩐 일인가 했더니. 제 버릇 못 죽이고 찾아왔어.”

김보균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뭐라고 한마디 할까 하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차마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정수 아빠.”

그건 아내인 지예.

그녀가 있었기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당신에게 빌려 간 돈 아직도 주지 않았어. 지금이야 우리가 정수 덕을 보고 있다 치지만, 처제만 아니었다면 우리가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 정수 그 애가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당신도 알잖아. 처제가 정수에게 어떻게 했는지.”

평소에 말이 많지 않은 보균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과 동생에게 있어 한없이 바보 같은 아내의 성격 탓에 재산적으로 여러 번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나이도 먹었으니, 달라졌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그 돈 없다고 못 사는 거 아니잖아요.”

“… 에잉. 쯧.”

답답한 아내의 성격. 평소에는 똑 부러지는데, 이럴 때면 참으로 답답하다. 보균은 더 말했다 서로 감정만 상할까 입을 굳게 닫고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지예는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

때는 40년쯤 전이다. 지금은 깊은 영면에 들어가 계시지 않는 부모님. 가난한 상태에 두 분 다 몸이 좋지 않았다. 충분한 식사를 하지 못한 탓에 몸은 시간이 흐를수록 병들어 끝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렇게 남겨진 지은과 지예.

남은 유일한 가족인 동생을 돌보기 위하여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부모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동생을 위해 뭐든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독립한 동생. 결혼할 남자가 생겼고, 제법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 다행이라 여겼다. 그러다 연락이 끊긴 동생은 그 뒤로 연락이 없다, 이번 명절을 이용해 볼 수 있게 됐다.

처음 동생을 봤을 때,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언니, 나 좀 봐.”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고자, 거실로 나온 지예의 귀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예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무슨 일인데?”

“그냥 좀 중요한 이야기라, 조용한 데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지은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여 주변에 깔린 수행원들을 가리켰다.

“그래, 그러자. 나도 할 말이 있던 참이었으니까.”

지예는 걸음을 옮겼다.

“따라오지 말아요. 동생이랑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니까.”

그러다 뒤로 따라붙는 수행원들로 인해 걸음을 멈춰야 했다.

“맞아요.”

지은도 이들이 부담스러웠는지, 꺼려 하는 모습이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회장님 지시를 가장 우선하고 있습니다. 여사님 죄송합니다. 회장님 지시입니다.”

“정수가 그랬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래요. 그럼 편한 대로 해요.”

지예는 아들의 지시라는 말에 더는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요. 안 돼요. 이 이상 오지 마세요. 더 따라오면 다 자르는 수가 있어요. 내가 누군지 알죠?”

하나, 지은의 생각은 달랐는지 눈에 날을 세웠다.

“그건 회장님의 고유권한입니다. 여사님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지은의 말은 그대로 무시당했다. 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예의 뒤에 섰다. 절대 주눅 든 모습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얼굴들이었다.

“이익!”

“지예야, 그만해.”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지예가 나섰다. 지예는 동생을 타일러 앞으로 나갔다.

“칫.”

겨우 고용인에게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게 기분이 상했다. 지은은 입술을 꽉 깨물고 그들과 등졌다.

“어디 사람이 다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니? 그만 기분 풀어. 다 우릴 위한 거잖니.”

“……”

인생에서 처음으로 언니에게 질투를 느꼈다. 그러면서 이곳에 데려오지 않은 자식들과 정수를 비교하게 됐다. 성적도 학벌도 훨씬 우월하던 자녀들이 이 집에 발을 들인 순간 너무도 비교됐다.

크게 성공하여 모두가 우러러보는 위치에 오른 모습, 대궐 같은 집. 수많은 수행원과 값진 차들.

모든 것들이 부러움의 요소로 작용했다.

‘저 옷들 액세서리 전부 수백만 원짜리야.’

언니가 너무도 부러웠다. 영화 속에서 보던 귀부인의 모습. 그건 자신이 꿈에 바라던 삶이었다.

그간 크게 부족하지 않았던 삶이 너무도 부족하게 다가왔다. 몹시도 창피했다.

“언니 그 팔찌 에르메스 거네. 예쁘다. 나 차 봐도 돼?”

언니의 삶이 욕심났다.

지은은 언니의 손목에 낀 팔찌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이거, 정수가 프랑스 가서 사 온 건데, 주문제작을 한 거라 하더라. 차 봐.”

지예는 순순히 팔목에서 팔찌를 빼 동생에게 건넸다. ‘H’ 이니셜을 기점으로 크고 작은 다이아와 보석이 박힌 고가의 팔찌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와, 진짜 예쁘다. 언니는 좋겠다. 아들이 성공해서 이런 것도 선물 받고. 나도 이런 거 가지고 싶었는데.”

마치 자신을 위하여 제작되기라도 한 듯 손목에 딱 맞는다. 손목을 이리저리 비틀어 팔찌를 감상했다.

“네 손에 차니 예쁘네. 잘 어울린다.”

지예는 동생의 부러움이 가득한 눈을 보자,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품었다. 아들의 칭찬은 그 어느 것보다 값지게 다가왔다.

“언니는 이런 거 많겠지?”

“왜? 그거 마음에 들어?”

“예쁘네.”

“마음에 들면 너 가져.”

그녀의 마음을 눈치를 챈 건지. 지예는 텅 빈 손목을 내렸다.

“정말 이거 나 줘도 돼?”

“가져가.”

“호호, 고마워. 언니.”

지은은 기분 좋게 웃었다. 목적한 것 중 하나를 이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뭘, 근데. 날 보자는 이유가?”

“아니. 언니부터 말해. 나한테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지예의 물음에 지은이 고개를 저어 먼저 말하라 주문했다.

“그게. 아까 정수 때문에 속상했지.”

“아냐. 그럴 수 있지. 걔도 일하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닐 거야. 내가 하려던 말이 그거야?”

“너무 마음에 담지 말라고.”

“난 또 뭐. 아무렇지 않아.”

지은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얼굴로 지예를 바라봤다. 지예는 그런 동생의 모습에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의 동생이 아니야.’

비록 삶의 벽이 달라 연락이 뜸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언니 노릇을 하며 살고 싶었다.

부모님 대신 자신이 부모가 되어 동생을 챙기고 싶었다.

이건 여느 집에서나 같은 마음이리라.

“언니. 나 말이야. 우리 교원 씨에게 잘하고 싶어. 언니도 알잖아. 우리 집 아무것도 없는데, 나 데리고 가서 지금까지 행복하게 해줬어. 나도 도움을 주고 싶어.”

“……”

지은이 애처로운 눈으로 지예를 응시했다. 그런 동생의 시선을 받는 지예는.

“아까 그 사업 이야기 말하는 거야?”

“…응.”

아까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단 1초의 거절도 하지 않고, 뒤돌아서는 아들의 모습.

사실 조금은 도움을 줘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는 하였다. 하지만.

“미안. 그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정수에게 100억 원가량 증여를 받았다. 하지만, 그건 아들이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에 자신의 돈이 아니라 생각하며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돈은 자신의 돈이 아니라 생각하며 지내왔다. 동생도 중요하지만, 아들도 중요하다. 지예는 힘겹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언니, 나 교원 씨한테 아무것도 못 해줬어. 내가 돈을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야. 투자야. 정수 도움이면 나도 교원 씨도 모두가 잘되는 거라고. 회사가 성장하면 투자한 돈은 몇 배가 되어서 정수에게 다시 돌아갈 거고. 그리고 남남인 기업에 일을 맡기는 것보다 가족에게 맡기는 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에 있어.”

늘 퍼주던 언니다. 그런 언니의 성격은 형부보다 자신이 훨씬 잘 안다 자신했다. 그런데 생각처럼 잘 넘어오지 않는다. 팔찌를 얻은 건 가지고 싶은 욕심도 컸지만, 언니의 성격을 다시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한데, 이상하다. 그렇게 잘 넘어오던 언니가 강하게 나오니 조금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은아. 내가 다른 건 다 해줄 수 있어. 하지만, 그건 내가 해줄 수 있는 한에서야. 너와 내 일에 정수는 끼우지 말아줘. 그리고 그 팔찌는 그간 제대로 해준 게 없어 가져온 거야. 정수에게 들으니 몇 억 한다고 하더라.”

지예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동생을 위해 살아 줄 수 있는 건, 본인 스스로가 가진 능력 범주 안에서다. 자식으로 발생한 환경과 자본은 건들지 않기로 하였다.

“누, 누가 이딴 거 필요하다 했어! 사람을 거지로 아는 것도 아니고!! 내게 그깟 돈 몇 푼 투자해주는 게 아깝다면 아깝다고 말하면 될 거 아냐!”

결국 사달이 났다. 지은은 참고 있던 자존심을 터트리며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를 풀어 지예에게 던졌다.

탁! 하고 어깨에 강하게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여사님을 보호해.”

멀찍이서 이를 지켜보던 수행원들이 지예를 에워싸 지은으로부터 거리를 벌려 사이에 벽을 만들었다.

“괜찮아요. 그러니…”

“회장님 지시입니다. 곧 회장님이 오실 겁니다.”

당황한 건 지은도 마찬가지였다. 욱한 순간 위협적인 시선을 보내는 수행원들 시선에 도도하던 얼굴 위로 새파란 빛이 떠올랐다.

자신의 실수를 그제야 인지한 것이다.

곧 그녀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춰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모나 이모부는 답이 없네요. 어디까지 나오나 지켜보려 하였는데… 남의 것을 탐내다 이제 엄마에게 그걸 던져? 당신 당장 내 집에서 나가. 뭐 해요. 모두 내보내세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공기를 강하게 두들겼다. 극한의 분노에 공기마저 부르르 떨었다.

“저, 정수야.”

지예가 황급히 자신의 앞에 나타나 막아서는 이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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