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타깃 인수
-타깃 회장은 내려와라! 소비자를 우롱한 타깃 고발!
-본래 가격보다 비싼 할인가, 전단지에 명시된 가격보다 비싼 타깃 불매운동.
타깃 할인마트 주변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전단지가 사방팔방에 도배됐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에워싸 타깃 본사에서 시위를 벌였다.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타깃 앞에서 벌어지는 시위현장을 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그런 상황 속에…
“타깃이 국민들의 타깃이 되었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타깃 본사로 제프 베조스가 찾아와,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간 받아온 스트레스를 타깃 회장에게 풀듯이, 그와 마주 앉아 입매를 힘껏 비틀어 미소를 지었다.
‘이 기분인가? 좀 풀리는군.’
김정수 회장에게서 받아온 스트레스.
여기서 푼다.
“말을 걸러서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기업을 말아먹고 KJ로 들어간 사람보다 낫지요.”
“타깃이 다시 숨을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나 봅니다. 헛된 희망인데 말입니다.”
둘의 신경전이 허공에 만나 스파크를 일으켰다. 파지직. 파지직.
자존심 싸움일지, 그것도 아니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는 것인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고작 대표가 저에게 할 말은 아닌 듯싶은데. 세상이 참 좋아졌네요.”
“저도 사기꾼과 이런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게 불편하지만, 회장님의 지시라 말이죠. 한데, 말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제가 이 자리에 앉고 보니까, 제가 보지 못하던 게 보이더군요. 모두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마존 닷컴이 KJ에 편입되고 모든 자료가 공개됐다. 그 순간 정말 까무러치게 놀랐다. 대충 돈이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상상력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세계가 덤빈다 하더라도 KJ그룹을 어쩌지 못할 것이다.
세계 시총 1위 마이크로 소프트.
세계 시총 5위 인텔
세계 시총 3위 베어링스 그룹
세계 시총 88위 KJ전자
세계 시총 500위권 볼롬즈버리 출판사
그 밖에 KJ소주, 자동차, 등등…
‘게다가 LCD 사업…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력. 특히 네트워크 마켓은 세계 시장을 주도할 기업으로 성장하게 될 거야. 이런 기업과 싸우려 했다니. 내가 미쳤지.’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이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어느 기업도 해내지 못할 업적 그 자체였다.
KJ그룹과 싸우려는 기업이 있다면 뜯어말리고 싶다.
그건 총알과 포탄이 날아드는 전쟁터에서 계란을 던지는 꼴에 지나지 않았다.
그걸 모르고, 저런 배짱을 부릴 수 있다니.
“더 놀라운 사실을 말씀해 드릴까요?”
아직도 본인이 호랑이라 생각하며 날뛰는 병아리에게 한마디를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김 회장님께서 저에게 지시를 내리며 친절하게 타깃의 지분까지 주셨다 이 말이지요. 이 뜻은 주총을 열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모든 전권을 위임했다. 여기서 능력을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그의 위치도 달라지리라.
이왕 하는 김에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을 참이었다.
“당신이 선택할 건 둘 중 하나입니다. 명예롭게 내려가는 것과 불명예를 안고 내려가는 것. 그것이 당신이 선택할 목록입니다.”
주주총회를 연다면, 과연 투자자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비전을 확실하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과 사기꾼이 되어 국민들의 적이 된 자.
뭣하면 KJ가 가진 힘으로 매수하는 방법도 있으니, 이건 게임 자체가 되지 않는 일방적인 약탈이 될 것이다.
기업을 농락하며 성장하는 KJ그룹.
“그게 가능하리라 봅니까?”
“충분히.”
역관광을 보내주길 바라지만, 과연 세계적인 기업을 보낼 수 있을까?
거대한 흰수염고래의 물장구에도 위협을 느낄 기업이.
“장기전도 괜찮습니다. 회장님은 내게 기간까지 말하지 않으셨으니 말입니다. 뭣하면 K마트와 힘을 합쳐도 되겠죠.”
K마트는 타깃의 경쟁기업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와 타깃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번 일로 인하여 큰 수혜를 본 기업이 K마트이기도 했다.
그들을 민다면 타깃은 미국 시장에서조차 서서히 죽어 2위가 아닌 3위로, 그것도 아니면 맨 밑바닥으로 추락하게 될 터다.
“지금 협박하는 거요!”
끝내 타깃 회장의 입에서 고성이 터졌다.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극에 달하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음을 인증했다.
“그럼 이걸 칭찬으로 들었습니까? 사기꾼에게 칭찬을 하는 성격은 아닌데, 오해를 했다면 직설적으로 말씀해 드리죠. 이곳에서 제대로 된 결정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불명예를 안고 내려오게 될 겁니다. 확신하지요.”
그간 묵혔던 암덩이가 쑥 내려간다. 이런 맛에 살아가는 사람이 김정수 회장이라 생각하니, 부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결정하세요. 싫다면 바로 주총을 열지요.”
“이익!”
무언가 말을 하려 하지만, 타깃 회장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이길 수 있으리라 확신이 서지 않은 탓이다. 지금 타깃의 인지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의 입지는 밑바닥으로 추락해 다시 올라서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휴… 조건을 말 하시오.”
그쯤 되자 올라왔던 화가 사그라들었다.
“이제 생각이 변했나 봅니다?”
갑자기 침착함을 되찾는 그의 모습에 제프 베조스의 눈동자에 빛이 감돌았다. 그의 기가 꺾인 게 느껴졌다.
“지금 시세대로 당신의 지분을 넘겨받겠습니다. 이 정도면 당신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니라 봅니다. 단, 시간이 지나면 타깃의 가치도 추락하는 만큼, 당신에게 돌아갈 돈도 줄겠지요.”
그도 바보는 아니다. 지금의 타깃을 만든 인물. 감정적으로 나가 손해를 보기보다, 이득이 무엇일지 아는 사람이란 의미.
제프 베조스는 마지막이 왔음을 느꼈다.
“정말이지 빌어먹게도 화가 남에도 더는 욕할 기분이 들지 않는 내 자신이 저주스럽군.”
“……”
저 기분 이해한다. 옆으로 비틀던 입매를 바로 했다. 동질감을 느껴버렸다. 화가 남에도 분을 풀 수 없는 저 기분.
패배자임을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상황.
그러한 기분을 겪어 보지 못한 자는 절대 모를 기분에 빠진 그를 보며,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불명예보다 여기에 서명하고 명예롭게 물러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한다면 경영진이나, 사람들도 이쯤에서 물러날 겁니다. 혹, 불상사가 생긴다면 KJ에서 책임지겠습니다.”
배려 아닌 배려의 말을 건넸다. 회장은 말했다. 그는 거두지 않겠다고.
일을 못 해도 열심히만 한다면 거둘 수 있지만, 사기를 치며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강탈하려는 자는 절대 거둘 수 없다고.
“이걸로 당신은 최소한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 겁니다.”
타깃 회장은 모든 경영권을 내려놓기로 최후 결정을 했다.
절대 내어줄 수 없을 거라 말하던 그이지만, 현실을 깨닫고 그의 자존심이 확 꺾여 전의를 상실했다.
즉, 직직. 스륵. 휘갈기는 그의 서명이 종이 하단에 채워졌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제프 베조스. 그의 입이 조용히 열렸다.
“수고했습니다.”
***
“스탠퍼드 대학입니다.”
아마존 닷컴을 인수하고 3일 뒤, 스탠퍼드 대학교의 땅을 밟았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영입하기 위한 발걸음이다.
“저곳에 두 사람이 있을 겁니다.”
수행비서가 한 건물에 위치한 벤치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벤치에 자리한 사람들로 시선을 이동했다.
왁자지껄 떠드는 남녀들이 보였고, 그들과 거리를 벌려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두 남자가 시야로 들어왔다.
“저들인가 보네요.”
“여기서 기다리시면…”
“아니에요. 학교도 구경할 겸 좀 걷죠.”
스탠퍼드 대학은 처음이다. 내가 이곳을 걷게 될 날이 올 줄 몰랐다. 주변을 걸으며 열띤 토론을 하는 학생들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한가득 담았다.
“와우! 케이다!”
“케이!”
여기저기서 내 미국식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그리 단번에 알아보는지, 지나갈 때마다 학생들의 감탄사가 터졌다.
사람들의 존경과 선망 어린 시선을 받으며, 이쪽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두 남자에게 향했다.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맞나요? 김정수입니다. 당신들이 남긴 메일 흥미롭게 봤습니다. 괜찮다면 조용한 장소로 옮길 수 있겠습니까?”
조용한 장소라 해봤자 차량 안이다. 나는 말 없이 바라보는 그들을 이끌고 롤스 로이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세르게이 브린이 조수석에 앉았고, 래리 페이지가 내 옆을 차지했다.
“……”
“……”
“이제 좀 조용하네요. 두 분이 상당히 억울한 심정을 담은 메일, 그 부분이 궁금해 보자 했습니다.”
두 사람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그들도 놀랐을 것이다. 고작 메일 하나로 내가 직접 움직일 줄은 몰랐을 테니까.
난 그들을 보며 슬쩍 웃었다.
“부담 없이 말 하시면 됩니다. 뭐가 그리 억울하던가요? 난 둘을 처음 볼뿐더러, 당신들이 개발한 부분도 보고를 듣고 알았는데. 관련 검색엔진을 확인하니 미흡한 부분도 많던데 말입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막상 보니 학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긴, 구글이 빛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건 2000년대에 들어서이니, 이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을 문제다.
“어떤 말을 해도 좋으니, 편히 말하세요. 상황에 따라 당신들에게 작은 선물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휴… 사실 당시에 우리의 개발 엔진에 투자를 하겠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꿈에 부풀었죠.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천재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개발이었다 지금도 생각합니다. 한데, 그것은 이미 개발돼 시중에 상업화가 되어 있더군요. 우리가 개발한 것보다 완벽하게. 그간의 노력과 공들인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게 됐다는 생각에…”
래리 페이지가 두 손을 꽉 말아쥔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보니, 상실감이 꽤 컸나 보다.
이쯤 되니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가진 모든 기술은 누군가 가져야 할 영광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저들의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옛 영광을 찾아줄 수 없지만, 그들이 불편하게 살지 않도록은 해주자.’
이것이 내가 내린 답이다. 재벌로 만들어 줄 수는 없어도 부자로 만들어 줄 수는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해당 부서로 가면 어느 누구보다 잘할 것이다. 그들이 만들고 개발한 것들이기에.
“그랬군요. 그걸 두 분이서 만들었나요?”
뻔히 아는 이야기지만, 그들이 링크를 걸어 준 포털에 대해 물었다.
“당연하죠. 그건 우리의 아이와도 같습니다.”
조용히 있던 세르게이 브린이 분했는지,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모습이지만, 둘에게서 공통된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자부심.
전의를 상실했어도 자부심만큼은 죽지 않았다. 그에 따라오는 자존감마저.
“결정했습니다. 당신들만 괜찮다면, 두 분을 구글로 영입하고 싶습니다. 연봉은 그쪽에서 제시한 만큼 드리도록 하지요. 당신들의 실력을 우리 회사에 와서 입증해 보세요. 뭣하면 대표까지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
“…?!”
둘의 고개가 확 돌아가 나를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난 둘의 그런 표정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며 재차 말했다.
“두 분을 KJ로 스카우트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