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KJ자동차 디자인 그룹 설립 (2)
어정쩡하게 서 있는 그에게 다가가 손을 건넸다.
정면을 응시하던 그의 시선이 앞으로 내밀어진 손으로 향했다. 아차 싶었는지 허겁지겁 내 손을 맞잡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반응이 늦었습니다.”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그래도 앞으로 큰일을 하실 분인데, 어깨를 펴세요.”
중소기업의 대표도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럴진대, 그룹 본사의 회장을 보는 직원의 심정은 어떨까?
임원들도 나를 보면 긴장한다. 이호영 비서실장이 특이한 케이스.
“네, 네. 감사합니다.”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을 거예요. 그저 이 대리님에 대해 알고자 부른 거니까요.”
너무 긴장했다. 좀 풀어줄 필요가 있겠다.
이 대리의 긴장을 풀어줄 겸 가벼운 말을 늘어놓으며 자리로 이끌었다.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주며 자리에 앉았다.
“내가 즐겨 마시는 보리차예요. 줄 게 이 정도밖에 없네요.”
“아닙니다. 저도 보리차 좋아합니다.”
“이건 입이 심심할 때 드세요.”
테이블 밑에 자리한 작은 바구니를 꺼내 위로 올렸다. 안에는 포장되어있는 쿠키와 사탕이 깔려있었다.
그걸 앞으로 쭉 밀어, 이 대리 앞에 놓았다.
“이러지 않으셔도, 잘 먹겠습니다.”
내 시선과 맞닿자 바로 고개를 숙인다. 이거 생각보다 완전 허당인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또 이런 모습이 좋게 다가오기도 한다.
“전 이 디자인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걸 정말 이 대리님이 그린 건가요?”
테이블 위에 올려둔 종이를 펼쳐 놓았다. 하나같이 2000년대 나올 법한 내부 디자인이 수두룩했다.
심지어 스틱봉도 디자인을 했는데, 단순하면서 투박한 기어봉과 달리 고급차량에 들어갈 법한 세련미가 넘치는 그런 이미지가 담겼다.
“네, 제가 그린 겁니다.”
“언제부터 이런 걸 생각하게 되었나요?”
“처음엔 자동차가 좋아서 따라 그리기 시작하다, 내부적인 부분에 관심이 생겨 그려보게 됐습니다. 이건 19살 때 초안을 떠놓고, 이제야 완성해 회장님께 보내드린 겁니다.”
이 사람 진짜 천재다.
“배웠나요?”
“따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학교는 디자인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이것과는 거리가 좀 멉니다.”
떡잎부터 달랐구나.
천재들은 천재를 알아본다 했다. 일반인들은 천재를 그저 천재로 바라보지만, 천재는 천재를 천재로 보지 않는다.
아주 당연하며 그 분야의 최고라 치는 정도?
내 머릿속에 있는 천재들이 이 대리를 그렇게 생각했다.
-저런 사람 하나 정도는 있어야 살맛 나지.
-내가 타고 다니던 차도 나쁘지 않았는데, 저걸 보니 똥차였어.
-분석하고 싶다.
기억 속 저편의 생각들이다.
“목표가 뭔지 궁금한데, 목표가 있나요? 없다면 꿈이라도 괜찮습니다.”
사람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과 머릿속에 자리한 목표에 따라 발전을 거듭해 성장한다. 꿈이 동력이라면 목표는 윤활유랄까?
그것이 없는 사람은 단순히 사원 대리 과장까지, 잘 쳐줘야 부장이 한계다
어떤 직장인은 부장까지 가도 성공한 인생이라 하지만, 눈앞의 이 대리는 어떨까? 과연 그도 부장 정도를 목표로 삼고 있으려나?
“회장님께 그런 질문을 받게 될 줄 몰랐습니다.”
오, 이것 봐라. 어벙한 눈빛이 생기가 감도는 눈빛으로 변했다.
동시에 분위기도.
이거 진짜 물건일지도.
“계속 말하세요. 듣고 있지요.”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이게 목표일지 아닐지. 음. 제 이름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름이라…”
역시 독특하다.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제 이름이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지는 게 제 꿈이자 목표입니다.”
“업계에서 몰라도 세계인에게 알려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 그게 꿈을 물어보셔서…”
“그래, 그럼. 이건 어때요?”
“네?”
그의 말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건 또 하나의 브랜드로 탄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디자인을 고급차가 아닌 일반 승용차에 적용할까 합니다”
“네, 이건…”
그는 이걸 고급차에 넣고 싶었을 것이다. 긴 시간 고민 끝에 만든 디자인.
하지만, 과연 이게 그의 능력의 끝일까? 나는 그의 능력을 끌어올려 주고 싶었다.
이것이 어쩌면 천재를 활용하는 방법일지 모르겠다.
“고급차는 이것보다 더 고급지게 만들어 보세요. 내 눈은 높습니다. 내 눈에 차지 않는 이상, 전 일반 차량에 적용할 겁니다.”
지금 이 다자인만 하더라도 현 시장에 충분히 먹힌다. 하지만, 내 미래기억은 그것을 거부했다.
“대신 이 대리님이 디자인한 차량에 특별함을 부여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지요. 시트에 KJ로고(ΞΞ)를 표기하고 그 아래에 대리님의 이름을 새기세요. 그것이 우리 KJ자동차의 특별함이 될 거고, 대리님의 이름을 알릴 기회가 될 겁니다.”
[ΞΞ]
[Joo Ho Lee]
꽤 멋진 생각이다. KJ자동차는 반드시 성공한다 봤다. 세계에 풀릴 자동차 대수만 몇만 대, 몇십만 대가 될 것이다.
그곳에 우리의 디자이너들의 이름이 새겨지면, 그들에게는 곧 명예가 될 것이고 어쩌면 고객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뉴 개념 브랜드로 떠올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급 들었다.
“정말이십니까? 자칫 지저분해질 수 있습니다.”
“그 또한 능력이지요. 지저분하게 하느냐, 명품으로 만드냐? 그 부분은 전적으로 이주호 대리님에게 맡기죠.”
“하지만… 제 위치가…”
“걱정 마세요. 그 문제는. 디자인팀은 별도의 회사로 꾸려 그룹화시킬 겁니다. 곧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걸쳐 새로운 기업으로 운영될 거고, 디자이너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할 겁니다.”
“……”
“이 말은 제가 공표하기 전까지 혼자만 알고 있으세요. 난 이 대리님을 중히 쓰고 싶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그때까지 최대한 많은 디자인을 그려 놓으세요.”
꿀꺽.
목이 탔는지, 그도 아니면 긴장을 했는지 이 대리의 입으로 보리차가 연거푸 들어갔다. 난 그 모습을 잠시 지켜봤다.
그리고 테이블에 컵이 탁! 놓여지고 그의 고개가 확 숙여졌다.
“맡겨 주세요. 꼭 회장님께 보답할 수 있는 멋진 디자인을 뽑아내겠습니다!”
“그 말 기억해 두겠어요. 그날이 오면, 당신의 이름은 세계에 알려져 있을 겁니다. 그때 전 이 대리님을 세계에 공개하지요. 우리 회사에 이주호 대리가 있고 이 차를 디자인한 사람이라고. 그러니 또 다른 꿈을 만들어 새로움에 도전하세요. 그게 앞으로 이 대리님이 가게 될 길일 겁니다.”
“… 네. 넵! 알겠습니다.”
그의 눈빛을 보니 내 심장도 차츰 뜨거워진다.
나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건투를 빌지요.”
우리의 대화는 1시간 하고도 20분 정도를 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역시 인생은 패기야. 안 그래요. 이 실장님.”
“그렇습니다. 도전하는 자만큼 멋진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 주변 인재들을 틈틈이 살펴보세요. 특기가 있는데, 분명 그걸 알지 못하고 죽이는 직원들이 많을 겁니다. 수시로 적성 특기를 체크해 각자 맞는 업무로 배치하세요. 자리에 그냥 있겠다 싶은 사람은 놔두시고.”
“알겠습니다.”
좋은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본인들의 진짜 장점을 포기한 채 공부한 이들이다. 난 그들의 잠재력을 썩히고 싶지 않다. 이 또한 기업을 발전시키고 직원들의 역량을 늘리는 일이 될 것이라 봤다.
***
“아우디도 그렇지만 넌 진짜 천재 디자이너야. 골프 4세대까지 성공으로 이끌다니.”
“흥, 그다지. 저건 내 디자인이 아냐. 회사의 디자인이지.”
동료의 칭찬에도 전혀 기뻐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짜증을 내며, 인상을 팍 썼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모습이다.
“또 그런다. 어쩌겠어. 회사가 우리 것도 아니고.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직장인의 본분이지.”
그와 동기로 같이 입사한 남자는 동료의 불만에 가볍게 웃음으로 대응했다.
그리 큰 문제라 보지 않은 탓이다.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면, 회사를 차려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너무 낙담하지 말라고. 그리고 우리만큼 성공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없어. 다른 사람 봐봐. 아직도 바닥이야. 우린 탄탄대로, 물 흐르듯 잘 가고 있다고.”
그러면서 어깨를 펴고 가슴을 활짝 열어 대단함을 과시했다.
실제로 이들은 폭스바겐에서 조금의 막힘없이 위로 상승 중이었다. 나이대에 비하면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라 볼 수 있었다.
높은 직급에 높은 연봉.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이라면 인생이었다.
“자네는 그걸로 만족하나?”
“물론.”
“생각이 많지 않아 자네는 좋겠어. 쯧. 그래서 아우디를 나온 것인데. 설마 여기서도 이 꼴이 날 줄은.”
면접 당시와 너무도 다른 이야기들.
남자는 그 부분에 대해 회사에 몹시도 실망한 상태였다.
“쯧쯧. 자네는 그게 문제야. 회사에서 원하는 디자인 대충 그려주고 끝내면 될 문제를, 뭘 그렇게 깊게 생각해. 편하게 살자고. 편하게.”
실실 웃고 있던 남자는 이내 심통 난 얼굴로 불만으로 떡칠 되어 있는 동기를 나무랐다.
기분 좋게 다가섰더니, 기분을 잡치게 만들었다.
“난 이만 가보지. 더 있다가 싸움만 나겠어.”
이내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아직 남은 일이 있기는 했지만, 이 기분으로 더는 일 하기 힘들 거 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이 아닌 밖으로 향했다.
그를 바라보는 남자는.
“쯧쯧. 저러다 제 명에 다 못 살다 죽지.”
혀를 차며 등을 돌려 사무실로 들어갔다.
쉬이이—
둘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 독일 공항으로 비행기가 활주로를 따라 착륙하고 있었다.
거대한 기체의 게이트가 열리고 안에서 탑승객들이 공항 안으로 우르르 들어섰다.
“독일은 처음인데, 흥분되네. 피터 슈라이어. 오늘부터 당신은 KJ의 사람이 될 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달리 나 홀로 검은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독일 공항 위로 펼쳐진 하늘을 올려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이곳 펍에 피터 슈라이어가 있습니다.”
독일 시간으로 18시경.
난 독일의 한 골목에 자리한 작은 펍에 도착했다.
바로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하기 위하여, 사람을 고용해 그의 위치를 사전에 파악했다.
그리고 이 펍 안에 내가 찾는 사람이 자리했다.
“고생했어요. 이건 서비스입니다.”
“역시 통 큰 분이십니다. 언제든 연락 주시면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그에게 건넨 건 1천 달러.
꽤 큰돈이다. 하지만, 내가 찾는 사람보다는 적은 액수였다.
그가 떠나는 걸 잠시 지켜보다, 펍 안으로 들어갔다.
진하고 구수하면서 씁쓸한 맥주 향이 믹스돼 코끝으로 전해왔다.
“독일 하면 흑맥주라 했지. 나도 한잔해 볼까?”
나라의 문화를 즐기는 건, 사람을 찾는 것과 별개의 문제.
난 혼자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노란 곱슬머리 남자가 자리한 옆자리로 향했다.
“옆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내 입에서 나온 건 영어. 과연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안 되면 당장 통역사를 찾아야겠지만.
“마음대로 하세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감사합니다. 한데, 혼자 오셨나 보네요. 저도 혼자인 터라 심심한데, 어떻습니까? 제가 한 잔 살 테니 같이 마시는 게. 역시 술은 혼자보다 둘 아니겠습니까?”
난 그와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하여 술을 건넸다.
잠시 내 정체는 숨기기로 하였다.
그런데.
“천하의 KJ그룹 회장님을 여기서 뵙게 될 줄 몰랐군요. 게다가 값진 술까지 얻어먹게 될 영광을 얻다니. 제게 용건이 있어 오신 겁니까?”
내 정체가 단번에 탄로 났다.
디자이너라 그런 건가? 눈썰미가 보통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