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정리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느 곳에서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고가 되는 것만이 이 혹독한 세상에 살아남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것을 떠올리면, KJ자동차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대부분은 패배자나 다름없다. 타인의 성과를 밑거름 삼아 발전할 생각은 가지지 않고, 시기와 질투로 현 상황을 피하려 든다.
과연, 이런 사람들을 내가 이끌고 갈 필요가 있을까?
“작은 마음으로 큰 거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 기연 자동차의 한계가 거기서 나왔는지도 모르겠어.”
기연 자동차는 디자인 하나 바뀐 걸로 큰 성공을 거둔다. 내용물은 같은데, 오로지 파격적인 디자인 하나로 역대 최고의 실적을 달성했다.
2000년대에 생산된 ‘K5’ 이것이 그걸 증명했다.
자동차사에 있어 디자인은 실적과 연관된 만큼 매우 중요한 부서라 할 수 있었다. 같은 성능이면, 고객들은 더 나은 디자인을 찾을 터.
“도착했습니다.”
고민하는 사이 구 기연 자동차 공장에 도착했다.
내 소식을 들었는지, 임원진들이 긴장한 얼굴로 내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면면을 살피며, 건물로 들어갔다.
“오늘은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찾은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을 테니, 모든 임직원들을 식당으로 모이라 하세요.”
자동차 직원들을 한자리에 모이기에 적당한 장소로 식당이 적당했다. 익숙한 걸음으로 식당으로 향하는 복도를 가로질러 갔다.
“방에서 기다리시죠. 모두 모이면 그때…”
“아니에요. 바로 오라 하세요. 전 식당으로 미리 가 있겠습니다.”
오늘은 모두가 불편한 자리가 될 테다.
굳이 처음부터 이들을 챙긴답시고, 이들의 말을 따를 필요는 없었다.
임원진들의 얼굴에 구김살이 번지는 게 보였지만, 무시했다.
임원진들은 부랴부랴 달려, 직원들을 식당으로 모이라 지시를 내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직원들의 얼굴에 얼빠진 모습들이 한가득이다. 여기에서는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드르륵, 다그득. 드르륵.
의자를 끌며 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얼굴과 심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모두 차렷. 회장님께 인사. 안녕하십니까!”
90년대 감성을 듬뿍 껴안고 직원들의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김정수입니다. 저를 보신 분도 계시고 처음인 분도 꽤 되실 거라 보입니다.”
직원들의 인사를 받고 나온 첫마디는 무척 단순했다. 인사를 위한 말이기에 특별할 건 없었다.
폭풍을 맞이하기 위한 전초전이란 사실은 이들은 알지 모르겠다.
“제가 갑자기 찾아와 여러분들을 모시게 된 부분에 대해 무척 의아할 겁니다. 내가 왜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아 놓았느냐? 궁금하시죠?”
다시 한번 말을 끊고 주변을 둘러봤다. 입이 근질거리는지 달싹거리는 사람이 있었고, 가까운 사람들끼리 티 나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난 저들의 모습을 잠시 감상하다 다음 말을 이었다.
“힌트를 드리자면 결코 좋은 일로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불러 앉힌 건 아닙니다. 오히려 회사 하나가 날아갈 정도로 좋지 않은 말을 전하러 왔습니다.”
쿵!
이 한마디의 파급력은 가히 대단했다.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하던 직원마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나를 멍하니 응시했다. 임원진들은 새하얘진 얼굴로 바라봤고, 직원들은 입을 쩍 벌렸다.
“여러분들의 인식 하나하나가 회사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틀에 갇힌 생각 때문에, 이 회사에 대한 미래비전이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이 회사를 믿고 끝까지 함께할 필요가 있을까요?”
내 시선은 디자이너팀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부서별로 자리를 배정해 앉았기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 중 내 포상을 받은 이가 누구인지를.
희망을 잃은 눈빛 하나에, 불만이 가득한 시선은 한 뭉텅이.
아주 가관이다.
“난 얼마 전 KJ자동차의 로고를 새로이 선택했습니다. 무척 마음에 들었죠. 여러분들도 기존에 있는 영문 로고보다 이게 더 심플하고 세련돼 훨씬 보기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자, 묻겠습니다. 이 회사는 기연 자동차입니까? 아니면 KJ자동차입니까?”
내 시선은 입술이 가장 앞으로 튀어나온 디자이너 부서 쪽 한 여성에게 향했다.
“거기 여성분. 이름이 어떻게 되죠?”
“네? 저, 저요?”
시선이 맞닿자 여성이 당황한다. 도도한 표정이 확 사라졌다.
“네. 저와 눈이 마주친 당신이요.”
“이옥희 대리입니다.”
“네. 이옥희 대리님이 보기에 이곳은 기연입니까? KJ입니까?”
“KJ입니다.”
“네, 맞습니다. KJ죠. 그런데, 아직도 이곳이 기연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것도 아주 상당수로 말이죠.”
내 한마디에 모두 움찔거린다.
자르지 않고 회사에 남겨둔 경영진들까지.
물론, 여직원까지도.
“이번엔 다른 질문을 해 보죠. 기연 자동차가 왜 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경영? 무분별한 확장? 그도 아니면 경영자들의 잘못된 운영? 태국 때문에? 자, 여기서 손을 들고 당당히 발표해 정답을 맞히신 분께 백만 원을 드리죠.”
다시 식당이 떠들썩하게 변했다. 모두가 백만 원에 사로잡혀 눈빛을 밝혔다.
“기획실 이영호 대리입니다.”
“말해보세요. 기연이 왜 망했나요?”
“그건 무분별한 확장으로 발생한 빚과 갑자기 발생한 아시아 외환위기 때문입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기연은 무너지지 않았을 겁니다.”
“뉴스에 있는 걸 고스란히 가져왔네요. 결국 경영자의 잘못이다. 이 말이네요? 맞나요?”
“그, 그게… 맞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깨어지지 않는가 보다. 아쉽게도.
“내가 찾는 답은 아닙니다. 아쉽게도 틀렸습니다. 다음 분.”
“생산 박호경입니다.”
“부담 없이 말하세요.”
“당연히 경영자 잘못이죠. 그거 똑바로 했으면, 이 사달이 나지 않았을 건디. 넘 그럽니다.”
음, 아무래도 이 사람은 경영자에 상당히 반감을 가지고 있는 거 같다. 답을 이야기하기 위해 일어선 것이 아닌, 순전히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위함으로 보였다.
“앞 분과 같은 대답이네요. 아무래도 어떤 분도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이 없는 거 같으니 100만 원은 다시 집어넣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죠. 그건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의 생각과 인식 때문에 이 회사는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아무도 잘못된 운영을 막지 않았나요? 왜 회사가 힘들 때 돕지 않고, 도망만 다니고 남 탓으로 미룹니까? 어떤 누구도 이 틀을 벗어나, 앞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이 이 회사를 곪게 만들었다 이 말입니다.”
내 목소리가 조금은 흥분한 듯 보이지만, 이건 일종의 쇼다. 오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였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인식을 뜯어고칠지를. 해고를 하느냐? 그래야 회사 변할까?
최종 결론은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들을 뽑는다 하여 똑같아지지 않을 거란 판단이 섰다.
해고는 추후에 하더라도, 이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어, 회사를 바꿀 수 있게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그럼에도 따라오지 않는다면,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경영진 상관없이 과감히 정리해고에 들어갈 것이다.
사람들의 눈빛이 매우 뜨겁다. 날카롭고 따갑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내가 말한 건 진실이고, 사실인 것을.
“최근 내가 준 포상문제로 시기 질투로 따돌림을 하고 있다죠? 한 가지 말씀드리죠. 각 부서마다 내 사람이 잠복해 있어, 실시간으로 내게 보고가 들어옵니다. 처음 그 소식을 듣고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본인들이 부족한 건 생각하지 않고, 그걸 밑거름 삼아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따돌림이라니. 전 그런 사람은 우리 회사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디자이너팀이 움찔 떨며 모든 이들의 표적이 되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저 사람이 이주호 대리인가 보다.
“깨진 창의 이론과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 이 두 가지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환경에 대한 이야기죠. 주변 환경이 거지 같으면 회사도 거지가 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디자이너팀은 단 한 사람을 제외하면 거지네요. 생각은 가난하고, 창의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부서가 다른 부서보다 너무 갇힌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난 분명히 KJ자동차를 디자인하라 했지, 기연 자동차를 디자인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없습니다.”
내가 화난 부분 중의 하나가 이거다.
기연 자동차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모습을 버리지 못한 모습.
그럴 거면 내가 왜 기연 자동차를 인수해 KJ로 만들었을까?
“우리 회사에서 가장 많이 변화를 겪어야 할 팀이 디자이너실이고, 생각을 비틀어야 할 부서가 디자이너와 설계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그래서 이주호 대리를 특진시키고 2천만 원의 포상을 준 겁니다. 유일하게 깨어 있는 모습을 보였기에 행한 인사입니다. 여러분들이 내게 준 초안들을 다 보여줄까요? 이게 기연 자동차지. 어디가 대체 KJ자동차입니까?”
챙겨온 초안들을 사람들에게 돌렸다. 직원들은 그것을 보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난 속이 뒤집힌다.
“그래서 여러분이 바뀌라고 내 식대로 인사에 관여할 생각입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 더는 이런 불상사가 내 회사에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겁니다. 능력만 있다면 고졸, 대졸, 임원진 상관하지 않고 실적이 부족하면 직급을 강등하고 실력 있는 자를 위로 올릴 겁니다. 사원이 이사가 되는 것도 내 회사에서는 가능합니다. 고졸이라 해서 그 자리에 안주해 있지 말고 내게 실력을 보이세요. 이사, 상무, 대표 자리에 앉히겠습니다. 끝으로. 보고서에 힘 낭비하지 마세요. 가장 쓸모없는 게 보고서에 힘을 낭비하는 겁니다. 알기 쉽게만 작성해 보고하세요. 결재자는 실현 가능 여부만 판단하세요. 나머지는 대표가, 내가 결정합니다. 당신들을 결재 서명하라고 자리에 앉힌 게 아니에요. 아시겠습니까? 모두 성인이니, 잘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이만 마치겠습니다.”
어떤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보는 게 맞았다. 내 어이없는 말에 저들도 황당했을 테니.
저들끼리 생각을 정리하란 의미에서 그들을 무시하고 식당을 벗어났다. 따라붙는 경영진들을 손으로 막고, 비서만을 대동한 채 회사를 탈출했다.
“KJ자동차에서 벌어지는 일 상시 기록해서 내게 올리세요.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정리합니다.”
“알겠습니다.”
기간은 앞으로 한 달이다. 한 달 내 그들은 내게 많은 걸 보여줘야 할 것이다.
“한식집으로 가죠. 말을 많이 했더니 출출 하네요.”
KJ자동차를 벗어나, 한식집으로 이동했다.
열심히 일하려면 역시 밥심은 필수다.
차는 미끄러지듯이 도로를 달려, KJ자동차사로부터 빠르게 멀어졌다.